[제천·MG컵 리뷰]'어우흥'에 발목 잡힌 흥국생명

여자프로배구 / 이정원 / 2020-09-07 01: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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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이정원 기자] 스포츠는 결과를 쉽게 점칠 수 없다. 이번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가 그랬다. 남자부에서는 한국전력이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한국전력의 우승을 점친 이는 많이 없었지만, 한국전력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했다.

여자부도 마찬가지였다. 결승전을 앞두고 흥국생명의 우승을 점치는 분위기가 코트 안팎을 지배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어우흥)이란 말이 나왔다. 슈퍼스타 김연경의 합류와 이재영-이다영 슈퍼 쌍둥이의 파워가 셌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루시아에 전현직 국가대표 미들블로커 김세영과 이주아까지. 국가대표 라인업이었다. 대회 시작 전부터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도 나왔다.

예상대로 흥국생명은 강했다. 조별예선부터 준결승 경기까지 4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많은 감독들은 흥국생명을 향해 "정말 강하다", "블로킹 라인이 국가대표팀보다 높은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결승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상대는 GS칼텍스였다. 그것도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0-3(23-25 26-28 23-25) 완패였다.


GS칼텍스가 준비한 반전드라마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현장에서는 경기 승패보다 GS칼텍스가 흥국생명을 상대로 한 세트라도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더 컸다.

그 예상은 빗나갔다. 흥국생명은 이전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GS칼텍스는 1세트부터 이재영에게 목적타 서브를 집중했다. 이재영에게 공격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다영은 김연경에게 공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김연경의 2세트 공격 점유율은 40%를 넘겼다. 차상현 감독은 김연경 앞에 문명화-러츠 장신 타워를 붙인 전술도 효과를 봤다. 김연경의 공격성공률은 28%에 불과했다.

흥국생명은 또한 공격루트도 단조로왔다. 세터 이다영은 좋은 컨디션을 보인 루시아를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루시아는 이날 16점, 53%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는데 공격점유율은이 22%였다. 단 한 세트도 가장 많은 공격 점유율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다영과 루시아의 호흡이 아직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박미희 감독은 "선수들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믿음을 더 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우흥, 무실세트 승리가 준 부담감
'어우흥'이라는 단어도 선수들에게 부담감이 됐을 수도 있다. 박미희 감독은 현대건설과 준결승에 앞서 "컵대회 무실세트 우승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기사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고, 경기장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얼마나 발휘하냐가 중요하다. 무실세트 우승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무실세트 이야기가 선수들에게 큰 부담감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김연경 역시 "사실 무실세트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기자분들이 부담감을 주는 것 같다. 생각을 안 하고 싶은데 기사를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현대건설전 3세트 밀릴 때도 '이렇게 무실세트가 끝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시즌에 들어가도 흥국생명은 우승후보 1순위다. 탄탄한 선수층을 어떻게 하나로 묶냐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분명 시즌 들어가면 '어우흥'이라는 이야기는 나올 것이다. 이때 선수들이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냐가 중요하다. 박미희 감독은 "선수들이 견딜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더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흥국생명은 이재영-김연경의 공격 집중도가 높은 팀이다. 두 선수는 결승전에서 합쳐 66.93의 공격 점유율을 가져갔고, 준결승전에서도 60%의 공격 점유율을 가져갔다. 루시아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루시아의 활용도가 적었다. 외국인선수가 국내 선수보다 공격 점유율이 낮은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아마도 다영 선수와 루시아의 호흡이 더 맞아야 할 것 같고, 서로 믿음도 가져야 한다"라는 박미희 감독의 말처럼 이다영과 루시아의 호흡 맞추기는 흥국생명의 최대 숙제가 될 전망이다.

'어우흥'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흥국생명은 우승을 놓쳤다. 공은 둥글고, 스포츠는 결코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김연경은 복귀 미디어데이에서 "스포츠가 쉽지 않다. 말만큼이나 쉬운 것도 없다"라며 "전승 우승, 무실세트 우승은 쉽지 않다.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연경의 말처럼 스포츠는 쉽지 않다.

우승을 놓쳤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흥국생명이 얻은 것은 굉장히 많다. 좋은 보약을 먹었다. 좋은 보약을 먹었으니 그 힘을 정규시즌에 쏟으면 된다.

흥국생명의 2020-2021시즌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사진_더스파이크 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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