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김희진-박정아, 그들이 전하는 ‘V3’ 스토리

여자프로배구 / 정고은 / 2017-04-02 12: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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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정고은 기자] IBK기업은행이 세 번째 별을 품었다.


지난 달 30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챔피언결정전 4차전. IBK기업은행이 흥국생명을 3-1로 제압하며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기록, 챔피언자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용인에 위치한 숙소에서 우승의 주역, 이정철 감독과 김희진, 박정아를 만났다.


문득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 지가 궁금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기사 나온 거를 읽어봤다”라고 입을 뗀 이정철 감독은 “세 번째 우승인데 좋다. 지난 시즌도 지지난 시즌도 부상 때문에 시달렸는데 올 시즌은 초반부터 부상이 나왔다. 게다가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챔피언결정전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 힘든 시간들을 선수들이 이겨내고 얻은 결과물이라 너무 값진 우승이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대견하다”라고 전했다.


그랬다. 올 시즌은 결코 IBK기업은행으로서 쉬운 시즌은 아니었다. 이정철 감독을 비롯해 팀의 주축선수인 김희진, 박정아, 남지연이 모두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어 팀을 떠나있었다. 서로간의 호흡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지만 올림픽 일정 후 다시 팀으로 복귀해 시즌 준비를 하기에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던 것이 사실.


김희진은 “올림픽을 다녀온 게 양날의 검이었던 것 같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돌아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건 도움이 됐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쌓여 있어 힘들었다고. 특히나 마음고생을 했던 박정아는 “그냥 지금은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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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IBK기업은행은 시즌을 2주여 앞두고 열린 KOVO컵에서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정철 감독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은 정말 기대를 안했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고 연습량도 부족했다. 그리고 다른 팀은 한 두 사람 경기력이 떨어지면 다른 선수가 들어가서 해줄 수 있지만 우리는 백업이 없기 때문에 그런 여유가 없다. 선수들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다행히 걱정했던 리쉘이 생각보다 잘해줬다.” 이정철 감독의 말이다.


미디어데이 당시 IBK기업은행은 모든 팀들의 견제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초반부터 순위표 첫 번째 자리를 사수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주전세터 김사니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여기에 3라운드 들어서면서부터 흥국생명의 거센 도전도 시작됐다.


이 때쯤이었다. 박정아와 김희진이 지쳐있던 시점과 맞물렸다. 박정아는 “3-4라운드 때 바닥을 쳤다. 너무 힘들었다. 올스타전 때 쉬어야 하는데 경기가 초반에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위기감은 있었다. 플레이오프 진출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김희진은 “그런 생각이 심했다”라고 밝힌 뒤 “그래도 그 시기에 연습량이 줄면서 체력적으로 올라왔다. 그러면서 ‘안 되겠다, 이대로 지면 플레이오프도 못 올라가겠다, 최악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정철 감독도 일전에 인터뷰에서 “사니가 다치면서 ‘이래가지고는 플레이오프 진출도 장담할 수 없겠다’라고 생각했다”라며 아득했던 당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IBK기업은행은 5라운드 전승을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에 안착했다. 비록 정규리그 우승은 흥국생명에게 넘겨줬지만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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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과 입장이 바뀌었다. 기다리는 입장에서 올라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그 과정들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1차전을 3-1로 잡아냈지만 2차전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를 떠안았다. 상대 외국인 선수 알레나에게 무려 55득점을 내준 점이 뼈아팠다.


김희진과 박정아도 이때가 고비였다고 했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내 위에서 때리더라. 진짜 대단했다. 몬타뇨 같았다. 하얀 몬타뇨.” 박정아의 말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희진도 “난 베띠가 생각났다”라고 거들었다. 그들의 말처럼 이날 알레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박정아는 “설마 3차전에서도 알레나가 이렇게 하지는 않겠지라는 걱정이 들긴 했었다”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박정아의 걱정과 달리 IBK기업은행은 3차전을 3-1로 제압하며 챔프전 진출을 확정했다.


우려는 있었다. 하루걸러 하루 치러지는 경기 일정 탓에 주전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1차전에서부터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풀세트 끝에 고배를 마셨다. 2차전도 쉽지 않았다. 1세트를 16-25로 내줬다. 2세트도 7점차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이 세트로 인해 두 팀의 시리즈 향방도 나뉘었다. 이정철 감독뿐만 아니라 박미희 감독도 2차전 2세트가 승부처였다고 했다. IBK기업은행은 듀스 끝에 34-32로 세트를 따냈고 2차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3차전도, 4차전도 승리는 IBK기업은행의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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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확정지은 후 이정철 감독을 비롯해 김희진, 박정아는 올 시즌이 유독 힘들었다고 했다. 김희진은 “KOVO컵이 뒤로 미뤄지셔 열리다보니 시즌을 길게 하는 느낌이었다. 올 시즌만큼 시즌이 길었다고 느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박정아 역시도 “정말 한 라운드를 더한 기분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플레이오프를 갔었어도 2차전에서 끝났는데 이번에는 3차전까지 가니까 많은 경기를 치른 느낌이다. 그리고 사니언니랑 고은이가 번갈아 들어오다 보니 헷갈리는 부분도 있고 어려웠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결과가 잘 나와서 나중에 생각하면 좋은 기억만 남을 것 같다”라고 웃어보였다.


쉽지 않았던 우승으로의 길. 과연 그들을 버티게 했던 힘은 무엇일까.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여기서 지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승해서 우리가 힘들었던 걸 보상받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보니 간절해진 것 같다.” 김희진의 말이다.


박정아는 “지는 날이 이기는 날보다 더 힘들다. 그래도 우리는 많이 이기는 경기를 해서 상대보다 더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버텼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하나 더, 김사니는 IBK기업은행 선수들을 가리키며 이들에게는 우승 DNA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희진에게 그 말의 의미를 물었다. “아무래도 사니언니, (남)지연 언니도 그렇고 우승을 해본 선수들이 주축이기 때문에 거기에 다들 녹아들지 않나 생각 한다. 후배들도 언니들이 하니까 군말 없이 따라와 준다. 그런 모습들이 닮아가는 것 같다.”


옆에 있던 이정철 감독도 한마디 거들었다. “팀 문화라는 것이 있지 않나. 창단하고 나서 자리를 잡다보니 선수들도 이 분위기에 녹아드는 것 같다. 우승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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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리그에 뛰어든 이후 이제 6시즌 째를 소화한 IBK기업은행. 그러나 짧은 역사에도 불구, 그들은 당당히 3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이지만 올 시즌이 갖는 의미가 궁금했다.


우선 박정아. “힘들었지만 결과는 행복하다. 해피엔딩”이라며 간단한 소감을 전했다.


이어 김희진은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다. 배구를 하면서 그동안 주장을 맡아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주장이 됐다. 사실 나는 주장이 맞지 않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이끌어나가는 힘도 그렇다고 리더십이 있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결과물이 좋게 나와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장장 6개월여 동안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비록 시즌을 치르는 동안 어려운 일도,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늘 그랬듯 IBK기업은행은 묵묵히 그 시간들을 버텼고 결국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얻었다. 이것이 그들의 힘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사진_더스파이크 DB(문복주,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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