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요 슈퍼맨!’ 월드리그 숨은 히어로, 팀 매니저 이야기
- 국제대회 / 최원영 / 2016-07-04 12:09:00
[더스파이크=최원영 기자] 2016 월드리그 대륙간라운드가 마무리됐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격돌한 한국, 체코, 이집트, 네덜란드.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한 팀 매니저가 있다. 지난 7월 2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부터 한국 팀 매니저 김건우 씨, 체코 팀 가이드 이봄이 씨)
한국 남자대표팀 김건우 매니저는 주무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5월 11일 진천선수촌 소집일부터 줄곧 대표팀과 동행하며 선수단 생활과 경기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졌다.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한 그는 일본 및 캐나다에서 원정 경기를 치를 때도 원활한 통역으로 팀을 도왔다.
“처음에는 혼자 많은 인원을 챙기려 하다 보니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코칭스탭보다 선수들을 먼저 신경 쓰라고, 괜찮다고 배려해주셨어요. 저도 최대한 선수단이 대회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죠.”
약 두 달간 동고동락하며 선수들과도 돈독해졌다.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다들 저한테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해주더라고요. 형들이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어요”라고 전했다.
팀 매니저를 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승리했을 때”라고 답했다. “1, 2일 장충체육관에서 이겼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그만큼 꼭 이기고 싶었거든요.” 그의 바람대로 한국은 3연승을 거두며 월드리그 2그룹 잔류에 성공했다.
마지막 네덜란드 전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 김건우 매니저의 마음 속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허무할 거 같아요. 매일 선수들과 붙어 다녔잖아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같이 장난치고 밥 먹고 운동하고 그랬는데.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후련하기도 하고, 시원섭섭할 거 같아요”라는 말에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편 서울 장충체육관을 방문한 체코, 이집트, 네덜란드. 팀 매니저 외에 서울에서 일정을 도울 현지 매니저가 필요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6월 10일 팀 가이드를 모집했고 이봄이, 김재민, 최재형 씨가 각 팀 가이드로 선정됐다.
팀 가이드는 선수단과 협회, 호텔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각 팀 매니저와 일정을 조정하고 변동사항 등을 전달함은 물론 자료 전달, 팀 미팅 장소 예약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체코 팀 가이드 이봄이 씨는 배구를 워낙 좋아해 현장 가까이에서 배구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그녀는 체코 선수단에 배구 관련 정보와 더불어 한국,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려줬다.
체코 선수들이 자국에 없는 궁궐이 궁금하다며 경복궁 투어를 요청했을 때도 흔쾌히 응했다. 경복궁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던 선수들은 물로 어떻게 시간을 알아낼 수 있느냐며 질문세례를 던지기도 했다. 한 선수가 한국과 네덜란드 경기를 보며 “얀 스토크는 라이트인데 어떻게 서재덕과 같은 팀(한국전력)에서 뛸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도 막힘 없이 대답해줬다.
팀 가이드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선수단 요청이 불가피하게 거절됐다는 것을 전달해야 할 때였다고 한다. 선수단 일정에 따라 기존에 정해진 계획이 유동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든 것은 금세 잊혀졌다. 선수단의 자상한 배려 덕분이었다. 체코 코칭스탭은 그녀에게 팀 복을 건네주며 “너도 체코 팀 일환이니 입어라. 한국만 너무 응원하지 말라고 주는 뇌물이다”라고 웃었다.
선수들은 물병에 ‘밤비’라고 적어 이봄이 씨에게 선물했다. 유니폼, 양말, 수건뿐 아니라 물병 뚜껑 심지어 바나나에까지 본인 번호를 적는 선수들이 그녀를 팀원으로 생각하고 물병을 챙겨준 것이다.
마지막 이집트 전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보며 이봄이 씨는 “승패 여부와 관계 없이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한다. 모든 팀이 부상 없이 대회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며 소망을 전했다.
(왼쪽부터 네덜란드 팀 가이드 최재형 씨, 이집트 팀 가이드 김재민 씨)
이집트 팀 가이드 김재민 씨는 유난히 고생이 많았다. 이집트 선수단은 비교적 요구사항이 많은 편이었는데 라마단 기간을 수행 중이라 더욱 어려움이 컸다.
2016년 라마단 기간은 6월 6일부터 7월 5일까지로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시간에 의무적으로 금식을 해야 한다. 즉,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집트 선수단은 하루에 두 번, 저녁 7시 45분과 새벽 1시에 식사를 했다.
호텔 측에서 이 시간에 음식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 선수단은 이집트 대사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대한 선수들 경기력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김재민 씨는 누구보다 분주히 움직였다. 팀 가이드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가 가장 고생했다며 입을 모았다.
문화적 차이를 조율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그럼에도 중동 문화를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돼 기쁘다”라고 밝혔다. 김재민 씨는 훗날 국제 스포츠 관련 조직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다.
네덜란드 팀 가이드 최재형 씨는 대학교 1학년 때 국제청소년교류연맹에서 인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가이드를 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 한국민속촌을 소개하며 아이들과 무척 친해졌다는 그녀. “선수들이 우리나라,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더 열심히 해야죠”라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네덜란드 팀 가이드를 하며 왜 네덜란드가 강 팀인지를 느꼈다고 했다. “자기관리가 정말 철저해요. 저에게 요청하는 것도 체육관, 훈련 시간, 간식 딱 세 부분뿐이었어요. 경기에서 크게 이겨도 일희일비 하지 않더라고요.”
한 가지 에피소드가 기억난다는 최재형 씨. 선수들이 간식으로 따뜻한 파스타를 원했는데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숙소와 체육관 근처 편의점 다섯 군데를 돌아 파스타 20개를 손에 넣었다.
“팀이 이기니까 그간의 고생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선수들도 네가 해준 모든 것이 고맙다고 했어요.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듬뿍 담긴 말이었죠. 그때 참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한국에게는 2그룹 잔류의 운명이 걸려 있던 네덜란드와 마지막 경기. 어느 팀을 응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최재형 씨는 “네덜란드 팀 가이드로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국을 응원할 거 같아요. 대등한 경기를 펼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끝으로 그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선수단과 정이 들어서 아쉬울 것 같아요. 네덜란드 팀 여자 매니저가 일을 정말 잘하거든요. 두고두고 기억하며 본받을 거예요”라며 소회를 밝혔다.
한 경기가 열리기 위해서는 코칭스탭을 비롯한 선수단, 팀 매니저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회가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숨은 일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진/ 최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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