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장에서 하는 배구? 여자 세계선수권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 [女세계선수권]
- 국제대회 / 김희수 / 2022-09-28 15:14:00
2022 국제배구연맹(FIVB) 여자 세계선수권은 기존 대회와는 다른 장면들이 많다.
축구 경기장이 배구 코트로 변신했고, 개최국이 개막전을 원정 경기로 치러야 했다. 조명이 꺼진 관중석에서 관중들이 마치 영화관 같은 분위기로 경기를 지켜보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24일(이하 현지 시각) 폴란드-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여자 세계선수권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정상을 향한 24개국의 치열한 경기들이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경기 외적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배구 전문 매체 ‘월드 오브 발리’는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벌어진 몇 가지 특이한 장면들을 팬들에게 소개했다.
▲ 축구 경기장의 변신은 무죄? 1개의 필드에서 3개의 코트로!
이번 세계선수권의 조별 예선은 네덜란드의 아른헴과 폴란드의 그단스크·우쯔까지 총 3개 도시에서 진행된다. 특히 아른헴에서는 24일 개막전부터 27일 미국-캐나다의 경기까지 총 17경기의 조별 예선 초반부가 단독으로 진행됐다. 하루에 적게는 5경기에서 많게는 7경기까지 치러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아른헴 1개의 도시에서 소화하기 위해, 네덜란드가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축구 경기장에서 배구를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자국 축구 클럽 SBV 비테세아른헴의 홈구장인 겔레돔을 빌려 총 3개의 배구 코트를 만들었다. 이 중 2개 코트를 경기장으로, 1개 코트를 연습 코트로 활용하고 있다. 원래 대로라면 한참 자국 축구 리그(에레디비지에)가 벌어질 시기여서 불가능한 계획이었지만, 운이 좋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와 평가전 등 A매치 휴식기가 겹쳤다. 덕분에 겔레돔에서 10월 9일까지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됐다. 아른헴에서의 대회 초반 일정은 겔레돔의 성공적인 변신 덕에 수월하게 진행됐다.
▲ 개최국이 개막전을 위해 원정길에 오른 사연은?
종목을 막론하고 대회 개최국은 많은 이점을 갖는다. 시차나 음식 등의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고,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기도 한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폴란드와 네덜란드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개최국 폴란드-크로아티아 경기로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폴란드의 첫 경기는 네덜란드 아른헴에서 열렸다. 개최국임에도 홈 팬들에게 자국 대표팀의 첫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 채 시작한 것이다. 폴란드는 크로아티아전 이후의 조별 예선 일정은 모두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치른다. 이 바람에 폴란드와 같은 B조의 대한민국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첫 경기 이후 일정은 모두 그단스크에서 치른다. 27일 벌어졌던 튀르키예와의 경기는 그단스크에서 벌어진 B조의 첫 번째 경기였다.
개최국 폴란드가 첫 경기를 네덜란드 원정 길에 올라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적인 돈 문제가 얽혀 있었다. 공동 개최국인 네덜란드는 세계선수권 유치를 위해 2200만 유로(한화 약 300억 원)를 투입했다. 폴란드가 낸 돈보다 훨씬 많았다. 2200만 유로 중 430만 유로(한화 약 59억 원)는 경기가 열리는 아른헴과 아펠두른이 있는 헬데를란트 주의 자체 예산으로 마련했다. 많은 돈을 낸 덕분에 발언권이 강해진 네덜란드는 개막식과 개막전을 포함해 조별 예선 초반부를 독점할 수 있었다. 조별 예선 종료 이후에도 8강 두 경기, 4강 한 경기, 메달 결정전을 네덜란드에서 치른다.
폴란드 팬들은 개최국이 개막전부터 원정 길에 올라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많았다. 열성적인 팬들은 응원을 위해 네덜란드로 간 뒤 다시 폴란드로 돌아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 그러나 폴란드 배구 연맹(PZPS)은 이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다. 연맹 측은 앞으로 폴란드에서 벌어질 경기들과 네덜란드와의 공동 개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어두컴컴한 관중석, 고장? 혹은 에너지 절약?
개최국 폴란드는 24일 개막전에서 크로아티아를 세트 스코어 3-1(25-19, 21-25, 25-23, 25-15)로 꺾었다. 블로킹에서 13-9로 앞서며 크로아티아의 공격을 무력화한 것이 통했다. 아웃사이드 히터 올리비아 로잔스키는 팀 내 최다인 16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폴란드 선수들은 네덜란드까지 원정 응원을 와준 팬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눌 수 없었다. 기쁨을 나누기는커녕 어디에 폴란드 팬들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날 관중석의 조명이 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크로아티아의 경기는 개막전인 만큼 많은 팬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연히 관중석도 가득 찼다. 그러나 조명이 꺼진 관중석은 한 줄기 빛도 없이 깜깜했다. 팬들이 어둠 속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은 마치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보는 관객들을 연상케 했다. 왜 관중석에 조명이 켜지지 않았는지를 놓고 많은 추측이 나돌고 있다. 먼저 단순한 조명 시설의 고장의 가능성. 네덜란드가 세계선수권 유치를 위해 큰 돈을 투자하며 공을 들인 만큼, 개막전부터 조명 문제가 발생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전역의 에너지난 극복을 위한 절약 차원이었을 수도 있다. 주최 측은 관중석 조명이 꺼진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한편 개막전 바로 다음 경기였던 네덜란드-케냐 경기에서는 관중석 조명이 정상적으로 켜지면서, 팬들의 의문이 가중됐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는 경기 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으로도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모든 팀이 1경기 이상을 치르면서 예열을 마친 상황, 얼마나 더 다채롭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경기장 안팎에서 만들어질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 FIVB
[더스파이크=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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