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해머부터 원포인트서버까지, ‘원팀’ 대한항공의 해피엔딩[남자부결산①]
- 남자프로배구 / 이보미 / 2022-04-12 14:00:34
역대급 경쟁을 펼쳤던 남자 프로배구의 정상에는 대한항공이 올랐다. 더블해머로 시작해 원포인트 서버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며 ‘원팀’의 힘을 발휘했다.
대한항공은 2021-2022시즌 KB손해보험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5세트 8번의 듀스 접전 끝에 23-21을 기록하며 2승1패 기록, 팀의 세 번째 별을 달았다.
지난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에도 대한항공은 새 사령탑으로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을 선임했다. 1987년생 틸리카이넨 감독은 핀란드 출신으로 한국으로 오기 직전에는 일본의 나고야 울프독스에서 4시즌 동안 팀을 맡았다. 아시아 배구를 잘 아는 감독이다.
아울러 틸리카이넨 감독은 한 선수에게 의존하는 배구가 아닌 코트 위 6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배구를 원했다. V-리그 2라운드까지만 해도 주축 윙스파이커 정지석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구성원들을 고루 활용하며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1-2022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은 비상이 걸렸다. 정지석의 팀 합류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 결국 V-리그 개막전부터 ‘더블해머’ 시스템을 가동했다. 아포짓 포지션인 링컨 윌리엄스(등록명 링컨)와 임동혁을 동시에 기용한 것이다. 윙스파이커 곽승석과 미들블로커 이수황, 조재영, 세터 한선수와 리베로 오은렬이 선발 멤버였다.
임동혁이 리시브에 가담했지만 비중은 크지 않았다. 개막전 당시에도 리베로 박지훈을 후위 수비만을 위해 투입하는 등 수비 안정을 꾀했다. 곽승석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더 집중했다. 동시에 대한항공은 ‘더블해머’ 링컨, 임동혁으로 공격력을 끌어 올렸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우리는 아포짓 두 명을 세운다. 두 선수가 망치질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1라운드 2승4패로 부진했다. ‘디펜딩챔피언’이자 ‘우승후보’로 꼽힌 대한항공은 1라운드 6위에 머물렀다. 2라운드부터 반등에 성공했다. 리베로 정성민도 11월부터 코트에 오르면서 팀 안정감을 더했고, 2라운드 삼성화재전에서 신인 윙스파이커 이준 투입도 3-2 승리의 요인이 됐다. ‘원포인트 서버’ 임재영의 존재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틸리카이넨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베테랑 선수들이 중심을 잡았고, 베스트7만이 아닌 웜업존을 지키던 선수들마저 코트 위에서 날아 올랐다.
버티고 버틴 대한항공은 3라운드 정지석이 팀에 합류하면서 고공비행을 했다. 대한항공의 가장 큰 무기인 스피드가 살아났다. 곽승석, 정지석 백어택까지 살리면서 상대 블로킹과 수비를 따돌렸다. 5라운드 막판에는 6경기 연속 승수를 쌓으면서 1위 굳히기에 나섰다.
6라운드 2위 KB손해보험과의 맞대결에서 3-2 진땀승을 거두면서 정규리그 1위 확정을 짓기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OK금융그룹 원정 경기에서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 과정에서도 대한항공은 프로 2년차 임재영과 신인 이준, 정한용, 김민재 등을 고루 활용했다. 특히 임재영은 3월 22일 KB손해보험전에서 서브 3개를 성공시켰고, 3월 29일 삼성화재전에서는 원포인트 서버가 아닌 윙스파이커로 나서면서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인 19점을 터뜨리기도 했다. 분위기 메이커 임재영의 활약에 팀원들도 웃었다.
세터 유광우, 아포짓 임동혁 교체 카드도 든든했다. 전위 공격수를 늘리기 위해 혹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꺼내든 이 카드는 적중했다. 유광우 역시 노련했고, 임동혁은 파워 넘치는 공격과 높이로 팀 공헌도를 끌어 올렸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KB손해보험이었다. KB손해보험은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전력을 꺾고 팀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올랐다. 통산 8번째 챔피언결정전을 맞이한 대한항공과 노우모리 케이타(등록명 케이타)를 앞세운 KB손해보험의 각축전이 펼쳐졌다.
1차전에서는 대한항공이 이겼다. 2차전 패배는 충격이 컸다. 세트 스코어 1-1 상황에서 3세트 24-19로 앞섰지만 1점을 내지 못하면서 1-3 역전패를 당했다. 상대 에이스 케이타를 막지 못했다.
3차전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대한항공의 기적이 일어났다. 5세트 9-12로 끌려간 대한항공. 틸리카이넨 감독은 선수들에게 화이트보드에 쓰인 ‘NEVER GIVE UP’ 문구를 가리켰고,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지석 활약으로 14-14 듀스에 돌입했고, 21-21에서 케이타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케이타의 서브 범실, 곽승석이 케이타 백어택을 가로막으며 기나긴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챔피언결정전 1, 2차전에서 결장했던 미들블로커 조재영 선발 기용도 신의 한수였다. 결정적인 순간 조재영이 서브로 상대를 괴롭히면서 팀 승리에 일조했다.
챔피언결정전 MVP는 링컨이었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물음표를 남겼던 링컨이다. 팀이 점차 안정을 찾으면서 스피드배구에 어울리는 아포짓의 역할을 해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링컨의 한 템포 빠른 공격과 서브는 인상적이었다. 우승 축포를 터뜨린 뒤 링컨은 “다같이 함께 하는 배구, 끝까지 정신력을 보여주는 배구를 했다. 케이타가 어메이징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결국 잘 막았다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한항공의 V3는 19명 선수들의 합작품이었다.
사진_더스파이크DB(유용우,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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