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V3 일궈낸 한선수·곽승석 "3차전 5세트 승부, 다시 못 할 것 같아요"
- 남자프로배구 / 용인/이정원 / 2022-04-19 14:00:06
"두 번 다시 이런 경기는 나오기 힘들죠."
지난 9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는 V-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가 펼쳐졌다. 대한항공과 KB손해보험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5세트, 이 세트를 가져오는 팀이 올 시즌 챔피언에 오르는 중요한 세트였다.
모든 선수들이 1, 2차전뿐만 아니라 앞선 네 세트에서 체력을 모두 소진했다. 단 한 번도 치열하지 않았던 승부가 없었기에 선수들의 몸은 이미 녹초가 됐고,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었다.
끝날 듯 하면서도, 끝나지 않은 승부 끝에 웃은 자는 대한항공이었다. 22-21에서 대한항공 곽승석이 노우모리 케이타(등록명 케이타)의 공격을 막아냈다. 177분, 역대 V-리그 최장 시간 승부의 마침표가 찍혔고 대한항공은 2년 연속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석권에 성공했다. 또 V3 역사를 새로 썼다.
<더스파이크>는 최근 대한항공 V3를 모두 경험한 한선수와 곽승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승부, 코로나19 속에 쉽지 않은 시즌을 보낸 끝에 거둔 우승이기에 더욱 감정이 남달랐다.
한선수는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오랜 기간 고생할 줄 몰랐다. 올 시즌도 힘들었다. 선수들도 지쳤는데, 지친 상황에서도 버틴 것 같다. 자기가 해야 될 것을 정말 잘 했다. 끝까지 버틴 결과 우승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뜻깊다"라고 이야기했다.
곽승석도 "기회가 왔을 때 우승을 해 기분 좋다. 이번에 극적으로 드라마를 써서 더 기쁘다"라고 웃었다.
5세트 승부는 그야말로 최고의 명승부였다. 사실 대한항공은 KB손해보험에 13-14 매치 포인트를 내주며 위기에 몰려 있었다. 케이타의 서브가 정지석을 강하게 흔들었고, 공은 대한항공 벤치 쪽으로 높게 떠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한순간, 링컨의 완벽한 이단 연결과 함께 정지석이 자신감 넘치는 공격으로 14-14 듀스를 만들었다.
곽승석은 "이때 케이타 서브에 흔들렸지만 링컨이 잘 올린 것을 지석이가 득점으로 해결하지 않았냐. 그때 '아, 우리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고, 한선수는 "나는 그냥 믿었다. 나를 믿고, 팀원들을 믿었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
22-21에서 케이타의 공격이 곽승석의 손에 막히는 순간, 옆에서 바라본 한선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또 맹활약하던 주포의 공격을 막은 곽승석은 어떤 자릿함을 느꼈을까.
한선수는 "3차전 5세트는 정말 다 위험했다"라며 "만약 수비가 그 공을 살렸다면 네트에 맞았다고 우기지 않았을까"라고 웃었고, 곽승석도 "맞는 순간 상대 코트에 떨어지길 바랐다. '제발 제발' 했는데 떨어졌다. 만약 수비가 됐으면 내 손에 안 맞았다고 했을 것 같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보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긴장감과 재미를 줬지만, 그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KB손해보험 후인정 감독도 "내가 본 경기 중에 원탑으로 뽑히는 경기다. 보는 사람은 재밌었지만, 하는 선수들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곽승석도 "두 번 다시 이런 경기는 안 나올 것 같다. 더구나 챔프전에서 그렇게 간다는 거 자체가 쉽지 않다. 물론 이긴다는 보장이 있으면 하겠는데, 아니라면 피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한선수도 "할 수는 있는데 하기 싫다. 팬분들이 봤을 때는 최고의 경기였다. 그러나 선수들은 최악의 경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승을 일궜다. 이날 우승 현장에는 2,120명의 팬들이 대한항공 우승을 함께 했다. 한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선수들과 팬들이 호흡할 기회가 적었는데, 오랜만에 뜨거운 열기와 팬들의 응원 속에 경기를 치렀다. 선수와 팬이 함께 한 우승이어서 더욱 감격스럽다.
곽승석은 "의정부에서 열린 2차전 때도 워낙 많은 분들이 오셨고, 함성 소리도 컸다. 3차전 홈경기장에도 우리 팬분들이 많이 와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한선수는 "이제는 팬들과 현장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시즌에는 팬분들과 함께 응원하고 즐기는 시즌이 되길 바란다. 이번 챔프전 때도 느꼈지만 팬분들이 응원해 주시면 선수들은 거기에 힘, 에너지를 얻는다. 다음 시즌에는 꼭 호흡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의 살아 있는 전설 한선수와 곽승석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더스파이크> 5월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_용인/문복주 기자, 더스파이크 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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