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김정호 황경민을 주고받은 2-3 트레이드의 속사정
- 남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2-11-21 09:43:09
삼성화재와 KB손해보험이 2022~2023시즌 V-리그 2라운드 초입에 2-3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아웃사이더 히터(OH) 황경민과 리베로 백광현이 KB손해보험의 유니폼을 입고, 11월 9일 군에서 전역한 세터 최익재와 OH 김정호, 미들블로커(MB) 양희준이 삼성화재 유니폼으로 바꿔 입었다. 두 팀은 17일 오전 공식 발표로 이적을 마무리했다.
5명의 선수가 오고 갔지만 사실상 시즌 도중에 팀의 주력 날개 공격수 2명을 맞바꿨다. 속전속결로 끝낸 트레이드였다. 13일 두 팀이 대전에서 1라운드 대결을 펼친 다음 날 트레이드 얘기가 처음 오갔고 16일 최종 결정이 나기까지 사흘 사이에 이적 작업이 번개처럼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두 팀의 감독과 구단이 여러 선수를 대상으로 저울질을 했다.
일단 삼성화재는 지금 당장 점수를 내줄 공격수가 필요했다. 김정호가 4년 전 삼성화재에서 KB손해보험으로 이적했을 때 내렸던 평가(기량은 좋지만, 단신이어서 블로킹에 한계가 있음)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단점보다는 장점인 공격 기량을 더 높이 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 삼성화재는 오른쪽에서 제 몫을 해주는 외국인 선수 이크바이리와 짝을 맞춰줄 왼쪽의 OH 자리에 문제가 생겼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FA선수 자격을 얻을 황경민이 지난 시즌부터 팀의 기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2022~2023시즌에는 이상하리만큼 기대를 밑돌았다. 게다가 출전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삼성화재가 KB손해보험을 상대로 시즌 첫 승을 거둔 그날 기록지를 보면 현재 삼성화재의 문제점이 잘 보였다. 이크바이리가 42득점(52.7%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무려 62.71%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했다. 선수 한 명에게 너무 공격이 몰렸다. 10득점 이상을 기록한 토종 선수는 없었다. 신장호 고준용 류윤식 황경민이 합작한 왼쪽에서의 득점은 고작 16점에 불과했다. 주 공격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황경민은 1라운드 6경기에서 47득점이었다. 공격 성공률은 48.75%, 공격 효율은 13.94%다.
이런 상황에서 KB손해보험 후인정 감독으로부터 트레이드 제의가 왔다. 후 감독은 오래전부터 황경민을 탐내왔다. 공격과 리시브 능력, 신장 등 균형 잡힌 선수로 높게 평가했다. 후 감독은 “우리로서는 어떻게든 왼쪽 블로킹의 높이를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13일 경기 뒤 스태프와 얘기를 나누다 ‘황경민을 영입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 김상우 감독님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밤에 ‘진행하자’고 회답이 왔다. 그때부터 서로의 카드를 맞춰봤다”면서 이번 트레이드의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황경민이 시즌 뒤 FA선수 자격을 얻으면 영입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우리로서는 계획보다 더 일찍 데려온 셈이다. 사실상 FA선수 이적 보상금 없이 데려온 것”이라며 이번 트레이드에 만족했다. KB손해보험은 우리카드에서 영입해온 한성정이 리시브를 주로 하는 보조 공격수로 역할을 잘 해내는 가운데 왼쪽에서의 더 강한 공격 옵션을 원했다. 황경민은 매력적인 카드였다. 대표팀에서 황택의와의 호흡도 좋았다고 판단했다. ‘우리 팀에 오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카드에서 함께 뛰었던 한성정과의 상생도 좋았다. KB손해보험은 최근 홍상혁의 출장 횟수가 늘면서 왼쪽의 블로킹이 더 탄탄해졌다. 여기에 황경민까지 가세하면 다른 팀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공격진이 완성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홍상혁이 중용되면서 김정호의 효용 가치는 점점 떨어졌다. 4년 전 1라운드 도중에 이강원을 주고 김정호를 데려와 많은 성과도 냈지만, 항상 왼쪽 사이드 블로킹의 높이 약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가운데 김정호는 삼성화재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펄펄 날았다. 그날 외국인 선수 니콜라가 15득점으로 부진한 가운데 김정호는 2세트부터 선발 OH로 출전해 17득점, 57.69%의 높은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다. 팀내 최고득점이었다. 무엇보다 삼성화재를 사로잡은 것은 서브 능력이었다. 2개의 서브에이스를 터트렸다. 황경민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지금 삼성화재에는 필요했다.
삼성화재의 구단 관계자는 “하필 그날 김정호가 잘하는 바람에 더욱 필요한 선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은 김정호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승점3을 딸 수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두 구단은 상대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심정이었고 트레이드는 쉽게 성사됐다. 다만 KB손해보험은 4년간 팀이 어려울 때 왼쪽에서 큰 역할을 해준 김정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와 함께 기대주 양희준을 넘겨준 것도 “우리가 얻는 만큼 상대도 얻는 것이 있어야 트레이드가 성사된다”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트레이드의 기둥이 될 2명의 이적이 정해지면서 함께 움직일 선수들의 이름도 확정됐다.
우선 백광현. 대한항공에서 설 자리가 없자 지난 시즌 삼성화재와 계약을 맺었지만, 이번 시즌 이상욱이 우리카드에서 오면서 출장 기회가 줄었다. 뛰지 않으면 선수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로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다행히 KB손해보험에서는 그가 필요했다. 김도훈이 시즌 뒤 상무에 입대할 예정이어서 그 자리를 메울 선수로 백광현을 원했다. 후인정 감독은 “리시브는 정민수가 전담할 것이고 수비에서 제 역할을 해주면 된다”고 했다.
최익재는 삼성화재가 이호건의 보험용 선수로 선택했다. 현재 KB손해보험은 황택의를 비롯해 신승훈 양준식에 신인드래프트에서 박현빈까지 뽑았다. 시즌을 마치면 황택의가 군에 입대하지만, 최익재까지 포함해 5명의 세터를 둘 수는 없었다. 교통정리를 미룰 수 없었다. 반면 삼성화재는 이호건이 군에 입대했을 때를 대비할 카드가 필요했다. 강력한 서브 능력도 갖춘 선수여서 노재욱을 도와줄 보조 세터로서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시즌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던 양희준은 199cm의 신장이 매력적이었다. 중앙에서의 파괴력과 해결 능력을 보강하기 위한 카드로서 MB 출신의 김상우 감독이 원했다. 현재 주전으로 뛰는 하현용의 나이(40세)를 고려했을 때 후계자를 미리 정해둘 필요도 있었다. 삼성화재의 요구가 강했다. 이 바람에 KB손해보험은 새로운 숙제를 하나 받았다. 시즌 뒤 중앙의 보강을 꿈꾸는데 트레이드나 아시아쿼터를 통해 이 숙제를 해결할 생각이다.
트레이드 대상자 선수들은 17일 오전 각자 새로운 팀으로 옮겨 계약서를 작성했다. 코칭스태프와도 면담을 했다. 두 구단은 5명의 선수를 향해 “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한다.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이 새로운 팀에서 더 많은 기회와 더 좋은 기량을 보여주길 기원한다”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4년 만에 친정팀에 돌아온 김정호는 “감회가 새롭다. 그만큼 더 열심히 해서 팀이 더 승리를 많이 할 수 있게 보탬이 되고 싶다.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라 편하다. 친한 형들도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팀에서 내가 해줘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내가 그 부분을 채워나가고 싶다. 이기는 경기를 자주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18일 충무 체육관에서 벌어진 우리카드와의 2라운드에서 12득점(36.36% 공격성공률)으로 팀에 승점1을 선사했다. 이크바이리에 이은 팀내 2번째 다득점이었다.
선수 등록 작업이 늦어 17일 OK금융그룹과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황경민은 “삼성화재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많은 응원을 해주신 팬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래도 좋은 기회로 정말 가고 싶었던 팀에 올 수 있어서 기분은 좋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두 팀은 22일 의정부에서 2라운드 맞대결을 벌인다. 그 경기가 흥미롭다.
사진 KOVO, 삼성화재, KB손해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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