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색 코트 위에서 펼쳐지는 꿈의 무대, 일본 인터하이 & 봄고 대회
-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2-04-12 12:00:57
우리 모두에게 꿈의 무대를 마음 한 켠에 담아두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도쿄체육관에 깔린 주황색 코트 위를 밟는 게 일생의 소원이다. 배구를 하는 일본 고등학생들은 주황색 코트 입성을 위해 수 많은 땀방울을 흘린다. 일본 고교생을 위한, 고교생에 의한 고교생의 청춘 속 한 페이지. 인터하이와 봄고 대회를 소개한다.
‘한 여름날의 꿈’ 인터하이
인터하이는 ‘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대회(全国高等学校総合体育大会)’의 통칭으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규모의 종합체육선수권대회다. 정식명칭이 너무 길어 영문명인 ‘Inter-high school championships’을 줄여 인터하이(Inter-high)라고 부른다. ‘인하이’ 또는 ‘IH’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하이는 ‘인터하이스쿨’을 줄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스포츠 경기 대회인 ‘인터 칼리지(Intercollegiate Championship)를 본뜬 호칭이다. ‘Inter-high school’이라는 호칭은 영어권에서 사용되지 않고, 일본에서 생겨난 일본식 영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인터하이는 예선전부터 준결승까지는 3세트로 진행되며, 최종 결승전만 5세트로 이뤄진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들은 참가 고교 수가 많기 때문에 2팀씩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본인 지역 내에서 여러 팀을 이기고 올라오기에 인터하이 지역 예선전까지 포함하면 참가하는 팀은 500개 팀 가까이 된다. 지역 예선전을 거쳐 출전권을 획득한 팀은 실력 향상을 위해 본선 경기까지 한 달 가량의 시간을 가진다. 그 이후 7월 말부터 본선을 치르고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2021년 인터하이는 7월 28일부터 8월 6일까지 본선까지 진행됐다. 본선 진출팀만 하더라도 40개 팀이 가까이 되기에 여러 경기를 동시에 진행한다. 그래서 지난 인터하이는 이시카와 종합 스포츠 센터와 가나자와시 종합 체육관에서 함께 치러졌다.
남자부에선 구마모토지역 대표 친제이(鎮西) 고교가 도쿄지역 대표 슨다이 학원(駿台学園)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4년 만에 4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여자부는 도쿄지역 대표 시모키타자와 세이토쿠(下北沢成徳)고교가 오카야마지역 대표 슈지츠(就実)고교를 세트스코어 3-1로 꺾으며 3년 만에 4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겨울에 맞이하는 봄의 고교 배구, 봄고
‘봄의 고교 배구(春の高校バレー)’는 고교배구선수권대회 중 하나로, 여름의 인터하이에 비견되는 큰 대회이자 ‘봄고 배구’라고도 불린다. 봄고는, 1970년부터 2010년까지는 ‘전국 고등학교 배구 선발 우승대회(全国高等学校バレーボール選抜優勝大会)’가 정식 명칭이었으며, 매년 3월 도쿄에서 불렸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도 출장할 수 있도록 개최 시기를 1월로 변경함에 따라 2010년에 이 대회를 폐지했다. (일본에서는 본선 경기에 진출하는 것을 출장이라고 표현한다.) 2011년부터 겨울의 인터하이 배구 대회가 ‘전국 일본 배구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全日本バ レーボール高等学校選手権大会)’로 명칭을 바꾸면서 ‘봄고’가 그 호칭을 이어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국가대표인 이시카와 유키, 타카하시 란, 쿠로고 아이가 봄고 MVP 출신인 만큼, 상당히 경쟁력 있고 큰 규모를 가진 대회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본 현지에서는 ‘겨울의 고시엔’이라고도 칭하는 경우도 있다.
봄고 역시 지역대회와 지방대회를 거친 후 본선이 이뤄진다. 본선에는 52개의 학교가 참가하는데, 도쿄도는 개최지라 3팀이 출장한다. 홋카이도, 가나가와현, 오사카부는 2팀이 출장하고 그 외 지역은 1팀씩만 출장할 수 있다. 결승전과 준결승전은 풀세트 경기를 치르고, 나머지 경기는 3세트 경기를 가진다. 3위 결정전은 따로 진행하지 않는다.
2022년 봄고는 도쿄체육관에서 1월 5일부터 시작해 9일에 폐막했다. 남자부 결승에선 일본항공(日本航空) 고교가 지난 여름 인터하이 우승팀인 친제이(鎮西)를 풀세트 접전 끝에 꺾고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항공고는 2020년 6월 인터하이 관동 지역 예선전에서 우승했지만, 교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본선에 참가하지 못하는 슬픔을 겪은 바 있다.
여자부는 슈지츠(就実) 고교가 후루카와 학원(古川学園)을 세트스코어 3-1로 꺾으면서 지난 인터하이의 준우승의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냈을 뿐만 아니라, 2년 연속 춘고 우승을 기록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봄고가 끝나면 다시 오는 인터하이
배구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배구 애니메이션 만화인 ‘하이큐’. 1화를 보면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가 ‘봄철 전국 고교배구’에 출전한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작은 거인의 활약을 우연히 TV로 보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이큐 전체의 흐름은 실제 일본의 아마추어 배구대회 일정으로 흘러간다. 여름에 진행되는 인터하이와 다음 해 1, 2월에 치러지는 봄고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에 잘 담아내고 있다.
하이큐에 대입해보면, 1기 전체가 인터하이 출전을 위한 준비와 경기로 전개된다. 주인공들이 미야기현에서 펼쳐지는 인터하이 지역 예선전을 담고 있다. 하이큐에선 2기는 봄고 지역 예선전, 3기가 봄고 지역 예선 결승전을 다루고 있다. 4기에선 봄고 본선 경기를 치른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처럼 인터하이와 봄고는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진행되는데, 인터하이에서 우승한 팀은 봄고에서 시드 배치를 받고, 또 봄고에서 우승한 팀은 인터하이에서 시드 배치를 받는 기회를 받는다.
토너먼트 초반부터 강한 팀이나 잘하는 선수끼리 경기를 치르는 일이 없도록 조 편성 단계에서 분산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씨를 뿌릴 때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는 모습’에서 착안하여 시드 제도라고 이름을 붙였다.
시드학교로 불리는 팀은 ‘강호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하이를 대진표를 예로 들자면, 이보다 먼저 개최되는 봄고에서 우승한 학교가 제1시드, 준우승 학교가 제2시드, 준결승에서 패한 두 팀을 제 3, 4시드로 결정한다. 하이큐에 나오는 ‘시라토리자와 학원’과 ‘아오바죠사이 학원’이 봄고에서 시드 학교로 배치받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현에 따라 참가 학교 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참가하는 학교가 많이 있는 현일수록 시드 학교가 증가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도쿄는 참가 학교가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출전할 수 있기에 시드에 도쿄 학교들이 더 많이 배정될 수 있다.
한국 아마추어 배구가 나아갈 방향은?
앞선 두 대회를 보더라도, 일본에서 아마추어 배구가 얼마나 활성화됐는지를 알 수 있다. 엘리트 배구팀 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으로 하는 배구팀까지 포함해 약 500개 팀이 대회에 참가한다. 엘리트 선수 육성뿐만 아니라 생활체육까지 두 마리를 동시에 잡고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상황은 많이 열악하다.
현재 한국중고배구연맹에 등록된 고교 팀을 보면 남고부는 25개, 여고부는 17개로 42개 팀이 있다. 일본 봄고 본선에 진출하는 남고 팀만 보더라도 50개가 넘으니, 현저히 적은 수다.
현재 한국에서 배구를 배우려면 엘리트 배구팀에 들어가거나 사설 학원에서 강습을 받는 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학교 스포츠도 여전히 미미한 상태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엘리트 배구를 배울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있다.
여전히 생활체육뿐만 아니라 엘리트 배구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여러 강구책이 필요하다. 결국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시너지 효과가 나와야 한다.
배구가 생활체육으로 활성화되고 있긴 하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각 구단별로 운영하는 유소년 배구교실부터 시작해 저변을 넓히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덕도 봤다.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실내스포츠 중 배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공공스포츠클럽 사업의 향방도 주목된다. 공공스포츠클럽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손쉽게 스포츠를 접하게 만든다는 정부 사업으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이다. 배구 클럽도 나오고 있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넓은 생활체육 저변 틀에서 엘리트체육 인재들을 양성했다. 일본의 인터하이와 봄고 대회에서 봤듯이 한국에도 누구나 꿈꾸는 주황색 코트가 나오길 기대한다.
글. 김하림 기자
사진. 일본 월간 배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