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VNL에서 참패 당한 세자르 호가 풀어야 할 숙제들
- 국제대회 / 김종건 / 2022-07-04 09:25:19
세자르 감독이 지휘하는 여자배구 대표팀이 2022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12경기 전패에 유일하게 승점이 없다. 16개 참가팀 가운데 꼴찌다. 36세트를 내주는 동안 고작 3세트를 따냈다. 세트 득실률은 0.083이다. 점수 득실률도 유일한 0.7점대로 상대가 10점을 따는 동안에 7점을 내기도 바빴다. 이런 처참한 결과로 세계 랭킹은 14위에서 19위로 추락했다. 20위 카메룬에 고작 1점이 앞선 랭킹 포인트 162점이다.
국제배구연맹(FIVB)도 우리 대표팀의 부진에 머리가 아플 것이다. 이번에 최하위를 했지만 강등 당하지 않고 2023년에도 VNL 출전권이 있는데 다른 나라로부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많다. 다가올 2022세계선수권대회에서 뚜렷한 반전을 만들지 못하면 2024파리올림픽 출전은 그야말로 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9~10월 폴란드와 네덜란드가 공동 개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폴란드, 터키, 도미니카공화국, 태국, 크로아티아와 조별리그에서 경쟁을 벌이는데 지금의 경기력이라면 어느 팀도 이기기 힘들어 보인다.
이미 주사위는 던졌다. VNL의 참패를 놓고 화풀이에만 그쳐서는 발전이 없다.
그런 면에서 다행스러운 점도 있다. 연패를 거듭하던 VNL 내내 감독과 선수들을 향한 인신공격과 비난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세대 교체라는 명분과 부상자가 속출한 대표팀의 딱한 사정을 고려한 팬들의 너그러움인지 외국인 감독을 향한 막연한 기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로 VNL에 처음 참가했던 2018년 우리 대표팀은 차해원 감독의 지휘 아래 5승10패 승점14로 12위를 했다. 차해원 감독은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에서 태국에 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이겼지만, 엄청난 비난 여론에 쫓겨나듯 대표팀을 물러났다. 이후 대한배구협회는 외국인 감독을 선택했다. 2019년VNL은 라바리니 감독이 지휘했는데 3승12패 승점9로 15위를, 2021년에도 3승12패 승점10으로 또 15위를 기록했다.
이번에 세자르 감독은 통산 4번의 VNL출전 가운데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미 선택한 길을 다시 되돌리기도 어렵다. 전임 라바리니 감독도 말했듯 힘든 시기를 참고 견디며 한국 여자배구 전체의 수준을 올릴 방법을 찾아서 머리를 모아야 한다. 연패 속에서 배울 것은 많았다. 앞으로 세자르 감독과 대한배구협회(KVA), 대표팀에게 필요한 선수를 지원하는 한국배구연맹(KOVO) 소속의 7개 프로팀이 풀어야 할 것들이다.
우선 준비가 부족했다. 우리 선수들은 약 한 달 반의 긴 여정 속에서 점점 더 플레이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조직력도 살아났고 선수들 스스로가 국제 대회에서는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알아가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긍정적이다. 대회 시작 전부터 이런 준비를 더 철저히 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감독을 비롯해 3명의 중심 역할을 할 코치진이 고작 사흘 간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고 대회에 출전한 것부터 문제였다.
전임 감독 체제에서 외국인 사령탑이 팀을 지휘할 경우, 이런 일은 또 생길 것이다. 이럴 때 대표팀 구성과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원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표팀은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해 7월 중순부터 합숙 훈련을 한다. 더 나은 경기를 기대할 여지를 남겼다.
대표 선수 선발 과정에서 들렸던 불협화음도 아쉽다. 이번 대표팀 선발은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추천이 아닌 세자르 감독의 뜻이 100% 반영됐다. 전임 라바리니 감독도 이 문제를 놓고 재임 기간에 대한배구협회와 불편한 관계였지만 결과가 좋아서 큰 탈 없이 넘어갔다. 세자르 감독도 곁에서 지켜본 것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그 나라 배구를 이끄는 최상위 단체인 프로 리그와 지도자들을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가대표팀 감독인데 내 마음대로 선수를 뽑겠다’는 마음으로 프로팀을 대하면 반발만 산다. 서로 협조하고 양보하면서 미래를 향한 비전을 공유해야 성공 가능성은 올라간다.
대표팀 감독이 선택해야 할 선수 풀은 이미 정해져 있다. V리그 여자부 7개 구단의 주력 선수 약 70~80명이 대상이다. 예전처럼 초고교급 선수가 혜성처럼 나오지 않는 이상 V리그에서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기준은 리그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감독이 원하는 배구를 실현해줄 선수를 뽑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외국인 감독의 편견 없는 선수 선발이지만 나쁘게 본다면 V리그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 것이다.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외국인 지도자의 스펙을 쌓아주는 곳이 아니다. 팬들도 배구인들도 결과를 원한다. 기대치도 높다. 감독은 성적으로 말한다. FIVB의 새로운 기준에 따라 랭킹 포인트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이번에도 전쟁터에 나가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해야 옳았다. 그런데 세자르 감독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VNL을 치르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대표팀은 선수에게 경험을 쌓거나 훈련을 시켜주는 곳이 아니다. 당연히 선수들도 그 나라 최상위 리그에서 대표 선수에 필요한 기량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이는 프로팀 지도자의 몫이다.
이런 구조에서 프로팀 감독들이 내 일처럼 대표팀을 도와주지 않으면 제 아무리 세계적인 명장이라도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게다가 세자르는 이번에 처음 감독이 됐다. 이번 대회 동안 초보 감독으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감독이 어떻게 팀을 이끌어왔는지는 선수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태국전 참패 뒤 선수단에서 나온 소리를 들어보면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이제 대표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복귀해 동료와 프로팀 지도자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더 들어보면 세자르 감독의 진짜 능력이 확인될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선수와 프로팀 지도자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다.
일단 배구는 받고 연결하고 때리는 3박자가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는 이 가운데 받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피지컬을 극복하기 위해 리시브와 수비 조직력에 많은 땀을 흘렸다. V리그에서 매일 듣던 리시브 타령을 세자르 감독의 입에서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코트에 있는 6명 모두가 공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유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V리그의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연결은 이번 대회에서 다른 팀과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다. 패스의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정확성은 보완이 필요했다. 최소한 공격수의 머리 앞으로는 공을 보내야 신장이 작은 선수들이 상대의 블로킹을 피하거나 이용해서 스파이크를 날릴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너무 미흡했다. 세터뿐만이 아니다. 2단 연결을 할 때 우리는 대부분 언더핸드였지만 상대는 오버헤드였다. 그 차이점은 컸다. 우리의 플레이가 더 빠르게 보이고 정확해지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성이 보였다.
공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왼쪽 위주였던 대표팀의 공격 루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3주차부터 세자르 감독은 지나칠 정도로 이동공격의 사용을 지시했다. 레프트에서 김연경이 빠지고 확실한 라이트 공격수마저 없는 상황에서 공격의 폭을 넓혀 상대 블로킹을 허물기 위해서로 보인다. 이동공격의 효과는 이제 모든 선수가 알았을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공격 기술 보완도 필요하다. 하나의 타점과 타이밍으로만 공격해서는 성공 확률이 너무 떨어졌다. 각도와 때리는 타이밍, 상대 블로커를 이용하는 방법 등은 선수들이 V리그에서 스스로 연마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격의 시작은 스탭이다. 우리와 상대의 가장 큰 차이였다. 다양한 스탭으로 때리는 방법을 유소년 때부터 몸으로 익혀야 옳겠지만 지금이라도 연구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새삼 확인됐다.
태국전 참패 이후 대한민국 배구 관계자 모두는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했을 것이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올림픽은 본선은커녕, 아시아권 3위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선수들이 누리는 인기와 많은 연봉도 모래성처럼 사라진다. 절박한 마음으로 다가올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5일 귀국하는 세자르 감독과 대한배구협회 관계자, V리그 구성원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권한다.
사진 F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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