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남자배구 대표팀에게 남은 5년의 준비 기간

국제대회 / 김종건 / 2022-08-01 08: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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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대의 등장과 국제대회의 중요성, 열린 대표팀은 가능할까


2024파리올림픽 출전을 위한 남자배구 대표팀의 대장정이 기대보다 일찍 끝났다.

2023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 출전권을 놓고 8개 참가국이 토너먼트 대결을 펼친 2022VCC(발리볼챌린저컵)에서 3위에 머물렀다. 우승팀에게만 주는 출전권은 튀르키예를 세트스코어 3-1로 이긴 쿠바(세계 랭킹 12위)가 차지했다. 우리 대표팀은 298강전에서 2022VNL참가팀 호주를 3-2로 이겼지만 30일 세계 랭킹 17위 튀르키예와의 4강전에서 0-3으로 패했다. 대표팀은 31일 세계 랭킹 24위 체코와의 3~4위전에서 3-2로 극적인 승리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호주(38) 다음으로 세계 랭킹이 낮았던 대한민국(32)VCC를 마치고 순위가 변하지 않았다. 랭킹포인트 129점으로 31위 도미니카공화국과는 고작 1점 차이다. 하지만 당분간 세계선수권대회 등 세계 랭킹 점수를 추가할 국제 대회에 출전할 방법이 없다. 내년으로 예정된 올림픽 예선전 출전권도 사라졌다. FIVB(국제배구연맹)가 새롭게 정한 올림픽 참가팀 배분 방식에 따르면 예선전 참가 자격은 세계 랭킹 24위까지다.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없다면 우리 남자배구는 2028LA올림픽 예선전까지 5년을 기다려야 한다. 남자배구의 마지막 올림픽 본선 진출은 2000년 시드니대회였다.

 


대표팀은 현재 대한민국 배구가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전력구성은 아니었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주전 레프트 전광인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아 14명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에 앞서 정지석도 사생활 문제로 대한체육회로부터 1년간 자격정지를 받아 레프트 주전 2명이 빠진 상태에서 대회를 치러야 했다. 물론 다른 팀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뽑을 선수층이 풍부한 팀과 몇몇 소수의 선수에게 의지해야 하는 팀의 차이는 컸다.

 

2022VCC 홈 개최로 얻은 귀중한 것들

비록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임도헌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선전했다. 칭찬해도 충분할 정도로 경기 내용도 좋았다. 무엇보다 세대 교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밑그림을 잘 그렸고 모두가 받아들였다는 점이 큰 소득이었다.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이뤄진 새 대표팀이 국제 대회 경험을 계속 쌓아간다면 새로운 희망도 걸어볼 수 있게 됐다.

 

남자배구를 향한 팬의 시선을 바꾼 것도 성과 중의 하나다.

8강 호주전과 3~4위 체코전에는 많은 관중이 경기 막판 모두 기립해서 우리 대표팀을 응원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동안 여자배구의 인기에 밀렸던 남자배구의 숨은 매력은 이번 국제경기에서 잘 드러났다. 허수봉, 임동혁, 임성진 등 젊은 선수들은 V리그를 넘어 전국구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임도헌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국제 대회의 경험을 쌓은 것에 방점을 뒀다.

우리보다 키가 큰 상대와 경기를 해야만 선수들이 배우는 것이 있다. 아무리 다양한 공격 기술을 갖추라고 해도 낮은 블로킹을 상대로는 연구하지 않는다. 이런 국제 경기를 하면서 실전에서 높은 블로킹을 상대로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 실전에서 해 봐야 경험이 쌓인다고 했다.

 

임 감독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중앙에서의 약점도 같은 시선으로 봤다. “유럽팀의 속공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때리는 타이밍은 늦지만, 스윙이 빠르다. 그래서 우리 센터가 쉽게 막아내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몸으로 익혀야 하기에 국제 대회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구계 모두가 자각한 국제대회의 중요성

우리 남자배구가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목표인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머무르지 말고 시야를 밖으로 돌려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배구협회(KVA)와 한국배구연맹(KOVO)도 이 부분에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대회 기간 내내 경기장을 찾았던 신무철 KOVO 사무총장은 국제 대회 경쟁력이 높아져야 V리그의 인기도 좋아진다. 내년에도 꼭 VNL 여자부 경기를 한국에서 유치했으면 좋겠고 도울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그동안 대표 선수 차출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냈던 프로구단도 이번에는 달랐다. 남녀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이 사실상 2달 이상 소속 팀을 떠나는 장기간 훈련하는 상황인데도 각 구단은 전폭적으로 돕고 있다. 그만큼 이제는 소속 팀보다 대표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대표팀을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대한배구협회는 2023VNL 유치를 위해 FIVB의 입찰 경쟁에 나섰다. 입찰 금액은 최소 10만 달러 이상이다. VCC30만 달러 이상의 유치 비용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FIVB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형태여서 돈이 들지 않았지만, 내년에 또다시 VCC를 홈에서 유치하고 싶다면 입찰 경쟁을 거쳐야 한다. 결국은 돈 문제지만 투자를 해야 성과도 나온다.

 

 5년의 기다림, 배구계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투자는 협회와 연맹만 하지 않는다. 선수들도 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많은 국제대회의 패배 경험 속에서 뭔가를 계속 배워야 한다. 그래서 튀르키예와의 4강전 패배 뒤에 나왔던 임도헌 감독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에게 방법을 물어봤다. 그 사람의 대답은 '많이 맞아봐야 한다'였다. 맞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아프지 않을 방법을 배우고 그것이 쌓이면 저절로 싸움을 잘하게 된다고 했다.”

 

차차기 올림픽 예선전까지 남자대표팀은 차근차근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일단은 무리 없는 세대교체를 진행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대표팀 주전으로 뛰었던 나경복과 황경민,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를 굳힌 허수봉과 99년생 삼총사(임동혁, 임성진, 박경민) 등은 모두의 기대를 넘는 활약을 했다. 임도헌 감독은 토너먼트대회라 다른 선수를 기용할 기회가 적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충분히 뛸 기회를 주겠다. 이들이 앞으로 남자배구의 황금세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은 87일부터 14일까지 태국에서 벌어지는 AVC(아시아배구연맹) 컵대회에 참가한다. 임도헌 감독은 앞으로 대표팀의 주축이 되어야 할 허수봉과 임동혁을 함께 코트에서 뛰게 하는 방법을 구상해왔다. 가능할 것 같다. 이제 방법을 실전에서 테스트하고 젊은 선수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하겠다면서 대표팀 운영 구상을 밝혔다.

 

열린 대표팀, 공론화의 필요성

5년의 준비 시간 동안 우리 배구계가 근본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 있다. 바로 대표팀 문호의 개방 여부다. 이미 전 세계의 경쟁팀들은 자국 국가대표의 문을 활짝 열었다. 순수한 혈통의 대표팀은 이제 많지 않다. 배구 강국 폴란드와 이탈리아, 가까운 일본마저도 팀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혈통, 심지어 다른 나라의 대표선수마저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토종 선수 위주의 대표팀을 고집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지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다문화 가정이 있다. 전 세계에 많은 한국인 핏줄들이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잠재력이 있는 이들을 대표팀으로 포용하느냐의 여부는 앞으로 배구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

 


 VCC에서도 확인했듯 만일 지금의 대표팀에 확실한 공격을 책임지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의 상황이다. 2단 연결을 득점으로 성공시켜줄 파괴력과 높은 타점의 선수가 필요한데 그런 선수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유소년까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대표팀이 원하는 기량과 피지컬을 갖춘 기대주가 없다면 해외로 혹은 다른 핏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들을 우리의 선수로 키워내는 것도 방법이다. 많은 선수도 필요 없다. 소수의 유망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면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더 시급한 것은 센터다. 국제무대에서 통용될 신장 2m 이상의 유망주 센터가 국내에 없다면 가까운 아시아권 국가에서부터 유망주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체 구조상 이런 역할을 잘할 몸을 가진 기대주는 가까운 아시아권 국가에 많이 보인다.

 

물론 이런 정책의 변화는 팬들의 인정과 응원이 있어야 성공한다. 그런 면에서 대표팀의 문호 개방에 관해 팬들과 배구계 전체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부터 일단 시작해보기를 권한다.

 

사진 대한배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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