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FIVB의 일방적인 국제 배구 시간표 변경 움직임, V리그에 불어닥칠 나비 효과
- 국제대회 / 김종건 / 2022-09-06 08:14:49
국제배구연맹(FIVB)이 전 세계 배구 시간표의 근간을 뒤흔들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2022 남자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폴란드에서 TVP 스포르트가 최근 “FIVB 당국자들이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해 국제 배구의 경기 일정을 바꾸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5일 이탈리아의 한 매체는 “FIVB가 VNL(발리볼 네이션스리그)을 겨울에 개최할 생각”이라고 추가 보도했다.
새로운 배구 시간표의 등장은 V리그 등 각국의 리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참가하는 챔피언스리그를 주관하는 유럽배구연맹(CEV)을 비롯해 각 대륙 배구연맹의 경기 일정에도 영향을 미쳐 큰 반발이 예상된다. FIVB의 일방통행식 구상이 실현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FIVB는 일단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세계선수권대회의 개최 일정을 바꾸려고 마음먹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1949년 남자부에 이어 3년 뒤인 1952년 여자부 대회가 개최됐다. 1962년부터 4년 주기로 열리는데 이것을 월드컵 다음 홀수 해에 열겠다는 것이다.
올림픽과 함께 가장 큰 하계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은 각각 4년 주기로 2년의 시차를 두고 열린다. (코로나19 탓에 2020도쿄올림픽은 2021년 여름에 열렸다). 1930년 출범 이후 4년 주기(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2, 1946년은 대회가 열리지 않음)를 유지해온 월드컵은 중동의 카타르에서 열리는 바람에 올해는 11월 20일~12월 18일로 개최 시기가 늦춰졌다.
FIVB는 세계선수권대회 참가국 숫자도 확대하려고 한다. 기존의 남녀 각각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월드컵처럼 참가의 문을 넓혀 더 많은 국가가 세계선수권대회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 생각이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우리 남자 대표팀은 출전 기회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반면 기량 차이가 큰 팀의 등장으로 경기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배구는 축구와 달리 승패의 변수가 거의 없고 전력 차이가 점수에 그대로 반영된다.
FIVB는 대회 주기도 4년에서 2년으로 줄이려는 계획이다. 이는 FIFA(국제축구연맹)가 월드컵을 2년 주기로 단축하려는 구상과 비슷하다. 이 같은 막무가내식 변화에 UEFA(유럽축구연맹)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만일 FIVB의 새 방안이 확정되면 전 세계의 배구 시간표는 큰 폭의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부터 3년간 대륙별 예선 대회를 하는데 이 기간이 줄어들면 대표팀 소집이 전보다 훨씬 앞당겨져야 한다. FIVB는 대륙별 예선전 기간도 종전의 8~9월에서 12월~다음 해 1월로 변경하려고 한다. 이것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는 겨울에 열리는 VNL과의 교통 정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시간표가 확정되면 당장 각국의 리그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우리처럼 대표선수 차출이 쉽지 않은 국가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V리그는 12~1월이면 한참 리그가 뜨겁게 달아오를 때다. 프로 구단들이 흔쾌히 선수를 차출 해줄지 의문이다. 억지로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대표선수들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특정 선수의 혹사는 불을 보듯 뻔해 대부분 나라의 프로 리그에서는 이 같은 시간표 변경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각국과 대륙 연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FIVB의 구상대로 된다면 V리그 여자부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V리그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대한배구협회와 공동보조를 맞춰서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주관하는 대회를 더 자주 열고 더 많은 팀을 참가시켜서 돈을 벌겠다는 FIVB의 욕심은 많은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FIVB는 남자부 세계선수권대회 16강전 대진표도 마음대로 만들어 이미 구설수를 낳았다. 남자부는 24개 팀이 6개 조로 나뉘어 각 조의 상위 2개 팀과 3위 팀 가운데 4개 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1위-16위부터 8위-9위까지 랭킹 순서대로 엇갈리게 대진표를 작성하거나 VCC(발리볼 챌린지컵)처럼 개최국이 최하위 랭킹의 팀과 대결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동 개최여서 문제가 됐다. 결국 FIVB는 폴란드(3위)-튀니지(16위), 슬로베니아(7위)-독일(15위)의 대진표를 만들며 공동 개최국 폴란드와 슬로베니아에게 쉬운 상대를 붙여줬는데 이 내용을 사전에 다른 팀들에게 알려주지 않아 불만을 샀다.
FIVB의 배려 덕분인지는 몰라도 폴란드와 슬로베니아는 3-0, 3-1로 가볍게 이기고 8강에 선착했다. 이밖에 6일까지 벌어진 8강전에서 미국(8위)은 튀르키예(9위)를 3-2로, 이탈리아(1위)는 쿠바(14위)를 3-1로, 프랑스(5위)는 일본(12위)을 3-2로 각각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빼앗긴 출전권을 얻어 대회에 참가했던 우크라이나(10위)는 네덜란드(6위)를 3-0으로 이기며 16강전 최대 이변을 만들었다. 이 경기 결과로 새 시즌 한국전력에서 시즌 뛰어야 하는 타이스는 일찍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이제 남은 16강 경기는 세르비아(2위)-아르헨티나(13위), 브라질(4위)-이란(12위) 경기다.
사진 F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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