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희은퇴] 굿바이 레전드, 이효희 "지금도 은퇴했다는 게 실감 안 나요"
- 여자프로배구 / 이정원 / 2020-04-25 01:32:00
22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
동생들 훈련하는 거 보면 은퇴 실감 날 것 같다고
2년 연속 MVP 수상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
이제는 코치로서 본분을 다하겠다

[더스파이크=이정원 기자]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한국을 대표하는 세터 이효희가 정든 코트를 떠난다. 한국도로공사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효희 은퇴 소식을 전했다. 이효희는 수원한일전산여자고(現 한봄고)를 졸업하고 1998년에 실업리그 KT&G(현 KGC인삼공사)에 입단했다. 이후 흥국생명, IBK기업은행에 걸쳐 2014~2015시즌부터 한국도로공사에 합류했다.
그는 2017~2018시즌에 한국도로공사를 창단 48년 만에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특히 거쳐간 4개 팀 모두를 우승으로 이끈 최고의 세터로 군림했다.
지난 24일 <더스파이크>와 전화 통화를 가진 이효희는 "은퇴를 한다 했을 때 처음에 믿기지 않았다. 사실 예전에 은퇴를 했어도 늦은 나이가 아니었다. 당연한 수순을 밟는 건데 기사가 많이 나오는 거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라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라고 말한 이효희는 "일단은 지금은 휴가 중인데, 나중에 선수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실감이 날 것 같다. 은퇴를 마음먹은 이후 한 팬분께서 사인 요청이 있었다. 보통은 'NO.5 이효희' 혹은 '배구 선수 이효희'라고 사인을 하는데 그날은 어떻게 사인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라고 덧붙였다.
1998년부터 실업리그를 누빈 이효희는 2000년대 초반 은퇴 계획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당시 여자 선수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효희 역시 25살부터 베테랑 소리를 들었기에 빨리 은퇴를 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솔직히 내가 빨리 선배 소리를 들었다. 25살부터 들었다. 그래서 '30대에 들어서면 은퇴하라'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더라. 나 역시 선배들을 보면서 한 시즌, 한 시즌을 생각하면서 경기를 뛰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효희가 은퇴한다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 역시 남달랐다. 후배들은 물론이고 지도자들도 연락이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김종민 감독님께서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지도자도 매력 있다고 이야기하시더라"라며 "이정철, 차해원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했다. 좋을 때 잘 결정했다고 위로해줬다"라고 전했다.
이효희는 올해로 한국 나이 불혹을 넘은 41세다. 그럼에도 실력만큼은 어느 젊은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에도 대체 선수이긴 하지만 2020 도쿄올림픽 대륙간예선전을 뛰고 왔다. 2019~2020시즌에도 한국도로공사의 주전 세터를 맡았다. 이로 인해 타팀의 제안도 있었지만 그녀는 한국도로공사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아니었지만 구단에서 코치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 솔직히 타팀 제안이 있었고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틀어지면서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접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효희는 세터라는 포지션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세터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못 뛰었을 것이다. 일단 키가 작다. 리베로로도 못 뛰었을 것이다."
그녀는 선수 생활하면서 올림픽 메달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순간이 있을 터. 그녀는 올림픽 메달을 못 딴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고 옅은 미소를 띄었다.
"국내 대회에서는 많은 것을 이루고 상도 받았다. 특히 한국도로공사의 우승을 이끌고 은퇴를 해서 다행이다. 국제 대회에서도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16강에 머물면서 올림픽 메달을 못 따 아쉽긴 하다. 다른 선수들이 따줬으면 좋겠다."
이효희는 최고의 세터일 뿐만 아니라 팀을 옮길 때마다 그 팀을 우승시킨다고 해서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에 "내가 잘 해서 우승을 잘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운이 좋았던 건 좋은 공격수를 만났다. 좋은 공격수들을 만났기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라고 겸손함을 보였다.

이효희는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뿐만 아니라 많은 기록도 가지고 있다. 남녀부 통틀어 유일하게 15,000세트를 넘어 15,401세트를 기록한 채 은퇴를 했다. 2007~2008시즌과 2008~2009시즌에는 세터상을 받았고, 2013~2014시즌과 2014~2015시즌에는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2년 연속 MVP 수상은 이효희에게 가장 큰 짜릿함으로 남아있다.
이에 "2년 연속 MVP를 받았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세트 기록도 기억에 남는다. 대표팀 생활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이효희는 익숙한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의 제2의 배구인생을 시작한다. 한국도로공사는 5월 3일에 복귀한 뒤 5월 4일부터 본격적인 비시즌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제일 많이 다짐하는 게 지도자라면 선수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친분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한국도로공사의 세터진을 책임질 이원정과 안예림에 대해서는 "원정이는 패스가 좋고, 예림이는 아직 부족하지만 센스가 있다. 잘 해주길 바란다"라고 희망했다.
이효희는 아직까지 배구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정도로 배구만을 바라본 선수였다. 그녀는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남아있고 싶을까.
그녀는 "운동할 때 본보기가 돼준 친구였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꾀부리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이효희는 동시대에 함께 뒨 김해란과 정대영에게 한 마디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해란이는 더 뛸 수 있는 선수인데 출산 때문에 은퇴를 빨리했다. 너무나도 아쉬운데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대영이랑 같이 뛰면서는 욕도 많이 먹었다. 한 살 차이인데도 언니라고 잘 챙겨줬다.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 대영이가 이제는 팀 내 최고 베테랑인데 그 역할을 데뷔하고 처음 해본다고 한다. 그간 (이)숙자나, (정)지윤이가 못 했기 때문이다. 대영이가 앞으로도 한국도로공사를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다."
사진_더스파이크 DB(유용우, 홍기웅, 박상혁 기자)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