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투혼'으로 뭉친 女배구대표팀의 ‘위대한 첫 걸음’

국제대회 / 이광준 / 2020-01-14 0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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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이광준 기자] 여자배구대표팀이 2020도쿄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커다란 첫 걸음을 내딛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대표팀은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금의환향했다. 대표팀은 지난 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모두가 원했지만,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우승이었다. 홈팀인 태국이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태국리그를 중단하고 올림픽에 올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상대 홈이라는 점도 큰 부담이었다.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이러한 고비를 모두 뛰어넘어 값진 승리를 손에 넣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안 아픈 선수가 없었다, 눈물의 부상 투혼

이번 대표팀은 그야말로 부상 병동이었다. 시즌 도중 소집되면서 어디 한 곳 아프지 않은 선수를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대표팀에서 중추 역할을 해야 할 선수들이 통증을 호소했다. 주장 김연경은 이전에 한 차례 부상을 당했던 복근에 통증을 느꼈다. 이재영은 허리가 좋지 않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다. 아포짓 스파이커 김희진 역시 부상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다. 김희진은 이번 V-리그 3라운드 도중 입은 종아리 부상이 문제였다.

그 외에도 발목 통증을 안고 뛴 양효진. 이전에 다쳤던 부위였던 복근에 또 다시 통증을 호소한 강소휘 등도 부상에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은 분명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특히 복근이 4cm가량 찢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참고 뛴 김연경의 정신력은 지켜본 모든 이들을 감동하게 했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아픈 선수가 많았다는 건 생각해 볼 문제다. 다가올 V-리그, 그리고 6월에 열릴 예정인 올림픽 본선에서 선수들이 정상 컨디션으로 뛸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선수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시즌을 소화할 경우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그 이상의 일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선수들이 보다 나은 컨디션에서 대회에 나설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었는지, 지금이라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당당히 주축으로 성장한 재영-다영 자매

윙스파이커 이재영, 그리고 세터 이다영 두 쌍둥이 자매는 이제 국가대표팀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이재영은 김연경이 부상으로 제 경기력을 내지 못하는 동안 팀 에이스로서 제몫을 다했다. 빼어난 리시브, 여기에 팀에서 가장 높은 공격적중률을 선보였다. 소속팀에서 자주 보여줬던 ‘받고 때리는 이재영’ 그대로였다.

이전에 대표팀에서 그 역할을 하던 건 김연경이었다. 김연경은 수많은 팀들의 집중 서브타겟이면서도 공격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져갔다. 이재영은 김연경이 빠지면서 생긴 공백을 본인이 나서서 채워냈다.

이재영은 이번 올림픽예선전에서 득점 2위, 공격성공률 1위, 리시브 3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그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번에 알게 하는 수치다.

동생, 주전세터 이다영은 한 단계 성장하는 무대였다. 이다영은 이미 그 전부터 라바리니호의 신데렐라로 꼽혔다. 라바리니 감독이 원하는 공격적인 배구가 나오기 위해서는 이다영 역할이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라바리니 감독은 평소 이다영에게 다양한 것을 요구했다. 이다영은 그런 라바리니 감독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하며 차근차근 성장해 나갔다.


이다영은 지금까지 배운 것을 통해 팀 주전 세터로 발돋움했다. 굴곡은 있었다. 예선전 세 경기는 무난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준결승 대만전에서는 재능을 마음껏 펼친 한 판이었다. 당시 한국은 주포 김연경 없이 경기에 나섰다. 1세트를 내주며 불리하게 시작했지만 2세트부터 공격 물꼬를 트며 상승세를 탔다. 이다영은 주포 김희진을 중심으로 경기를 차근히 풀어갔다. 이재영과 강소휘도 적절히 활용했다.

공격 시도를 보면 세 날개선수가 균형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이재영이 26회, 김희진과 강소휘가 24회씩 시도했다. 미들블로커 양효진이 12회, 김수지가 10회로 뒤를 이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토털 배구’였다.

이런 이다영의 분배로 이날 한국 공격수 다섯 명은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다섯 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후 결승 태국전에서 이다영은 다소 흔들렸다. 긴장한 탓인지 세트 정확도가 이전 경기와 비교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다행히 세트가 거듭되면서 조금씩 감각을 회복해 나갔다.

잘 된 경기 그리고 흔들린 경기까지 치러 보면서 이다영은 또 한 번 성장했다. 뛰어난 운동신경에 경험까지 하나둘 쌓으며 믿을 수 있는 국가대표 세터로 나아가고 있다.


김연경은 여자배구대표팀의 혼이다

김연경은 이번 대회 전부터 복근에 통증이 있었다. 이 때문에 소집 이후에도 훈련과 관리를 병행해 나갔다.

그리고 대회를 치르면서 우려했던 것이 터졌다. 조별예선 도중 부상이 커지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력한 진통제를 준비해 준결승과 결승전을 대비했다. 다행히 라바리니 감독의 판단 덕분에 준결승전은 쉴 수 있었다. 김연경은 팀이 위기에 처하자 주저하지 않고 출격 준비를 했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선수들을 믿어라”라는 말을 남기며 김연경에게 휴식을 줬다.

그리고 결승전, 김연경은 선발로 나섰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도 ‘설마’했던 일이었다. 투입된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뛰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김연경은 그런 의문들을 날려버리는 활약을 펼쳤다. 흠 잡을 것 없는 플레이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2득점, 양 팀 통틀어 최다득점이었다.

김연경은 에이스임과 동시에 팀의 구심점이었다. 팀 전체가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정신력을 발휘했다. 믿을 수 있는 리더였다.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을 두고 “배구를 넘어 정신적으로도 한국을 이끄는 리더다. 훌륭한 리더이자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칭찬했다. 라바리니 감독 말처럼 김연경은 단순한 배구선수가 아니었다. 한국 여자배구 전체를 이끄는 리더이자 여자배구대표팀의 혼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여자배구대표팀의 ‘위대한 한 발’

“2020년을 여자배구의 해로 만들겠다.”

지난 13일 저녁 입국한 여자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은 팬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자신감과 포부로 똘똘 뭉친 말이었다.

여자배구대표팀은 새해와 함께 찾아온 첫 번째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번 아시아예선전 결과에 따라 2020년 한 해 분위기가 좌우될 수 있었다. 다행히도 한국은 첫 단추를 무사히 꿰며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아시아예선전은 시작일 뿐이다. 말 그대로 예선 통과다. 이제는 본선에서 더 강한 상대와 싸워 이겨내야 한다. 그 과정은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거칠고 사나운 길이다.

주장 김연경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을 선포했다. 김연경이 염원하는, 그리고 배구 팬들이 염원하는 올림픽 메달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시작이 좋은 2020년. 여자배구대표팀은 본 무대에 나서서도 팬들의 기대에 충족하는 플레이로 올해를 여자배구 최전성기로 만들 수 있을까. 이들의 발걸음은 이제 막 한 발을 내딛었다.


사진_F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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