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년 우승후보’ 상처 딛고 우뚝 선 대한항공

남자프로배구 / 최원영 / 2017-03-08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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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인천/최원영 기자] 6년이 걸렸다. 두 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기까지 말이다.


▲정상까지 험난했던 여정
2017년 3월 7일. 대한항공이 6라운드 다섯 번째 상대인 삼성화재를 꺾고 승리를 거뒀다. 자력으로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프로 출범 후 대한항공은 줄곧 정규리그 3~4위권에 머물렀다. 2007~2008시즌 2위에 오른 것이 최고였다. 그러던 2010~2011시즌이었다. 외국인 선수 에반을 비롯 국내선수들이 활약하며 대한항공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4전 전패로 통합우승 달성에 실패했기 때문.


다음 시즌도, 그 다음 시즌에도 대한항공은 챔프전에 진출했지만 삼성화재 벽을 넘지 못 했다. 눈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쳤다. 2013~2014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현대캐피탈에 부딪혔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2014~2015시즌에는 4위로 미끄러졌다. 당시 3위였던 한국전력과 승점이 10점 차이나 났다. 지난 시즌에도 선두에 오른 뒤 7연패에 빠지며 4위로 추락, 간신히 준플레이오프 무대만 밟았을 뿐이다.


결국 대한항공은 ‘만년 우승후보’라는 꼬리표를 달고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선수들은 내심 속이 상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도 대한항공이 어김없이 우승후보로 손꼽혔다. 사실 선수단에겐 그런 기대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주장 한선수는 “매년 우승후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니 선수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극복하기 위해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려 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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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세터 한선수)


조용히 칼을 갈았다. 이번 시즌만큼은 왕좌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1라운드 5승 1패, 2라운드 4승 2패로 꾸준히 1위를 유지했다. 3라운드에는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대한항공은 3승 3패로 3위가 됐다.


시즌 초반에만 잘한다는 오명을 씻어내야 했다. 4라운드에 들어서자 5승 1패로 순식간에 선두를 탈환했다. 5라운드를 5승 1패로 마치자 2위 현대캐피탈과 승점 11점 차가 됐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걸까?


▲’상부상조’ 서로 의지하고 돕다
개막을 앞두고 한 전문가는 대한항공에 관해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감독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줘야 한다. 선수들이 몸에 배어 있는 느슨함, 스타 의식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진심으로 간절해야 우승할 수 있다”라고 평했다. 뼈있는 한 마디였다.


이번 시즌 대한항공이 보여준 조직력은 단단했다. 포지션을 막론하고 상부상조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가스파리니는 V-리그 경험(2012~2013시즌 현대캐피탈)을 바탕으로 빠르게 팀에 녹아 들었다. 기술과 파워를 겸비한 베테랑으로서 제 몫을 다했다.


2년차 리베로 백광현 리시브가 흔들리면 세터 한선수가 뛰어다니며 커버했다. 힘들 법도 했지만 “배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내가 세트를 잘 못 해도 공격수들이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내색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레프트 자원이 차고 넘친다. 시즌 초반에는 김학민-곽승석 체제였고, 중반 신영수가 공격에 힘을 보탰다. 후반기 신영수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김학민이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발목 통증이 심해 등에 담이 오고, 훈련에 참가하지 못 할 정도였으나 빠짐없이 출전했다.


“배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매 게임이 소중하다. 기회가 왔을 때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 김학민 진심이다. 후반 그의 체력이 떨어지자 신영수가 다시 돌아와 뒤를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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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라이트 가스파리니)


정지석 출전 시간이 늘어나며 웜업 존으로 돌아간 곽승석. “번갈아 기용되니 체력관리가 된다. 누가 들어가도 기본은 하지 않나.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눈다. 영수, 학민이 형에게 공격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 나와 지석이는 형들에게 리시브 얘기를 해준다. 선의의 경쟁이라 좋다. 진심으로 다들 잘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심지어 곽승석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던 7일, 본래 유니폼이 아닌 리베로 옷을 입었다. 수비가 약한 팀 사정상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군말 없이 주어진 임무를 다해냈다. 희생정신이 돋보였다.


팀이 블로킹 부문 1위로 거듭난 것도 고른 활약 덕분이었다. 대한항공은 예전부터 중앙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올 시즌에는 최석기, 진상헌을 비롯 김형우, 진성태까지 힘을 보탰다. 공격수들과 함께 여럿이 블로킹에 가담했다. 개인 순위 10위권 안에는 아무도 이름을 올리지 못 했다. 그러나 팀은 7개 구단 중 최정상에 섰다.


지난 2월 25일 현대캐피탈 전, 대한항공은 우승 기회를 허무하게 놓쳤다. 이후 3월 3일 한국전력에게도 패하며 두 번째 찬스를 날렸다. 그렇게 맞이한 3월 7일. 강적 삼성화재를 꺾고 드디어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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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대한항공이란 팀이 모래알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다른 누군가는 대한항공이 늘 우승 ‘후보’로만 머물 것이라 했다. 하지만 끝내 상처를 딛고 정상에 섰다.


이제 대한항공은 통합우승을 향해 뛴다.



사진/ 인천=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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