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기 품은 전광인, ‘좋은 날’ 꿈꾸다
- 남자프로배구 / 최원영 / 2016-07-08 09:41:00
[더스파이크=의왕/최원영 기자] 재활에 전념하며 조용히 칼을 갈던 전광인이 부활을 예고했다.
2013~2014시즌 혜성처럼 나타난 레프트 전광인. 성균관대 졸업 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1순위로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었다. 그 해 신인선수상을 수상한 전광인은 이듬해인 2014~2015시즌 4, 5라운드 MVP를 거머쥔 데 이어 베스트7 레프트 부문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에게도 그늘이 드리웠다. 부상에 시달리며 2015~2016시즌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전광인은 시즌 종료 후 곧바로 재활에 매진하며 절치부심했다.
“지난 시즌 팀 성적이 좋지 못 했고, 개인 성적도 기대에 못 미쳤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았죠. 그래도 큰 부상 없이 잘 버텨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쉬는 것보다 경기에 나가 팀원들과 같이 뛰는 게 더 좋다는 전광인은 “못 뛸 정도로 아팠다면 출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인해 찾아온 슬럼프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경기장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섭고 힘들었어요. 공격수가 공을 많이 때리면 좋은 거잖아요. 근데 저한테 공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라고 고백했다.
그맘때 전광인은 ‘나는 왜 이렇게 못하고 있나’ ‘팀에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 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욱 아렸다. “다들 저한테 거는 기대가 있으니까 약한 모습 보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저 때문에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라고 설명했다.
“공격을 했는데 득점이 안 되니까, 제가 원하는 대로 플레이가 안 나오니까 스트레스가 쌓였나 봐요. 처음엔 괜찮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길어지니까 위축되더라고요.” 전광인이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결국 그는 성균관대 선배이자 한국전력으로 팀을 옮긴 세터 강민웅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얘기하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어요. 민웅이 형이 많이 놀라더라고요. 형만 믿고 따라오라며 다독여줬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광인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애썼다. 프로 입단 후 영상을 보며 무엇이 달라졌는지 분석하고 예전의 감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공격수지만 이단 토스를 잘하기 위해 신영철 감독에게 세터 수업도 요청했다.
“뭐든 잘하면 좋잖아요. 세터만큼은 아니지만 토스를 잘해주면 공격수가 편해지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라는 그는 “제가 더 크게 소리지르고 파이팅 있게 하면 팀 분위기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재활도 즐겁게 하고 있다. 왼쪽 무릎과 양쪽 발목이 안 좋은 전광인. 시즌을 마치고 올 4월 중순부터 곧바로 치료 및 재활에 돌입했다. 지난주가 되어서야 배구공을 만지기 시작했고, 4~5일 전부터는 공격을 시작했다.
“점프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재활을 오래 해야 해요. 통증은 아직 조금 남아있지만 무리는 없어요. 지금부터 관리를 더 잘해야죠.”
국가대표 하면 전광인, 전광인 하면 국가대표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재활로 인해 월드리그에 출전하는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다. ‘레프트 포지션에 전광인이 있었다면’ 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본인의 아쉬움이 가장 컸다.
“나도 뛰고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오히려 다행이에요. 지금 컨디션으로 대표팀에 들어갔으면 도움이 못 됐을 테니까요. 꾸준히 몸 상태 끌어올려서 좋은 모습 보여드린다면 다음 시즌 끝나고 기회가 오겠죠?”
전광인은 “늘 코트 위에서 뛰다가 밖에서 보니까 부럽긴 하더라고요. 배구 팬 분들이 국가대표 전광인을 기억하신다는 건 제가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다는 거니까 감사하죠”라며 덤덤히 말을 이었다.
분위기를 바꿔 전광인이 사랑해 마지 않는 대표팀 두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서재덕(R, 한국전력)과 최홍석(L, 우리카드)이다. 두 선수의 팬클럽에도 가입했다는 전광인. 그가 자신의 ‘이불’이라 칭하는 서재덕과 일화부터 들어봤다.
이번 월드리그 대회에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서재덕. 전광인 역시 그의 활약상을 챙겨봤다. 두 선수는 성균관대 선후배다. 평소 장난기가 많은 서재덕이 하루는 후배 전광인을 불러 핸드폰에 자신을 이름 대신 애칭으로 저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광인은 “형이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별명을 지어오래요. 진짜 생각 많이 했어요. 차마 제 입으론 말 못 하겠네요”라며 핸드폰을 켜 보여줬다. 화면에 뜬 이름은 ‘절대 카리스마’. 당시 서재덕에게 이를 보여주자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월드리그 서울시리즈를 치르기 위해 귀국했을 때도 서재덕은 “광인아 하루에 2시간씩 3일만 경기하러 와. 5만 원 줄게”라며 농담을 던졌고 이에 익숙해진 전광인은 “형 제가 시급이 세서요, 10만 원 주면 갈게요”라고 받아 쳤다. 서재덕은 “당장 사라져”라는 말로 화답했다.
티격태격하는 서재덕과 달리 최홍석과는 비교적 화목한 사이다. 전광인은 성균관대 2학년 재학 시절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뽑혀 최홍석과 한솥밥을 먹었다. 부쩍 가까워진 둘은 사이 좋게 서로의 팬 카페에도 가입했다.
“홍석이 형은 정말 잘하는 선배죠. 그때는 형도 어린 편이었는데 동생인 저를 챙겨준다고 고생했어요. 성격도 좋고 멋진 형이라 많이 따르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이들 역시 이름 세 글자 대신 별명으로 서로를 저장했다. ‘반쪽 동생’과 ‘반쪽 형아’다. 형제처럼 의지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이라 더욱 각별하다고 한다.
한바탕 웃고 난 뒤 2016~2017시즌을 맞이하는 각오를 물었다. “아프고 나니 느낀 게 많아졌어요. 제가 지난 시즌에 보여드린 게 없었잖아요. 주위 반응도 확연히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독해졌어요”라는 전광인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졌다.
간절함이 더욱 커졌다는 그는 “목표는 우승이에요. 정말 딱 한 번만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에요. 코트 위에서 왜 뛰어다녀야 하는지, 왜 소리를 지르는지 깨닫게 됐어요”라며 점점 더 배고파 진다고 밝혔다.
“이번 시즌에는 좀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게 ‘전광인’이구나 하고요. 제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해야죠. 저에게서 돌아선 분들도 있지만 계속 믿고 지지해준 분들도 많아요. 저를 기다려준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성장통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진 전광인은 마침내 슬럼프를 이겨냈다. 다가오는 시즌 팬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전광인다운’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해도 좋다.
사진/ 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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