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내려놓고 코치가 되다, 이숙자의 새로운 도전
- 매거진 / 박혜성 / 2022-06-30 21:47:04
많은 사랑 받았던 해설위원
“세터 출신이라 가능했죠”
Q. <더스파이크>와 단독 인터뷰는 6년 전인 2016 리우 올림픽 전이 마지막인데 어떠신가요.
사실 인터뷰는 중간중간 다른 언론사들과 가끔 했었는데 최근에 인터뷰를 너무 많이 진행하기도 했고 내 뜻과 다르게 전달되는 부분이 있어서 부담스러웠던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더스파이크>는 배구인들을 위한 배구 전문 잡지니까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아서 감사히 하겠다고 했죠.
Q. 해설 위원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배운 점이 있다면요.
안에서 보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 게 더 넓고 크게 보이더라고요. 선수와 지도자가 아닌 제3자인 선배, 팬 입장에서 보다 보니까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해설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요.
우선 제일 처음 해설했던 2014 안산 우리카드배 KOVO컵 경기가 기억나요. 너무 긴장해서 손에 땀도 나고 다리도 떨렸는데 주변에서 “너는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긴장도 안 하냐”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마음은 엄청 긴장되는데 표정이나 행동은 최대한 숨기려고 했어요. 아마 세터 출신이라 괜찮아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 때도 기억에 남아요. 당시 현장에 가서 중계를 했는데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수많은 관중 앞에서 내가 선수가 아닌 해설 위원으로 가서 선수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중계하면서 많이 울컥했고, 끝나고도 혼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다시 돌아온 코트
“새로운 도전 해보려고요”
Q. 해설위원을 하다가 수석코치로 오기까지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걸 코치한다는 기사가 나가고 알게 됐어요(웃음). 기사가 나간 후에 SNS나 주변에서 “그만두니까 아쉽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솔직히 해설위원은 안정적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기에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하지만 코치직은 아이들도 힘들어지고 가족들의 희생도 필요하죠. 그리고 저 또한 마음 편한 직업은 아닌 거 같아요. 해설위원을 8년간 하면서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하고 안정적이긴 한데 최근 1~2년부터 ‘내가 너무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코치가 성공과 실패를 다루기에는 감독님이 계시니까 좀 그렇지만 ‘나의 삶을 도전해 볼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Q. 코치 일을 하기에 해설했던 경험이 도움 될 부분이 있을까요.
선수들에게 해설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알려줄 수 있어요.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떤 면이 있더라', '이걸 네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요. 선수, 코치, 지도자가 아닌 3자가 봤을 때 알아도 선수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분명 도움이 돼요.
Q. 코치직을 승낙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가 결정적이었다기 보다 여러 가지가 겹쳤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 안정적인 해설위원을 하는 게 맞는데 여기에 안주하면서 그냥 지낼까 아니면 도전을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하던 중에 남편이랑 친정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마음을 조금 덜고 실패든 어려운 길이든, 성공이든 해보자는 도전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고희진 감독님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같이 하고 싶어 하셨어요(웃음).
그땐 그랬지
“은퇴 후회하지 않습니다”
Q. 선수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분들이 많아요.
시간이 오래 지나서 미화가 된 것 같아요(웃음). 현대건설에 입단하고 (강)혜미 언니라는 좋은 세터가 있어서 6년간 출전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기회가 와서 2~3년 뛰었는데 FA 제도가 생기면서 좋은 조건으로 GS칼텍스로 이적을 했죠. 이적 이후 우승도 해보고 대표팀도 가서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상도 있었고 뛴 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어요. 임팩트 있던 경기가 있어서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런던올림픽 8강 이탈리아 경기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저한테 정말 고마운 경기에요. 저를 원래 알고 있던 팬분들도 계셨지만 런던올림픽 8강전 경기를 통해서 알게 되신 팬분들도 많았어요. 사실 당시 우리나라가 예선 통과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죠. 하지만 예상을 깨고 예선 통과를 해 관심을 받았고 그때 펼쳐진 8강 경기에서 제가 뛰었어요. 다행히 괜찮은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선수 시절을 같이 했던 정대영 선수는 아직 현역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데 은퇴를 후회하셨던 적은 없나요.
저는 전혀 없었어요. 주변에서 “입단할 때 주전 보장받고 온 건데 쉬었던 6년이 너무 아깝지 않으냐”라고 말씀하시긴 하셨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몸이 강하지가 않아요. 그 짧은 기간 부상도 많았고 수술도 많이 했는데 6년이란 시간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배구를 하면서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우승, 꼴찌도 해봤고 FA로 팀도 옮겨봤고 대표팀 막내부터 고참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거 같아요. 못 해본 거라고는 MVP? 근데 욕심은 정말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 은퇴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Q. 한 유튜브에서 인생 터닝 포인트가 6~7년의 공백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인가요.
당시에는 정말 너무 싫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대표팀에 들어갔었고, 나름 계약금도 많이 받고 왔는데 뒤에만 있으니까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꾹꾹 참고 버텼죠. 그 시절 때문에 제가 주전으로 뛰어도 그 뒤에 있는 선수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장)소연 언니는 기억 못 하지만 제가 후보에 있다가 정말 오랜만에 경기에 들어갔던 적이 있어요. 그 경기에서 제가 소연 언니한테 속공 토스를 올렸는데 언니가 못 때렸어요. 근데 언니가 “미안해, 한 번 들어온 거 내가 득점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못해줘서 미안해”라고 맨날 뒤에만 있던 존재감 없던 사람이라 생각했던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데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때부터 경기에 못 뛰는 선수들 한 번 더 챙겼던 것 같아요. 만약 후보로 있던 6년의 생활이 없었더라면 저도 그냥 잘나가는 선수만 기억을 했겠죠. 하지만 팀이 잘 돌아가려면 뒤에 있는 선수들의 역할도 중요하단 걸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두 딸의 엄마
"첫 째는 학교가서 엄마 자랑을 해요"
Q. 어린 두 딸(아린, 효린)이 엄마랑 떨어지기 힘들어할 거 같은데요.
아린이는 해설할 때부터 뱃속에 있었어요. 그래서 아린이는 익숙함도 있고 이제 초등학교도 가고 성격도 독립적이에요. 제가 해설위원 하는 것도 학교 가서 자랑할 만큼 뿌듯해합니다. 8살 같지 않게 성숙해서 이해해 줘요. 효린이는 태어나고 계속 제가 돌봤기 때문에 처음 2주 동안은 일어나서 제가 없으면 엄청 울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는지 울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직 집에서 출발할 때 보내는 주는데 슬퍼하고 있습니다.
Q. 아이들이 커서 배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시키실 건가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힘들다는 걸 아니까 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본인이 해보고 싶다고 하면 제일 체계적이고 힘들게 하는 팀을 보낼 거예요. 버티고 계속한다고 하면 시킬 것 같아요. 근데 얼마 전에 아린이가 경기도에서 하는 체육수업 중에 배구가 있었는데 하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알려준다고 했더니 잔소리가 많아서 싫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결국 신청을 늦게 해서 못했죠. 사실 운동신경은 효린이가 더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저도 아직 초보라 시행착오도 많을 거예요. 얼른 팀에 녹아들어서 최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내서 지난 시즌보다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게 저도 노력 많이 할 테니 제 개인보다는 KGC인삼공사라는 팀을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박혜성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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