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기회 잡은 삼성화재 박성진, 세 번째 기회도 기다린다

매거진 / 이보미 / 2023-10-07 20: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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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의 프로 2년차 박성진은 2023년 컵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외국인 선수가 불참하는 상황에서 박성진이 아포짓으로 코트를 밟고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펼쳤다. 그동안 배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받은 두 번째 기회였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박성진은 세 번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배구 동호회 회원인 아버지와 핸드볼 선수 출신의 어머니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박성진은 당시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배구 동호회를 다니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배구공을 잡기 시작했다. 마침 그 동호회에 초등학교 배구부 감독님도 계셨다. 아버지가 “배구 해볼래?”라고 물었고, 배구를 잘 몰랐던 박성진은 덜컥 “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박성진의 배구 이야기가 시작됐다.

처음에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다(공부에도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배구를 배우면서 달라졌다. 지나고 나서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핸드볼 선수로 뛰었던 어머니의 DNA 영향도 있었던 듯하다.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기에 박성진은 계속해서 배구 선수로 코트를 밟았다.

배구라는 스포츠 종목 특성상 신장이 중요하지만, 박성진은 키가 작은 편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출전 기회가 적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코트 뒤에서 공을 줍는 역할을 했다. 배구에 대한 재미도 잃을 뻔했다. 속상한 마음에 부모님께 배구를 그만둔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 키도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박성진을 달랬다. 부모님은 “아빠도 고등학교 때부터 키가 컸다”고 중학생 박성진에게 말했다.

중학생 때 매년 키가 7cm씩 크긴 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해 5월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려는 시점에 10cm가 컸다. 박성진도 놀랐다. 그 다음 해에는 6cm 더 크면서 180cm를 넘어섰다. 비로소 코트 위에서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박성진에게 다가온 첫 번째 기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던 박성진이다. 전통의 배구 명문 남성고에는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고교 시절을 돌아본 박성진은 “그때 당시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김선호, 강우석, 최익제, 이현승, 장지원 선수 등 대표팀에 늘 선발됐던 선수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기회를 얻지 못했던 박성진은 유급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멤버들은 유스대표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현재 V-리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들이다. 아웃사이드 히터 김선호(현대캐피탈)는 2020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 데뷔에 성공했고, 세터 이현승(현대캐피탈)도 2022년 1라운드 2순위 지명을 받았다. 리베로 장지원(한국전력)은 2019년 1라운드 5순위로 우리카드 지명을 받았고, 이미 한 차례 이적을 했다. 각 팀의 미래 자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가운데 박성진에게도 반가운 기회가 찾아왔다. 남성고 주전 멤버들이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자리를 비운 사이 박성진은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고, 그대로 이를 흡수했다. 동시에 실력도 부쩍 늘었다. 고등학교 은사님이 당시 “키만 크면 너가 알아서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비로소 제 기량을 발휘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박성진은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배구가 점점 재밌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부모님께 그만둔다는 말도 안했다”면서 “내 실력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운이 따랐던 것 같다. 감독님도 잘 가르쳐주셔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경기를 뛰고, 성적도 냈다”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첫 번째 기회를 잡으면서 그 다음 스텝도 수월했다.

명지대 에이스 박성진
2023년 컵대회에서 막강한 화력을 드러낸 박성진의 모습에 삼성화재 김상우 감독은 “대학 시절에도 한 번 불 붙으면 못 말리는 선수였다”고 평을 내렸다.

박성진은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본인이 뛸 수 있는 곳으로 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명지대로 결정을 내렸다. 박성진은 팀 내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그는 “아무래도 결승에 오르는 대학팀들의 경우 워낙 출중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프로팀에 뽑히는 선수들도 많다. 명지대에서는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됐다. 2022년 대학배구리그에서도 박성진은 득점 1위에 이름을 올렸고, 공격 성공률은 59.3%로 공격종합 10위에 랭크됐다. 공격효율은 40%로 리그 전체 6번째로 높았다. 리시브 효율은 30%로 준수한 수치를 보였다. 역시 리그 8위로 TOP10 안에 포함됐다.

박성진도 자발적으로 새벽 운동을 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혼자 체육관에 나선 박성진은 동지도 만났다. 그는 “체육관에 나갔는데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농구부 친구 1명도 새벽 운동을 하러 나왔길래 친구가 돼 운동을 같이 했다”면서 “서로 옆에서 공 소리가 나다보니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운동 끝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갈 사람도 있어서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남몰래 피나는 노력을 했기에 박성진은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삼성화재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푸른 피의 사나이
2022년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는 아포짓 겸 아웃사이드 히터 신호진(OK금융그룹)이었다. 전체 1순위로 OK금융그룹에 입단했다. 이후 1라운드에만 세터 포지션의 선수가 4명이나 호명됐다.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가 각각 1라운드 2, 4순위로 이현승과 한태준을 선발했고, 한국전력과 KB손해보험도 1라운드 5, 6순위로 김주영과 박현빈을 지명했다. 삼성화재의 1라운드 선택은 미들블로커 김준우였다. 대한항공은 1라운드 7순위로 리베로 송민근을 영입했다.

그때까지도 드래프트 지원자 좌석에 앉아있던 박성진은 긴장되지 않았다. 2라운드 지명 순서가 됐을 때부터 심장이 뛰었다. 박성진은 “2라운드 안에 뽑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름 동기들과 분석도 해봤다. 당시 드래프트에 괜찮은 공격수들이 있었고, 신호진은 1순위가 유력했다. 배상진(KB손해보험), 구교혁(한국전력)까지 2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내 이름이 불렸으면 했다. 다행히 삼성화재에서 날 지명해줘서 감사했다. 2라운드 7순위로 이진성(OK금융그룹)까지 공격수들이 프로팀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년 전 신인 드래프트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삼성화재 김상우 감독은 2022년 4월 지휘봉을 잡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준우, 박성진에 이어 2라운드 5순위로 리베로 안지원까지 선발했다. 3명의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23년 컵대회, 박성진의 두 번째 기회
박성진의 프로 데뷔 첫 시즌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박성진은 2022-23시즌 정규리그 15경기 31세트 출전, 17득점을 올렸다. 그러던 2023년 3월 15일 OK금융그룹전에서 2, 3세트 연속 선발로 출전해 8득점을 터뜨렸다.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당시 공격 점유율도 22.86%로 끌어 올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크다. 박성진은 “경기에 투입됐을 때 내 마음처럼 안 풀렸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에게도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23년 컵대회가 박성진의 두 번째 기회였다. 아포짓으로 변신한 박성진은 컵대회에서 5경기 연속 선발로 출격했다. 5경기 20세트를 치르는 동안 106득점을 선사하며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공격 성공률과 효율은 각각 52.05%, 35.67%였다. 공격으로만 89득점을 올렸고, 블로킹과 서브도 각각 10, 7득점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다. 삼성화재는 박성진을 포함해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똘똘 뭉치며 컵대회 5년 만에 결승에 안착했다. 박성진은 8월 13일 OK금융그룹과의 결승전에서 인생 경기를 펼쳤다. 홀로 30득점을 올리며 분전했다. 공격 점유율은 38.39%까지 올랐다. 팀은 OK금융그룹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분명 값진 경험이었다. 박성진은 오랜만에 코트 위에서 그리고 많은 관중들 앞에서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았다. 대회 MIP까지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박성진은 “지난 V-리그에서는 공격할 때 코트 안에 넣으려고만 했다. 컵대회 때는 밀어 때리는 공격도 신경을 썼고, 범실을 해도 많은 시도를 해보려고 했더니 득점이 많이 나왔다”면서 “올해 컵대회는 나를 알리기 위한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제 리그 들어가서도 잘 안 풀린다고 생각될 때 컵대회를 떠올리면서 자신감을 찾으려고 한다. 잘했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힘줘 말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박성진을 응원하는 팬들도 늘었다. 박성진도 경기장 내 유니폼이나 플랜카드 등이 눈에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컵대회 이후 팬들의 관심도 실감하고 있다. 박성진은 “컵대회에서도 매경기가 끝날수록 조금씩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유니폼이나 나를 응원하는 플랜카드도 하나씩 더 보였다”고 전했다.

OK금융그룹과의 맞대결에서 동기 신호진과의 맞대결도 자극제가 됐다. 박성진과 같은 포지션으로 코트를 누빈 신호진 역시 박성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컵대회 당시 신호진은 “경기 내내 성진이의 플레이 때문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성진이가 점수를 낼 때마다 잘한다고 느꼈고, 그럴 때일수록 내 플레이는 더 차분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리고 신호진은 대회 MVP를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김상우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흡족함을 표했다. 김상우 감독은 “선수들이 지난 시즌이 끝나고 나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이번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자신감도 찾았고 의지도 생겼다. 이번 대회가 선수들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날개 공격수 조합을 잘 맞추는 것은 우리의 숙제다. 박성진이 지금처럼 잘 성장해준다면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퍼즐 조각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며 잠재력을 발산한 박성진을 향한 기대와 믿음을 드러냈다.

아웃사이드 히터 박성진의 아포짓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계속해서 리시브 훈련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컵대회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도 새 시즌을 앞두고 안정적인 리시브를 위해 훈련에 집중했고, 아포짓과 아웃사이드 히터로 번갈아 기용되고 있다.

박성진은 “요즘 리시브를 통해서도 자신감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앞으로 기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컵대회를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잡은 박성진의 2023-24시즌 전망도 밝다.




‘자랑스러운 아들’ 박성진 그리고 든든한 가족의 힘
박성진의 본가는 남원이다. 집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배구 동호회다.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아들, 박성진이다. 주변에서도 박성진에게 “아빠가 아들 자랑하러 온다”고 귀띔을 할 정도다. 본인보다도 더 기뻐해주는 부모님이 있어 든든하다.

박성진은 프로팀 입단 후 첫 월급도 모두 가족을 위해 썼다. 부모님 그리고 누나에게도 드렸고, 일부는 적금에 썼다. 심지어 ‘현실 남매’답게 평소에 연락도 뜸한 누나지만, 박성진은 누나도 챙겼다. 박성진은 “누나랑 연락을 잘 안하는 편이다. 어려운 과제가 있었을 때 누나한테 연락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을 쓰는 재미보다 모으는 재미가 더 큰 박성진이다. 그동안 가족을 먼저 챙겼다면 10월에는 본인을 위한 ‘셀프 선물’도 구입할 계획이다. 박성진은 “처음으로 내 돈으로 새 휴대폰을 사려고 한다. 10월에 새롭게 출시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 원래 돈을 모으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이번만큼은 뿌듯할 것 같다”며 설레는 표정을 보였다.

올해 박성진은 삼성화재와 연봉 4500만원에 사인을 했다. 10월 휴대폰 가격은 프로 데뷔 후 자신에게 쓰는 가장 큰 거금이 될 예정이다.

MIP 다음을 바라보는 박성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받은 상이 2023년 컵대회 MIP다.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있는 박성진이다. 박성진은 “다음에는 어떤 대회나 리그든 MVP를 받아보고 싶다”면서 “차근차근 하나씩 받으면서 모든 상을 받을 수 있게끔 노력할 것이다”며 굳은 결의를 표했다.

새 시즌에도 보다 나은 박성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는 “매경기 조금씩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개인적인 목표다. 팀 목표는 최대한 많은 승점을 가져와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이다”며 힘줘 말했다.

2023-24시즌 삼성화재에는 새 외국인 선수인 아웃사이드 히터 요스바니 에르난데스(쿠바/이탈리아)와 올해 첫 도입된 아시아쿼터 1호 선수인 아포짓 에디(몽골)가 있다. 에디 역시 아포짓은 물론 미들블로커, 아웃사이드 히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국내 날개 자원에는 아웃사이드 히터 김정호와 신장호, 손현종이 있다. 삼성화재는 요스바니와 에디로 공격력을 강화한 만큼 여러 조합으로 맹공을 펼치겠다는 심산이다. 컵대회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친 박성진도 그 퍼즐 중 하나다. 박성진 역시 아포짓, 아웃사이드 히터 등 멀티 플레이어다.

박성진은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오늘도 쉼 없이 달린다. 그는 “최근 연습경기에서도 아포짓, 아웃사이드 히터를 오가며 꾸준히 두 포지션에서 뛰고 있다”면서 “기회를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자신감을 되찾은 박성진은 세 번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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