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에서 챔피언이 되다! 몽골에 한국 배구의 힘을 알린 이선규 감독
- 매거진 / 김희수 / 2025-04-03 20:26:23
전설적인 선수에서 해설위원과 코치로의 변신에 성공했던 이선규가 세 번째 변신에도 성공했다. 몽골 리그에 한국 배구의 힘을 알리기 위해 감독으로 상륙했고, 다양한 재밌는 일들과 힘든 일들을 겪은 끝에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 1년차에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성공적인 첫 시즌을 마친 이선규 감독은 여러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더스파이크>가 그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설의 세 번째 도전, 한 번에 들어 올린 트로피
Q. 정규리그 성적이 무려 17승 1패였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모습이었는데요.
사실 정규리그가 시작하고 나서 보니, 에디가 속해 있는 팀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더라고요. 몽골 리그의 레알 마드리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밧수리 바투르(OP, 엄청난 운동능력과 힘을 자랑하는 선수로, 웜업 때 스파이크를 바닥에 꽂아서 공을 천장까지 올려버리는 영상으로 SNS에서 상당한 화제가 됐다)랑 에디가 좌우 쌍포를 구축하고 있고, 외국인 선수 세 명도 전력에 확실하게 보탬이 되는 팀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팀을 상대로 1라운드 때 1-3으로 패했어요. 이후 나머지 다섯 개 팀을 다 잡으면서 1라운드를 5승 1패-2위로 마쳤는데, 그 때 ‘끝까지 가면 결국 우리가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에디네 팀을 계속 분석했고, 그 팀을 잡는 데에 포커스를 확실히 맞춘 뒤 전술과 시스템을 재정비했어요. 그렇게 2라운드 맞대결에서는 저희가 3-2로 이겼고, 3라운드 최종전에서도 이기면서 17승 1패-1위로 정규리그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1~4위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1위 VS 4위 – 2위 VS 3위 구도로 3판 2선승제 맞대결이 치러져요. 그 다음 챔피언결정전은 5판 3선승제로 진행됩니다. 사실 저는 에디네 팀이랑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걔들이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져버리더라고요(웃음). 저희는 플레이오프에서는 3-2 / 3-1 2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요. 사실 예상보다 쉬운 대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월한 챔피언결정전이긴 했지만, 선수들이 큰 경기에서 이겨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다행히 챔피언결정전에서도 3-2 / 3-0 / 3-0으로 3연승을 거두며 최종 우승을 차지하게 됐죠. 하수 메가 스타즈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 자체가 5년 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천 몇 백 일 만에 챔피언결정전에서 이겼다고 기사도 났습니다(웃음).
Q. 성공적인 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일 먼저 집중한 부분은 보이는 공격만 좋아하고 범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선수들의 성향을 고치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각종 기록을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효율적인 배구를 하자는 주문을 했죠. 이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미들블로커 한 명은 저한테 불만을 표출하면서 태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저는 팀 퍼스트라는 가치관을 계속 지켰어요. 그렇게 팀을 끌고 갔고, 팀이 계속 이기니까 그 선수도 결국은 따라오더라고요. 선수들한테 영상도 엄청 보여줬어요. 원래 몽골 리그에는 영상 같은 걸 보는 문화가 전혀 없었는데, 영상을 자주 보기 시작하니까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지더라고요. 사실 저도 비디오 분석이 처음 생겼을 때 제가 생각한 제 플레이랑 영상 속 제 플레이가 아예 다른 걸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이 선수들에게도 선사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렇게 다양한 노력을 통해 선수들과 저 사이의 신뢰가 계속 두터워졌고, 3라운드 때부터는 경기 끝나고 선수들에게 칭찬도 자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이 변해 있었어요.
Q. 감독님 개인으로서는 분명 힘든 부분도 있는 시즌이었을 텐데요.
우선 사람을 관리한다는 자체가 힘들었어요. 몽골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이방인인 제가 들어선 거였잖아요. 아무래도 문화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저 혼자서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좀 많았어요. 가장 대표적인 게 시간 약속 문제였어요. 시간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거든요. 저는 이 팀을 우승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서부터 기준을 명확히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부터 솔선수범하면서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팀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에는 선수들이 시간 약속을 못 지켜도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저부터 약속을 철저히 지키기 시작하니 선수들도 갈수록 지각하는 횟수가 줄어가더라고요. 물론 이 과정에서 제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됐는데, 그럴 때는 바야르사이한이 옆에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면서 격려도 해줬습니다.
든든한 조력자였던 바야르사이한, MVP가 되다
Q. 역시나 대단했던 여정 속에서 바야르사이한의 몫을 빼놓을 수 없었네요.
그럼요. 사실 처음에 몽골에 갔을 때 저와 바야르사이한의 관계는 당연히 감독과 선수의 관계였어요. 하지만 시즌이 끝날 때쯤은 장난삼아서 제가 바야르사이한한테 감독님이라고 부르고 바야르사이한이 저한테 반말을 할 정도로 신뢰와 친분이 두터워졌어요. 제가 바야르사이한한테 “감독님, 오늘 포지션 어떻게 짤까요?” 물어보면 바야르사이한이 “그래, 일단 나는 아포짓으로 가자”고 할 정도였습니다(웃음).
Q. 바야르사이한이 리그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다 소화했나보군요?
맞아요. 미들블로커-아웃사이드 히터-아포짓까지 세 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어요. 1라운드에는 주로 아웃사이드 히터로, 2라운드 초반에는 아포짓으로, 2라운드 중반부 이후에는 미들블로커로 나섰어요. 바야르사이한이 워낙 다재다능한 선수니까, 저도 이에 맞춰 팀 플랜을 두 개로 짜놨어요. 바야르사이한의 아웃사이드 히터 버전과 미들블로커 버전으로요. 바야르사이한 본인은 미들블로커로 뛰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본인의 경쟁력을 최대한 발휘해줘야 하는 포지션은 미들블로커가 맞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다행히 바야르사이한이 제 플랜을 이해해주고 모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줬고, 덕분에 챔피언결정전에서 바야르사이한이 MVP까지 수상하게 됐습니다.
Q. 바야르사이한과 에디 말고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수들이 리그에 정말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리그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있는 팀이 무려 다섯 팀이에요. 지금 U-리그와 고교 배구에서 뛰는 몽골 선수들이 리그에 합류해서 경기를 뛰었거든요. 푸제(경희대)나 태무진(중부대) 같은 선수들이요. 그래서 경기 끝나면 몽골에서 몽골 선수들끼리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볼 수 있어요. 정말 재밌는 그림이죠(웃음).
Q. 바야르사이한은 한국 복귀를 원한다는 의사를 꾸준히 비춰왔는데, 감독님이 보시기에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바야르사이한은 다음 시즌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에 지원했다).
V-리그에 바야르사이한이 돌아간다면, 무조건 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들블로커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시아쿼터 첫 시즌보다 훨씬 나은 플레이를 보여줄 겁니다. 그때도 못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몽골에서 더 많은 성장을 했거든요. 운동 능력이 정말 좋은 선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최고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와 열망이 어마어마해요. V-리그로 돌아간다면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믿습니다.
Q. 그렇다면 바야르사이한을 제외한 다른 몽골 선수들의 아시아쿼터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바야르사이한을 제외하면 일단 에디 정도죠. 에디는 리그에서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었는데, 아포짓이나 아웃사이드 히터로 V-리그에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차라리 미들블로커로 뛰는 쪽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워낙 점프와 피지컬이 좋은 선수라, 성공 확률은 50% 정도로 봅니다. 밧수리 같은 경우는 공격에 모든 능력치가 몰려 있는 선수라 좀 애매하네요. 아웃사이드 히터로 가기엔 리시브가 안 될 거고, 아포짓으로 가기엔 알리 파즐리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몽골의 스타가 된 이선규, 그의 향후 계획은?
Q. 몽골의 배구 인기가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속에서 감독 이선규의 인기 역시 엄청났다고요?
몽골은 배구를 포함해 실내 스포츠의 인기가 정말 많은 나라예요. 어딜 가든 체육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체육관도 많고요. 리그 경기는 당연히 모두 생중계되고, V-리그처럼 올스타전도 성황리에 진행됩니다. 경기가 끝나면 팬 여러분들이 길게 늘어서서 선수단을 응원하는 모습도 비슷하게 만나볼 수 있어요.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저도 인기가 정말 좋았어요(웃음). 팬들은 물론 배구협회 관계자들까지 저를 응원해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Q. 그 덕분에 무척 색다른 경험도 하셨다고요.
몽골에서는 올스타전 전야제로 셀러브리티 올스타전이 열려요.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서 6:6 경기를 치르는 이벤트 매치죠. 저는 처음에 ‘연예인들끼리 무슨 6인제 배구를 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스파이크 서브를 때려요(웃음). 충격이었습니다. 배구가 워낙 인기도 많고 생활화돼 있어서 그런가 봐요. 저한테도 ‘혹시 로테이션을 한 바퀴만 돌아줄 수 있겠냐’고 해서 제대로 된 속공 패스나 올라오겠나 반신반의하면서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요? 나이스 패스가 올라옵니다(웃음).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Q. 위대한 성취에 색다른 경험까지 하고 돌아온 감독 이선규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요. 우선 아시아배구연맹(AV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 신청을 했는데, 만약 가게 된다면 저도 함께 할 예정입니다. 또 저는 몽골 대표팀에도 관심이 있어요. 불러주신다면 그 길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이선규 감독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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