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썼던 남자 김홍정의 두 번째 도전 “돌아온 경희대, 집처럼 편안하네요” [U-리그]
- 아마배구 / 대전/김희수 / 2025-04-05 18:08:16
신화의 주인공이 이제 후배들과 함께 새로운 신화를 써보려 한다.
V-리그에서 수련선수는 일반 직장의 기간제 인턴과 비슷하다. 팀과 동행하지만, 경기에 나선다는 보장은 없다. 연봉도 더 적고, 다음 시즌에 V-리그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도 불명확하다. 이러한 인턴의 설움을 딛고 수련선수 출신으로 V-리그에 족적을 남기는, ‘수련선수 신화’를 써내려가는 선수들이 매우 드물게 존재한다.
김홍정은 그 신화의 시작을 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다. 2009-2010 V-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수련선수로 삼성화재의 유니폼을 입은 김홍정은 이후 러시앤캐시와 KB손해보험을 거치면서 V-리그에서 11시즌을 소화했다. 총 338경기‧1024세트를 소화하면서 1043점‧블로킹 362개를 기록하는 등 수련선수 출신으로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거듭난 김홍정은 2023-24시즌을 끝으로 V-리그를 떠났다.
그랬던 김홍정은 무대를 U-리그로 바꿔 다시 한 번 배구 팬들 앞에 섰다. 자신의 모교인 경희대학교의 코치로 부임하며 코칭스태프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4일 대전 충남대학교 체육관에서 치러진 2025 KUSF U-리그 A조 경기에서 경희대가 충남대를 3-1(25-20, 21-25, 25-17, 25-19)로 꺾은 뒤, 코치 김홍정과 잠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다. 김 코치는 “선수 때보다 더 많이 긴장됐다. 전날 잠도 설쳤다. 선수들보다 내가 더 떨렸던 것 같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선수 시절 보여줬던 밝고 따뜻한 웃음은 그대로였다.
그대로였던 것은 김 코치만이 아니었다. 경희대 배구부 역시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 코치는 “내가 운동하던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이 똑같았다(웃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왔을 때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이행 감독님도 나를 너무 반겨주셨고,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며 16년 만에 돌아온 경희대 배구부가 간직하고 있던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소개했다.
김 코치는 “나는 아직은 코치로서의 철학이나 목표를 명확히 가질 단계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신참 코치다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단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선수들이 나를 코치가 아닌 형이나 선배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해야 할 것들을 잘 할 수 있게, 또 절대 해서는 안 될 것들은 하지 않을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코치는 V-리그에서 오랜 시간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미들블로커 출신이다. 경희대의 미들블로커들에게는 좋은 교본이자 스승님이 될 예정이다. 특히 몽골 출신의 2학년 미들블로커 푸제는 208cm의 압도적인 신장과 좋은 플로터 서브를 갖추고 있는 유망주로, 김 코치의 육성이 더해진다면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자원이다.
김 코치는 유망주 푸제에 대해 “보시다시피 피지컬이 워낙 좋다. 지금도 꾸준히 발전 중인 선수다. 팀에 처음 와서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졌다. 너무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오히려 내가 어디까지 이 선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일지가 의문일 정도다. 잘 성장한다면 귀화가 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아마 국내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은 정교한 플레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머리로는 아는데 경기에 들어가면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이건 경험이 해결해줄 문제”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 코치는 오랜 시간 경희대의 코치를 맡다가 이번 시즌 감독으로 첫 도전에 나서는 이행 감독에 대해서도 존중이 가득한 코멘트를 남겼다. 그는 “감독님은 정말 남자 그 자체다. 뒤끝도 없으시고, 지적이 필요할 땐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선수들을 훈계하신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선수들과도 늘 가깝게 지내신다. 그런 부분을 보면서 나도 많은 걸 배운다. 혼만 낸다고 다 잘하면 쉽다. 하지만 당근과 채찍은 배합돼야 한다. 감독님은 이런 부분에서 노하우가 확실하신 분이다. 기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원래도 늘 존경해왔던 선생님이지만, 지금은 정말로 하루에 하나씩 감독님께 배워가는 중”이라며 이 감독과 함께 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언급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즈음, 김 코치가 한 가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그는 “사실 선수 시절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끝인사를 팬 여러분들에게 전하지도 못한 채 조금은 갑작스럽게 코트를 떠나게 됐었다. 그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렸고 죄송스러웠다. 이 자리를 빌려 팬 여러분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저는 배구장에 다시는 안 나타날 사람은 아니다(웃음). 언젠가는 V-리그의 코트에서 선수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인사를 드릴지도 모르겠다. 그날까지 저와 경희대학교를 계속 응원해주신다면 정말 감사드리겠다”며 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늦게나마 전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지만, 신화의 시작 역시 서툴긴 마찬가지였다. 이 도전 역시 그가 썼던 신화처럼 그 끝은 창대할 수 있다.
사진_대전/김희수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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