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쓴 답안지, 인하대학교 신호진
- 매거진 / 서다영 / 2022-09-04 19:00:55
익숙한 시선을 돌리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각을 바꾸면 우리는 곧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배구와 자유로움을 나란히 놓고 보게 된 신호진 역시 코트 위의 무수한 가능성을 마주했다. 이것은 그가 새로운 페이지를 열고 소신껏 써 내려가는 답이다.
내가 아닌 우리를 본다는 것
Q. 고성과 무안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거뒀어요. 절대적인 우승 후보였던 인하대에는 당연한 결과였을까요?
우리가 조직력이 좋은 팀이라고 하지만 U리그를 할 때까지만 해도 팀을 하나로 뭉치기가 쉽지만은 않았어요. 모두 실력이 좋다 보니 약간의 우월감도 있었고요. 그래서 감독, 코치님과 함께하는 팀 미팅 외에도 선수들끼리 미팅 시간을 자주 가졌어요. 다 같이 모여서 ‘오늘은 이렇게 했으니까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자’며 대화를 했던 게 팀을 더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Q.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점이 무엇보다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요.
특히 고성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정말 이루고 싶었던 우승이었고, 우리가 게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여유도 좀 생겼고요. 무안 대회는 오히려 실력이 좀 더 좋아진 상태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느낌을 받았죠. 개인적으로는 2021년 고성 대회 결승전에서 종아리를 다치고 2020년 고성 대회도 4강에서 지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4학년이 되어 팀을 이끌어가는 위치에서 선수들을 하나로 모아 우승하니까 더 뜻깊었어요.
Q. 올해 인하대는 독보적인 팀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나요.
선수들끼리 미팅할 때 그런 말을 했어요. ‘독보적이라는 말은 그냥 가설일 뿐이고 증명되지 않은 말이다. 코트 위에서 직접 보여줘야 그것이 현실이 되는 거다. 그 말만 믿고 자만하지 말자’고요.
‘나를 깨자’는 결심
Q. 지난해 신인드래프트 신청을 마지막에 철회했잖아요. 결국 인하대에서 1년을 더 보내면서 우승을 포함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엔 어떤가요.
당시엔 종아리를 다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1년 더 대학에 있기로 결정했어요. 그 1년이 내게는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됐어요. 4학년이 되면서 실력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도 훨씬 더 좋아졌거든요.
Q. 어떤 점에서요?
2~3학년 때는 공격 비중이 크다 보니 압박감이 정말 심했어요. 득점을 내는 것에만 너무 집착하니까 몸도 안 좋아졌죠. 그런데 올해는 팀의 배구 스타일이 조금 바뀌면서 나도 그 안에 함께 녹아들었어요. 예전에는 궁지에 몰리면 다 같이 당황하다가 지곤 했는데, 지금은 꼭 내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하자!’는 분위기예요.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다른 공격수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다가 가끔 공이 올라와요. 그러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시너지 효과가 나오니까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실력도 늘더라고요. 팀원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Q. 확실히 코트 안에서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네요.
예전에는 배구가 과학이라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떨어지는 수학 공식처럼 이 상황에 이 스텝을 밟아서 이렇게 때리면 저기에 넣을 수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자유로움을 누르고 정해진 틀에만 맞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동안 믿었던 공식같은 기술들이 내 몸에 무리를 주더라고요. 또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는 아무리 그 틀에 맞추려고 해도 하던 대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범실도 많았죠. 그때를 돌아보면 배구를 과학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내 실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는 ‘나를 깨자’고 결심했어요.
Q. 그래서 어떻게 달라졌나요.
이제 배구는 과학이 아니라 ‘착실함’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배구가 아니라 흐름에 맞게 그저 내가 해왔던 것들을 착실히 하면 범실이 나오더라도 자신감은 잃지 않거든요. 그냥 ‘아 막혔네. 그래서 다음은 어디에 때리지?’라는 생각부터 하죠. 그러니까 배구는 착실함이에요.
Q. 온종일 배구 생각만 할 만큼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훈련량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어요.
지난 4년 동안 매일 팀 운동 시간보다 한 시간씩 일찍 나와서 개인 운동을 했어요. 사실 개인 운동을 할 때 실력이 가장 많이 늘거든요. 실력을 키우려면 무조건 나와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하다못해 배구와 관련된 생각이라도 하는 거죠. 그래서 늘 혼자 나와서 기본기 연습을 했어요.
큰 선수가 될 거라는 믿음
Q. 신인드래프트를 앞둔 마음이 지난해와는 사뭇 다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작년까지는 내가 나를 잘 믿지 못했어요. 틀에 맞추는 배구를 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올해 인하대에서 자유로운 플레이를 하고 팀원들과도 호흡이 잘 맞으니까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지금은 ‘나를 믿고 하자!’는 마음이에요. 내가 최고라는 확신을 갖고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나는 무조건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Q. 프로 무대에서 갖게 될 자신만의 차별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배구에 대한 진심 아닐까요. 저는 1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사람이 정말 많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력을 포함해서요. 그걸 몸소 느꼈어요. 배구에 진심이 아니라면 실력이 늘 수 없어요. 누군가 시켜서 오늘 하루도 지루하게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배구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심이 있어요.
Q. 이제 인하대 소속으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남은 대학 생활의 각오는?
부상 없이 몸 관리를 해서 전관왕을 달성하는 게 첫 목표에요. 또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프로 무대에 가는 거죠. 아직 발전 중이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의 선수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어요. 더 나아갈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배구에 대한 생각들을 멈추지 않을 거고요.
글. 서다영 객원기자
사진. 더스파이크DB(박상혁 기자)
(더 자세한 이야기는 <더스파이크> 9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