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 못한 '최리'의 충격 부진, 자포자기에 눈물의 은퇴 고민까지...그러나 다시 일어났다, 사령탑의 믿음과 함께 "무조건 할 수 있다"
- 여자프로배구 / 김천/송현일 기자 / 2025-01-16 14:17:05
"무조건 할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15일 안방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경기에서 GS칼텍스를 세트 점수 3대2로 물리쳤다.
쉽지 않은 경기였다. 상대 외국인 공격수 실바가 믿을 수 없는 득점력을 선보였다. 지난 3일 흥국생명을 상대로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51점)을 기록한 뒤, 한국도로공사를 맞아 불과 두 경기 만에 또 한 번 타이 기록을 작성한 것. 공격 효율도 52.12%에 달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한국도로공사가 아니었다. GS칼텍스가 실바를 앞세운 강공 전략으로 밀어붙였다면, 한국도로공사는 리그 최정상급 리베로 임명옥으로 맞섰다. 임명옥은 이날 23개 리시브를 받아 56.52%의 효율로 연결했고,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29개 디그를 건지는 등 그야말로 패배를 막아내는 수문장으로 우뚝섰다.
임명옥의 별명은 '최리(최고의 리베로)'. 그만큼 기량이 출중하다는 뜻이다. 임명옥은 프로배구 원년인 2005시즌 여자부 신인 선수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KT&G(현 정관장)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V-리그 원년 멤버 중 아직 현역에 있는 이는 임명옥과 황연주(현대건설)가 유이하다.
21번째 시즌에 돌입한 임명옥은 16일 현재 역대 디그 성공 1위(11127개), 리시브 정확 1위(6677개), 수비 성공 1위(17804)를 달리고 있다. 1986년생으로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지난 시즌 리그 베스트7에 뽑혔을 만큼 여전히 흔들림 없는 기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 초반 임명옥은 데뷔 이래 가히 최악이라 일컬을 수 시간을 보냈다. 특히 0-3으로 패했던 페퍼저축은행과 안방 개막전은 스스로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는 당시 팀 평균(33.33%)에도 못 미치는 30.30%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임명옥이었기에 팬들 사이에서도 그가 에이징 커브 구간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임명옥 자신도 "컵대회 때도 그렇고, 비시즌 동안 준비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경기 때 페퍼저축은행과 경기를 하면서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20년 동안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당초 2028 LA 하계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꿈꾼 임명옥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에 돌연 은퇴도 고민했다. 더욱이 그는 평소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편인데, 최근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과 면담에선 눈시울까지 붉혔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임명옥은 "심리적인 게 해결되기 전엔 팔을 드는 것조차 덜덜 떨렸다. 후배들이 리시브하는 걸 보면서 '왜 나는 저렇게 못하지' 생각도 진짜 많이 했다"며 "내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너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이대로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 21년 차 '살아있는 전설'의 마지막이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선 분명 안 될 일이다. 임명옥 자신도 "'이대로 그만두더라도 '명옥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손을 저었다.
김종민 감독은 때 아닌 성장통을 겪고 있는 임명옥에게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본인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조건 할 수 있다. 아직 녹슬지 않았다. 나이 때문에 흔들린 게 아니"라며 신뢰를 보냈다.
끝내 임명옥은 일어섰다. 천신만고 끝에 이번 시즌 리시브 1위(효율 48.18%), 수비 1위(세트당 7.247개), 디그 2위(세트당 5.408개)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임명옥은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 감독님에게 마음을 털어넣고 나니 너무 편해졌다"고 진심을 전했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사나이' 김종민 감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제자를 격려했다. 임명옥은 "올스타전 브레이크 때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직접 공을 때려줬다. 날 더러 '네가 제일 빠르다'고 말했다.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앞으로 몇 시즌간은 '최리'를 더 볼 수 있을 듯하다. 임명옥은 "다시 LA 올림픽을 보러 가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_김천/송현일 기자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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