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 '이벤트 매치' 발뺌·선수단 "중요한 대회" 울상? '프랑스 명장'도 아연실색 KOVO식 졸속 행정
- 남자프로배구 / 여수/송현일 기자 / 2025-09-13 13:26:40
"세계선수권대회 기간에 대회를 개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프랑스)은 13일 전남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열린 ‘2025 여수·NH농협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개막전 OK저축은행과 맞대결에 앞서 열린 인터뷰를 통해 한국배구연맹(KOVO)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블랑 감독은 “선수들과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준비했는데, 경기 당일 아침 외국인 선수가 뛸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V-리그는 외딴 섬이 아니다. 세계 배구 흐름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의 발단은 전날(12일) 저녁이었다. KOVO는 남자부 7개 구단에 “컵대회에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의 출전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긴급 지침을 통보했다. 불과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출전 가능하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배경에는 국제배구연맹(FIVB) 경고가 있었다. FIVB는 세계선수권대회 기간에 이벤트성 대회를 제외한 모든 대회 개최를 금지하고 있다. KOVO는 컵대회를 ‘친선 성격 이벤트’로 주장했다. 그러나 FIVB는 이를 정식 대회로 간주했고 징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과정에서 컵대회 위상은 떨어지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만약 이번 대회가 ‘이벤트’라면 공식성이 희석되고, 반대로 ‘정식 대회’로 인정하면 FIVB 지침을 위반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구단 입장에서는 컵대회 우승과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달성해도 ‘트레블’로 인정받기 어렵다.
선수단은 당연히 이번 대회를 분명한 ‘공식 무대’로 준비했다. 블랑 감독은 “이번 대회가 단순한 친선 경기였다면 선수 구성 그에 맞는 수준으로 편성했을 것”이라며 “세계 어느 리그에서도 컵대회는 정규리그 다음으로 중요한 대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분명히 연맹 일정에 명시된 정식 대회”라고 꼬집었다.
이번 과정에서 컵대회를 ‘빅 게임’으로 여기며 준비해 온 구단과 선수들의 인식과 달리, 정작 주최 측인 연맹은 "컵대회는 이벤트성 대회"라고 언급하고 있다. 연맹 스스로 주최하는 대회 가치를 낮추는 모순이 드러났다.
1960년생으로 베테랑이기도 한 블랑 감독은 "그간 배구 인생 처음으로 경기 당일 조식을 먹는 동안 우리 선수들을 활용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안타깝게 그지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면서 아연실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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