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에서 보석으로 거듭날, 충남대 김진영
-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3-01-18 12:00:09
그야말로 ‘숨겨진 원석’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대학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보여준 존재감은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2022 KUSF 대학배구 U-리그에서 블로킹 부문 1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훌륭한 원석은 스스로를 갈고 닦고 다듬어 앞으로 더 반짝일 보석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대학의 벽을 느꼈어요”
김진영이 보낸 신입생 1년
12월의 어느 날. 찬 바람은 다소 불었지만, 사진 찍기엔 좋은 화창한 날씨였다. 충남대 체육관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큰 키를 자랑하며 걸어오는 게 인터뷰를 약속한 선수임을 직감했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표정에는 어색한 기색이 가득했다. 촬영이 모두 끝나자마자 “배구가 제일 쉬운 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 긴 한숨을 내쉬었다. <더스파이크>와 인터뷰하게 된 소감을 묻자 “침대에 누워 있다가 연락이 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왜 나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긴장도 됐어요. 사진 찍는 건 어려웠지만 막상 해보니깐 재밌었어요”라고 웃었다.
김진영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배구공을 잡았다. 그는 “스포츠 클럽에 참가하고 있다가 그 당시 영생고 감독님이 저를 보고선 배구선수를 제안하셨어요. 또래보다 키가 컸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확 크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선수가 된 계기를 설명했다.
송산중-송산고를 거치며 충남대에 입학했다. 2022년 4월 29일, 김진영은 대학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2022 KUSF 대학배구 U-리그 첫 경기, 인하대를 상대로 코트를 밟았다. 결과는 셧아웃 패. 처음이 주는 설렘보단 패배의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폭제를 만들어줬다. 김진영은 대학배구에서 뛴 경기 중에 아직도 인하대와의 첫 리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그는 “대학의 벽을 느꼈어요.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라고 되돌아봤다.
“그날 속공 2점만 올린 게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바로 훈련 루틴을 만들어서 웨이트도 열심히 하고, 코트 훈련 끝나고 나서도 혼자서 개인 운동도 했어요. 안 되는 게 있으면 더 생각하고 더 잘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신입생이 올라선 1위
드디어 느낀 처음의 설렘
열심히 흘린 땀방울은 결실로 다가왔다. 김진영은 U-리그에서 세트당 1.105개의 블로킹 기록하며 1위에 자리했다. 유일하게 세트당 1개가 넘는 기록이었다. 2022 대한항공배 전국대학배구 고성대회에서도 블로킹 3위(세트당 0.889개)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고성대회 조선대와의 경기에선 무려 8개의 블로킹을 잡아냈다.
그리고 충남대는 U-리그에 이어 2022 고성대회에서 다시 인하대를 만났다. 경기는 또다시 패했지만,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무실세트,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인하대를 상대로 처음으로 세트를 따낸 것. 하지만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진영은 “1세트를 가져온 건 좋았지만, 나 스스로 봤을 땐 많이 못 했어요. 그 경기를 끝내고 혼자서 생각을 많이 했고, 안 된 이유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반성도 많이 했어요”라고 돌아봤다.
이후 진행된 2022 대한항공배 전국대학배구 무안대회에서도 세트당 블로킹 0.882개를 기록하며 1위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비록 세 대회 모두 충남대가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개인 기록만 봤을 땐 대학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김진영은 본인의 활약보단 팀 모두가 좋은 성적을 거두길 더 바랬다.“블로킹 기록이 좋아서 기분은 좋았지만, 팀 성적이 좋은 게 더 기분 좋아요. 같이 해냈다는 게 더 의미가 크게 다가와요. 성적은 아쉬웠더라도 다들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팀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대회에서 팀 창단 이후 두 번째 결승에 올랐다. 2022년 10월 12일, 충남대는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대학부 결승 경기를 치렀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드디어 처음의 설렘을 느꼈다. “배구를 하면서 체전에 나간 게 처음이었어요. 첫 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메달도 처음 받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웃음).”
배구에 더 욕심나고 더 진지해졌어요
배구를 하면서 힘든 순간도 당연히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슬럼프를 겪으며 잠시 코트를 떠났다. “중학교 때부터 원래 왼쪽 무릎이 안 좋았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발목까지 돌아가면서 슬럼프가 왔어요. 재활을 마친 뒤에도 원래 기량이 안 나와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탓에 배구를 6개월 정도 그만뒀어요.”
하지만 반년 뒤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마음가짐도 다시 잡았다. 일본 남자배구대표팀 미들블로커 리 하쿠를 롤모델로 삼아 따라 하며 연구했다. 김진영은 “평소에도 해외 배구를 많이 보는데 알고리즘을 통해 처음 보게 됐어요. 신체조건이랑 속공 스윙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영상을 보고 많이 참고하고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미들블로커로 큰 키는 아니에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보다 높이에 뒤지지 않으려면 점프를 높게 뛰어야 해요. 그래서 하체 웨이트랑 기능 운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선의의 경쟁자도 있다. 같은 미들블로커인 한양대 이준영을 보면서 자극도 많이 받는다고. 김진영은 “전국체전 준결승을 한양대랑 붙었어요. 특히 상대 코트에 (이)준영이가 있어서 더 재밌게 했어요”라고 경기를 복기했다.
“준영이를 볼 때마다 항상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영이가 뛴 청소년 대표팀 경기도 몇 개 챙겨봤는데 대표팀 다녀오고 나서 훨씬 더 잘하는 게 느껴졌어요. 준영이가 더 잘하면 나도 더 잘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얻어요. 준영이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낯을 많이 가려서 친해지지 못했어요. 그런데 체전 경기 끝나고 준영이가 수고했다고, 자기도 친해지고 싶었는데 낯 가려서 이야기를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연락해줘서 고마웠어요. 그 이후에 다음에 만나면 인사하자고 했습니다(웃음).”
새내기 배구선수, 대학생으로 의미 있는 1년을 보냈다. 첫 대학 생활에 대해선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 습관이 안 잡혀 있어서 어려웠어요. 공부는 열심히 하지 못했지만, 수업 시간엔 최대한 열심히 대답해 보려고 했습니다”라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한 해 동안 쌓은 경험을 통해 과거보다 더 배구를 향한 욕심이 생겼다. 김진영은 “고등학교 때보다 더 욕심이 생겼어요. 고등학교 때는 그냥 열심히 했다면, 이젠 더 큰 무대가 욕심나요. 더 자기 객관화를 통해 뭐가 부족한지 생각하게 되고 웨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운동적인 면이 더 진지해졌어요”라고 달라진 부분을 언급했다.
함께 생활하는 충남대 팀원들과 이기범 감독을 향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배구를 하면서 감독님이라는 자리를 어려워했어요. 하지만 이기범 감독님이 많이 풀어주셨어요. 평소에도 선수들이랑 잘 어울리고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충남대 배구는 선후배 사이가 좋고 운동할 때도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줘요. 배구를 재밌게 해요. 항상 좋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하고 있습니다(웃음).”
자신을 응원하는 고마운 분들도 처음으로 직접 마주했다. 김진영은 “많은 분을 만났어요. 그중에경기 끝나고 꽃을 선물해준 분이 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꽃 선물을 받았어요. 처음 받아 봐서 좋으면서 엄청 신기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고 웃었다.
작년만큼 하자, 김진영의 신년 목표
김진영이 세운 2023년 목표다. 그는 “1학년 때 생각보다 너무 잘 된 것 같아 부담이 있지만 기대돼요. 지금보다 몸을 더 키워서 블로킹도 지금처럼 잡고, 속공 성공률도 올리고 싶어요. 얼마 전에 감독님이 만다라트 과제를 내줬어요. 거기에 2023년엔 전국체전 뺀 대회에서 ‘4강에 꼭 들기’라고 적어놨어요. 또 코트 안에서 밝게 배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소망했다.
더 큰 목표도 들려줬다. 그는 “프로를 가는 게 목표예요. 코트에 들어가게 되면 누구에게나 믿음이 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건데, 프로에 가서 열심히 해서 돈을 벌면 지금까지 도와주신 가족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께 다 베풀고 싶어요”라고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가 얼마나 배구에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론 배구선수가 아닌 김진영의 이야기를 부탁했다. “예의 바르고, 거만하지 않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낯을 많이 가리지만 관심을 주면 혼자 속으로 많이 좋아해요(웃음). 관심을 통해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더 좋아해 주세요.”
글_김하림 기자
사진_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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