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한 기록 만든 손, 김다인은 어떤 세터인가
- 매거진 / 스파이크 / 2022-04-01 12:00:37
한 시즌 동안 ‘역대 최초’ 개막 12연승 후 1패, 다시 여자 프로배구 역대 최다 연승인 15연승을 질주했다. 현대건설이 역대급 최강팀의 면모를 드러냈다. 리그 조기종료와 함께 현대건설은 그대로 정규리그 1위 팀이 됐다. 전무후무한 기록과 함께 새 역사를 쓴 현대건설이다. 그 중심에는 세터 김다인이 있었다.(모든 기록은 3월 19일 기준)
김다인은 누구인가
김다인은 1998년생 172cm 세터다. 추계초-세화여중-포항여고를 거쳐 2017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 지명을 받았다.
당시 전체 1순위는 한수진(GS칼텍스)이었고, 세터 포지션으로는 이원정(GS칼텍스)과 이솔아가 각각 1라운드 2순위, 2라운드 1순위로 먼저 호명됐다. 현대건설의 선택은 김다인이었다. 김다인은 주로 윙스파이커 역할을 맡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세터의 길로 접어들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김다인은 2017-2018시즌부터 3시즌 동안 6경기 12세트 출전에 그쳤다.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며 마음고생을 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세터 이다영을 주전 멤버로 기용했다. 2018-2019시즌에는 출전 기회가 아예 없었다. 김다인은 3시즌 동안 경기를 거의 출전하지 못하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과연 자신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했다.
그럼에도 김다인은 그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버티고 또 버텼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기다리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준비를 했다.
결국 김다인은 바로 2019년 순천에서 열린 KOVO컵 대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9년을 ‘기회의 해’로 만든 김다인
2019년 당시 이다영이 대표팀에 발탁이 되면서 공백이 생겼다. 현대건설은 자연스레 김다인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늘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2019년 KOVO컵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김다인은 라이징스타상을 받기도 했다. 그 해 김다인은 “꿈만 같았다. 돌아보면 기적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라며 스스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기부여는 확실했다. 기다리던 기회도 찾아왔다. 이다영이 2020년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김다인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2020-2021시즌 V-리그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격했고, 당시 현대건설은 GS칼텍스를 꺾고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계속해서 출전 기회를 얻으며 ‘코트 위 사령관’이 된 김다인은 “기회가 조금씩 오니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했다”고도 했다.
그렇게 김다인은 지난 시즌 전 경기를 출전하며 어려운 시간들을 굳건히 버텨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지난 시즌 중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 시 자신의 세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한 경기력으로 인해 팀의 성적이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좌절하기도 했다. 또 승리했을 때 기뻐하기도 했지만 실패한 경기를 통해 많이 고민하기도 했다. 그 고민들이 더 좋은 경기 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김다인의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의 세트를 살펴보면 모든 부분에서 성공률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분포를 보면 공격수들을 고루 활용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2020-2021시즌만 해도 김다인은 또래 동료들인 정지윤, 이다현 등과 야간 훈련까지 하며 호흡 맞추기에 열을 올렸다. 그 믿음은 끈끈했다. 실전 무대에서도 이들의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1년 뒤에는 모든 공격 자원들을 믿고 공을 올려주고 있다. 1년 사이에 또 달라진 김다인이다.
현대건설을 상대하는 팀은 허를 내두른다.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윙스파이커 한 명을 막으면 정지윤이 있다. 미들블로커를 흔들면 외국인 선수가 터지고, 외국인 선수를 흔들면 미들블로커가 터진다. 한 두명만 막아서는 안 되는 팀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21년에는 색다른 경험도 했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 라바리니 감독 부임 후 첫 대표팀 승선이었다. 도쿄올림픽 무대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경험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라바리니 감독은 김다인에 대해 “김다인은 익숙한 플레이가 아닌 조금 더 색다른 플레이를 한다. 반격 상황에서 미들블로커를 활용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걸 높게 평가한다”고 평을 내린 바 있다.
김다인의 가장 큰 장점
김다인의 장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대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속공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선수와의 호흡을 맞추는 것에 있어 고민도 많이 하고, 그 선수와 호흡을 맞추려 노력하고 믿음을 갖게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선수간의 신뢰가 속공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공격수들의 장단점과 좋아하는 스타일의 구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호흡을 맞출 때 공격수들의 표정과 말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눈썰미와 좋은 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세트를 결정하는 상황이 뻔하지 않다. 또 김다인의 장점은 빠른 발이다. 어떻게 보면 약해 보이기도 하고, 대담하지 못해 보이기도 하지만 경기에서의 김다인은 누구보다 대담하고 잘 긴장하지 않는 선수다.
또한 지도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빠르게 인지한다. 세터와 감독 간에는 서로가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독이 원하는 팀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다. 경기 중 빠르게 펼쳐지는 상황마다 지시를 내릴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경기를 진행하는 중에는 훈련한대로 경기를 이끌고, 그 외 상황에서는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빠르게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세터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세터를 코트 위의 지휘자라고 부른다.
노력하고 집중하는 것은 프로 스포츠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당장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과 기회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노력했느냐와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의 노력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김다인이 보여주고 있다.
글. 이도희 칼럼니스트
사진.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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