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요즘 V-리그 세터들의 기량과 다가오는 아시아쿼터 태풍
- 여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3-01-16 08:12:55
박미희 KBSN 해설위원의 직설화법이 화제다.
8년간 흥국생명의 사령탑으로 쌓아온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예리한 해설을 한다. 덕분에 시청자와 배구 팬의 관심이 크다. 그는 경기 도중에 잘못된 플레이가 나오면, 그냥 넘기지 않는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날카로운 지적에 많은 이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그의 사이다 같은 발언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최근 여자배구의 전체적인 기량이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가운데 박 위원은 “팬들이 너무 관대하다”며 선수들에게 인기 거품에 취하지 말라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그가 해설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대목은 세터의 부정확한 연결이다. 누구도 용감하게 얘기하지 않았던 부분을 냉정하게 짚어주고 있다. 사실 지금 V-리그는 세터 난을 겪고 있다. 모든 팀이 마음에 드는 세터를 찾고 있지만,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현역 세터들은 은퇴한 선배들보다 기량이 떨어진다. 이미 국제대회에서 불편한 진실이 확인됐다. 세터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공격수가 제대로 때릴 수 있게 정확하게 올려주는 일이 박수를 받을 지경이다. 박 해설위원은 어느 팀의 세터가 득점 뒤 기뻐하자 “지금 득점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며 연결의 부정확을 꼬집었다. 그는 또 어느 팀 외국인 선수의 득점 뒤 “세터의 패스보다 리베로의 2단 연결이 더 정확하다”며 한탄했다.
해설위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세터를 향한 사령탑의 불만은 방송 화면에 자주 노출된다.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이 타임아웃 때 지적하는 내용 대부분은 세터의 연결에 관한 것이다. 다른 팀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도 경기의 흐름과 반대로 가는 패스와 속공을 자신 있게 구사하지 못하는 세터 탓에 고민이 많다. KGC인삼공사 고희진 감독도 황당한 연결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흥국생명은 공격수의 기량을 살려주지 못하는 세터의 연결로 시즌 내내 고민하다 결국 3라운드에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배구는 세터의 역량에 따라 경기 내용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다.
아쉽게도 지금 V-리그는 세터의 플레이가 팬들의 눈높이와 감독의 기대, 공격수들의 기량을 따라주지 못한다. 그래서 공격수들은 걸핏하면 넘어진다. 또 다양한 공격 대신에 외국인 선수에게 모든 것을 기대는 ‘올려놓고 치기’ 배구가 반복되고 있다. 배구를 보는 재미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다. 물론 세터들도 할 말은 있다. 몇몇 고액 연봉 공격수들은 눈에 띄게 세터를 가린다. 저연봉 어린 세터들의 좋지 않은 공도 때려낼 기량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힘없는 공격만 하고 있다. 어떤 공이라도 군소리 없이 때리는 외국인 선수의 자세와 크게 비교된다. 돈값도 못 하면서 세터 핑계만 대려는 이들도 당연히 비난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모든 팀이 세터를 찾지만, 공급은 부족하다. 그래서 2023년 4월로 예정된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 때 세터를 보강하려는 팀도 있다. 그동안은 언어 소통의 문제로 외국인 세터의 효능에 의문을 가졌지만,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현재까지 파악된 명단에 따르면 태국 국가대표팀의 폰푼을 비롯해 대만 대표팀의 주전 세터와 일본 V-리그 2부 팀의 몇몇 세터가 도전할 전망이다. 연봉 1억 원이 넘지 않는 이들이 지금 각 팀의 주전 세터들보다 더 빼어난 기량을 보여준다면 토종 세터들은 아시아쿼터의 무서움을 실감할 것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일단 계약 방식이 큰 걸림돌이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구단과 1년 단기계약을 맺는다. 해마다 추첨으로 선수를 뽑아야 하기에 다음 시즌에도 함께한다는 보장이 없다. 한 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다른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와는 다르다. 이런 방식이라면 세터를 쉽게 뽑기 힘들다. 세터는 팀의 플레이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야구로 치면 포수다. 포수처럼 세터도 특수 포지션이어서 쉽게 바꿀 수는 없다. 게다가 언어의 벽도 존재한다. 많은 일본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지만, 포수는 드문 이유다. 그렇더라도 기존의 세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팀에서 누군가는 용감하게 도전할 것이다. 일단 성공사례가 한 번이라도 나오면 그때부터는 전혀 다른 판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V-리그 세터들은 무엇이 문제고 왜 그런 플레이를 할까. 세터 출신의 이도희 전 현대건설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일단 가장 먼저 세트 부문 1위이자 팀도 선두인 현대건설 김다인의 장점부터 물었다. 김다인은 2022~2023시즌이 주전으로 뛰는 3번째 시즌이다. 지난 시즌 팀을 1위로 이끌며 처음으로 베스트 7에 뽑혔다. 이 감독은 김다인의 장점으로 “편차가 없다”고 했다. 특히 패스 높이에 변화가 없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 능력을 갖춰야 공격수들이 때리기 편하다. 게다가 훈련과 경기 때의 기량에 차이가 없고 훈련보다는 실전 때 더 잘하는 편이라고도 했다. 이도희 감독이 함께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들어 했고 눈여겨봤던 재능이다.
이도희 감독은 “훈련 때 많이 혼나고 눈물을 글썽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했다”면서 좋았던 기억을 얘기했다. 김다인은 겉으로 드러난 약한 몸과는 달리 내면에 강단도 있다. 세터에게 꼭 필요한 성깔, 줏대도 있다. 세터는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나가는 역할이다. 여러 사람의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특히 연차가 어린 세터가 선배 공격수 언니들의 눈치를 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어느 팀에서 지금 그런 현상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세터는 타고난 기질이 중요하다.
이번 시즌 팬들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세터는 흥국생명의 김다솔이다.
세트 부문 2위다. V-리그 8번째 시즌으로 연차는 상당하지만, 팀을 이끌어 가는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러 가지로 시행착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의 패스를 소화해야 할 김연경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다솔을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우승은 세터가 만든다. 흥국생명은 우승을 위해서 반드시 현대건설, 상대 세터 김다인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김다솔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노력했고 3라운드 막판 GS칼텍스에서 이원정도 영입했다. 삼성화재 시절 동료였던 인연을 바탕으로 권순찬 전 감독이 차상현 감독에게 부탁해서 성사시킨 트레이드다. 봄 배구에서 만날 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그 트레이드의 결과가 궁금하다.
김연경과 함께 뛰는 세터는 최고의 공격수와 함께여서 좋지만, 반대로 부담감도 커진다. 좋은 공을 줘야 하고 반드시 득점이 나와야 한다는 대중의 시선과 요구를 이겨내야 한다. 세터는 미묘한 포지션이다. 누구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 되려 연결이 부정확해진다. 이도희 감독도 “현역 시절 장윤희에게 공을 잘 주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세터에게는 어떤 타이밍에 공이 손아귀에 들어오느냐가 중요하다. 그 작은 차이로 패스의 정확도가 천차만별이 된다. 그동안 김다솔은 김연경보다는 외국인 선수 옐레나를 더 자주 찾았다. 세터와 공격수는 서로를 아는 시행착오의 시간이 쌓여야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기는데 김연경과 김다솔은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이는 시간이 해결할 일이다. 다만 세터는 본능적으로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더 마음이 편한 곳으로 패스할 수밖에 없다.
KGC인삼공사의 염혜선은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의 주전 세터로 뛰고 있다. 그는 대표팀을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슬럼프로 고생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은 체력 문제다. 힘든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고 오면 다음 시즌을 위한 체력을 다질 시간도 없이 새 시즌을 맞아야 했다. 철인이 아닌 이상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대표팀과 현재 소속팀 선수의 공력 능력과 원하는 패스 스피드, 타점이 모두 다르다 보니 적응할 시간도 필요했다. 세터와 공격수는 서로를 알아가고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염혜선에게 기다림이 필요한 이유다.
염혜선은 도쿄올림픽 4강 팀의 주전 세터인데 시즌 초반 중요한 순간에 루키 선수에게 자리를 내주고 웜업존에 있었다. 모두가 걱정했다. 국제대회를 여러 번 치른 대표팀의 주전 세터라면 국내 팀과의 경기 때는 쉽게 블로킹을 따돌릴 수 있다. 외국의 장신 미들 블로커들을 상대로 싸웠던 경험과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그런 기량을 만들어준다. 아쉽게도 염혜선은 한동안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유를 찾았다. 박미희 해설위원은 잘할 때와 못할 때의 편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보통 세터가 서른 살이 넘어가면 쌓인 연륜과 경험 덕분에 모든 것이 무르익고 신뢰감을 주는 플레이를 하는데 염혜선은 그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염혜선은 올해로 16시즌째다. 파리올림픽 최종예선전도 그가 이끌어야 한다.
이도희 감독은 김다인이 처음 KOVO컵에서 주전으로 뛸 때를 기억했다. 당시 김다인은 라이트 쪽으로 공을 주면 충분히 득점이 날 상황에서도 계속 어렵게 반대편을 선택했다. 이도희 감독은 이유를 물었다. 김다인은 “뒤로 패스하면 공이 빠질까 봐”라고 털어놓았다. 두려움은 세터의 적이다. 실패를 무서워하면 패스의 스피드와 정확성이 떨어진다. 요즘 많은 세터에게서 그런 증세가 보인다. 그래서 세터는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때까지 경험이 필요하다. 성장하기까지 모두가 참고 기다려줘야 한다.
현역 시절 패스가 정확했고 배구IQ가 높기로 소문났던 박미희 해설위원이나 이도희 감독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기본기다. 일단은 세터들이 공의 밑을 찾아 들어가서 올려주는 능력에서 아쉬움을 많이 얘기한다. 공의 정점을 찾아 들어가 중심을 잡고 패스해야 정확성이 살고 스피드도 생기는데 지금 V-리그의 많은 세터가 이것을 못 한다. 당연히 정확성은 떨어지고 경기가 산만하게 보이는 이유다.
세터는 공의 정점을 예측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도희 감독은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중 리시브나 수비에서 올라온 공이 공중에서 멈추는 찰나가 있다. 이를 포착해서 정점의 순간에 패스해야 연결이 정확해지고 공에 힘이 실린다. 이런 공은 공격수가 쉽게 때릴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능력을 위해서 필요한 기본기가 스텝이다. 스텝을 잘 밟아서 나만의 타이밍에 공을 올려주면, 공격수들도 그것에 맞춰 각자의 리듬대로 때릴 수 있다. 반대로 세터의 스텝이 들쭉날쭉해서 정확한 패스 정점과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 공격수들도 우왕좌왕한다. 요즘 V-리그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이다. 페퍼저축은행의 이고은은 이 대목에서 아쉽다. 몸이 빠르고 패스에 힘도 있는데 정점을 만들지 못하고 거의 날아다니며 패스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정확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세터는 코트의 야전사령관이다. 공격수가 때리기 편한 높낮이와 감독이 원하는 패스 스피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볼 끝이 흔들리면 팀 전체의 플레이가 헝클어진다. 배구가 감독의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세터가 정확히 원하는 곳에 공을 일단 보내야 한다. 그 기본을 해줘야 다양한 공격 패턴과 팬들이 원하는 화려한 장면도 나온다. 지금 V-리그 여자부는 이 부분을 꿈도 못 꾼다. 안타깝지만 이는 몇몇 선수들의 팬덤으로도 가려질 수 없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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