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황금 알을 낳는 거위? KOVO컵 개최지 결정의 이면
- 여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2-12-26 07:46:17
12월 19일 한국배구연맹(KOVO)은 제19기 제2차 이사회를 개최했다. 결정 사항은 3개였다.
우선 내년 1월 29일로 예정된 올스타전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기로 의결했다. 다음 시즌 일정도 확정했다. 이에 따라 2023~2024시즌 V-리그는 2023년 10월 14일부터 2024년 4월 6일까지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2023년 KOVO컵은 구미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이사회의 결정으로 구미 시민들은 6년 만에 V-리그 경기를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구미 박정희 체육관에서는 아직 한 번도 V-리그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았다. 구미는 2012~2013시즌 GS칼텍스, V-리그 원년인 2005년부터 2016~2017시즌까지 LIG손해보험(KB손해보험)의 오랜 연고지였다. GS칼텍스는 장충체육관의 수리로 홈구장이 없어 임시로 사용했다. KB손해보험은 2017년 3월 10일 한국전력과의 경기를 마치고 의정부로 프랜차이즈를 옮겼다.
V-리그 출범 다음 해부터 열렸던 KOVO컵은 그동안 양산(2006년), 마산(2007년), 양산(2008년), 부산(2009년), 수원(2010~2012년), 안산(2013~2014년), 청주(2015~2016년), 천안(2017년), 보령/제천(2018년), 순천(2019년), 제천(2020년), 의정부(2021년), 순천(2022년)에서 개최됐다. 역대 개최장소에서 드러나듯 한국배구연맹(KOVO) 출범 초창기에는 김혁규 초대 총재의 정치적 연고지인 경상남도에서 주로 대회가 열렸다.
2010년부터 수원이 3년 연속, 안산과 청주가 각각 2년 연속 대회를 유치했다. 수원은 프로야구 10번째 구단 유치 경쟁에 뛰어들면서 국내 4대 프로 스포츠팀을 모두 보유한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염태영 당시 시장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3년 연속 대회를 유치했다.
안산은 남자부 제7구단 러시앤캐시(OK금융그룹)가 새로 터를 잡으면서 지역 배구 팬들에게 배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2년 연속 대회를 유치했다. 2021년 의정부 대회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KB손해보험의 새 연고지 정착을 돕겠다는 뜻이 있었다.
이처럼 컵대회 개최지는 KOVO의 정치적 판단과 개최를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결합해 주로 결정됐다. 하지만 2023년 KOVO컵 대회의 개최지 결정은 이전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일단 개최지가 확정되지 않았다. 대회를 유치하려고 나선 여러 도시 가운데 구미가 우선 협상 지역으로만 선정됐다. 관례 대로라면 우선 협상 지역이 곧 개최 장소를 의미하지만, 한국배구연맹과 구미시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변수가 남았다.
이번에 KOVO컵 개최를 희망해 유치에 도전한 도시는 무려 4곳이었다. 구미를 시작으로 순천, 통영, 제천이 나섰다. 광주와 청주도 대회 유치에 뛰어들려고 했지만, 경쟁이 심해지자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개최 신청 열기에 KOVO는 고심했다. 이전과는 다른 객관적이고 공정한 개최지 결정 방식을 도입할 필요성이 생겼다. 고민 끝에 평가위원회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올바른 평가를 위해 사전에 현장 실사작업도 진행했다. 올림픽과 같은 대형 국제대회의 유치장소를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출범 초창기와 비교해 눈에 띄게 올라간 컵대회의 위상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평가위원은 총 7명이었다. V-리그 주관 방송사 담당 PD 2명과 취재 기자단을 대표하는 간사 1명, 남녀구단 대표로 사무국장 2명, KOVO의 경기 운영 담당 2명 등이었다. 이들을 KOVO가 사전에 준비한 자료를 검토한 뒤 개최 장소를 평가했다. 11월 30일 열렸던 평가위원회에서 평가위원들은 ▲체육관 시설 ▲지방자치단체의 대회 유치금 규모 ▲V-리그 저변 확대를 선정의 기준으로 정했다. 이 가운데 가장 점수 비중이 큰 것은, 저변 확대였다. 이왕이면 이전에 대회가 열렸던 지역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그 지역 팬들에게 V-리그의 매력을 보여주려고 했다.
구미가 우선 협상 지역이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유치금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아마추어 대회가 자주 열리는 통영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역 배구협회의 의지가 뜨거웠다. 다만 경기장 규모와 시설이 아쉬웠다. KOVO는 V-리그가 열리는 기준이 될 경기장 규모와 어느 정도의 시설을 요구한다. 팬들에게 항상 최고의 모습만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이날 평가위원들의 개별 투표 결과는 봉인된 채 12월 19일 이사회까지 누구도 결과를 알지 못했다. 이사회에서 봉투는 열렸다. 남녀 14개 구단의 단장들은 그 결과를 놓고 최종 판단을 했다.
한때는 개최장소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던 KOVO컵에 최근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배구협회가 눈길을 돌리는 이유가 있다. 일단 높은 홍보 효과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유권자들을 만나고 방송을 통해 자신과 자치단체를 홍보할 최고의 기회다. KOVO컵의 높은 시청률과 보름간의 대회 기간 입장하는 약 3만 명의 관중이 성공적인 홍보 효과를 보장한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KOVO컵이 지역의 경제에 떨어트리는 낙수효과가 만만치 않다. 성공적인 사례는 2019년에 열렸던 순천 대회였다.
당시 순천은 지역 배구인과 자치단체가 똘똘 뭉쳐 처음으로 호남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다. 결과도 좋았다. 선수단과 팬은 물론이고 많은 배구관계자로부터 칭찬이 이어졌다. 순천이 누린 이익도 대단했다. 3만 명의 관중이 입장할 경우, 24억 원의 경제효과가 생긴다고 시 관계자는 추산했는데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대회 기간 남녀 선수단이 머무르면서 쓰는 비용과 대회진행을 위해 투입된 심판, 취재진, 방송사 관계자, 이벤트 회사, KOVO 임직원, 원정 관중들이 순천에서 쓴 돈이 만들어 낸 효과다. 가외의 수익도 있었다. 대회진행을 도왔던 순천배구협회는 입장 수입 가운데 무려 9000만원을 받았다.
이 같은 성공에 자극받은 순천시는 2022년에도 또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대회 유치금으로 4억5000만 원을 투자했다. KOVO도 매칭 시스템에 따라 같은 액수를 내놓아 9억 원으로 대회를 치렀다. 김연경이 복귀한 여자부에서 흥행 돌풍이 이뤄지면서 대회는 대성공을 거뒀다. 경제 유발 효과는 24억 원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순천배구협회는 입장 수입에서 무려 1억4000만 원을 배당받았다. 흥국생명-IBK기업은행의 여자부 개막 경기를 포함해 많은 경기는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중이 모였다. 다른 지역에서 온 팬도 많았다. 컵대회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했던 노관규 순천시장은 “내년 대회도 꼭 유치하라”고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
202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는 순천으로서는 KOVO컵을 보려고 몰려드는 원정 관중이 순천만의 아름다운 정원까지 찾아준다면 더욱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 봤다. 순천은 선수들과 관중들의 건강을 위해 1억 원이 넘는 최신식 공기 정화기를 순천 팔마체육관에 설치하겠다는 매력적인 제안도 했다. 아쉽게도 저변 확대와 이번 만큼은 새로운 곳에서 대회를 열겠다는 명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처럼 황금을 낳는 거위로 확인된 KOVO컵 유치를 위해 앞으로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배구 협회가 총력전을 기울이는 일을 자주 볼 것 같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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