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기록, 나아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김정아 전력분석관을 만나다
- 매거진 / 서영욱 / 2020-05-04 21:35:00
김정아 KBSN스포츠 전력분석관은 3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었다. 그는 오랜 세월 배구 기록과 전력분석계에 몸담은 국내 기록계의 산증인이다. 현재 한국배구연맹(KOVO)이 활용하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KOVIS)도 김정아 분석관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다른 종목과 비교해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배구 전력분석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3월 중순 김정아 분석관을 경기도 안양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일찍이 발 담근 전력분석의 세계
Q__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KBSN스포츠 배구 중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준비하고요, SPOTV에서도 방송 자료를 준비합니다. 대학배구연맹에서도 일하면서 전력분석을 꿈꾸는 학생들도 가르치는 김정아라고 합니다.
Q__전력분석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배구 선수를 시작했다가 프로 진출을 앞두고 부상으로 그만뒀어요. 선수 생활을 그만두자마자 기록을 시작했어요. 당시에 대한민국배구협회(이하 협회)에서 수기로 기록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인원을 뽑는다고 해서 22살에 지원했고 그때부터 시작했죠. 그러고 23살 때 협회에 들어가서 14년간 기록 관련 일을 했죠. 아는 선배 언니가 기록 쪽 일을 하고 있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 언니가 같이하자고 해서 시작했죠.
Q__수기로 기록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기록할 때 한 명은 부르고 한 명이 써요. 보통 연차가 있는 언니가 부르고 막 들어간 사람들이 쓰죠. 부르는 사람이 오픈, 퀵오픈, 속공 이런 식으로 부르면 적는 사람이 해당 기록란에 ‘바를 正’자로 기입하는 식이죠. 경기가 끝나고 기록을 맞출 때, 예를 들면 공격이 블로킹 차단된 개수와 블로킹 수가 맞아야 하잖아요.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수가 안 맞을 때 선생님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블로킹이나 서브 에이스를 하나 더 넣는 식으로 해서 개수를 맞출 때가 있었어요.

Q__지금처럼 디지털화된 기록 분석은 언제부터 이뤄졌나요.
제가 기록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요.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활용했어요. 당시에 수기로 기록하면 컴퓨터를 배운 학생이 와서 프로그램에 수치를 입력했죠. 저를 비롯한 기록원이 수기로 작성한 걸 보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기록지가 나오지 않았어요. 최종 기록지는 경기가 모두 끝나고 인터뷰까지 진행된 이후에 10~20분 정도 지나면 기자실에 비치됐죠.
이후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고 저랑 후배, 차금지 실장(현 주식회사 딤 기획팀 실장)님이 함께 새로운 기록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처음에는 두 명이 부르고 한 명이 기입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고 하고 저도 반신반의했죠.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의 체계까지 왔습니다.
배구 전력분석이란 무엇인가?
Q__스포츠를 보는 사람들에게 ‘전력분석’은 익숙한 단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모르는 분도 많습니다. 한 경기를 전력분석한다고 했을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예전에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 경기를 두고 전력분석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해외 사례를 보면 절대 한 경기만 가지고 하지 않죠. 여러 경기를 보면서 로우(raw)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걸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분석에 활용하죠.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경기 분석에 필요한 자료를 뽑아서 쓰신다고 보면 됩니다.
V-리그는 KOVIS라는 자체 프로그램을 구축해 활용하고 대학연맹에서는 데이터 발리(DATA VOLLEY)를 사용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대부분 데이터 발리를 활용해요. 미국도 데이터 발리를 쓰다가 최근에는 ‘허들(hudl)’로 바꾸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 허들 프로그램을 담당하시는 분과 만나봤어요. 현재 라바리니 감독 사단이 그걸 사용하더라고요. AI가 경기에서 드러나는 로우 데이터를 모두 기록해주는 식이었어요. 전력분석까지 해주는 건 아니었지만 좋았던 점은 세계 각지의 수많은 경기 영상이 들어가있다는 점이었어요. 캐나다, 미국의 13세이하 유소년 경기 영상까지 다 있더라고요. 그게 정말 놀랍고 좋았어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영상이 너무 많았어요. 이걸 활용하면 프로팀들이 외국인 선수 수급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연맹에서도 여름 대회 때 활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Q__그렇다면 어느 정도 기록까지 기입되고 활용 가능한가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기록을 원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특정 기록을 이야기하면 그에 관해 답변해드릴 수 있는 정도죠. 쉽게 말해서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웬만한 기록은 모두 들어갑니다. 로우 데이터만 갖춰진다면 웬만한 기록은 가공해서 전력분석에 활용하고 또 알려드릴 수 있는 셈이죠.
이와 관련해서 우리카드 김재현 수석코치와 한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김 코치가 이야기하기를, 데이터를 모을 때 여러 사람이 투입되면 통일된 데이터를 모을 수 없다고 한 적이 있죠.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 다르니까요. 대학이나 프로 경기에서 제가 모든 경기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를 도와주는 학생들이 기록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 시스템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죠.
Q__올 시즌 전력분석한 내용 중 ‘이 정도로 세밀한 내용까지 했다’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올 시즌 OK저축은행 경기를 보면서 출발은 좋은데 중반으로 갈수록 처지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데이터로 찾아본 적이 있어요. 0~8점까지는 공격 성공률이 좋은 데 이후 20점까지는 기록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20점 이후 다시 올라오지만 이미 점수차가 벌어진 경우가 많았고요. 그걸 분석해서 중계에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Q__이번에 라바리니 감독의 경기 준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전력분석관까지 모두 대동해서 올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기존 국내 전력분석과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가장 큰 차이는 코칭스태프간 미팅 횟수예요. 라바리니 감독은 미팅을 정말 많이 해요. 이전에 여자대표팀을 맡은 감독님들은 그 정도로 미팅을 하진 않으셨어요. 김호철 감독님이나 신치용 감독님은 미팅을 많이 하신 편이었죠.
Q__전력분석에서 세부적인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단계 자체가 달랐던 거군요.
그렇죠. 우선 스태프끼리 논의해야 그 내용이 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전달되는데 이전 대표팀은 그게 잘 안 됐어요. 라바리니 감독은 수석코치부터 전력분석관까지 모두 데려오면서 미팅도 많이 하고 논의를 많이 하면서 선수들에게 전달했던 거죠.
“대표팀을 위한 데이터 정리, 꼭 필요합니다”
Q__전력분석의 기본은 로우 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라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대표팀 전력분석도 하는 입장에서, 외국팀 자료는 어떻게 구하고 준비하시나요.
사실 가장 속상한 점 중에 하나예요. 해외 대회를 나갈 때 상대 팀 데이터를 구하고 활용해야 하는데 협회 자료를 활용하지 못해요. 실제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영상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 영상을 보고 기록을 입력해서 데이터화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죠.

Q__대학 기록도 담당하시는 만큼, 아마추어 기록에 관한 생각도 많으실 듯한데요.
저는 아마추어도 아마추어지만 우선 주니어 대표팀 기록부터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아시아 무대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단계잖아요. 세계대회로 가기 위해 아시아에 주어지는 티켓도 두 장뿐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대회를 준비하고 상대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력분석을 위한 데이터가 필요해요. 우리도 그렇지만 대부분 유스대표팀부터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성인대표팀에 올라오니까요. 일본이나 이탈리아는 데이터 발리 라이드(Lite) 버전을 활용해서 필요한 기록은 입력하고 활용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도 안 되고 있죠.
Q__아마추어 대회 기록도 중요하지만 주니어 대표팀부터 기록 정리가 시급하다는 거군요.
그렇죠. 일본은 여자 고등부 기록을 뽑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걸 활용해서 미국이나 캐나다 2년제 대학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가서 눈에 띄는 선수는 마저 공부하기도 하고 NCAA에서 뛰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아마추어 선수는 프로에 가지 않으면 이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증명할 수단이 없어요. 기록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좀 더 다양한 길을 열어주는 것도 제한되죠.
그리고 아마추어 무대도 최소한 남녀 고등부와 남자 대학부는 기록이 확실히 갖춰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뭔가 종목에 비전이 있어야 학부모들도 운동을 시키는 맛이 나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아마추어 선수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경우가 생긴다면, 좀 더 배구를 하려는 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전력분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Q__대학배구연맹에서 실제로 많은 학생과 함께 기록 관련 업무를 하십니다. 모든 선수가 프로에 가는 건 아닌 만큼, 전력분석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시나요.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단순 전력분석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거예요. 영어를 잘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거나, 그런 식으로 다른 특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혹은 외국 경기를 많이 봐서 선수 이름만 대면 어떤 선수인지 알 정도로 준비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겠죠. 그 정도로 특출난 장점이 있어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대신 스카우트를 할 사람은 많거든요. 실제로 AI가 로우 데이터를 모으는 허들은 사실상 스카우트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경기 영상을 주면 12시간 안에 로우 데이터를 만들어서 주니까요. 그런 환경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특기가 있어야죠.
그래도 다행인 건 김재현 코치나 현대캐피탈 진순기 코치는 전력분석 쪽에서 후배를 양성하고픈 마음이 있어요. 저와 같이 일하는 대학생들을 불러서 어느 정도까지 입력하는지 물어보고 기초를 잡아주는 거죠.
Q__미리 차별화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그리고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 중 하나는, 남학생들은 대학을 다니고 군대에 가야 하잖아요. 군대 다녀와서 전력분석을 다시 해야 하는데 제대로 배운 게 아니에요. 그저 형들이 하는 걸 옆에서 보고 넘겨준 기록지를 바탕으로 따라가는 거지, 뭘 해야 하고 뭘 하는 건지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전력분석에 있어 발전 폭이 크지 않다는 게 아쉬운 점입니다.
Q__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하실 텐데, 앞으로 하고 싶은 바가 있으시다면.
이전에는 올림픽에 가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요. 지금은 대표팀을 위해서 대표팀 관련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사실 지금의 배구협회가 그렇게 열린 곳은 아니잖아요. 좋은 뜻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실행하기에는 어려워요. 그래서 지금 같이 일하는 아이들과 함께 데이터를 모으고 준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싶어요.
김정아 전력분석관
생년월일 1972년 4월 23일
출신교 명성여고-한양여자전문대
주요경력
1992.12~2005.03 대한민국배구협회 슈퍼리그 기록 담당
1994.10~2007.07 대한민국배구협회 근무
1994.10~ 대한민국배구협회 국제대회 VIS
(volleyball information system) 담당
2018~ 대학배구 기록 관련 업무
2015~ KBSN스포츠 중계 관련 업무
2019.2~ W.DataVolley Stat 사업자 설립
글/ 서영욱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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