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카드 윤봉우가 말하는 ‘배구인생’과 ‘나의 가족’
- 매거진 / 이정원 / 2019-08-27 21:19:00
우리카드 미들블로커 윤봉우는 현역 선수 통산 최다 블로킹 기록을 갖고 있다. 2005년 프로입단이후 쌓아올린 블로킹이 897개다. ‘마운틴 블로커’란 영예를 얻었다. 이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선규(1,056개)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배구코트에서 윤봉우라는 이름 석 자가 주는 무게감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그는 2005~2006, 2006~2007시즌 현대캐피탈의 2년 연속 챔피언 주역이다. 지난 시즌에는 우리카드를 창단 후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려놓는데도 한 몫 했다.
윤봉우도 이제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올해 나이 38세, 선수 생활 지속과 은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하는 나이가 되었다. <더스파이크>는 7월, 인천 송림 체육관을 찾아 윤봉우의 배구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비시즌 근황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접할 수 없었던 아내와의 연애사까지. 윤봉우가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 속으로 들어가보자.
많은 일이 있었던 비시즌?! “선규가 은퇴할 줄 몰랐어요”
비시즌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먼저 우리카드와 한 시즌 더 함께 하기로 계약했다. 친구 이선규의 은퇴 소식도 들었다. 이선규와는
현대캐피탈 시절 ‘쌍벽’을 이뤘기에 은퇴 얘기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윤봉우가 말하는 근황과 이선규와 함께 했던 현대캐피탈 시절
숨겨진 뒷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Q__안녕하세요. 시즌 끝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일단 시즌 끝나고 푹 쉬었어요. 팀 훈련은 5월부터 시작했고요. 체력운동이랑 볼 운동이랑 병행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둔 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Q__비시즌 동안 가족들과 휴가는 다녀왔나요.
될
수 있으면 가족끼리 일 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가려고 해요. 둘째가 갓 태어났을 때 빼고는 매년 가족끼리 여행을 갔다 온 거
같네요. 이번에는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을 일주일 정도 다녀왔어요.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수영장이나
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Q__여름에 체력 보충이 필요하죠. 비시즌 동안 주로 무엇을 많이 먹나요.
비시즌
동안 잘 먹고 푹 쉬어 그런지 살이 쪘더라고요. 아이 있는 아빠 선수들은 알겠지만 밖에서 외식을 잘 안 하게 돼요. 저도 집에서
밥을 많이 먹죠.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아내의 음식 솜씨가 결혼 초반에 비해 많이 늘었어요. 특히 일본 한정식을 잘 해요.
아내기 해주는 음식을 매일 먹다 보니 팀 훈련 참여하기 전에 몸무게가 94kg 정도 나왔어요. 그래도 지금은 열심히 운동을 해서 88kg까지 빼는데 성공했죠.
Q__쉬는 날에는 보통 무엇을 하며 지내요.
쉬는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이번에는 아이들과 박물관도 가고, 영화도 봤어요. 또 아이들이 장난감을 좋아해서
키즈카페도 많이 갔어요. 팀 훈련 후 퇴근하고 나서도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려고 했어요. 보통 훈련 후에 사우나를 많이 가는 편인데
아이들이랑 같이 가죠.
Q__이번 시즌도 팀 내 최고참입니다. 윤봉우 선수보다 나이 많은 선수 찾는 것이 더 쉬운 거 같아요.
이제는
부담감이 크죠. 나이를 먹은 만큼, 또 실력 발휘를 해야 하는 만큼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와요. 그런 것을 떨치고 편하게 하려고
해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에 부담 아닌 부담이 계속 와요. 특히 팀이 패배하거나 연패에 빠질 때 가장 큰
부담감을 느껴요. 괜히 제 탓 같더라고요. 오히려 그럴 때 분위기를 최대한 잡는 게 제 역할이죠.
Q__이선규 선수의 은퇴로 현역 선수중 블로킹 1위가 윤봉우 선수인데요. 이제는 통산 1위를 향해 달릴 시점이 온 거 같은데요.
1,000개 욕심을 가지다 보면 화를 부를 수도 있어요. 저는 안 다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전에 심한 부상을 당해서 그런지 다치지 않고 경기를 뛰는 게 가장 좋아요. 안 다치면 더 잘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__혹시 블로킹 이외에 가장 애착이 가는 다른 기록이 있나요.
제가
현대캐피탈에서 뛸 때 한 경기에 블로킹 11개를 성공했던 게 가장 기억이 남아요(윤봉우는 2009년 11월 3일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V-리그 역대 한 경기 개인 최다인 11개의 블로킹을 성공했다). 경기할 때는 전혀 몰랐어요. 경기 끝나고 기록지 보고
알았죠. 제 기억으로 5세트까지인가 간 걸로 기억해요. 그날은 정말 다 막은 거 같아요.
Q__배구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체육 선생님께서 배구를 권하셨어요. 그렇게 되면서 배구부가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죠.
Q__그럼 키도 선천적으로 컸던 건가요.
어릴
때부터 컸어요. 배구 처음 시작하던 당시에 키가 186cm였어요. 사실 의문이었어요. 부모님께서 큰 키를 가지신 분들이
아니거든요. 아버지는 177cm, 어머니는 163cm이에요. 그런데 저만 유독 키가 크더라고요.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외가 쪽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키가 큰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Q__아무래도 윤봉우 선수의 전성기를 뽑으라면 많은 이들이 이선규 선수와 ‘쌍벽’을 이루던 현대캐피탈 시절을 떠올리는데요. 현대캐피탈에서 뛰던 시절은 어땠나요.
그때는
그때가 행복한지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항상 열심히 해야 됐고, 일 년을 배구만 하고 살았어요. 시즌 끝나면 대표팀 가고,
대표팀 경기 끝나면 다시 소속팀 가는 게 매년 반복됐어요. 그만큼 정신도 없었고요. 그때는 마냥 어려서 그랬던 건지 행복한지 전혀
몰랐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행복했었구나’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힘들다는 것도 모르고 뛰었으니까요.
Q__지금까지 선수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경기나 가장 기뻤던 순간도 현대캐피탈 시절을 빼놓고 말할 수 없겠죠.
그렇죠.
그 중에서도 2006~2007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죠. 그때가 챔프전 두 번째 우승이었거든요. 우승 사진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진을 부모님께서 전라남도 여수 고향 집에 액자로 걸어 놓으셨어요. 그 사진이 저와
선규가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고 나온 사진인데요. 되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현대캐피탈 라인업이 정말 대단했어요. 윙스파이커에는 (송)인석이 형, (장)영기 형, 숀 루니도 있었죠. 아포짓 스파이커에는 (박)철우, (후)인정이형, 미들블로커에 저, (이)선규, (하)경민이, 세터에는 (권)영민이 형까지 정말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저와 철우(삼성화재)만 선수 생활을 하고 있네요. 진짜 시간 빠르네요.
Q__그렇게 2016년 현대캐피탈에서 플레잉코치로 뛰었고 은퇴 후에는 코치직 제안까지 받았어요. 그런 달콤한 제안을 뿌리치고 한국전력으로 팀을 옮겼는데요. 그때 그 선택을 한 이유를 들려줄 수 있나요.
솔직히
배구를 더 하고 싶었어요. 그냥 ‘배구 더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배구라는 게 하면 달라지고, 하고 나면 욕심이
생기죠. 사실 팀 옮긴다 했을 때 다들 만류했어요. 백 명 중에 백 명은 ‘좋은 제안을 뿌리치고 왜 가려고 하냐’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근데 저는 그냥 이대로 은퇴하기에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그때는 ‘선수때 느꼈던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어요.
Q__프로 두 번째 팀으로 택한 한국전력은 어땠나요.
처음
한국전력에 갔을 때는 놀랐어요. 혼자 속으로 ‘이런 분위기에서도 운동을 하는구나’라고 말했어요. 선수들이 자유분방한데 훈련
집중도가 굉장히 좋았어요. (서)재덕이, (전)광인이, (오)재성이가 누가 이끈다고 따라올 애들이 아니잖아요(웃음).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탁구공같이 통통 튀는 친구들이 있어서 더 시너지 효과가 낫고 경기에서 집중력이 좋았다고 봐요. 거기에 우리 (방)신봉이 형까지 있었으니까 신구조화도 괜찮았죠. 숙소 분위기도 정말 좋았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비시즌에 ‘우리 한 번 해볼만하겠는데 한 번 밀어보자’라고 말했어요. 그 자신감 덕분인지 그해 플레이오프도 올라갔죠. 훈련 분위기, 자신감이 알아서 올라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기장에서 성적으로 나왔던 거 같아요. 선수들끼리 허물없이 지낸 게 한국전력의 장점이었던 거 같아요.
Q__지난해 갑자기 트레이드로 우리카드로 팀을 옮겼어요. 공교롭게 신영철 감독과 재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제가 작년 10월에 왔는데 감독님께서 그해 6월쯤에 저를 데려오고 싶다고 농담식으로 말하긴 했어요. 근데 그게 현실이 됐네요. 사실 저야 그냥 고맙죠. 우리카드 때나 한국전력에 있을 때나 저를 믿어주신다는 게 그냥 고마웠어요.
가족의 응원은 배구를 계속하는 이유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윤봉우 역시 아내와 두 아들을 사랑하는 로맨틱한 남자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 사는 프로 선수들은
가정에만 온 힘을 쏟아낼 수 없다. 그래서 윤봉우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Q__자유계약선수(FA)가 되어 고민할 때 가족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아내와 아이들은 배구 선수 생활을 계속하길 원했어요. 근데 저는 몸 상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가족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응원을 해주는 걸 보면서 ‘아, 내가 배구를 더 해야 하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Q__‘프로 생활을 더 하겠다’라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아내와
두 아들은 좋아했어요. 특히 아내가 응원을 많이 해줬죠. 사실 FA 계약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아내와 두 아들만
좋아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그랬어요.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걱정했던 거 같아요. 예전에 현대캐피탈에서 나왔을 때도 다들
‘최태웅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시는데 왜 그러냐, 그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많이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최
감독님의 코치 제안을 왜 거절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웃음).
Q__아내분 만큼은 윤봉우 선수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믿음직한 아내분과는 언제 처음 만났어요.
아내는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어요. 1년 6개월 정도 연애를 하고 2011년에 결혼식을 올렸죠. ‘아내랑 결혼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계기가 예전에 제가 큰 부상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당시 아내가 교생 실습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그때 한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아내가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병문안 와서 말동무 역할을
해줬어요. 그때 느꼈죠. ‘아, 이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 되겠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도 저랑 결혼해준 게 정말
고마워요.
Q__이 기회에 아내분 자랑할 시간을 드릴게요.
물론
다른 프로 선수들도 똑같겠지만 선수라는 직업 특성상 시즌 중에는 집에 많이 들어가지 못해요. 일 년에 반 정도는 못 들어가죠.
그런데 아내는 전혀 힘들다라는 내색을 안 해요. 제가 집에 들어와도 힘든 표정, 표현 한 번 안 해요. 그런 게 매번 고마워요.
밝은 성격도 아내의 큰 장점이에요.
Q__아들은 어때요.
첫째
아들은 승우, 7살이에요. 둘째 아들은 건우, 5살이고요. 저를 보시다시피 아들들의 키도 역시 또래보다 큰 편이에요(웃음).
승우는 130cm가 넘었고, 건우는 110cm을 넘었죠. 무엇보다 둘 다 잘 뛰어 놀고 아빠를 좋아해요.
Q__만약 아들이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한다면 시킬 생각이 있나요.
사실
개인적으로 시키고 싶지는 않죠. 그런데 키가 저처럼 컸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또래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도 가끔 물어보긴 하는데 운동을 안 한다고는 하는데 제가 봤을 때는 공도 잘 만지는 편이에요. 제가 농담식으로
아내한테 ‘아들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집에 2m가 세 명일 수도 있겠다’라고 말해요. 키 큰 데 운동 안 하는 것도 이상하거든요.
그래서 본인들이 나중에라도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어요.
Q__만일 운동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떤 종목을 하면 좋겠어요.
첫째는 수영이나 탁구 같은 개인 종목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둘째는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 종목을 했으면 좋겠고요. 둘의 성격이 정반대거든요. 만일 배구를 한다고 해도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Q__배구장에 가족분들은 자주 오나요.
애들이
크고, 지난해 우리카드로 팀을 옮긴 후에는 정말 자주 와요. 특히 우리카드 홈경기장이 서울이니까 집이랑 가깝잖아요. 그래서
홈경기 있을 때에는 매일 오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원정 경기에 안 오는 건 아니에요. 의정부, 수원, 안산, 천안, 인천까지 원정
경기에 매번 출석해서 응원하는 편이죠. 단, 대전은 지방이어서 그런지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어요.
Q__가족들이 응원 오는날 코트에 서면 어때요.
당연히
힘이 나죠. 경기가 끝나면 저도 모르게 가족들을 찾게 돼요. 그러면 가족들이 알아서 경기장으로 내려오는데 사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아이들이 경기 끝나고 내려오면 공 놀이를 하는 편인데 가끔 집에서 공을 안 가지고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원정 경기 같은 경우에는 원정팀의 사인볼을 받아서 공놀이를 해요. 그렇게 하나둘 받고 집에 가져가다 보니까 남자부 7개
팀의 사인볼을 모두 받았더라고요. 아직도 애들 침대 옆에 전 구단의 사인볼이 두 개씩 쌓여 있어요. 이렇게 쌓여 있는 걸 보면
제가 배구를 잘 해야 가족들도 행복하다고 느껴요.
플레이오프를 넘어 이제는 챔프전으로
우리카드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창단 후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봄 배구의 짜릿한 기쁨은 잠시였다. 우리카드는
현대캐피탈에 2연패를 당하며 플레이오프 무대를 허망하게 마쳤다. 윤봉우를 포함한 우리카드 선수들은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를 넘어
챔프전을 바라보고 있다.
Q__올 시즌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는데 우리카드와 1년 더 동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냥
지난 시즌이 아쉬웠어요. 현대캐피탈과 플레이오프에서도 제가 너무 못했어요. 뛰고 싶은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주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 ‘한 시즌 더 해보자, 봉우야’라고요. 그래서 저도 곧바로 ‘예. 계약서에 사인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프런트도 ‘네 역할이 있으니까 한 번 더 해보자’라고 말씀해주셨고요. 저도 이대로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Q__그렇게 우리카드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인 2019~2020시즌이 약 석 달 정도 남았네요.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요.
감독님께서
세터와 서브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는 편이에요. 선수들도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그런지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준비가 잘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런 만큼 이제는 선수들이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높은 곳을 바라봐도 될 거 같아요. 그래야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준비 잘 하고 있고, 훈련 과정도 좋으니까 남은 비 시즌 열심히 해서 지난 시즌 ‘재수 좋아서
올라간 팀’이 아닌 ‘우리카드도 이제는 강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춰구나’라는 인식을 팬들에게 심어주고 싶어요.
Q__비시즌
동안 팀에 변화가 많아요. V-리그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대형 트레이드가 이뤄졌어요(우리카드와 KB손해보험은 지난 5월 14일
3-3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현용, 이수황, 박광희 선수는 우리카드로 김정환, 박진우, 구도현 선수는 KB손해보험으로 둥지를
틀었다).
새로 들어온 선수가 많죠.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팀의 방향성을 그렇게 잡았으니 선수들은 그것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융화는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떠나는 선수들을 위한 송별회를 못 해준 게 아직도 미안해요.
도저히 스케줄 조정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김)정환이하고는 평소 연락을 하는 편인데 ‘가서 잘 하라’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떠난 세 명의 선수들도 KB손해보험 가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Q__새로 들어온 하현용, 이수황, 박광희 선수는 어때요.
(하)현용이는
어릴 때부터 봐왔고 원래 잘 하는 선수잖아요. 크게 걱정을 안 해요. 이야기도 잘 통하는 편이니까요. (이)수황이도 같이
훈련해보니까 센스도 좋고 팀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박)광희는 디그가 좋은 편이에요. 우리 팀 리베로 부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 들어온 선수들에게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Q__우승으로 가기 위한 올 시즌, 우리카드의 키 플레이어 한 명을 뽑자면 누가 있을까요.
키 플레이어는 (노)재욱이죠. 여기에 돌아온 (김)광국이까지 세터진에서 제 몫을 해준다면 팀이 이번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고 봐요.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은퇴’
윤봉우는
V-리그 최고참 선수다. 그와 함께 현대캐피탈 시절 함께 우승을 일궜던 주역들도 이제는 하나둘씩 지도자, 행정가, 해설위원 등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윤봉우도 언젠가 ‘은퇴’라는 시간을 마주해야 한다. 그는 ‘은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Q__윤봉우 선수에게 배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결국엔
배구를 좋아하니까 지금까지 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배구를 좋아했을 뻔했다’이라는 문장을 쓸 때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한 걸 보면 ‘아, 내가 배구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느껴요. 결국엔 배구와 저는 땔 수 없는 거 같아요.
Q__우승에 대한 간절함 만큼이나 이제 은퇴 시기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실감하나요.
실감이요?
주위 선수들이 떠날 때나 제가 부상당했을 때 많이 실감하고 있어요.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부상 회복이 더디더라고요. 부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심해요. 안 되는 부분은 제가 노력해서 극복하면 되는데 부상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결국엔 부상을 안 당하는 게 은퇴란 단어를 생각을 안 나게 하는 방법이죠.
Q__프로 선수들의 ‘은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은퇴’는 결국엔 저도 해야 되는 거잖아요. 만약 제가 은퇴를 한다면 제 스스로 ‘다했다’라는 후련한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러기엔 아직 부족한 거 같아요. 지금은 뭔가를 부여잡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지난 시즌에 워낙 부진했거든요. 그래서 더 마음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최대한 훈련할 때는 은퇴 생각 안 하려고 하긴 해요.
아, 제가 요즘 운동 끝나고 저녁 9시에 퇴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어요. ‘아직 내가 배구를 하니까 행복하구나’라는 걸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Q__은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을 텐데요. 혹시 나만의 은퇴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아직
은퇴 기준을 세워놓지는 않았어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했다’라는 마음이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선수 생활하면서 우승을 한
번 더 하고 은퇴하고 싶은데 그 중간에 부상이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큰 부상 당하기 전까지는 일단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요.
Q__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요.
욕
안 먹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왜냐하면 지난 시즌에 제가 너무 못 했어요. 제 자신에게 실망감도 느꼈고요. 제가 가지려는 것보다
잘 하려는 게 아니라 제가 가진 것도 못 하니까 분했죠. 그래서 이번에 배구공을 다시 잡은 것도 마지막은 팬들에게 못 하는
선수로 남고 싶진 않다는 게 크죠.
그리고 별명으로 불린다면 ‘마운틴 블로커’예요. 예전에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 닉네임 만드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처음 별명은 ‘장총’이었는데요. 그 별명이 사실 별로였어요. 그래서 제가 ‘블로킹하면 떠오르는 별명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때 그 안에 있던 누군가 ‘마운틴 블로커 어때’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이 별명이 처음 생겼죠.
현대캐피탈에서 쭉 그 별명을 썼는데 팀을 옮기고 나서도 ‘마운틴 블로커’로 불리더라고요. 이젠 안 불리면 서운해요. 팬들이 윤봉우 하면 ‘마운틴 블로커’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Q__선수 생활의 최종 목표는 역시 우승이겠죠.
그렇죠.
우리카드는 올라가고 있는 팀이고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도 높다고 봐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대한항공이나 현대캐피탈의 전력을
무시할 수 없어요. 그 팀들을 넘으려면 매 경기 100%를 쏟는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해야 될 거 같아요. 선수들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이어진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어요.
Q__마지막으로 다가오는 시즌 각오와 윤봉우 선수를 응원하는 팬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다.
우리카드
선수들이 작년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경험도 생기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제가 선수단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잘 한다면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즌 홈경기장을 같이 사용하는 GS칼텍스와
‘장충의 봄’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에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이정원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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