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을 이루기 위해 왔다” 돌아온 아가메즈, V-리그를 뒤흔들다

매거진 / 이현지 / 2019-02-26 2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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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드에게 창단 첫 봄배구를 안겨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 선수, 리버맨 아가메즈(34)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배구선수로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아가메즈는 ‘월드 클래스’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타점과 파워, 스피드로 우리카드를 단숨에 강팀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아가메즈가 원하는 건 ‘강팀’도,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도 아니다. V-리그 챔피언 타이틀, 그것이 아가메즈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다.

비록 지난 16일 한국전력전에서 왼쪽 내복사근이 2~3cm가량 파열돼 잠시 코트를 떠났지만, 플레이오프 일정에 맞춰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 복귀 이유는 4년 전 못 이룬 우승

아가메즈가 직접 밝힌 한국 복귀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그저 우승이다. 그는 “처음부터 트라이아웃을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한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예전에 이루지 못했던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팀이든 상관없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아가메즈는 한국배구연맹(KOVO)이 외국인 선수 연봉의 상한선을 책정한 트라이아웃 제도가 시행되기 전, 자유계약을 통해 2013~2014시즌 현대캐피탈의 유니폼을 입고 처음 V-리그에 발을 들였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를 2위로 마감,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레오(쿠바)를 앞세운 삼성화재에 무릎을 꿇었다. 2014~2015시즌에도 현대캐피탈에서 다시 한 번 챔피언을 향한 여정에 나섰지만, 부상으로 인해 2라운드 중반 팀을 떠나야했다.

V-리그에서 ‘아가메즈’라는 이름이 점점 잊힐 때 쯤, 남자부에서 트라이아웃 제도가 실시된 지 3년 만에 아가메즈가 V-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가메즈가 트라이아웃에 신청했다는 소식이 밝혀졌을 때 다들 깜짝 놀랐다. 그가 현대캐피탈을 떠난 이후 터키, 그리스, 포르투갈 등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며 수차례 우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늘 전성기 같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아가메즈를 향한 러브콜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한국을 향했다.

자유계약과 트라이아웃을 모두 경험한 아가메즈는 트라이아웃 제도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자유계약 시절에는 레오, 산체스(이상 쿠바), 에드가(호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있어서 리그를 치르기 훨씬 힘들었다.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된 외국인 선수들은 기량이 떨어지기 보다는 비교적 실력이 평준화되면서 한국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가게 됐다고 생각한다.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자유계약 시절 V-리그를 경험해본 아가메즈이기에 가능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외국인 선수가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는가? 아가메즈의 대답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세 시즌 동안 V-리그를 평정했던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레오였다. 아가메즈가 레오를 상대했던 2013~2014시즌. 레오는 29경기에 출전해 1,084득점(경기 당 27.38득점, 공격성공률 58.57%)로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독차지했다. 아가메즈는 “레오, 산체스(전 대한항공) 등 쿠바 출신 선수들은 언제나 까다롭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선수 중 가장 상대하기 힘든 선수는 올 시즌 한국전력에서 외국인 선수 역할을 하는 서재덕이었다. 아가메즈는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는 공격 코스를 예측하기 굉장히 힘들다. 서재덕은 왼손잡이에다가 점프도 좋고 빨라서 막기 힘들다”라고 평가했다.



아가메즈가 한국을 떠나있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V-리그는 물론, 아가메즈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았고, 결혼을 통해 아이가 생겼다. 아가메즈는 “4년 전에는 게으른 모습도 있었다. 당시 내 모습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다시 한국에 와서 프로답게 배구를 하고 싶었다”라며 “그 땐 혼자여서 외로웠지만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있고, 4년 전 못 이룬 우승을 목표로 매 경기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34세,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아가메즈는 4년 전과 비교해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며 V-리그를 평정하고 있다. 31경기 873득점으로 2위 요스바니(32경기, 835득점)와 큰 격차를 보이며 득점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에 올라있다.

이런 아가메즈에 대해 삼성화재 신진식 감독은 “예전에는 힘으로 했는데 지금은 요령도 생기고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다. 아가메즈한테는 네트가 너무 낮은 것 같다”라는 말을,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아직까지 세계 3대 공격수의 힘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수비하는 선수가 공을 받아도 튕겨나갈 정도로 파괴력을 보여줬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카드는 아가메즈의 활약으로 5라운드를 3위로 마감,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순탄하지만은 않은 출발이었다. 우리카드는 올 시즌을 4연패로 시작했다. 아가메즈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이번 시즌처럼 어렵게 시작한 건 처음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카드는 트레이드를 통해 새 주전 세터 노재욱을 영입하고 2년차 리베로 이상욱이 가파른 성장세로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어느덧 3위까지 올랐다.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 아가메즈의 눈빛에서 굳은 다짐이 엿보였다.



신영철 감독은 아버지 같은 존재

아가메즈는 외국인 선수임에도 이례적으로 부주장이라는 역할을 맡았다. 승부욕이 강한 아가메즈가 선수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줬으면 하는 신영철 감독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메즈는 자신을 향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는 신영철 감독을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신 감독에 대한 아가메즈의 믿음은 수차례 진행됐던 수훈선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21일, 아가메즈는 “지금까지 수많은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신영철 감독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 명 중 한 분이다”라며 “좋은 감독이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영철 감독님이 그런 분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가메즈는 “감독님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을 대할 때 마음을 열고 다가오신다. 몸이 아프면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고,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요구할 수 있다. 모든 감독이 가지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신 감독님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다”라고 말했다.

아가메즈와 신영철 감독 사이의 두터운 신뢰는 아가메즈의 꾸준함에서 시작됐다. 그는 “처음 팀에 왔을 때부터 100%를 다해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감독님께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다. 만약 내가 훈련 때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벌써 다른 나라로 쫓겨났을 것이다”라며 “감독님께서는 훈련을 통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고,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라고 회상했다.

아가메즈가 신영철 감독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신영철 감독도 아가메즈를 좋아한다. 신 감독은 우리카드 감독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9월 제천·KAL컵 남자프로배구대회 첫 경기를 앞두고 “감독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만났다”라며 아가메즈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신영철 감독의 극찬에 대해 아가메즈는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다”라며 “트라이아웃에서 우리카드에 뽑혔을 때 함께 있던 에이전트가 신영철 감독님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좋은 감독님’이라고 말했다. 직접 함께 해보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솔직하게 다가오시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선수로서 이런 감독님을 만나서 정말 좋다”라고 고백했다.



아가메즈는 신영철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주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여러 리그를 통해 쌓은 경험을 토대로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선수들이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아가메즈가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은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아가메즈는 또 프로정신이 투철하다. 팀 훈련에 관한 그의 지론은 선수라기 보다 감독에 가깝다.

“훈련에서 100%를 다 쏟지 않고 50%만 한다면 경기에서도 50%밖에 못한다. 훈련 때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보이면 화난다. 선수들에게 훈련 때도 늘 100%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나경복에게 ‘훈련을 열심히 한다면 문성민, 정지석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훈련 때 열심히 할 것을 강조한다.”

취재진 앞에서는 동료들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아가메즈지만, 동료들과 있을 땐 지적보다 격려를 해주고 있다.

그는 “부정적인 말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선수들이 대한항공이나 삼성화재같은 강팀을 상대로 크게 앞선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경기를 빨리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늘 선수들에게 우리가 이기고 있을 때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면 상대가 자신감을 갖고 분위기를 올리기 때문에 끝낼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끝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라고 설명했다.



가장이 된 아가메즈 “내가 좋은 사람인 걸 보여주고 싶다”

현대캐피탈 시절 아가메즈를 떠올리면 ‘다혈질’, ‘싸움닭’, ‘불같은 성격’ 등의 수식어가 함께 떠오른다. 예전의 아가메즈는 코트 위에서 흥분을 참지 못한다거나 동료들에게 날선 눈빛을 보내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했다. 아가메즈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내 성격에 문제가 있었다. 유럽 리그에 있을 땐 코치와 싸우기도 하고 동료와 싸운 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훈련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가메즈는 우리카드 행이 확정된 이후에도 해외 4~5개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뽑아준 우리카드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거절했다. 그는 “당시에는 팀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였다. 내가 맡은 역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더 이상 예전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카드에 올 수 있어서 감사했고, 이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주변 동료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중이다.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는 이유를 밝혔다.

아가메즈의 노력이 통한 걸까. 아가메즈는 4년 전 현대캐피탈에서 함께 생활하며 아가메즈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윤봉우가 자신의 변화를 알아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윤봉우는 예전의 아가메즈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얼마나 침착해지고 주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지 알아주고 있는 것 같다.”



아가메즈가 얻은 인생의 교훈

아내와 아이들은 아가메즈가 지켜야 할 존재들이자 아가메즈가 지치지 않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다. 아버지가 된 아가메즈는 아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인생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는 걸 나를 통해 배웠으면 한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면서 성장했으면 한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가메즈도 영락없는 ‘딸바보’가 됐다. 앞서 진행된 인터뷰와 달리 표정부터 한층 밝아졌다. 우리카드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내 줄리와 두 아이가 늘 경기장에 찾아와 아가메즈를 응원하곤 한다. 딸 앙켈리스는 선수들과 자주 만나는 만큼 다른 선수들을 잘 따른다고 한다. “앙켈리스가 아내를 닮아서 굉장히 오픈 마인드다. 나와는 전혀 다르다(웃음). 누구랑 있든 잘 어울리지만 이상욱, 이수범, 노재욱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박근상 통역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서로 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달라고 한다. 앙켈리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박 통역을 잘 따랐다. 동료들과 모두 잘 어울린다.” 옆에서 인터뷰를 도와주는 박 통역을 향한 아가메즈의 눈빛은 딸의 남자를 질투(?)하는 딸바보 그 자체였다.

같은 외국인 선수였던 마틴 코치와는 육아 정보를 공유하곤 한다. 아가메즈는 “나와 마틴 코치 모두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아플 땐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 한국 선수들은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할 수 없어 이런 이야기는 주로 마틴 코치와 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캐피탈 시절과는 나이도, 소속팀도, 가정환경도 달라진 아가메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예전에는 어리기만 했다.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라며 “그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고,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 예전보다 더 수준 높은 배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됐다”라고 돌아봤다.

새 시즌이 시작되고 신영철 감독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우리카드는 4~5라운드부터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신 감독의 예언대로, 우리카드는 순위표를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점점 단단한 팀이 되고 있다. 아가메즈 역시 “아무도 우리카드랑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다. 우리카드는 계속 좋아지는 팀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상대가 되고 싶다”라는 바람을 밝혔다.



아가메즈, 이런 모습 처음이야!
아가메즈의 눈물
2018~2019시즌 개막 직전, 대한항공과 연습경기를 하고 난 뒤였다. 경기 결과가 좋지 못하자 아가메즈가 동료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당시 아가메즈는 “지는 게 정말 싫다. 이러려고 한국에 온 게 아니다”라며 속마음을 털어놨다고 한다. 아가메즈의 분노도, 눈물도 모두 ‘승리’를 향한 그의 진심이었다.
팔색조 아가메즈
코트 위에서는 카리스마 에이스로, 집에선 사랑꾼 남편+친근한 아빠로 변신하는 아가메즈다. 아가메즈는 아들 크리스토퍼의 기저귀를 직접 갈아주기도 하고 딸 앙켈리스와 병원놀이도 함께 한다. 그의 SNS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그의 오른팔에는 앙켈리스의 얼굴이 새겨져있기도 하다.
해치지 않아요.
“Don’t be scared me!” 잡지에 넣을 아가메즈의 사진을 찍던 중, 사진 기자가 아가메즈에게 강하고 날카로운 표정을 주문하자 아가메즈는 옆에서 지켜보던 기자에게 인자한 미소와 함께 한 마디를 건넸다. “저 무서워하지 마세요(웃음).” 아가메즈의 장난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촬영이 진행됐다.


글/이현지 기자
사진/문복주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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