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즐겁고 행복한 배구하자! 재신임·새출발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 매거진 / 이현지 / 2018-11-20 08:28:00
박미희 감독(55)이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프로배구 두 번째 여성감독이자 그 자신에겐 첫 감독 경험이었다. 그 사이 박미희 감독은 정규리그 맨 윗자리도 올랐고, 맨 아랫자리에도 내려가 보았다. 박 감독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구단의 재신임을 얻었다. 2018~2019시즌이 열리자 흥국생명은 우승후보 1순위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시즌 꼴찌팀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를 박미희 감독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즌 개막을 목전에 두고 용인에 위치한 흥국생명 체육관에서 박미희 감독을 만났다.
우승후보 지목에 감사 그만큼 의욕넘쳐
지난 시즌을 최하위로 마감한 흥국생명은 비시즌 동안 과감한 투자로 선수단을 새롭게 꾸렸다. FA(자유계약선수) 가운데 ‘알짜배기’라는 평가를 받은 미들블로커 김세영과 윙스파이커 김미연을 품에 안았다. 새 얼굴이 합류하자 흥국생명은 단숨에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모두가 흥국생명을 우승 후보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로서 부담이 클 것 같은데요.
그런 얘기가 많아서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만큼 우리한테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의미인 만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승후보라는 얘기를 듣는 만큼 선수들이 의욕적으로 시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마무리훈련은 어떻게 해왔나요.
10월 2일부터 8일까지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어요. 실업팀, 고교팀이랑 연습경기도 했고요. 비시즌 내내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리를 비웠고 새로 선발한 신인 선수들도 전국체전이 남아있어서 팀에 늦게 합류했어요. 선수들 다 같이 연습경기를 많이 해보지 못해본 게 걱정이네요.
-주전 선수들끼리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별로 없었네요.
개막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베스트 라인업으로 경기를 해본 게 두 번 뿐이에요. 아직 (이)재영이와 (김)해란이 컨디션이 올라오는 중이에요. 재영이 같은 경우는 장시간 자리를 비웠고 국제대회에서 경기를 많이 뛰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이재영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르면서 어깨에 테이핑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었는데요, 지금은 어떤가요.
재영이는 원래 어깨가 조금 안 좋았어요. 시즌이 끝나면 웨이트 훈련도 하고 휴식도 하면서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계속 경기를 해서 과부화가 걸렸나 봐요. 계속 경기만 하니까 어깨에 무리가 간 거죠. 팀에 돌아와서는 치료하고 쉬는 데 주력했어요. 재영이가 팀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으니 컨디션을 잘 끌어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이재영 선수만큼 중요한 자리가 새 외국인 선수 톰시아 선수가 맡고 있는 자리입니다. 톰시아 선수는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나요.
어느 팀이든 시즌 개막이 다가올수록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톰시아가 팀에서 필요한 만큼 해줬으면 하는데 현재까지는 조금 아쉬워요. 외국인 선수가 맡은 역할은 국내 선수들이 터져주지 않더라도 해결을 해줘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그래도 경험이 많은 선수니까 실전에 들어가면 잘해줄 거라 믿어요.
-이제 새얼굴이라고 하기에 흥국생명 유니폼이 익숙해진 두 선수, 김세영 선수와 김미연 선수는 어느 정도 적응했나요.
선수들끼리 호흡은 몇 년을 함께 해도 계속 같이 맞춰가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100% 만족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치로 통하는 부분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사실 시즌을 준비하면서 (김)미연이가 부상 때문에 4주 정도 훈련을 쉬었거든요. 이적한 선수들은 새 팀에서 처음 맞는 시즌 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특히 FA로 이적한 경우는 자신이 팀을 선택한 거기 때문에 더 그럴 수밖에 없죠. 미연이나 (김)세영이각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해줬으면 해요.
프로선수로 자존감 갖기
한층 탄탄해진 선수 구성을 자랑하는 흥국생명. 지난 18일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박미희 감독은 “주전 선수와 비주전 선수 간 격차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라며 내실을 탄탄히 다져왔음을 자랑했다.
-선수층이 한층 두터워졌습니다. 올 시즌 미들블로커 두 자리 중 김세영 선수의 옆자리는 누가 맡게 될까요.
(김)채연이로 준비를 했기 때문에, 채연이가 먼저 들어갑니다. 지난 시즌 후반부에 채연이가 경기를 뛸 기회가 많았어요. 지난 시즌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배구를 해서 편하게 했는데 시즌이 끝나고 신인상도 받았고, 국가대표로 진천선수촌에도 다녀오면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 나름대로 이번 시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흔히들 ‘2년차 징크스’라고 얘기하죠. 아직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벌써 후배가 들어왔고, 위로는 베테랑 (김)나희도 있으니까요. (이)주아는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돼서 조금 더 지켜보려고요.
-주전 선수 일곱 명만으로는 시즌을 치를 수 없잖아요, 이번 시즌 ‘조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는 누구일까요.
윙스파이커 자리에는 (이)한비와 (공)윤희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준비를 열심히 했어요. 비시즌 동안 내실을 다지면서 모든 백업 선수들의 기량을 올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포지션별로 백업선수 2~3명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해요.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들어가서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하죠. (김)다솔이도 (조)송화를 도와줄 수 있도록 더 많이 뛰어야 할 거예요. 해란이가 없는 동안 (도)수빈이도 많이 훈련했죠.
-지난 시즌 후반부에 공윤희 선수가 보여준 모습도 인상깊었습니다.
윤희는 그동안 경기 전체를 소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서브에 강점이 있는 선수라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그런지 코트에 들어가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아요. 서브 하나 넣고 나온다는 게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지 모르지만, 선수에겐 부담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윤희는 그런 부담감을 잘 이겨내요. 물론 선수로서 주전으로 뛰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윤희가 내년에 FA거든요. 윤희는 언제든지 코트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고,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선수에요.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이주아 선수는 어떤가요.
일본으로 전지훈련 갔을 때주아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예상보다 세계선수권 일정이 일찍 끝나버려서 주아가 경기하는 모습을 못 봤어요. 그 뒤로 바로 학교로 돌아가 전국체전을 치르고 오느라 팀에는 16일에 합류했어요. 전체 1순위라고는 해도, 고교와 프로 사이에는 벽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적응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래도 주아는 좋은 체격 조건을 갖고 있으니까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팀에 빨리 적응하는 게 급선무죠. 언니들이랑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코트 위에서 엇박자가 나면 안 되니까요.
해란이에게 얘기를 들어보니까 일본에서 세계선수권을 치르는 동안 주아와 함께 방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눈도 못 맞출 정도의 차이인데도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 잘 지냈대요. 해란이가 잘 챙겨준 것 같아요(웃음).
-올 시즌 이주아 선수가 뛰는 모습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요.
일단 채연이랑 주아는 플레이 스타일이 약간 달라요. 주아가 필요한 순간에는 코트에 투입하려고 합니다. 다만 경기를 하면서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이에요. 경기 중에 엉뚱한 실수가 나오면 1점만 내주는 게 아니라 연속 실점으로 이어지거든요. 어린 선수라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채연이랑 주아는 이제 겨우 1~2년차인 선수들이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한다면 가장 좋겠죠. 세영이가 워낙 베테랑이니까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세영이가 은퇴할 쯤에 채연이랑 주아의 기량이 많이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린 선수들뿐만 아니라 흥국생명 모든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다들 이 분야에서 이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프로에 진출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최고라는 자존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악성댓글도 있고 비판도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해 당당했으면 해요.
선수들 중에는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도 있을 거고 배구가 아닌 다른 일을 꿈꾸는 선수도 있을 거예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고민한다면 길이 보이게 되고, 그 길을 따라가면 자시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감독이기 때문에 선수들과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감독이기도 하지만 선배이기도 하니까 감독의 관점과 선배의 관점을 모두 갖고 있어요. 선수들이 저에게 바라는 점도 같은 맥락일 거예요.
제가 쓰는 책상에 쓰인 문구 중에 ‘모든 일에 간섭하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있어요. 처음 감독으로 왔을 때는 제가 모든 걸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감독 입장에서는 필요한 얘기일지라도 선수들한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선수들이 저한테 직접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저에게 조언을 구하는 때가 있다면 언제든지 얘기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여자배구 황금기는 언제?
-이번엔 경기 외적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올 시즌 여자배구가 황금시간대인 오후 7시 경기에 시작됩니다. 오랜 시간 여자배구와 함께 해온 감독님이 보시기에 현재의 여자배구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배구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갔을 때 여자배구의 인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늘 싸움이 붙어요. 다들 자기가 선수시절이었을 때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얘기하거든요(웃음). 솔직히 인기는 제가 선수시절일 때 더 많았고. 국제대회 성적은 제 후배들이 더 좋았어요. 요즘에는 팬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그런지 인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월이 지나면서 배구 규칙도 새로 생기고,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가 계속 생겨나면서 언제가 더 잘했고 더 인기가 있었는지는 비교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아마 배구가 계속 변하는 한 세대별로 인기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남자배구와 여자배구가 동시간대 방송되면서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7시 경기로 바뀌면서 남자배구뿐만 아니라 농구와도 시청률 경쟁을 해야 하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죠. 선수들은 아직 7시 경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운동하는 시간도, 밥을 먹고 이동하는 시간도 달라졌으니까요. 개막이 다가올수록 새로운 경기 시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어요. 경기장에 한 분이라도 더 많은 관중이 오시려면 아무래도 7시 경기가 좋죠. 다만 수요일에 여자배구 두 경기가 동시에 열리는 건 조금 불리한 것 같아요. 같은 여자배구끼리 경쟁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우리가 하는 경기의 시청률이 더 높았으면 좋겠어요.
-여자배구가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고 더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는 게 첫 번째에요. 그 다음에는 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죠. 선수들은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이벤트에 대해 폭넓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해요. 팬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선수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니까요. 프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미디어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예요. 늘 선수들한테 ‘인터뷰할 때 단답형으로 하지 말고 충분히 얘기하고 즐기면서 하고 와라’라고 이야기해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더 많은 기사가 나오고, 그만큼 관심이 많아질 테니까요.
팬서비스도 잘해야 진짜 프로
-흥국생명에서는 팬서비스나 인터뷰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누구인가요.
아무래도 재영이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잘하고 있어요. 송화도 잘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노력해줬으면 하고요. 팬서비스나 인터뷰에도 다 스킬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프로로 데뷔한 주아한테도 교육을 조금 시켜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많이 표출해야 하는 시대예요. 코트 위에서도 자기 능력을 잘 보여주고, 팬서비스도 잘할 줄 알아야하죠.
-올 시즌 흥국생명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배구하면서 행복하게, 즐겁게 경기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훈련 중에도 잘 안 되는 날이 있잖아요. 그러면 풀죽어 있을 법도 한데 다행히 요즘엔 안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일본 전지훈련을 오사카로 갔었는데, 유독 경기를 못한 날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오후에 쉴 겸 오사카 관광을 나갔는데 선수들이 사진 찍고 노느라 정신이 없는 거예요. 감독으로서 화가 나기도 하다가 ‘과연 애들이 풀죽어 있는 게 좋은 건가?’라고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운동할 때 실수했다고 기가 죽기보다는 자신만의 에너지로 극복하고 다시 힘을 내는 게 요즘 선수들이더라고요. 그 힘으로 운동할 때 다시 열심히 하고요. 코트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새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수들이 끝까지 부상 없이 코트를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실력이라는 게 결국 다 같이 뛰었을 때 제대로 나오는 거니까요.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들까지 모든 흥국생명 가족들이 다 함께 시즌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이현지 기자
사진/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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