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명문고 다시 꽃피우다,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배구부
- 매거진 / 서영욱 / 2018-08-23 20:23:00
뜨거운 햇살이 세상을 녹이던 7월 16일, 날씨와는 무관하게 체육관을 뛰어다니는 여고생들을 만났다. 지난 6월 전남 영광에서 열린 2018 천년의 빛 영광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이하 영광배) 여고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일신여상) 배구부 학생들이다.
배구부 창단 45년째를 맞이한 일산여상은 정용하 일신여상·일신여중 총감독 부임 후 3년이 되는 해에 실로 오랜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영광배 지도자상까지 수상해 기쁨이 더 큰 정용하 총감독과 우승으로 들뜬 학생들을 만나러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일신여상을 찾았다.
‘기본’을 바꾸다
정용하 감독은 세터 출신 지도자이다. 흥국생명에서 13년간 코치로, 1년간 감독으로 지냈다. 몽골 에나꼬레 배구단에서도 3년간 감독직을 맡았다. 오랜 기간 여자배구와 함께한 정 감독이 이곳 일신여상에 자리잡은지는 3년째이다.
정 감독은 3년 전 일신여상에 왔을 때를 떠올리며 “할까 말까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3년 전에 왔는데, 고등학교 선수가 열 명이었습니다. 선수가 없었죠. 한 달간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몽골 선수들도 가르쳤는데 한국 사람들을 못 가르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정 감독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손봤다. 바로 선수들의 표정. “제가 처음 학생들을 만났는데 다들 표정이 굳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한 달 동안 웃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웃지 않으면 거울 보고 백 번 웃고 오라고 시켰어요. 표정이 밝아야 분위기가 좋잖아요.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팀은 다른 어떤 팀보다 분위기와 표정이 좋아요.” 정 감독의 말처럼 일신여상 학생들은 항상 웃고 있었다. 학년에 상관없이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아이들이 숙소 생활을 하잖아요. 숙소 생활이 즐거워야 운동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위계질서를 없앴습니다. 옛날에는 고학년이 야단도 치고, 1학년이 빨래를 다 하는 등 위계가 있었는데, 저는 그런 걸 못하게 했습니다. ‘언니들이 도와주면 더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죠. ‘내가 1학년 때 당했으니까 내 후배들도 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잘 바뀌어 주어서 고맙죠.”
학생들은 내 자식
아버지처럼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손본 정 감독. “학생들이 곧 제 자식이죠”라고 말했다. “아들이 둘 있는데, 17년째 호주에 살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돌볼 건 우리 학생들뿐이죠. 밖에서 뭘 먹을 때 ‘이거 학생들 갖다 주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사랑한다고 꼭 말해줘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말을 잘 못 했는데, 계속 말해주니까 자기들도 자연스럽게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해요. 유대감이 괜찮아요.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소 5년은 넘게 걸릴 줄 알았거든요.”
사진: 일신여상 정용하 감독
정 감독은 배구 외적인 것에도 신경을 써 준다. “저는 배구가 아니어도 후에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편이에요. 다른 목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대학 진학이나 다른 공부 등, 많은 것을 접하도록 배려해 주는 거죠.” 이런 정 감독의 마음을 전해 받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정 감독을 믿고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고 한다.
학교재단과 재학생의 열성지원이 큰 힘
1974년 창단한 일신여상은 여고배구에 전무후무할 역사를 기록한 명문팀이다. 일신여상은 1981년 4월부터 1985년 3월까지 118연승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당시 김철용 감독 지휘하에 세터 이도희(현대건설 감독)가 활약했던 시기다.
한국배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일신여상도 근래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정용하 감독 부임이전에 2012년 전국체전 정상에 오른 게 마지막 우승으로 남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던 일신여상에도 암흑기가 존재했다. 현재 V-리그에서 활약중인 조송화, 최수빈, 나혜원, 이재은이 일신여상 출신 선수다.
그랬던 일신여상은 정용하 감독 부임후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정 감독의 남다른 리더십 외에도 학교재단과 재학생들의 성원에 힘입은 바 크다. 일신여상 배구부에 입학하면 교복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학교 측에서 무료로 제공해준다. 선수들은 또 배구부 숙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박상욱 이사장님께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세요. 실질적으로 아이들은 배구만 하면 되는 것이죠.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여름마다 놀이공원, 수영장에도 보내주세요.”
뿐만 아니다. 일신여상 학생들이 배구부에 보내는 성원도 열성적이다. “다른 학생들이 배구부를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쌀을 걷어서 주기도 해요. 공양미처럼 걷어서 주는 거예요. 좀 옛날스럽긴 하지만, 학생들이 마음을 전하는 거라 의미 있죠. 배구경기 중계하면 수업시간에 다 같이 보기도 하고, 배구부 학생들에게 선물도 전해줘요.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힘이 된 것 아닐까요?”
스포츠과학 접목도 필요
정 감독은 스포츠과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배구가 수직 운동이라서 타박상, 관절 부상 등이 가장 많아요. 저는 깔창을 중시해서 체형에 맞춰서 맞춤 깔창을 신게 해요. 그러면 확실히 달라요. 부상도 덜 당하고, 몸이 더 편하다고 해요.”
확실히
효과를 본 선수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했던 선수인데, 완전히 평발이었어요. 중학교에 오니까 다리랑 발이 아파서 공
열 개도 못 때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맞춤 깔창을 해 주니까 평발이 보완되어서 다시 잘 뛰게 되었고, 키도 더 컸어요. 이런
점에서 스포츠과학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거죠. 종합적으로 많은 분야가 발전되어서 배구 하는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글/ 홍유진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