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에 담긴 별별 스토리
- 매거진 / 정고은 / 2018-02-17 18:04:00
배구 네트를 마주 보고 선 두 팀. 그런데 유니폼이 다르다? 한 팀은 민소매를, 또 다른 팀은 반팔이다. 그리고 여자부는 왜 모두 민소매인거지? 문득 유니폼 규정이 궁금해져서 시작하게 된 기획. 각양각색 유니폼 속에 담긴 별별 이야기들을 들여다봤다.
유니폼 규정 들여다보기
유니폼 규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2017~2018시즌 V-리그 경기 운영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제일 먼저 맞닥뜨린 제38조 유니폼 승인 및 등록을 보면 각 팀은 시즌 중 정규리그에 착용할 홈경기용과 원정경기용 유니폼, 리베로 유니폼의 디자인 시안을 대회 40일 전까지 한국배구연맹(이하 KOVO)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은 후 유니폼을 제작해야하며, 제작된 유니폼 각 한 벌씩을 대회 20일전까지 KOVO에 제출해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만일 시즌 중 당초 등록 된 것과 다른 유니폼을 착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1주일 전에 전항의 절차에 따라 승인 받아야 한다.
제39조에는 유니폼 색상이 명기되어 있다. 한 팀의 모든 선수는 같은 색과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하여야 한다. 경기 당일 일부 선수가 다른 팀원들과 다른 유니폼을 착용하였을 경우 해당 선수는 다른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기 전까지는 경기에 참여할 수 없고 다른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한 후에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홈경기용 유니폼과 원정경기용 유니폼의 색상이 중복될 경우 KOVO가 지정한 색상의 유니폼을 착용해야 한다. 중립경기의 경우에도 각 팀은 KOVO가 지정한 색상의 유니폼을 착용해야 한다. 경기 당일 팀 전체가 지정된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 우선 경기를 진행하고 지정된 유니폼이 도착하면 갈아입은 후 경기를 진행한다.
다만 리베로는 소속팀 다른 선수와 확연히 구분되는 색상(상의 70%이상의 색상 차별성 유지)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또한 제1리베로와 제2리베로의 유니폼도 확연히 구분되는 색상으로 입어야 한다. 만약 다른 선수의 유니폼과 확연히 구분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경기감독관 지시에 따라 ‘리베로 조끼’를 착용하여야 한다.
운영 요강을 하나하나 읽어가던 가운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바로 유니폼 상의에 관련된 부분. 남녀 모두 소매의 유무와 길이에는 제한이 없다. 단, 소매가 팔꿈치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 즉 다시 말해 민소매, 반팔 상관없이 구단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올 시즌 남자부에서는 현대캐피탈, OK저축은행, 대한항공, 한국전력, KB손해보험이 반팔을 우리카드, 삼성화재가 민소매를 채택해 입고 있다. 반면 여자부는 전부 다 민소매를 착용하고 있다.
유니폼 상의 규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앞, 뒷면 중앙에는 KOVO에 등록된 선수의 고유 번호를 붙어야 하고 뒷면 상단에는 최소한 5cm 높이로 한글 이름을 넣어야 한다. 또한 상의에는 KOVO로고를 부착해야 하는데 반팔은 유니폼 상의 좌, 우측 소매 바깥쪽에 민소매는 우측 가슴에 부착해야 한다. 위치는 남녀 공통이다.
여기에 상의를 하의에 넣느냐 아니냐에 따라 유니폼 길이가 달라진다. 유니폼 상의를 하의에 넣을 수 있게 제작할 경우는 길이의 제한이 없다. 하지만 유니폼 상의를 하의에 넣지 않게 제작할 경우 유니폼 상의 밑단이 유니폼 하의 상단에서 5cm 이상 10cm 이하로 내려오도록 제작하여야 한다. 하의의 경우 남자는 허리와 길이가 헐렁하거나 느슨하지 않아야 한다. 여자부는 허리와 길이(하지장 12cm이내)는 타이트해야 하며 몸 선에 맞아야 한다. 반바지 스타일(치마바지)이거나 골반쪽으로 파인 삼각형 모양이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치마바지 유니폼이 있었다고요?
저마다 디자인은 제각각이지만 민소매 혹은 반팔에 바지를 착용한다는 건 남녀부 13개 구단 모두가 동일하다. 하지만 14시즌 째를 이어가고 있는 V-리그에 치마 유니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흥국생명은 2013~2014시즌 과감히 치마바지 형태의 유니폼을 공개했다. 유럽 프로배구에서는 치마바지 형태의 유니폼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국내에 도입한 건 흥국생명이 처음이다.
2013~2014시즌 흥국생명은 홈구장을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계양체육관으로 이전했다. 여기에 류화석 감독이 부임하면서 코칭스태프들도 새롭게 개편됐다. 이에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에서 유니폼 디자인을 포함해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치마바지 유니폼은 유럽 프로배구 무대를 벤치마킹했다. 여성미가 강조되고 활동성도 용의할 것이라 판단해 도입을 결정했었다.” 관계자의 말이다.
치마바지 유니폼을 실제로 착용하고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우선 김나희는 “사실 무언가 처음 시작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데 다른 팀과 굉장히 차별화 된 느낌이었다. 한국 팀 중 최초로 치마 유니폼을 입은 것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조송화는 “처음 입었을 때는 어색했다. ‘평상시에도 치마를 잘 안 입는데 경기 중에 치마를 입고 운동을 해야 한다니’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 금방 적응했다”라고 전했다. 정시영도 “치마 유니폼을 처음 접했을 때는 처음 보는 디자인이라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다. 직접 입고 경기 하니 생각보다는 편했다”라고 당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그 다음 해인 2014~2015시즌 다시 원래 바지형으로 돌아왔다.
사상 초유의 유니폼 사건
유니폼은 때로 큰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때는 2017년 2월 14일이었다. 한국전력 강민웅은 대한항공과 원정 경기에서 파란색 원정 유니폼 대신 실수로 빨간색 홈 유니폼을 가져왔다. 이에 황원선이 대신 선발로 나섰다. 부랴부랴 동료들과 같은 색인 파란색 계통의 유니폼을 구해왔다. 숙소로 쓰는 아파트 인근 마트 주인에게 급히 연락해 유니폼 색상을 설명해주면서 계양체육관으로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퀵서비스로 받은 것은 지난 시즌에 등록했던 민소매 유니폼이었다. 한국전력은 경기감독관에게 민소매 유니폼을 착용해도 되는지를 문의했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강민웅은 팀이 1-4로 밀리던 1세트 초반 경기에 투입됐다. 이를 본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이 항의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14-12로 앞선 상황에서 결국 중단됐다. 현장에 있던 경기운영위원과 심판위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논의 끝에 경기를 중단시켰다. 20여 분 논쟁 끝에 강민웅은 부정선수로 간주돼 퇴장 당했다. 경기는 14-12에서 14-1로 돌아갔다. 한국전력의 ‘1점’은 강민웅이 투입되기 전 점수다. 대한항공은 잘못이 없다고 판단돼 그대로 14점을 유지했다. 그리고 1세트를 챙긴 대한항공은 풀세트 끝에 한국전력을 꺾고 승리를 차지했다.
세계를 홀린 핑크색 유니폼
지난 2016년 연말, 해외배구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월드 오브 발리’는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세계 남녀 클럽 팀을 대상으로 ‘가장 멋진 유니폼을 착용하는 팀’을 뽑았다. 남녀 각 15개 팀씩 총 30팀이 선정된 가운데 한국 팀도 이름을 올렸다. 그 주인공은 바로 흥국생명. 여자팀 베스트 유니폼 2위를 차지했다. 흥국생명은 디자인에 조금씩 변화를 줬지만 V-리그 출범 때부터 팀 명칭인 핑크 스파이더스에 맞춰 핑크색을 기본 컬러로 삼고 있다. 해외 배구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핑크색 유니폼이다.
6번이 5번으로? 아찔했던 번호 표기 해프닝
여오현이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을 때 일화다.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5번을 달고 뛰었던 여오현은 건조대에 널린 유니폼 하의를 당연히 5번이라고 입고 왔다. 그런데 웬걸, 6번이 적혀 있었다. KOVO규정에는 ‘유니폼 하의 번호는 상의에 표기된 번호와 같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여오현은 체육관 복도에서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 하얀 반창고를 잘라 붙여 ‘5’를 만들었다. 숫자 ‘6’에서 막힌 부분에 하얀 반창고를 잘라 붙여 감쪽같이 ‘5’로 만들었다.
임기응변으로 그 순간을 넘긴 여오현이지만 사실 상의 번호가 선수 등록 번호와 다르다면 출전할 수 없다. 하의 번호만 달라도 심판에게 적발되면 경고가 주어질 수 있다.
유니폼 번호 규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유니폼 상의 앞면과 뒷면 중앙에는 옷 색깔과 대조되는 한 가지 색깔로 번호를 붙여야 한다. 번호는 원칙적으로 1번부터 18번까지 붙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선수 정원을 고려하여 1~20번까지 사용한다. 번호 크기는 높이가 등 번호는 20cm 이상, 가슴 번호는 15cm이상이어야 하며 굵기는 2cm 이상이어야 한다. 하의에는 오른쪽 앞부분에 높이 4~6cm 굵기 1cm로 표기한다. 팀 주장은 가슴 번호 밑에 가로 8cm 굵기 2cm 줄을 표시한다.
문성민 유니폼이 짝짝이인 이유는?
현대캐피탈 경기를 보고 있으면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모두가 예상한 그 사람, 바로 문성민이다. 하지만 외모, 실력을 떠나서 그의 오른쪽 어깨에 시선이 쏠린다. 서브를 위해 오른쪽 팔을 쭉 내밀고 있는 그를 보면 한쪽 팔만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이는 경기대 재학시절부터 몸에 밴 버릇이다. 예전 한 인터뷰에서 문성민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유니폼이 어깨를 덮고 있으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뛸 때는 작전타임 때마다 팀 매니저가 문성민에게 와서 직접 유니폼을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그럴 것이 유니폼 양쪽 어깨에 후원사 로고가 붙어 있었는데 문성민이 소매를 위로 바짝 올리는 바람에 후원사 로고가 방송 중계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성민이 국내 복귀를 선언했을 때 현대캐피탈은 민소매 유니폼을 착용해 유니폼 어깨 소매를 위로 끌어당길 일이 없어졌지만 2014~2015시즌 민소매에서 다시 반팔로 디자인을 바꿨다. 당시 문성민은 구단 미디어데이에서 “새 유니폼 적응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솔직히 바뀐 유니폼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 어깨가 다 덮여있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빨리 적응을 해야겠다”라고 웃어보였다. 이후 현대캐피탈 유니폼은 그대로 반팔을 유지하고 있다.
유니폼 변화, 그 속에 담긴 의미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이 착용하는 유니폼은 단순히 경기 구성 요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경기 내적으로는 기능성을 강화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외적으로도 가치를 갖는다. 유니폼은 구단의 이미지를 외부로 표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방송 중계를 통한 노출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 현대건설, 현대캐피탈, 흥국생명이 유니폼에 변화를 줬다. 우선 현대캐피탈은 유니폼의 디자인과 기능성을 한층 업그레이드 했다. 유니폼의 전체 컬러는 새로운 엠블럼의 구성과 통일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엠블럼 내 컬러는 강인함을 상징하는 검정과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을 의미하는 화이트 그리고 모기업인 현대캐피탈의 컬러인 블루로 구성되어 있다.
홈경기 유니폼은 강렬한 검정색 바탕에 흰색과 파란색, 검정색 스트라이프 문양이 들어가 있고, 원정 경기 유니폼은 하늘색 바탕에 스트라이프 컬러 구성은 동일하다. 또한, 기존 V넥 대신 새로운 넥 라인 디자인을 적용해 역동성과 안정감을 더하고 유니폼 뒷면에는 엠블럼 하단 방패모양의 V를 활용해 승리(Victory)를 상징하는 V문양을 새겼다.
여기에 선수들의 빠르고 민첩한 플레이를 돕기 위해 신축성이 강한 소재를 활용해 유니폼이 몸에 보다 밀착되도록 새롭게 디자인 했다. 유니폼 옆면에는 통기성과 활동성이 뛰어난 메쉬 소재를 적용해 경기 중 땀과 열의 원활한 배출을 돕도록 제작됐다.
현대건설은 유명 패션 디자이너 한상혁씨가 참여한 유니폼을 선보였다. 유니폼 상의는 워드마크를 전면에 사용했으며 최소한의 그래픽 표현으로 가시성을 높였다. 뒷면 엠블럼 하단에는 승리(Victory)를 상징하는 V를 새겼다. 바지 뒷면에는 힐스테이트의 새로운 워드마크를 적용하여 위트를 표현했다는 것이 구단의 설명이다.
흥국생명은 선수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입을 유니폼 디자인을 선택했다. 구단 관계자는 “새 유니폼 디자인은 선수들이 직접 투표로 선정했다. 디자인은 물론 기능성을 보완해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심홍색을 바탕으로 파란색과, 보라색을 조합해 경쾌함과 에너지를 표현했다. 거미와 거미줄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적용해 흥국생명의 끈끈한 조직력을 강조했고 유니폼 측면에 허리 라인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세련된 여성미를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비치발리볼, 비키니를 내려놓다
비치발리볼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 하얗게 펼쳐진 모래사장, 여기에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비키니까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기장에 낯선 유니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긴 팔, 긴 바지 유니폼에 히잡을 착용한 선수가 있어 화제였다.
이집트 비치발리볼 국가대표 선수들은 비키니 대신 긴소매 상의와 바지를 입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특히 도아 엘고바시(Doaa Elghobashy)는 손과 발, 얼굴만을 내놓은 의상에 히잡까지 썼다.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을까. 2012년 이전까지는 모두 비키니를 입어야했다. 하지만 국제비치발리볼연맹은 참가국의 종교적 신념과 문화적 관례 등을 존중해 반바지와 긴팔 및 민소매 상의를 허용했고 2012 런던올림픽 비치발리볼경기에서는 복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정이 완화됐다.
번외편 : 농구판에 등장한 쫄쫄이
한 때 여자프로농구는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쫄쫄이 유니폼을 입었던 적이 있다. 초창기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맞물려 쫄쫄이 유니폼이 도입됐지만 유니폼으로 선수들을 성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 속에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다.
선수들도 불편함을 호소했다. 몸에 꼭 달라붙는 ‘쫄쫄이’가 불편할 뿐더러 관중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1년여 만에 헐렁한 트렁크형 유니폼으로 돌아갔다. 쫄쫄이 유니폼은 농구계 전반에서 “지금 생각해도 과했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FIVB, 흥국생명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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