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점 이후 결정력과 순위의 상관관계, 강팀의 조건
- 매거진 / 이현지 / 2018-02-15 21:46:00
끝내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경기마다 승부를 가려야하는 스포츠에서 마무리는 초반, 중반의 어떤 플레이보다 의미있다고 하겠다. 초반 아무리 리드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후반에 뒤집히면 결국 패배를 면할 수 없다. 반대로 후반 집중력이 높으면 중반까지 열세를 일거에 만회하는게 가능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란 명언이 나온 배경이다.
배구 역시 마찬가지다. 배구는 매 세트 승패를 가리고, 3세트를 먼저 따내는 팀이 승리한다. 각 팀 감독들은 “이기는 경기를 하려면 20점 이후가 중요하다”라고 마무리 능력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20점 이후 결정력이 승부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다.
“이런 게 강팀과 약팀의 차이인 것 같다. 듀스 접전 상황에서 결정력에서 차이가 났다. 세터도 20점을 넘긴 승부처에만 가면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아쉽다.”
“승부처 결정력이나 공격성공률을 좀 더 높인다면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
“20점 이후 결정력이 아쉽다. 20점 이후의 집중력을 보완해야 한다.”
강 팀과 약 팀의 전력 차이는 크지 않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이 때로는 한 없이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강팀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위기 상황에서 나오는 집중력이다. 20점 이후 집중력 싸움에서 앞선 팀이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열 고개 가운데 아홉 고개를 넘어도 결국 마지막 한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이 때 강한 팀이 진짜 강 팀이다.
1월 23일 기준, 남녀 13개 팀의 20점 이후 득점과 공격성공률, 범실을 비교해봤다. (이 기사는 1~4라운드까지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2017~2018 시즌 20점 이후 기록]
현대캐피탈, 선두 질주의 비결
남자부에서는 선두에 올라있는 현대캐피탈의 집중력이 돋보인다. 20점 이후 득점을 보면 7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442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상대 범실을 제외하고서라도 가장 많은 득점이다. 공격, 서브, 블로킹 득점으로만 323득점을 올렸다.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OK저축은행과 무려 70점이나 차이가 난다.
현대캐피탈의 강점은 다양한 공격 옵션. 아포짓스파이커 문성민을 비롯해 윙스파이커 안드레아스, 송준호, 미들블로커 신영석과 차영석 등 전 선수들이 시너지를 내며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미들블로커 신영석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는 본연의 역할인 블로킹, 속공뿐만 아니라 서브에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렇듯 날개공격수와 중앙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현대캐피탈은 타 팀에 비해 다양한 공격루트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다. 다시 말해, 득점을 낼 수 있는 확률 역시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에게 범실로 내 준 점수 역시 많았다. OK저축은행(115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9점을 헌납했다. 그 뒤를 이어 순위표 2위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화재(425점)가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다만 앞서 현대캐피탈과 차이가 있다면 상대 범실 덕을 봤다는 것. 자신들이 올린 득점은 299점으로 7개 구단 가운데 4번째에 불과했지만 상대범실로 126점을 더하며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전력의 선택과 집중
중위권부터는 팀 성적과는 다소 엇갈린 결과물이 나왔다. 눈에 띄는 건 한국전력은 범실에서 가장 적은 81점을 기록하고 있지만 득점 역시 382점으로 적었다.
비단 20점 이후 상황 뿐만은 아니다. 한국전력은 총 득점에서도 23일 기준 2031득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꼴찌 OK저축은행보다도 낮은 수치다. 하지만 순위는 5위다. 하위권 팀들을 철저히 잡은 덕이 크다. 한국전력은 KB손해보험과 우리카드, OK저축은행을 상대로 올 시즌 상대전적에서 각 3승 1패, 2승 2패, 3승 1패를 챙겼다. 승리가 많다는 것은 곧 25점을 많이 선점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반대로 KB손해보험은 20점 이후 기록만 살펴보면 420점으로 현대캐피탈, 삼성화재 뒤를 이어 많은 득점을 올리고 있지만 전체 순위에 있어서는 4위에 그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세트마다 기복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당연히 세트를 따낼 때는 20점 이상에 도달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때는 20점을 채우지 못하고 질 때가 많다. 이는 선수들의 기복과도 연결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토종공격수 이강원, 손현종의 기복이 심해졌다. 권순찬 KB손해보험 감독도 “아직까지 승부처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있다.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그 부분에 대해서 선수들과 대화도 많이 한다. 이강원 같은 선수는 주축선수로 처음 뛰기 때문에 부담이 큰 건 당연하다. 선수들이 기복이 있는 편이라 그날 컨디션에 따라 활용 폭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자부 ‘3강’에는 이유가 있다
여자부에서는 한국도로공사가 단연 압도적이다. 6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360점대 이상을 기록했다. 도로공사 역시 남자부 현대캐피탈처럼 공수 양면에서 안정적인 전력을 자랑한다. 이효희의 배분도 배분이지만 이바나, 박정아, 배유나, 정대영 등 기본적으로 결정력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다. 어떤 선수에게 올려줘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만큼 20점 이후 상황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상대 범실도 도왔다. 75점이나 혜택을 봤다.
IBK기업은행은 20점 이후 범실(60점)도 많지만 득점(298점)도 높아 이를 상쇄했다. 기본적으로 IBK기업은행도 메디와 김희진, 고예림이라는 삼각편대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도로공사와 비교하면 외국인 선수의 공격 점유율이 높다. 덕분에 공격 성공률에서는 47.67%로 월등히 뛰어났다. 1위 도로공사(42.66%)와도 5% 정도 차이 난다.
여자부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남자부와 달리 상위 3팀과 하위 3개 팀과의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20점 이후 득점만 놓고 본다면 도로공사, 현대건설, IBK기업은행, GS칼텍스, KGC인삼공사, 흥국생명 순이다. 성공률은 IBK기업은행을 필두로 현대건설, 도로공사, GS칼텍스, 흥국생명, KGC인삼공사가 뒤를 이었다. 순위 차이는 있지만 3강을 형성한 도로공사, IBK기업은행, 현대건설이 20점 이후에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GS칼텍스는 20점 이후 득점과 성공률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막상 팀 순위는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경기를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세트마다 기복이 심하다. 우선 1월 9일 열렸던 도로공사전을 살펴보면 GS칼텍스는 1세트를 25-22로 따냈지만 2세트는 19-25로 내줬다. 듀스 끝에 3세트를 29-27로 거머쥐었지만 4세트는 30-32로 빼앗겼다. 그리고 5세트 9-15로 밀리며 결국 패배를 떠안았다.
1월 16일 현대건설과 경기에서는 1세트를 25-19로 가져왔지만 2, 3, 4세트 모두 20득점에 미치지 못하며 패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다. GS칼텍스는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승부처에서 다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라 세트마다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갑자기 여유있게 플레이하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경험이 쌓이다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결과가 올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KGC인삼공사는 득점은 흥국생명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적지만 성공률에서는 6개 구단 가운데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알레나 의존도가 높은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레나의 공격 점유율은 45.6%. 다시 말해 알레나가 대부분의 득점을 책임지는 만큼 알레나가 풀리지 않을 경우 득점력 역시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예로 지난 3라운드 알레나가 무릎부상으로 주춤하자 팀도 6연패에 빠졌다. 그 기간 동안 KGC인삼공사는 단 한 세트를 따내는데 그쳤다. 득점 역시 저조했다. 지난해 12월 3일 도로공사전에서는 11, 18, 17득점에 그치며 0-3으로 패했다. 12월 13일 GS칼텍스와의 경기 역시도 마찬가지. 심지어 3세트에는 상대가 25득점을 올리는 동안 8득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20점 이후, 믿고 보는 선수는?
23-23, 피 말리는 접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찾아온 공격 기회. 이 한 점에 따라 승부의 향방이 가려질 수도 있다. 리시브 된 볼이 세터에게 정확히 올라갔다. 찰나의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세터들. 과연 이 때 어떤 선수에게 볼이 올라갈까. 더불어 20점 이후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는 누구일까.
[2017~2018 시즌 20점 이후 득점]
표를 확인해보면 외국인 선수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이때만큼은 해결 능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그 가운데서도 우리카드 파다르의 득점력이 인상 깊다. 156득점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파다르는 전체 득점 부문 1위(688점)도 달리고 있다. 2위 대한항공 가스파리니(629점)와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다.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우리카드와 함께 하고 있는 파다르는 한층 더 파괴력 있는 모습으로 V-리그를 뒤흔들고 있다. 국내 선수들의 부진 속에 부담이 더 커지기는 했지만 공격 종합에서도 54.09%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득점 1위에 빛나는 타이스는 올 시즌 득점 부문 3위(628점)에 올라있다. 하지만 20점 이후 상황에서는 다르다. 파다르에 이어 132득점으로 2위에 랭크되어 있다. 20점 이후부터는 타이스에게 올라가는 볼이 많다는 의미다.
1위부터 5위까지 외국인 선수들이 순위표를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캐피탈만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성민이 외인 안드레아스보다 더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 문성민은 득점 부문에서도 414점으로 전체 6위, 국내선수 가운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점 이후에도 세터 노재욱의 손끝이 향하는 곳에는 문성민이 있다. 87득점으로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전광인이 83점으로 그 뒤를 따른다.
상위권 팀들은 외국인 선수와 국내선수가 균형을 이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캐피탈은 문성민과 안드레아스가, 삼성화재는 타이스와 박철우, 대한항공은 가스파리니와 정지석이 쌍포를 이루며 나름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득점이 필요한 순간 가장 확실한 공격 루트인 외국인 선수를 활용할 수밖에 없지만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자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뒤늦게 합류한 흥국생명 크리스티나를 제외한 나머지 5개 구단 외국인 선수들이 1위부터 5위까지를 휩쓸었다.
그 가운데서도 전체 득점 1위(589점)에 빛나는 KGC인삼공사 알레나는 20점 이후에도 가장 많은 115득점을 책임졌다. 다시 말하면 인삼공사에 알레나 말고는 마땅히 공격을 성공시켜 줄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상위 10위권 안에 국내선수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KGC인삼공사가 4위라도 지키고 있는 건 순전히 알레나의 힘이 크다. 그가 흔들린다면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서남원 감독이 늘 알레나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는 동시에 국내 선수들의 적극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 뒤를 이어 도로공사 이바나와 IBK기업은행 메디가 나란히 순위표를 장식하고 있다. 두 선수 역시 득점 부문에서 각 3위와 2위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팀이 필요한 순간 믿고 맡길 수 있는 에이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남자부와 마찬가지로 여자부도 상위권 팀에는 든든한 파트너가 존재한다. 도로공사는 이바나와 박정아, IBK기업은행은 메디와 김희진, 현대건설은 엘리자베스와 황연주가 짝을 이룬다.
다만 GS칼텍스는 듀크와 강소휘가 상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5위에 머물고 있다. 다른 팀과 비교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중앙이 약한 GS칼텍스는 강소휘와 듀크를 제외하고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두 선수에게 득점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 1월 10일 도로공사전을 보더라도 GS칼텍스는 듀크가 45득점, 강소휘가 24득점으로 힘을 냈지만 2-3으로 패했다. 반면 도로공사는 이바나가 35득점을 올린 가운데 박정아 19득점, 정대영 13득점, 배유나 10득점으로 득점 분포를 골고루 가져가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특히 4세트를 보면 듀스 상황에서 GS칼텍스는 듀크의 공격에 의존했다. 도로공사는 이효희가 정대영과 배유나를 활용해 허를 찌르는 속공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듀크와 강소휘의 의존도가 높은 만큼 두 선수에게 20점 이후 볼이 많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강팀에게는 있고 약팀에겐 없는 것
지금까지 각 팀별 20점 이후 득점과 범실, 공격성공률 등에 대해 알아봤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자부와 여자부에서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승부처에서 확실히 결정력을 가져가는 팀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 20점 이후 득점이 가장 높은 현대캐피탈과 도로공사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글/정고은 기자
사진/더스파이크_DB(유용우 기자, 신승규 기자)
자료 제공/(주)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