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지키는 원더우먼, 내 이름은 메디

매거진 / 정고은 / 2018-02-15 0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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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은 2016~2017 시즌에 이어 올시즌 메디와 다시 한 번 손을 잡았다. 하지만 메디라는 이름, 처음에 뭔가 낯설었다. 그럴 것이 지난 시즌 리쉘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던 그다. 올시즌 이름은 바꿨어도 그의 실력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두 번째 한국시즌, 메디는 계란찜과 바비큐를 즐기고, 혼자 버스를 이용할만큼 한국생활에 익숙해졌다. V-리그가 4라운드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 1월 11일 경기도 기흥에 자리한 기업은행 체육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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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순위, MVP 되다


2016~2017시즌을 앞두고 열린 여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메디도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선수들이 지명되는 동안에도 그는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어느새 마지막 순번만이 남았다. 단상에 올라선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의 입술에 모두의 시선이 주목됐다. 그리고 마침내 메디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한국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선발된 여섯 명 가운데 여섯 번째. 게다가 단신이라는 약점까지.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 메디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챔피언결정전 MVP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으로 팀에 V3를 선물한 그였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그 전부터 공격하고 수비는 자신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은 볼을 많이 때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제 자신을 테스트하고 싶어 지원하게 됐어요.



그 전까지 V-리그에 대해 얘기 들었던 게 있었나요?
니콜(전 도로공사)이랑 맥마혼(전 IBK기업은행)을 알고 있는데 두 선수에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선 니콜은 좋은 이야기만 해줬어요. 한국을 좋아했죠. 그렇기 때문에 세 시즌동안 뛰었던 것 같아요. 맥마혼은 감독님이 엄하다고 귀띔해줬어요. 한국에서 지내다보니까 니콜 의견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아요.



지명 당시 기분이 어땠어요? 마지막까지 정말 초조했을 것 같아요.
제 키가 작은 편이잖아요. 그런데 트라이아웃장에 저보다 키 큰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V-리그가 키 큰 선수들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사실 뽑히지도 않을 수 있겠다 생각은 했어요. 5순위까지 뽑혔을 때는 ‘나는 안 되겠다. 다른 키 큰 선수들이 뽑히겠구나’했죠. 그런데 마지막에 제 이름이 불려서 깜짝 놀랐어요. 이 팀에 지명된 만큼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직접 경험해 본 한국 배구는 어떤가요.
그 전에 뛰었던 아제르바이잔 리그와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점은 수비예요. 아제르바이잔은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선수들이 오다보니 저보다 키 큰 선수도 많고 제가 세게 때리는 만큼 당연히 더 파워풀한 선수도 많아요. 대신 수비는 V-리그에 비해 많이 약해요.



두 리그 중에 어떤 리그가 더 힘든가요?
힘든 건 똑같은데 약간의 차이가 있죠. 아제르바이잔에서 뛸 때는 저한테 공이 몰리지 않아서 체력적으로 덜 힘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크다보니 그런 점에서 힘이 들긴해요.




한국에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요.
저는 밖에도 나가고 싶고 한데 1층에서 밥먹고 2층에서 웨이트 트레이닝 하고 3층에서 훈련하고. 숙소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어요. 작년에는 한국에 처음 온 거라 밖에 나가는 방법도 잘 몰랐을 때였죠. 숙소에만 있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도 물론 숙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통역도 운전을 할 줄 알아서 전보다는 훨씬 나아요.



포지션이 포지션인 만큼 받고 때려야 하잖아요. 힘든 점은 없나요.
힘들기는 하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탑 플레이어들은 다 그렇게 하잖아요. 저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크게 스트레스 받는 건 없어요.



한국에 온 첫 해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어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저희 팀이 꾸준히 잘 올라가는 팀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이길 거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믿었고요. 그리고 서로 다 같이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 같아요. 중간 중간 힘들기도 했죠. (김)사니 언니가 중간에 아파서 경기에 못 나왔잖아요. 그 때는 (이)고은이도 노련하지 않은 세터였고요. 힘든 과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라 기억에 남아요.


KakaoTalk_20180214_224752174.jpg묵묵하게 그리고 꾸준히


인상 깊은 첫 시즌을 보낸 메디를 IBK기업은행이 놓칠 리 없었다.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메디는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묵묵하게 팀을 지탱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에는 바실레바(전 흥국생명, 불가리아)와 나란히 개인 한 경기 최다 득점 타이(57득점)를 기록했다. 올해 1월 14일에는 여자부 역대 57호이자 자신의 첫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2년차가 된 메디는 더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지난 시즌을 돌아보면 어땠나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짊어져야 할 짐이 많았어요. 그래서 부담감이 컸고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그런데 올 시즌에는 이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부담감이 덜해요. 안정적인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재계약 했을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드래프트 당시에는 뽑혔다는 사실에 그저 좋았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트레이닝도 딱딱하고 일정도 타이트하고 그리고 숙소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부분들이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인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시즌인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나요?
아시다시피 저희 팀에 많은 변화가 있었잖아요. 지난 시즌 같은 경우는 (김)사니 언니나 (남)지연 언니가 있어서 팀을 잘 잡아줬어요. 단합이 쉬웠죠. 하지만 올 시즌에는 두 선수 모두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저는 그냥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최대한 이길 수 있는 만큼 이기고 싶어요. 저희 목표는 통합우승이지만 지금은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더 커졌을 것 같아요.
다른 팀에서 저희가 강하다는 걸 아니까 이기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요. 저희 역시도 어느 한 팀도 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한다면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믿어요.



1년차 때와 2년차가 된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경기 내적으로는 리그나 일정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어서 편해진 부분이 있어요. 외적으로는 밖에 다니는 게 수월해졌죠.
(최희진 통역 : 혼자 버스타고 강남도 가고 서울역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버스 타고 오는지도 다 알아요. 이제 한국 사람 다 되었어요. 여기서 여기를 가는데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물어보면 제가 알려주거든요. 그러면 혼자 타고 잘 다녀요. 똑똑해요.)




공격 비중이 지난 시즌보다 더 높아졌어요. 힘들지는 않나요?
어쨌든 제가 많이 때려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 역시도 공격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올 시즌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어요. 57득점을 했어요!
경기 끝날 때까지도 평소랑 다른 걸 못 느꼈어요. 그렇게 많이 득점한지 몰랐는데 통역이 경기 끝나고 나서 57득점 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진짜 했냐고 오히려 되물었죠. 저는 진짜 평소랑 다를 바 없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57득점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아요. ‘어깨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해요?
경기가 가까우면 쉬기 힘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쉬려고 해요. 하루에 8-9시간 정도는 자려고 해요. 저는 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메디선수를 보면 늘 꾸준한 것 같아요. 비결이 있나요?
비결이라기보다는 매 경기 경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팀이 지난 시즌 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보여줬잖아요. 이번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염혜선과 이고은 세터가 번갈아 코트에 들어오는데 공격수로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어요. 두 선수 모두 좋은 세터예요. 각자 강점을 가지고 있죠. 한 사람이 조금 좋지 않을 때 충분히 다른 선수가 들어가서 해 줄 수 있어요. 잘해야 경기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서로 경쟁의식도 될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더 좋다고 봐요.



최근 이정철 감독님이 부드러워지려고 노력한다고 했던데, 사실인가요(웃음).
음...동의해요(웃음). 저는 아무래도 볼을 많이 때리다보니까 휴식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휴식에 대해 양해를 구했을 때 ‘그래, 쉬어라’하고 많이 봐주시는 편이에요. 감독님이 이해를 많이 해주시려고 해요.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편하게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작년에는 말하기도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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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는 기본, 한국말도 척척


메디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한국어 실력에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란 말은 기본, 똑똑한 발음으로 “쉽지 않아”라고 외치는 메디였다. 더 놀라웠던 건 그 말과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것. 옆에 있던 통역도 거들었다. 한국말도 잘하지만 이제는 대중교통도 혼자 타고 다닌다고. 그리고 메디의 한 마디, “진짜예요.” 그 순간 질문했던 기자도, 통역도 그리고 메디도 모두 함께 웃었다. 메디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매력이 양파처럼 하나씩 나왔다. 그의 한국생활 이야기도 궁금했다.



한국생활에는 많이 적응했어요?
작년에는 외로움도 많이 타고 했는데 올 시즌에는 교통수단도 다 이용할 수 있고 밖에 나가기도 편해져서 한결 괜찮아요.




한국 음식은 잘 먹는 편인가요?
계란찜 좋아해요. 그리고 한국식 바비큐도 좋아하고요. 매운 거는 못 먹어요. 아! 소고기도 좋아한답니다. 식사는 선수들하고 같이 하는데 저는 식당이모님이 따로 마련해주세요. 연어나 자몽, 아보카도, 샐러드 이런 식으로요.
(최희진 통역 : 지난 번에 경기 끝나고 음식점에 갔는데 계란찜 대자를 시켜서 혼자 다 먹더라고요. 진짜 좋아해요.)




한국에 와서 가본 곳 중에 어디가 좋았어요.
이태원이요.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많잖아요. 이 음식 저 음식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숙소 근처에는 음식점이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제주도를 아직 안 가봤는데 좋다고 들어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이 궁금해요.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일도 길게 하고 운동도 길게 한다는 것. 이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제는 ‘운동 시간이 언제쯤 끝나겠지’하고 알고 있잖아요. 당연해졌고 익숙해졌어요.



문화적 차이를 느낀 적이 있나요.
미국이랑 다른 건 운동시간이 다르다는 것 말고는 딱히 크게 차이 난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은 어디를 가나 도시가 그렇게 차이가 있지는 않는데 아제르바이잔은 도로 하나만 건너도 풍경이 달라요. 부유한 동네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슬램가가 있어요. 솔직히 빈민촌은 도로도 너무 더럽거든요. 그래서 충격을 받았죠.



한국말 실력에 깜짝 놀랐어요.
작년에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요. 너무 답답했어요. 그냥 듣기만 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애들이 말하면 이 단어 내가 아는데 하고 더 들으려고 했고 이 단어는 뭔지, 한국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계속 물어봤어요.
(최희진 통역 : 처음에 계란찜을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봐서 알려줬는데 그 이후에는 기억하고 자기가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치료할 때도 트레이너분이 “오늘 어때?”라고 물으면 “여기가 아파”라고 혼자 잘 말해요.)


KakaoTalk_20180214_224806591.jpg감사해요, IBK기업은행


드래프트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와 구단이 계약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년. 이에 따르면 메디와 IBK기업은행이 함께 웃고 울을 수 있는 시즌은 올 해가 마지막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시즌. 메디의 속마음은 어떨까.



선수로서 목표가 궁금해요.
최종적인 목표는 올림픽에 나가는 거예요. 미국에는 훌륭한 선수가 많아 힘들거라는 것을 알지만 목표로 하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터키나 이탈리아 등 세계적으로 더 좋은 리그가 있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크게 바라지는 않아요. 좋은 동료였고 그리고 배구를 즐기는 선수였다고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동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그동안 같이 운동했던 선수들 한명 한 명 다 정말 좋은 선수였어요. 그리고 팬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해요. 2년 동안 많은 관심과 사랑 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덕분에 정말 좋은 경험할 수 있었어요.



글 / 정고은 기자


사진 /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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