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라이벌” 이숙자 X 김사니 25년 史
- 매거진 / 이광준 / 2017-12-27 02:40:00
세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주역이다. V-리그 레전드로 남아 있다. 지금 방송사 해설위원이다. 이 모든 타이틀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여기 있다. 한 살 차이 또래로 25년 간 배구계에서 동고동락한 이숙자 KBS N 해설위원(37)과 김사니 SBS스포츠 해설위원(36). 지난 11월 17일. 라이벌이자 동료이고, 선후배이자 친구인 이 둘을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던 경기도 수원 광교 카페 Bless Roll에서 만났다.
코트를 떠난 배구선수, 그들의 일상을 엿보다
김사니 위원은 IBK기업은행에 몸담았던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올시즌 SBS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다시 팬들 곁에 돌아왔다. 2013~2014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이숙자 위원은 KBS N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평생 배구만 하며 살았던 그들은 은퇴 후 맞닥뜨린 일상을 어떻게 누리고 있을까?
은퇴 이후 바뀐 일상,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김사니(이하 김) 규칙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요. 은퇴 전부터 일찍 일어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오전까지 근육이 풀리지 않는 걸 느끼고는 ‘내 몸이 갔구나’ 생각했죠. 요즘은 10시 이전에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까지 해설에 매진하고 봄부터 다른 일을 시작해보려고요. 유소년 코칭도 계획 중입니다.
이숙자(이하 이) 은퇴 전까지는 쉴 때도 쉬는 게 아니었어요. 계속 긴장감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은퇴 후에 뭘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저희 오빠가 “쉬어야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했어요. 이제까진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배구만 했잖아요. 은퇴 후 남편과 하와이로 여행 다녀왔어요. 제대로 쉬러 나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은퇴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나요.
김 저희는 평생 한 팀에 소속되어 지내왔잖아요. 지금 SBS스포츠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다른 종류의 소속감인 것 같아요. 솔직히 불안함은 있어요. 그래도 저는 가을이 이렇게 좋은 계절인지 이번에 알았어요. 그래서 막 밖을 돌아다녔어요. ‘이렇게 햇살이 따뜻하고 좋은 걸 그동안 왜 몰랐지?’ 싶은 거죠. 그동안 가을은 시즌을 준비하고 긴장해야 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는지도 몰랐어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스스로가 불쌍했어요. 가슴이 뭉클했어요. ‘인생 뭐 없구나. 즐겁게 살자’ 이 말이 와 닿는 시기예요.
이 배구를 하면서 행복했지만, 절제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은퇴 후에 GS칼텍스 체육관 뒷산을 산책하러 갔어요. 선수 때는 훈련하려고 뛰어서 올라갔던 산이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내가 돈 벌면 저 산을 깎아버리겠다’고 난리쳤는데, 지금은 예쁘기만 하더라고요.
은퇴 과정과 은퇴식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김 은퇴 후 바로 이직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은퇴식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 나 전에는 이렇게 은퇴식 하고 이런 것도 없었어.
김 언니 덕에 저도 성대하게 은퇴식을 치를 수 있었어요. IBK기업은행 구단에서도 농담으로 ‘이숙자 위원보다 더 좋게 해줘야한다’고 이야기가 나왔어요. 전례가 있으니 가능했던 거죠. 숙자 언니에게 감사해요.
김 위원 은퇴식에 배우 이정재 씨도 왔잖아요.
김 깜짝 놀랐어요. 감동 받아서 울고 있는데, 이정재 씨가 다가오는 순간 ‘오!’ 하면서 울음이 뚝 그쳤어요. 언제 이정재 씨를 만나 보겠어요. 울다가 방긋 웃었죠. 구단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IBK기업은행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닌데도 멋지게 은퇴식을 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죠. 김도진 IBK기업은행 행장님이 배구단 단장을 역임하셨기 때문에 관심이 많으세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팀에서 보낸 3년이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찼어요.
마이크를 쥔 자의 고뇌
이숙자와 김사니는 해설위원으로서 배구 코트 위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이들은 해설자인 동시에 그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선배이자, 현장에 있는 감독들의 제자이다. 이 간극 사이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 해설위원이 되었나요.
김 리우올림픽 때 KBS N에서 객원해설을 했어요. 사실 그때 저는 올림픽 대표팀에 가야 했어요. 많은 분들이 설득하셨지만 결국 무릎이 안 좋아서 합류를 못했죠. 그랬던 제가 해설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객원 해설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이정철 감독님이 “배구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테스트 차원에서 해봐라”라고 하셨어요. 솔직히 별로 관심 없었는데 생각보다 평가가 좋았더라고요. 그때부터 일이 잘 풀렸어요. 결국 SBS스포츠에 들어가게 됐죠.
이 KBS N에서 제가 은퇴할 걸 예상하고 있었나 봐요. 선수 때도 강준형 아나운서가 “나중에 우리랑 같이 일 해봐요”라고 이야기 했었거든요.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을 때 쉽게 오케이하진 못했어요. 쉬운 자리는 아니니까요. 그런 찰나에 이선구 당시 GS칼텍스 감독님이 코치직을 제안하셨어요. 결혼 후 아이를 낳으려고 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코치직은 고사했어요. 제의는 감사했지만 가정과 임신이 더 중요했어요.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했고요.
중계하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나요.
김 칭찬만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면 재미가 없어요. 지적할 부분이 있으면 짚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퇴한지 얼마 안 되서 사적으로 친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해요. 감독님, 선수들이 중계 찾아보는 거 아니까 사실 신경 쓰이죠.
이 지금 활동하는 감독, 코치들이 제 은사님이잖아요. 선수들은 같이 뛰었던 동료들이고요. 제 의견을 날것 그대로 이야기하면 결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예 지적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좋은 쪽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범실이 있어도 실수 자체 보다는 원래의 의도를 짚어주기도 하고요. 너무 칭찬만 하니까, 경기가 안 풀릴 때는 할 말이 없기도 해요.
중계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이 예전에는 남자 배구 해설위원이나 박미희 전 해설위원 등의 중계를 많이 찾아봤는데요. 요즘은 배구 말고도 축구, 농구 등 다른 종목의 해설을 공부하고 있어요. 경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공부하는 거죠.
김 방송을 다시 보며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불필요한 감탄사 등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서로의 중계방송 해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언니는 차분해요. 감정 이입되지 않고 같은 톤으로 말하죠. 저는 감정 이입하는데 말이죠. 배구 스타일도 그랬어요. 언니는 듣기 편안한 해설이에요. 준비 안한 것 같아도 들어보면 꽉 찬 느낌이 들어요. 내공이죠. 배울 점이 많아요.
이 선수 때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는 감정도 안 드러내고 좋아도 싫어도 티를 안내요. 원래 성격이 차분했어요. 사니는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성격이 해설에도 묻어나요. 저는 톤이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는데 사니는 직접 경기에 뛰듯이 중계하죠.
‘내가 코트에 들어가면 더 잘할텐데’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이 런던 올림픽에 다녀온 입장에서, 리우 올림픽 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상황에서 게임이 안 될 때, 선수들이 비난받는 걸 봤어요. 후배들이 고생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내가 저 자리에 없다는 게 너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국가대표는 힘든 자리입니다. 선수들의 부담감을 너무도 잘 알죠. 그래서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영광스럽지만,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들어요.
김 저는 은퇴한 지 얼마 안됐는데도, ‘내가 어떻게 저렇게 뛰었지?’ 할 때가 많아요. 정말 단물이 빠질 때 까지 운동했어요. 이제는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만 드네요.
배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선수 때와 달라지던가요.
김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세터는 경기를 전체적으로 끌어가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해설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선수 때부터 저는 분석을 좋아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보다 요즘 해설 준비할 때 더 영상을 많이 봐요. 깊게 파고들어요.
이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됐어요. 해설은 외적인 환경, 분위기, 구단의 생각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런 생각들도 읽으려고 노력해요. 제 포지션은 세터였잖아요. 공격수와 리베로의 생각은 몰라요. 제가 아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전문성을 파악하려 합니다. 선수 때 이렇게 열심히 분석했으면 정말 뭐라도 됐을 거예요.
25년 역사, 서로에게 자극제였던 그 시절
1년 차이의 같은 세터 포지션 선후배. 리그에서도 대표팀에서도 경쟁 아닌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긴 인연. 때로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려 멀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함께 눈물 흘리는 동료이자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인생 친구가 되었다. 친애하는 나의 라이벌, 이숙자와 김사니가 진솔한 속내를 털어놨다.
처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언제인가요?
김 중학교 2, 3학년 때 쯤 에피소드가 잊혀 지지 않아요. 대표팀 상비군 시절 독일로 훈련을 갔어요. 1년 선배 숙자 언니는 롤모델이었죠. 언니는 아주 예뻤고, 어릴 때부터 U-17 대표팀에 뽑혔어요.
독일 훈련 막바지. 분위기에 취해 그런 건지, 밤이라 감성에 젖어서 그런 건지 언니가 이런저런 속마음을 이야기하더라고요. 2층 침대에 누워서요. 잠이 안 든 상태에서 언니의 혼잣말을 듣게 됐어요. “사니가 좋긴 한데, 내 라이벌은 쟤야. 신경 쓰여.”(이 내가 그랬어?)
저는 언니를 굉장히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언니가 멀게 느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를 인정해준 거니까, 실력을 높이 평가해줬던 거니까 고마운 일인데 말이죠.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나 봐요. 그 뒤로 언니를 어려워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언니와 저의 경쟁구도가 시작된 것 같아요. 숙자 언니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 거예요.
이 독일 가서 너희 뒤치다꺼리 한 거 밖에 생각 안 나는데... 프로에 와서 사니는 바로 주전으로 뛰었고, 저는 현대건설에서 6년 동안 경기를 못 뛰었어요. 제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언론에서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사니에게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사니가 더 우위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저는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할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어요. 사니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고마웠죠. 그런 상황에서 경쟁 구도가 만들어 지는 게 불편했어요.
김 언론에서 그런 구도를 만들었어요. 그래야 ‘꺼리’된다고요. 우리의 경쟁 구도도 일종의 꺼리였던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불편했지만, 언니와 같이 대표팀을 갔다와서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어요. 제가 언니한테 더 잘하려고 했던 거 모르죠?
이 왜냐면 내가 그 일을 기억 못하니까. 그걸 알았으면 나중에라도 너한테 허심탄회하게 말했을 텐데.
런던올림픽 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이 사람들이 지금도 사니와 저를 비교하는데요. 저는 런던 올림픽에서 게임에 안 들어갔기 때문에 영웅이 된 거예요. 사니가 앞에서 해놓은 거에 제가 하나 얹었을 뿐이에요.
김 런던올림픽 3, 4위전 때 너무 자신이 없어서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누가 들어가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죠. 우리 팀이 이기고 지는 것이지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요. 예전에는 경쟁심에 불탔는데, 지금은 더불어 다 같이 잘 살자는 생각이 들어요.
이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하며 팀 메이트로 지냈지만, 라이벌 구도 탓인지 사니와 엄청 친하진 않았어요. ‘서로 자극이 되는 존재’였죠. 지금은 서로 의지하는 동료가 되었어요.
우리, 함께 미래를 보자
제2의 인생에 접어든 이숙자와 김사니. 그들의 미래는 어떨까. 그들이 그리는 앞날에 대해 물어봤다.
그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계속 배구를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이 제가 계속 해왔던 ‘삶’이니까요. 배구는 이미 가족 같은 것이죠. 저와 떼어낼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에요.
김 제일 잘하는 거니까요. 전 잘하고 못하고가 분명한 사람이에요. 배구 말고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요. 배구할 때가 가장 자신 있어요.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배구를 통해 저 스스로 온전한 김사니가 될 수 있었어요.
앞으로 또다른 계획을 그리고 있다면, 얘기해줄 수 있나요.
이 아이는 제 손으로 키우고 싶어요. 해설은 육아하는 동안 병행하기 좋은 직업이에요. 요즘 해설하다 감독 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감독으로도 갈 수 있는 거죠. 뭘 하든 해설 하면서 배구 공부를 착실히 하는 게 중요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두루두루 배구의 발전에 관한 다양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 새로 시작한 것이 있으니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나서 다음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김사니 아카데미’를 구상하고 있어요. 세터를 교육하는 아카데미를 여는 거죠. 제 생각, 멘탈, 기술을 접목시켜 지도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준비가 안됐어요. 감독직은 생각이 없어요. 감독님들이 식음을 전폐하는 걸 옆에서 많이 봤어요. 배구의 길을 가되,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넓게 보며 가고 싶습니다.
유쾌한 두 사람의 이런저런 이야기
#1
김사니 위원이 유소년 코칭을 계획 중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아린이 어머님, “나는 유소년 말고 ‘유아’를 코칭 중이야. ‘아린이’(이숙자 위원의 세 살배기 딸)는 아침부터 난리야.”
#2
GS칼텍스 정지윤 선수 은퇴식 중계 중, 속마음이 튀어나온 이숙자 위원
이호근 캐스터가 “정지윤 선수의 은퇴식을 보니 어떠신가요?”하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만 “적당한 시기에 은퇴 잘~했다”라고 해버렸어요.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뱉으면 안 되는데.
#3
숙자와 사니, 둘의 이름에 관하여
이 KBS N 스페셜V 첫 회 출연 때 방송국에 갔는데요. 의상팀에서 제 이름만 듣고 50대가 입을 법한 초록색 재킷을 준비해놓은 거예요. 무슨 ‘청나라 사신’ 같은 옷을 입고 방송했죠. 내 딸만은 예쁜 이름을 지어주자 다짐했어요.
김 어릴 때 집이 너무 어려웠대요. 입양 보낼까, 바다에 버릴까 고민할 정도로요. 그래서 기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잘 살라는 의미에서 아빠가 ‘사니’라고 지으셨대요. 지금은 팬들에게 더 잘 기억되는 독특한 이름이라 좋은 것 같아요.
#4
블로킹 잡고 뒤구르기! 어릴 때부터 파이팅 넘쳤던 김사니 위원
이 주니어 때 블로킹 잡고 뒤구르기를 하는 거예요. 사니는 그때부터 화끈했어요.
김 언니 만날 이 이야기 꺼내! 뒤로 넘어졌는데, 일어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일어난 것 뿐 이라니까요!
#5
정장 입고 카메라 앞에선 내 모습
김 유니폼 입을 때는 V라인이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얼굴이 빵떡이에요. 아나운서들 얼굴은 왜 이렇게 작은 거죠?
이 오효주 아나운서와 중계를 하는데 제 어깨가 이만해 보이는 거예요. 한마디 했죠. “야, (어깨)뽕 넣어!” “나는 만날 신승준이랑 할거야!”
#6
배구하면서 위로받은 노래가 있다면, 팬들에게 추천해주세요.
김 IBK기업은행에서 남지연 선수 응원가였던 “홍대광 - 잘됐으면 좋겠다”. 지연이는 리베로니까 득점할 때 응원가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항상 수비 실패하면 “잘 됐으면 좋겠다 남지연!” 이러는데 순간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 지연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지연이의 짠함이 느껴지면서, 함께 위로 받는 느낌이 들어요.
이 전 제 응원가요. “쿨-숙아”.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던 노래죠. “쑥쑥쑥 아 쑥아!” 하니까 다 웃더라고요. 분위기를 전환하는 노래였죠.
#7
‘허당 매력’의 두 사람을 다시 이어준 런던 올림픽
이 코트에서의 사니는 열정 넘치고 자신 있어 보이죠. 런던올림픽 때 항상 붙어있으면서 느낀 건데, 사니는 한없이 여려요. 의외로 허당이죠. 당당하고 파이팅 넘치지만, 여리고 허점이 있는 게 인간적이었어요. 올림픽 선수촌에서 매일 아침을 두 시간씩 먹었어요. 만날 사니가 “저거 시켜줘. 언니 나 저거 말해줘” 그래요. 더 귀엽고 친근하게 느껴졌죠.
글 / 권소담 기자
사진 /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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