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예비 선생님들 배구에 빠지다, 서울교대 배구부 탐방기

동호회배구 / 이광준 / 2017-11-30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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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0분, 운동장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모두 집에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성북구 숭례초등학교 건물 제일 위쪽에 위치한 강당의 불만 환하다. 저기서 누군가 운동을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더스파이크> 8월호가 소개한 광주 송정초등학교 팀을 기억하는가? 송정초는 교장선생님부터 아이들까지 온 학교가 배구에 빠져 KOVO 유소년 배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아마추어 배구대회를 휩쓸 정도로 강력했던 교직원 내 배구 열풍이 학생들의 방과후 교실로 이어졌다. 어떻게 선생님들이 배구에 푹 빠지게 된 걸까?



<더스파이크>는 초등 교사들의 배구 열풍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10월 24일 찾아간 곳, 서울교육대학교 배구부(지도교수 이동규, 감독 김성범)다.





배구도 잘하는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사는


‘서울교대 배구부’ 출신



‘초등교사의 산실’ 서울교육대학교(이하 서울교대) 배구부는 1983년 창단됐다. 30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팀이다. 한동안 겪은 침체기를 딛고 최근 생기가 살아났다. 교대 배구팀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전국교육대학교배’에서 지난 8월 남녀부 동반 3위에 입상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배구팀은 현재 인원만 33명으로 자체 연습경기가 가능할만큼 인기 동아리다. 주 2회 화요일, 일요일 4시간씩, 방학 기간에는 거의 매일같이 운동한 결과였다.



대학에 소속된 팀이니 학교 내에서 훈련해야 하지만 서울교대 체육관은 공사 중이다.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배구부는 연습공간을 찾아 헤맸다. 지금은 숭례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쓰고 있다. 학교에서 왕복 두 시간 거리지만 배구를 할 수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오갈 수 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이 세터들에게 패스 지도를 하고 있었다. 대신고와 인하대를 졸업하고 고려증권 창단멤버로 1984~1985년 활약했던 김성범 씨다. 이제 평범한 직장인이 된 그는 재능기부 차원에서 감독직을 맡아 일주일에 두 번 배구부 연습을 돕는다. 박범창 대한민국배구협회 사무국장의 권유로 서울교대 배구부와 인연을 맺은 김성범 감독은 2007년부터 10년째 팀을 지도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초등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배구 인기가 높아요. 대학생 때부터 운동을 해왔던 교대 배구부 출신들이 각자 학교 팀에선 에이스입니다. 다 내 제자들이니 뿌듯하죠. 서울교대 배구부를 거쳐 간 젊은 선생님들은 OB팀을 따로 만들어 정기적으로 훈련합니다.”



김 감독과 대화가 끝날 때 쯤 졸업한 배구부 선배 한 사람이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임용시험 합격 후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조용진 씨(23)였다. “지금은 옆 학교인 숭인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13학번입니다. 세터니까, 후배들 연습때 와서 공을 올려주는 정도입니다.” 조 씨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후배들은 그를 ‘예비 코치’라고 불렀다. 정식 코치는 아니어도 그만큼 후배들과 자주 운동을 한다는 뜻이었다.





초등 교사들의 배구 열풍, 그 이유는?



대체 왜 초등 교사들에게 배구 열풍이 부는 것일까? 서울교대 배구팀 오유근 주장(21)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배구는 코트를 사이에 두고 플레이하는 만큼 거친 몸싸움이 없어요. 그래서 여자 교사들도 입문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여성 교사 비율이 높은 초등학교에서, 교대에서 자연스럽게 배구를 즐기는 이유죠. 저희 팀도 남자부에 비해 여자부 인원이 더 많습니다.” 오유근 주장은 서울교대만 해도 여자 20명, 남자 13명으로 여초팀이라고 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오랜 관심도 이 배구 열기에 한몫했다. 협회는 1999년부터 전국교육대학배구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교대배’는 배구 꿈나무를 양성할 수 있는 미래의 초등학교 교사들이 선수로 참가하는 대회다. 배구 저변 확대와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협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한국 배구의 초석을 든든히 하기 위해 교대 재학생들에게 배구를 알리는 과정이다.



협회의 생각은 적중했다. ‘교대배’는 교대 배구부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여름방학 중인 매년 8월, 전국의 교대들이 코트를 사이에 두고 자존심 싸움을 펼친다. 올해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교대배에도 전국 22개팀 500명이 출전, 1박 2일간 배구잔치를 펼쳤다.





교대생이 말하는 ‘배구의 매력’



여자부 세터 안현지 씨(22)는 교대 시절 배구부를 경험하고 현재는 초등 교사를 하고 있는 친언니의 영향으로 배구를 시작했다. “교대생 특유의 ‘애살’이 있어요. 심성이 고운 사람들도 많고요. 평소의 그 책임감이 배구를 할 때도 나와요. 저는 세터니까 동료들에게 공을 줘야 하잖아요. 다들 프로만큼 능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가 흔들릴 때는 죄책감이 들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체력 훈련을 하고 근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두 다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운동하고 있어요. 덕분에 팀워크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이가영 씨(20)에게는 배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직접 운동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마추어 리그 운영도 경험하고 있다. ALUV(아마추어 대학배구리그 위원회)이 공동주관한 KUSF(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클럽챔피언십 대회에서 운영 요원으로 일했다.



“저는 초등학교 때도 배구를 했어요. 하지만 지금 느끼는 배구에 대한 감정이 더 큽니다. 사람들과 함께 배구를 하면서 바닥에 떨어졌던 자존감도 올라갔어요. 하나에 몰입하다보니 일상에서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고요. 배구가 잘 안 될 때는 눈물도 나지만,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A퀵 마스터’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제게 배구는 ‘인생 운동’입니다. 평생 배구 하면서 살고 싶어요.”



남자부 주장 오유근 씨는 배구를 통해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배구는 참 멋있는 운동입니다. 한명이 실수를 해도 동료들이 그걸 커버해줄 수 있어요. 한편으론 언제 나에게 공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야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죠. 운동을 빠지고 싶다고 해서 빠질 수도 없어요. 주전 엔트리에서 하나만 없어도 베스트가 아니니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해요. 교사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배구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오 씨는 배구를 통해 더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한 신체와 바른 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저에게는 그게 배구고요. 선생님들이 단체 운동을 경험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곳이잖아요. 교사가 ‘함께 한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학생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지겠죠. 그리고 제가 직접 운동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 만약 반에 자질이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배구를 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배구를 좋아하게 돼서 함께 운동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오유근 씨에게 배구는 대학 생활의 전부를 차지할만큼 절대적이다. “가끔 제가 교대에 다니는 지 체대에 다니는 지 헷갈려요. 지난 3년간의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온통 배구 뿐이네요. 그래서 아쉽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정말 좋아요. 작년 이맘 때 쯤 훈련하다 왼쪽 발목 인대 세 개가 파열됐어요. 수술하느라 3개월 동안 꼼짝도 못했는데, 배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죽어라 재활했어요. 그 정도로 배구가 좋습니다.”



여기에 배구와 인연을 맺은 예비 교사들이 있다. 이들이 초등학교로 가게 되면 배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이들이 지도할 꿈나무들은 배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교대 배구부가 변화시킬, 한국 배구의 미래가 사뭇 기대되는 날이었다.





서울교대 배구부 약력

남자부
2013년 전국교육대학교배 3위
2014년 국무총리배 준우승
2014년 전국교육대학교배 준우승
2017년 전국교육대학교배 3위

여자부
2011년 용인배 3위
2013년 국무총리배 3위
2015년 국무총리배 3위
2015년 박계조배 준우승
2016년 국무총리배 3위
2017년 국무총리배 3위
2017년 안성배 3위
2017년 전국교육대학교배 3위




참고자료. 9인제 배구 포지션 용어




9인제 배구는 6인제와 달리 로테이션 룰이 없다. 전위, 중위, 후위에 각각 세 명씩 서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선수 간의 위치 이동이 자유롭다.



전위
전위 포지션은 아마추어 배구에서 비교적 신장이 큰 선수들이 맡는다. 흔히 ‘세터’라고 불리는 선수는 주로 ‘전위 센터’에 위치하여 공격을 조율한다. 코트 위치에 따라 전위 아포짓 스파이커, 전위 윙 스파이커로 구분된다.



중위
중위 포지션 역시 3명의 선수가 담당한다. 수비와 공격이 동시에 가능한 포지션이다.



후위
후위 포지션 선수들은 주로 수비를 맡는다.



설명/ 백상덕 한국9인제배구연맹 심판이사





글/ 권소담 인터넷기자


사진/ 이광준 기자



(이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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