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또 한 번의 성장, OK저축은행 이민규의 청춘시대
- 매거진 / 정고은 / 2017-11-20 14:49:00
‘얻었다 한들 본래 있던 것,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 것이다.’ 프로데뷔 5년차 이민규는 길지않은 프로선수 생활 중 우승과 꼴찌를 모두 경험했다. 극과 극을 오가던 중 그의 마음속에 쏙 들어온 글귀를 지금도 품고 산다. “어느 날 이 글귀를 봤는데 많이 와 닿았어요. 욕심을 버리라는 말 같아서 좋더라고요.” 늘 불안하고 조급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야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10월 25일 경기도 용인 OK저축은행 체육관을 찾았다.
#1 나에게 OK저축은행이란? 동고동락(同苦同樂) 공동체
이민규(25)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OK저축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전도 유망한 청년이 프로무대에 뛰어든지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승의 환희도 꼴찌의 좌절도 모두 맛보았다. 그래서일까. 이민규에게 OK저축은행은 좋은 때나 그렇지 않은 때나 그 모든 순간을 같이 겪어 온 ‘동고동락’ 공동체였다.
배구 인생 처음, 밑바닥을 경험하다
이민규는 배구를 시작한 이후 꼴찌를 해본 적도 많이 져 본적도 없다. 늘 이기는 팀에서 우승하는데 익숙했던 그는 지난 시즌 끝없는 추락을 받아들여야 했다. 2016~2017시즌 OK저축은행은 7승 29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힘들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수술 후 팀에 복귀해 나름대로 가장 독하게 시즌을 준비했으나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시즌 후 받아든 꼴찌라는 성적표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분명 이유는 있었다. 시즌 개막도 하기 전부터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의 모든 구상이 뒤틀렸다. 드래프트에서 선발했던 세페다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며 중도 하차했다. 마르코를 영입해 시즌을 시작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OK저축은행은 시즌 중반 외국인 선수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보이치 역시도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여기에 주축 선수들은 부상으로 신음했다. 2016~2017 시즌을 앞두고 무릎수술을 받았던 송명근은 통증으로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미들블로커 박원빈 역시도 전력에서 이탈하며 어려운 시즌을 보내야 했던 OK저축은행이다.
그렇게 앞서 두 시즌 간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OK저축은행은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좌절감을 느꼈다. 이민규는 “배구 인생에서 그렇게 많이 져 본 적이 없어요. 힘들었어요. 제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 싶었죠. ‘더 잘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자칫 패배의식이 자리 잡을까 걱정됐다. 그럴수록 운동에 몰입했다. “연습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불안한 만큼 더 운동했어요. 그리고 저희 팀이 훈련이 힘들거든요. 연습을 하면 그 순간만큼은 불안함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몇몇 지도자분들에게 ‘왜 너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하느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몇 차례 듣다보니 고민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요즘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확실히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됐다. 이민규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부담감이 덜해요. 그리고 조금 안 돼도 주눅 들지도 않고요. 예전 같으면 많이 주눅 들었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좋아졌죠”라고 전했다.
대표팀에 다녀 온 것도 도움이 됐다.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마음가짐이나 자신감에서 많이 달라졌어요. 대표팀에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내가 못하고 있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달라진 OK저축은행, 더 강해질 수 있다
다시 새 시즌이 돌아왔다. OK저축은행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부상 선수들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1순위로 ‘벨기에 특급’ 브람을 품에 안았다.
지난 시즌과 다른 출발. 이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개막 이후 3연패에 빠졌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같은 기간 2승 1패를 기록했으니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민규는 “선수들이 악착같이 준비했어요. 다들 승리에 목말랐죠. 다들 자신감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경기장에서도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코트에 서면 무엇보다 멤버들이 다 같이 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때릴 사람이 때려주고 받을 사람이 받아주고, 이렇게 역할분담이 된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에요. 때려줘야 할 명근이가 들어왔다는 것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원빈이도 가운데서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요. 지난 시즌에는 해결해 줄 선수가 없어서 힘들긴 했거든요.”
이민규는 세터다. 그와 공격수간 호흡은 팀 성적에 직결된다. 그러나 아직 그가 생각하는 수준까진 올라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은 50%정도 인 것 같아요. 아직 어떻게 공을 올려줘야 하는지 정립이 안됐어요. 더 빨리 가야하는지 아니면 공격수의 높이를 살려야 되는지요. 그 부분에 대해 팀도, 제 나름대로도 정해지지 않아서 헷갈려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시작이 좋은 OK저축은행. 이민규에게 불쑥 올 시즌 어떤 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들려온 대답은 “강하다.” 이어 “저희 팀이 강하다는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지금도 잘하지 않냐고 묻자 이내 손사래를 치던 그였다. “지금 가지고는 안 되죠. 팀에서의 영향력도 더 있어야 하고요.”
프로4년…우승2회, 어깨수술 그리고 꼴찌
어느새 프로에 몸을 담은지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개인적으로는 어깨연골 파열로 인해 수술대에 올랐다. 복귀 후 첫 시즌에서는 꼴찌도 해보았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프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이민규. 그간의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어떨까. 그러자 그는 ‘불안’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항상 불안했어요. 더 잘해서 많이 이겨야하는데 이런 생각을 항상 했던 것 같아요.”
우승했을 때도 그랬단다. 의아했다. “우승해도 전 불안했어요.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첫 우승했을 때를 떠올렸다. “대학교 때하고는 완전 달라요. 그 때는 워낙 멤버도 좋았어요. 나가면 당연히 우승이라고 생각했죠. 대학 동안 11-12번 우승했어요. 자부심이 있죠(웃음). 그런데 프로는 아니에요. 우선 절실함부터가 달라요. 몸도 더 경직돼요. 무서울 것 없이 해야 하는데 소심해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선배들의 노련미도 무시 못 하고요.”
두 번째 우승은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불안감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이민규는 2016년 1월 26일 삼성화재전 1세트 도중 블로킹을 시도하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당했다. 검진결과 연골이 파열된 것으로 드러나 2월 4일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기나긴 재활에 돌입했다. 챔피언결정전에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재활 당시 어깨가 좋아질 거라는 믿음은 있었어요. 몸이 유연한 편이라 금방 좋아지더라고요. 재활은 잘 되어가는데 다른 동료들 경기를 보면서 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승했을 때가 불안감이 제일 컸어요. 기량이 점점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요. 우승하고 나서도 저는 또 재활을 하러 갔어요.”
하지만 그 시간들로 인해 배운 것도 있다. 이민규는 “다치면서 관리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생활을 하다 보면 게을러 질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어깨 생각을 하면 운동을 하게 되요. 돌이켜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많이 배웠어요”라고 담담히 전했다.
#2 나에게 세터란? 가장 잘 맞는 포지션!
인터뷰를 한참 진행하다가 그에게 다른 포지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민규는 대뜸 “제가 만약 공격수였다면 고등학교 때 끝났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천생 세터인가 봐요”라고 웃어보였다.
세터는 내 운명
이민규가 처음 배구공을 잡은 건 소사초등학교 4학년 때다. 고모의 권유로 배구를 시작하게 됐다. “고모가 배구선수셨어요. 배구 한 번 해보라고 하셔서 하게 됐죠. 사실 운동은 잘 못했어요. 태권도를 했는데 소질이 없었죠. 키도 작고 왜소했거든요. 거의 강제로 하게 됐죠.”
아버지의 무서움도 한 몫(?)했다. “아버지가 엄하세요. ‘갔다 와’ 한마디에 가게 됐죠(웃음). 그런데 심지어 코치님도 무서웠어요. 카리스마에 눌렸어요.”
그는 이어 여태까지 배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비화 하나를 들려줬다. “한 번 중간에 도망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버지한테 엄청 혼났어요. 다시 배구하러 들어갔죠.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웃음).”
처음부터 포지션은 세터였다. 여기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고모가 어떤 포지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세터를 말하라고 하셨어요. 그 때는 세터가 뭔지도 모르고 한다고 했죠. 그렇게 해서 세터를 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때는 공격도 같이 했고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세터만 봤죠. 제가 만약 공격수였다면 고등학교 때 끝났을 거예요. 세터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말하는 세터의 매력은 뭘까. 이민규는 “예전에는 블로킹을 빼주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것도 매력이에요. 그런데 요즘에는 깔끔함인 것 같아요. 세터로서 볼을 올려줬을 때 깔끔한 게 있어요. 그런 게 굉장히 멋있더라고요.”
우연히 입문하게 된 세터 포지션이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이민규는 천생 세터라는걸 느꼈다. 프로생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역시도 남달랐다.
“우승했을 때도 물론 기억에 남지만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플레이가 있었어요. 제가 속공패스를 좋아하는데 옛날부터 공이 엄청 떨어진 상태에서 속공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외국 선수들은 잘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와 피지컬에서 차이가 있잖아요. 국내선수들은 그런 공격을 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시몬이랑 함께 하면서 기회가 생긴 거죠. 한 번은 리시브가 엄청 떨어진 공을 줬는데 그걸 때리더라고요. 그 때 ‘내가 살면서 이런 볼도 올려줘 보는구나,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어 그는 또 해보고 싶은 플레이가 생겼다며 웃어보였다. “공이 사나우면 아무래도 공격수가 때리기 힘들어요. 대신 스피드는 붙죠. 다른 나라 세터들을 보면 말도 안 되게 공을 올려줘요. 공을 던져요. 그런데 공격수들이 때리더라고요. 우리는 외국선수들과 근육 자체가 달라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 팀 공격수들도 좋거든요.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요. 연습 때 조금씩 맞춰보려고요.”
국가대표로 한 뼘 더 성장하다
비시즌에 이민규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국가대표로 뽑혀 세계 곳곳을 누볐다. 월드리그부터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 아시아예선까지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이민규를 성장케 했다.
그는 책임감을 언급했다. “예전에는 형들이 해줄 거라고 의지하는 것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했죠. 조금 더 책임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멤버가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보면서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결과를 떠나 김호철 감독 밑에서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되뇔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감독님은 제가 잠시 잊고 있었던 세터의 기본에 대해 되뇌어주셨어요. 저조차도 왜 이걸 까먹고 있었나 싶었어요. 정말 많이 배웠죠”라고 말했다.
함께 경기한 동료들도 배움의 대상이었다. “(노)재욱(현대캐피탈)이는 잘해요. 경기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배구를 하더라고요. 창의적인 면을 많이 배웠어요. (황)택의(KB손해보험)는 동생이지만 공이 예쁘게 올라가는 모습을 배웠죠.”
이민규에게 국가대표는 성장의 시간이자 세터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비록 리그를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지만 그는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다. “아무래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시즌에 들어갔어요. 예전 같았으면 조급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건 없어요. 그 순간에 몰입해서 하면 잘될거라 믿어요. 제가 원래는 조급함이 있었어요. 대표팀을 다녀오면서 경기장 안에서의 여유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동료들을 믿고 하고 있습니다.”
김호철 감독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세터는 경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포지션이라 대화를 많이 나눠야했다. 이민규가 자신감을 심는데 주력했다. 경기에서 소심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 과감한 태도를 요구했다. 이민규는 소심한 마인드를 경기 경험으로 해소시키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선수이다.”
#3 내가 말하는 ‘이민규’는? 배려
이민규에게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도 “이건 조금 어려운데…”라며 고민에 빠졌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로 배려를 꼽았다. “항상 제 생각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남들이 다른 것이 좋다면 따라가는 편이에요.”
26살의 나를 말하다
문득 배구선수가 아닌 26살의 이민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이민규는 “외박을 받으면 거의 항상 친구들끼리 몰려다녀요. 술도 한 잔씩 하고요. 재활로 힘들었을 때도 운동 외 시간에는 밖으로 돌아다녔어요.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걸 좋아해서요. 바깥 공기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풀었죠.”
보통의 26살 남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민규. 또래와 비교해 일찍부터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잃는 것 역시 있었다. 학교생활의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것. “대학 때도 대학생활을 누릴 게 없었죠.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요. 숙소에만 있었어요. 그런 부분은 아쉬워요. 대신 저희들끼리 숙소에서 같이 지냈던 게 소소한 추억으로 남아있죠.”
그래도 친구들 가운데서는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러자 이민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힘들어요. 한 번 경험해보면 며칠 못 버티고 도망갈 것 같아요(웃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거든요. 못 버틸 거예요.”
그래서일까. 이민규는 다시 초등학교 4학년 때로 돌아간다면 배구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만약 지금까지 제가 겪어왔던 기억이 없다면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기억이 있다면 못할 것 같아요. 너무 괴롭고 힘들었어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민규는 코트에 서 있다. 그는 그동안을 돌아보면 인복이 참 많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지도자를 만났어요. 박희숙 코치님이라고 굉장히 유명하신 분 밑에서 배웠어요. 대표적으로 (한)선수 형, (곽)명우 형, (정)지석이 등이 있죠. 굉장히 잘 가르쳐주셔서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다 잘 갈 수 있었어요.”
경기대에서 송명근, 송희채라는 동료를 만난 것 역시도. “얘네들을 만난 게 가장 좋죠(웃음). 대학교 때 저희끼리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같이 뛰면 좋겠다고. 원래대로라면 다 흩어졌을 텐데 기회가 돼서 같이 뛰고 있네요.”
이민규는 그들의 존재가 프로생활에서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잘 안됐을 때도 분명히 얘는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로서는 좋죠. 의지가 되죠. 저도 최대한 많이 도와주려고 해요.”
‘경기대 3인방’은 프로에 와서도 지금까지 한 팀에서 뛰고 있다. 이민규가 기억하는 송명근과 송희채 첫 인상은 어땠을까. 우선 이민규는 송림고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송명근에 대해 “명근이는 너무 순수했어요. 순박하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착한데(웃음) 얘한테는 뭘 못하겠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힘이 없었어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죠. 계속 키가 크면서 힘이 붙으니까 달라졌어요”라고 말했다.
송희채는 그야말로 개구쟁이였다고. “희채는 처음부터 까불거리고 장난치는 걸 좋아했어요.”
부상없이 우승하는 그날을 꿈꾸며
이민규가 은퇴 전까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저는 우승을 계속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만의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고 싶어요. 요즘 다른 팀들을 보면 세터들 색깔이 워낙 확고하잖아요. 저 역시도 ‘이민규 하면 이렇다’할 수 있는 색깔을 가지고 싶어요.”
이어 그는 자신의 꿈이자 목표를 전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뛰는 선수들한테 인정받는 것이 꿈이었어요. 저희 팀이든 상대 팀이든 한 코트 안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민규에게 올 시즌 각오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일단 안 다쳐야겠죠. 그렇다고 코트에서 몸을 사리지는 않을 거지만요. 처음에는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챔프전 더 나아가 우승까지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팬분들도 많이 찾아와서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재밌게 배구하겠습니다.”
글 / 정고은 기자
사진 /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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