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17~2018시즌 V-리그를 관통할 5대 키워드
- 매거진 / 정고은 / 2017-11-07 09:31:00
올해도 어김없이 배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2017~2018 도드람 V-리그가 10월 14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디펜딩챔피언 현대캐피탈과 지난시즌 정규리그 우승팀 대한항공과 공식 개막전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6개월간 대장정에 돌입하자마자 코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개막 휘슬이 울리고 나서 남녀부 모두 박빙승부가 이어지면서 치열한 순위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새 얼굴과 이적스타들이 등장해 초반부터 풀세트 접전과 명승부를 쏟아내자 ‘역대급 시즌’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개막전부터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V-리그. 올 시즌을 관통할 키워드를 정리해봤다. (기록은 10월 30일 기준)
1. 전력평준화,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다
시즌 초반 열기가 뜨겁다.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5세트까지 이어진 풀세트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여자부는 초반 치러진 10경기 중 7경기가 세트스코어 3-2로 승패가 갈렸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2016~2017 시즌 여자부 1라운드 15경기 가운데 풀세트 경기는 단 2경기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전력 평준화’를 그 이유로 꼽았다. 외국인 선수의 능력이 엇비슷하고, 자유계약선수(FA) 이적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전력 평준화가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KBS N 스포츠 이숙자 해설위원은 “트라이아웃제도를 시행한 이후 경기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올 시즌도 비록 초반이기는 하지만 풀세트 경기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5세트일 뿐만 아니라 점수도 팽팽하게 이어진다”라고 급증한 풀세트 상황을 설명했다.
이 위원은 이어 “FA와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 이동이 많기도 했고 대표팀 선수들이 늦게 합류하면서 함께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짜임새 있는 경기력이 아직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각 팀들도 맞춰가는 단계다”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가 대표적인 경우다. 개막에 앞서 GS칼텍스 차상현 감독도 이와 비슷한 말을 전했다. “베스트 멤버로 손발을 맞춰 본 적이 없다. 나현정과 김유리가 대표팀에서 복귀하자 듀크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자리를 비웠다. 걱정이다.” 듀크는 한국도로공사와 첫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16일에서야 한국에 들어왔고, 다음날 출전을 강행했다.
특히 올 시즌 여자부는 전력이 몰라보게 평준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개막 뚜껑을 열어보자 고스란히 나타났다. 우승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IBK기업은행은 흥국생명을 상대로 첫 승을 신고했지만 현대건설에게 발목이 잡혔다. 또 다른 우승 후보 한국도로공사는 다크호스 GS칼텍스에 덜미를 잡힌데 이어 초반 3연패를 떠안았다.
그 사이 현대건설이 4연승을 챙겼다. KGC인삼공사, IBK기업은행, 흥국생명, GS칼텍스를 차례로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다.
흥국생명과 KGC인삼공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초반 2연패를 당했던 KGC인삼공사는 GS칼텍스를 3-1로 물리치고 올 시즌 처음 승점 3점을 챙기기도 했다. 이어 도로공사를 3-2로 꺾었다.
3-2경기가 늘어나며 순위표도 혼돈을 맞았다. 각 팀들이 승점을 나눠가지며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뒤바뀌고 있다. 1위와 4위 팀 간 승점 차는 불과 3점. 언제든 선두가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자부는 14경기 가운데 4경기가 풀세트 경기였다. 3-0 경기도 4경기나 나왔다. 이에 따라 남자부 역시도 순위표가 이채롭다. 지난 시즌 6위를 기록했던 KB손해보험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초반 돌풍이 언제까지 갈지 미지수지만 확실하게 지난 시즌 달라졌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한국전력, 삼성화재, 우리카드는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서서히 전력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언제든 순위표를 박차고 올라갈 여지가 충분하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보통 시즌이 시작되면 라운드 간 몇 승을 거둘 것인지 예상하고 들어간다. 그런데 올 시즌은 그 계산을 하기 어렵다. 아직 시즌 초지만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매 시합마다 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 역시 “어느 팀이 쉽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시즌이 될 것 같다”라고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2017~2018시즌이다.
2. 역대급 서브전쟁, 서브는 무기다
과거 배구에서 서브는 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서브가 약한 탓에 상대팀은 이를 받아 가볍게 점수로 연결하곤 했다.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됐다. 올 시즌 개막이후 남자부에서 보인 특징 하나는 강한 서브다. 강서브를 구사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각 팀 감독들도 “요즘 남자부는 서브가 화두”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득점뿐만 아니라 상대 리시브 라인을 흔들 수 있기 때문. 감독들이 서브와 리시브를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30일 기준 KB손해보험은 세트 당 2개의 서브 에이스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어 한국전력이 세트 당 1.733개를 성공시켰다. KB손해보험은 4경기에서 31개의 서브에이스를 터트렸다. 한국전력은 4경기에서 26개를 성공시켰다. OK저축은행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서브로만 29득점을 뽑아냈다. 한때 서비스였던 서브가 팀 승리에 필요한 무기가 된 것이다. 너도 나도 강서브를 장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 순위에서도 황택의, 알렉스 (이상 KB손해보험), 가스파리니(대한항공)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KB손해보험은 수비시 경계대상 1호다. 황택의, 알렉스 외에도 이강원, 황두연 등 강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황택의가 눈에 띈다. 그 전부터 유광우(우리카드), 한선수(대한항고얘 등 세터 중에서도 날카로운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황택의는 특별하다. 팀 내 최다 서브 득점자일뿐 아니라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황택의로 인해 올 시즌 ‘서브’가 더 부각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 한 명 때문에 이렇게 됐다. 황택의 서브 때문이다. OK저축은행이나 대한항공은 이전부터 서브가 강했고, 한국전력도 지난 시즌부터 좋아졌다. KB손해보험은 황택의 세터의 강한 서브로 서브 능력을 극대화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미디어데이에서도 대표 선수로 참석한 선수들 대부분이 “우리 팀의 무기는 서브다”라고 말했다. 올 시즌 서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3.얼굴 바뀐 주전세터, V-리그 지형 바꿔놓다
대개 각 팀들은 주전세터 한 명 체제로 리그를 소화한다. 세터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그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올 시즌에 FA, 트레이드, 부상 등으로 인해 각 팀 주전 세터들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선수는 역시 차세대 대표팀 세터로 주목받는 황택의와 이다영(현대건설)이다. 우선 지난 시즌 신인상 수상자 황택의는 올 시즌부터 당당히 팀 주전세터 자리를 거머쥐었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체질개선에 나선 결과다. 팀 간판 스타 김요한을 OK저축은행에게 내주고 강영준과 김홍정을 데려왔다. 권영민도 한국전력으로 보냈다. 그리고 황택의를 중심으로 리빌딩에 나섰다.
2년차 세터 황택의는 팀의 미래기도 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천재라 평가받은 그는 KB손해보험에 입단해 신인답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올 시즌에는 본연의 임무에 더해 서브와 블로킹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현대캐피탈전에서는 서브 5개, 블로킹 4개 총 9득점으로 팀의 3-0 승리에 일조하기도 했다.
권순찬 감독도 “확실히 택의가 올라왔다. 저 나이에 저 정도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라고 흐뭇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남자부에 황택의가 있다면 여자부에선 21살 동갑내기 세터 이다영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사실 이다영은 179cm의 장신 세터로 주목받았다. 2014~2015시즌 1라운드 2순위로 현대건설에 지명됐다.
빛을 보지 못했다. 팀에 붙박이 세터 염혜선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FA를 통해 염혜선이 떠나면서 기회를 잡았다. 곧바로 주전세터로 발돋움했다.
비시즌 이도희 감독은 이다영 육성에 공을 들였다. 일대일 지도에 나서며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물려주었다. 이다영도 힘든 훈련을 소화하며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했다. 리그 전초전으로 열렸던 천안넵스컵 대회에서부터 자신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이도희 감독은 이다영이 더 성장할 수 있음을 믿었다. 두 번째 경기였던 IBK기업은행 전 이후 “전반적으로 첫 경기보다는 안정감이 생겼지만 기복을 줄여야 한다. 초반에 기선제압 했다면 그 기세를 밀고 갈 수 있는 힘을 다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다영도 “경기 운영에 관해 자세히 말씀해주신다. 경기 도중에도 감독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효과가 좋다. 감독께서 세터 출신이신 게 내겐 득이 되고 있다”라고 신뢰를 보였다.
지난해 평균 5.49개인 세트가 12개로 늘어나면서 시즌 초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다영. 그의 성장에 현대건설도 함께 웃고 있다.
이 외에도 삼성화재는 유광우가 떠나간 자리에 황동일이 들어섰다. 팀 사정에 따라 아포짓스파이커, 미들블로커 등을 오갔던 황동일은 약 4년 만에 세터 자리를 되찾았다. 과연 황동일의 손끝이 팀을 어떤 결과로 이끌지 주목된다.
한국전력도 개막 전부터 강민웅이 무릎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다행히 트레이드로 데려온 권영민이 있어 한 숨 덜었지만 호흡은 맞춰가야 한다.
IBK기업은행도 김사니가 은퇴했다. FA를 통해 염혜선이 합류했지만 아직 선수들과 호흡은 물음표다. 이정철 감독은 염혜선과 이고은을 번갈아 투입하며 지켜볼 것이라 말했다.
4. 팀 옮긴 스타, 그들이 뜨면 감독이 웃는다
올 시즌에는 유난히 팀을 옮긴 선수들이 많았다. 팀의 주전급 선수도 예외는 없었다. FA, 트레이드 등을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개막전부터 빛났던 이들이 있다. 지난 10월 14일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이 승리를 놓고 맞붙었다. 그리고 그 끝에 미소 지은 건 IBK기업은행이었다. 메디와 김희진에 더해 한국도로공사에서 이적한 고예림이 힘을 더했다. 박정아 보상선수로 팀에 합류한 고예림은 첫 경기 서브 3개 포함 15득점을 올렸다.
이정철 기업은행 감독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정아와)블로킹이나 공격에서는 차이가 있다”며 “하지만 잔 볼 처리나 외발 공격 등 자신의 역할을 잘해줬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리시브나 수비도 어느 정도는 지켜줬다”라고 말했다. 고예림은 이후 경기에서도 각각 12, 13득점을 올리며 제 몫을 다했다.
현대건설 황민경도 이도희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이 감독은 “황민경이 들어오면서 리시브 라인이 탄탄해졌다. 황민경-김연견 두 선수로 인해 수비적인 부분은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지난 시즌 리시브 부문 5위(세트 당 7. 162개)에 그쳤던 현대건설은 초반 안정적인 리시브를 바탕으로 연승행진을 달렸다. 김연견과 함께 리시브 라인을 지키고 있는 황민경은 리시브 점유율 32.1%를 가져가며 성공률 46.32%를 기록하고 있다.
팀 동료 양효진도 “우리 팀은 윙스파이커쪽에서 잘 안 풀렸을 때 좋지 않았다. 황민경은 그 자리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선수다.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가 잘 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직 시즌 초반인만큼 다른 이적생들 역시 적응을 마친다면 올 시즌 V-리그는 한층 더 흥미로워질 전망이다. 이적생들이 팀에 어떤 활력을 불러일으킬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5. 토종 에이스, 팀 성적은 우리에게 물어봐
외국인 선수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이전과 달리 2016~2017시즌은 트라이아웃으로 인해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커졌다. 거기에는 외국인 선수 수준이 약간 낮아진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항상 외국인 선수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던 공격성공률도 김학민이 전체 1위(공격성공률 57.12%)에 이름을 올렸다. 2위가 문성민(54.62%)이었고, 3위는 한국전력 전광인(54.41%)의 몫이었다.
올 시즌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7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남자부 대한항공, 삼성화재, 우리카드와 여자부 IBK기업은행, KGC인삼공사가 재계약을 맺었다. 드래프트에 나오는 이들이 기존외국인 선수와 비교해 크게 낫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평준화가 됐다면 아무래도 국내 에이스들의 경기력이 확실한 팀들이 순위싸움에 있어 유리하다. 우리카드 김상우 감독도 “이제 외인 선수간 기량이 비슷해졌다면 국내 에이스들의 경기력이 확실해야 하지만 그 부분에서 우리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카드는 30일 현재 1승 3패를 당하며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최홍석이 부진한 가운데 기대를 모았던 나경복도 부상 탓에 제 컨디션이 아니다. 반면 국내선수진이 탄탄한 팀들은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OK저축은행도 에이스 송명근이 살아나며 지난 시즌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자부에서도 국내선수진이 두터운 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 현대건설은 김세영-양효진이 중앙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사이드에서는 황연주와 황민경이 제 몫을 다하며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디펜딩 챔피언 IBK기업은행도 메디의 안정적인 활약에 김희진, 고예림이 뒤를 받치며 호시탐탐 선두권을 노리고 있다.
전력평준화 속 국내 에이스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올 시즌이다.
글 / 정고은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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