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자가 간다, 동호회 배구 대회에 참여하다!
- 매거진 / 이광준 / 2017-07-26 09:27:00
프로팀과 함께 체력 훈련도 해보고 동호회에서 직접 훈련도 같이 해보면서 웬만한 체험은 끝난 게 아닐까 생각하던 순간,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번엔 대회에 나갈 겁니다. 준비하세요.” 배구는 딱 하루 해본 게 전부인데 대회에 나가라니. 이 놀라우리만큼 무모한 기획도 여지없이 현실이 됐다.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6월 17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개최된 전국 최대 규모 동호회 배구 대회인 ‘2017 경기일보 용인 전국 9인제 배구대회’에 ‘특별 선수’로 참여했다.
특별하지 않은 ‘특별 선수’
맘에 드는 기획은 아니었지만 세상을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어떻게 맘에 드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그래도 처음으로 동호회 배구를 실전으로 해보게 된다는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어찌됐든 기획은 결정됐으니 신속하게 일을 진행했다. 대회를 담당하는 ‘한국9인제배구연맹’에 협조를 요청했고, 더불어 소속 선수로 뛰게 해줄 팀이 필요했다. 다행히 한국9인제배구연맹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줬다. 선수 등록 기간이 지났지만 특별히 명단에 올려 뛸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문제는 어느 팀에서 뛰느냐는 것이다. 딱 하루 해본 나를 과연 어느 팀이 받아줄까…
다행히 서울 송파구에서 활동하는 ‘송파 창스 배구단’이 기꺼이 받아줬다. 아직 내 실력을 제대로 알진 못한 것 같았지만 동호회 배구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다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송파 창스 배구단’ 소속으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특별 선수’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가온 결전의 시간
마침내 떨리는 그 시간이 왔다. 오후 일정이 시작되는 오후 1시까지 용인중학교로 향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다른 팀들이 벌이는 경기를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동호회 배구 대회는 세트 당 21점, 3세트제로 시행되고 있었다. 마지막 3세트는 15점까지만 진행했다. 주심 부심에 선심 두 명과 감독관까지 갖춰 진행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정말 제대로 갖춘 아마추어 대회였다.
한편 대회 전 하루만이라도 ‘송파 창스’와 단체 훈련을 하려 했지만 급작스런 취재 일정으로 훈련계획은 불발되었고 대회 당일에서야 송파 창스 팀과 인사를 나눴다. 송파 창스 팀은 이번 대회에 두 팀으로 나누어 참여했다. 내가 뛰게 될 ‘송파 창스 스타’는 40대 선수로 이루어진 노련한 팀. 대회 시작 전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경기에서 실수를 해도 왠지 용서를 해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경기가 시작되는 2시까지 팀 에이스 장윤성 회원님과 연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지난번 성북 드림 배구단에서 수없이 받았던 리시브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개인 연습을 맡아준 장윤성 회원님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날린 한 마디는 가슴 깊숙한 곳에 날아와 박혔다. “이번엔 벤치 체험기 쓰시겠는데요?”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맨 뒷줄에 서서라도 날아오는 서브 한 번은 받아봐야 배구 기자로서 자존심이 살 것 아닌가? ‘리시브 한 번만 시켜주시길!’ 하는 간절함으로 지난 달 배웠던 기억을 천천히 끌어냈다. 몸아 기억해라… 기억해라… 기억해라…
결전의 순간이 왔다.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선수 등록 확인을 하고 떨리는 맘과 함께 코트 위에 올라갔다. 나름 ‘특별’선수라고 회원 분들께서 남아 도는 유니폼도 하나 챙겨주셨다. 덕분에 구색도 맞춰 코트 위에 설 수 있었다. 우리가 상대할 팀은 의왕 배구클럽. 젊은 선수들이 주 공격수를 맡아 패기 넘치는 팀이었다. 심판 휘슬과 함께 악수를 나누고 파이팅을 외치니 시간은 정확히 두 시, 운명의 1세트가 시작이 됐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송파창스스타 팀은 나를 포함해 총 열 두 명이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건 무슨 뜻이냐고? 시작은 벤치에서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니폼이 주는 힘은 굉장했다. 딱 한 경기 함께 뛰는 것인데 갑자기 내 안에서 무언가 끌어 올랐다. 아, 우리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세트 초반은 의왕 배구클럽이 분위기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0-2에서 우리 팀 세터 민병철 회원님이 연속으로 여섯 개 서브로 상대를 흔들어 역전에 성공했다. 단숨에 넘어온 분위기를 송파창스스타 팀이 놓치지 않았다. 속공, 시간차 등으로 화려하게 공격을 풀어가며 상승세를 탔다. 그렇게 점수 차를 크게 벌리는 데 성공하며 1세트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자 민병철 회원님이 내게 손짓을 보냈다. 드디어 내가 경기에 투입될 때가 온 것이다.
19-11, 1세트 승리까지 두 점을 남겨둔 상황. 숨겨두고만 싶은 ‘특별 선수’가 투입됐다. 팀원들 모두가 함께 손뼉을 마주치며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에 있는 건 오직 하나였다. ‘상대편이 나한테 서브 안 보냈으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상대 서브가 귀신같이 맨 뒷줄에 서 있던 나에게 날아왔다. 짧은 순간이지만 구멍을 알아보는 상대팀의 혜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이 날아오는 찰나의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위해 ‘철저히’ 배웠던 것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쭉 펴서, 몸에 힘을 쭉 빼고, 위로 띄운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리시브가 우리 팀 세터 머리 위로 날아간 것이다. 비록 높이는 조금 낮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세터는 볼을 정확하게 공격까지 연결하며 득점에 성공했다.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조금씩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관중석의 환호, 팀원들의 격려가 들렸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내 얼굴에 드디어 처음으로 웃음이 드리웠다.
슬슬 긴장이 풀려가는 중에 또 하나의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서브 차례가 온 것이다. 건네주는 공을 받아 들고 멍하니 엔드라인 흰색 선 앞에 섰다. 코트 내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제발.
머리 앞쪽으로 공을 살짝 띄우고 상대 코트를 향해 공을 쭉 밀어 쳤다. 살짝 낮은 듯 했지만 다행히 네트 백태 위를 넘어가 실수는 면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을 떠난 공이 상대 리시버 팔에 맞고 코트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었다. TV에서만 보던 서브 에이스를 내가 기록한 순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1세트 세트포인트를 내 서브로 따냈다는 사실이었다. 21-11로 1세트를 따내고 코트를 바꾸기 위해 돌아가는 중에 회원들의 무한한 격려가 이어졌다. 리시브에 서브 득점까지. 이거 진짜 별걸 다 해본다.
밖에서 지켜만 보는 마음은 안타까워라
1세트를 따내 쉽게 분위기가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2세트부터 상대 의왕 배구클럽이 무서운 기세로 점수를 올려댔다. 좋은 분위기였던 우리 팀도 한풀 기세가 꺾이면서 1세트에 안 나오던 실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도 지기 싫은 마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응원에 힘을 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뿔싸.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경기 시작 전 일일 선생님으로 잘 챙겨주시던 장윤성 회원님이 점프를 하고 내려오면서 발목을 삐끗한 것이다. 왼쪽에서 공격을 담당하던 분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추격하던 분위기가 꺾이게 됐다. 밖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결국 2세트를 11-21로 내주고 3세트에 돌입했다. 2세트 패배와 선수 부상이 겹쳐 분위기가 좋지 못했지만 다들 쉽게 물러서지 않으려 힘을 냈다. 보다 못한 장윤성 회원이 고통을 참고 다시 코트에 들어서는 투혼을 보여줬지만 결국 3세트를 11-15로 내줘 송파창스스타가 첫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웃는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렇게 내 생에 첫 배구 대회 체험은 끝이 났다. 3세트 접전 끝에 패한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색다른 체험을 해본 터라 후회는 없었다. 내 아쉬움보다는 회원 분들의 아쉬움이 물론 몇 배는 더 컸을 것이다. 짐을 들고 경기장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유독 무거웠다. 그 때 동호회 회장님이 크게 목소리를 냈다.
“수박 먹고 털어버리자.”
응원 온 가족들까지 모두 모여 아이스박스 속 수박을 먹으며 패배의 아픔을 씻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느새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 이것이야말로 동호회 운동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팀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내게 하나 둘씩 다가와 고생했다고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오히려 고생은 내가 아닌 회원 분들이 많이 하셨는데. 그런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경기를 마치고 사진 촬영과 함께 이번 일정을 마무리했다. 우연히도 사무실이 위치한 송파구 팀과 함께 하게 되어 반가웠고 고마웠다. 가까운 곳에서 운동하고 있으니 꼭 다시 오라는 인사를 받고 경기장을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호회 배구인들의 열정을 깊게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점수 하나하나에 희비가 갈리는 치열했던 대회 현장은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8개 리그로 나누어 진행하는 이번 대회로 주말 내내 용인시내가 북적거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호회를 통해 배구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속에 잠시나마 몸을 담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이었다.
마지막으로 취재를 위해 늦었음에도 선수 등록을 허락해준 한국9인제배구연맹과 부족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경기장 위에 올라갈 수 있게 해준 송파창스 회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송파 창스 클럽은? (feat. 회장님)
서울시 송파구에서 활동 중인 송파 창스 클럽은 예전 배구 슈퍼스타였던 장윤창 선수(현 경기대교수)가 배구 발전을 위해 만든 ‘장윤창 배구스쿨’의 약자다. 창단한지는 17년째 되었고 현재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가동초등학교에서 일주일에 3회(화, 목, 일요일) 모여서 훈련하고 있다. 순수 동호회로 교사, 학생 등 각양각색 회원들이 활동 중에 있다. 회원 수는 20~30대 40명, 40대 15명, 여성 회원이 약 20명 정도 있다. 정회원으로는 70명, 준회원 포함하면 100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한때 전국 최강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슬럼프를 겪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를 벗어나고자 20~30대가 주축이 된 ‘송파창스드림’과 40~50대 회원으로 구성된 ‘송파창스스타’로 분리해서 출전했다. (이번 용인대회에서 송파창스스타는 비록 예선 탈락했지만 송파창스드림은 클럽 2부 리그 나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친목 도모와 함께 즐거운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니 관심 있는 송파 분들께서는 주저하지 말고 찾아가시길.
홈페이지 주소 http://cafe.daum.net/happyvolleyball
글/ 이광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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