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베로라 쓰고 김해란이라 읽는다
- 매거진 / 이광준 / 2017-07-08 09:09:00

어느덧 여섯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힐링캠프 초대석 섭외 1순위였던 주인공. 김해란(33)은 올해 FA 이적으로 세 번째 둥지를 마련했다. 그는 진천선수촌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리베로는 어쩌면 김해란의, 김해란에 의한, 김해란을 위한 포지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디그 여왕, 이제서야 그를 만났다.
김해란 OST. PART 1
더 준 ‘한 걸음 더’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이 세상도 사람들 얘기처럼 복잡하지만은 않아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 봐
우리 지친 마음 조금은 쉴 수 있게 할 거야
대한민국 여자배구 최고 리베로 김해란.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그는 올해로 23년째 이 길을 걷고 있다. 포지션만 공격수에서 리베로로 바뀌었다. “12살 때 키가 166cm로 지금과 비슷했어요. 또래에 비해 신장이 크니 자연스레 배구를 권유 받았죠. 사실 공부를 싫어했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운동에 관심이 갔어요. 그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쭉 중앙 공격수였어요. 하필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목 부상으로 수술을 했어요. 1년 유급해 재활하고 실업 팀에서 공격수 생활을 이어가려 했어요. 그런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결국 포지션을 리베로로 바꿨어요. 2002년, 포기하려던 찰나에 도로공사에서 저를 불러주셨죠.”
그는 운 좋게 넓은 물로 나왔다는 표현을 썼다. 뜻하지 않게 리베로로 전향했으나 어려움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미들블로커였지만 사실상 윙스파이커처럼 했어요. 공격하면서 리시브도 다 했고요. 덕분에 리베로 포지션에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고2 때 유스 대표팀에서도 리베로로 뛰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리베로는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니까 되더라고요.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인가 봐요.”
공격수에 대한 미련도 말끔히 지웠다. 2015년 올스타전에서 공격을 하다 왼쪽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것이 컸다. “공격을 계속 하고 싶었어요. 개인 운동할 때 재미 삼아 공을 때려보곤 했어요. 근데 올스타전 때 다쳐서 수술대에 올랐잖아요. 그 뒤론 공격에 대한 욕심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김해란은 당시를 떠올리며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부상으로 재활 중이던 그는 KGC인삼공사 리베로 임명옥과 일대일 트레이드가 됐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세 번이나 FA자격을 얻었지만 매번 친정 팀과 의리를 지키던 그였다. 그런데 힘들었던 시기에 타의로 팀을 옮기게 됐다. 김해란에겐 지울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어이없이 다친 게 오히려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한 팀에서 계속 머물다 보면 스스로 안일해지거나 자기 밖에 모르는 선수가 될 수도 있는데, 팀을 옮기면서 제 자신이 변하더라고요. KGC인삼공사로 갔을 때 팀을 끌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고, 후배들에게도 더 잘해주려 했어요. 그냥 다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더 저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씩씩하게 말했지만 그 시기는 그에게 ‘슬럼프’이기도 했다. “수술하고 입원해있을 때 너무 아파서 ‘다시 할 수 있을까? 운동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어요. 힘들어서 그만두려 했어요. 근데 재활하다 흐지부지 은퇴하는 건 싫었어요. ‘열심히 회복해서 내 플레이를 보여주고 은퇴해야지’라고 다짐했어요. 남편도 참고 도전해보라고 격려해줬어요. 거기서 무너졌으면 그대로 선수생활이 끝났을 거예요. 새 팀에서 나아진 모습 보여드리려고 독하게 재활했어요.”
그렇게 새 소속 팀 KGC인삼공사에서 두 시즌을 보냈다. 김해란은 2016~2017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었고 흥국생명으로 이적을 결정했다. 이런 저런 고민이 깊었으나 자신을 진정으로 원하는 팀이 흥국생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베로 포지션의 가치를 높이려는 바람도 있었다. KGC인삼공사 서남원 감독도 김해란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FA기회를 누리라고 했다. 김해란은 서 감독이 본인을 잡아주길 바랐을까? “반반이었어요. 감독께서 미안해서 못 잡겠다고 하셨거든요. FA 시장에 나가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는데 기회를 주고 싶다고요. 그러면서도 많이 서운해하시는 게 표정에서 보였어요(웃음). 감사했죠.”
정작 KGC인삼공사 후배들은 이별을 힘겨워했다. 숙소는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 될 때는 선수들을 안 보고 가겠다고 했어요. 그냥 왔어요. KGC에서도 조용히 나오고 싶었는데 감독께서 다같이 서서 인사를 나누고 가라고 하셨어요. 선수들이 엄청 울었어요. 동생들에게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어요. 저는 꾹꾹 참고 나와서 나중에 혼자 울었죠.”
가만히 듣다 보니 김해란이란 선수는 후배들에게 참 멋진 선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이 우는 걸 보니 무척 고마웠어요. 저는 무뚝뚝하면서도 뒤에서 챙겨주는 스타일이거든요. 처음엔 저를 무서워하고 ‘언니가 나를 싫어하나’ 하고 오해하거든요. 생활하면서 점점 제 진심을 알아준 것 같아요. 저도 잘했다고 느껴요.”
이제 KGC인삼공사 색깔은 지워야 한다. 흥국생명에 오롯이 녹아 들어야 할 시간이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김해란에게 주장 임무를 내렸다. “감독께서 제가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줬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팀 중심을 잡아줄 언니 역할을 바라셨어요.”
흥국생명에는 기존 한지현 김혜선 도수빈에 이적생 김해란과 보상선수로 온 남지연(전 IBK기업은행)까지 리베로만 5명이 있다. 김해란이 남지연 이름을 먼저 꺼냈다. “지연 언니와 같은 팀에서 뛴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거든요.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있는데 말하지 않아도 그걸 다 알아요. 감독께서 지연 언니에게 제가 주장을 맡을 거라고 말씀하셨나 봐요. 언니가 ‘나는 항상 널 도와줄 거고, 너에게 힘을 실어줄 거야. 같이 팀을 잘 이끌어보자’라고 했어요. 좋은 동반자가 생긴 듯 해요.”
김해란은 후배들 이야기에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리베로 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죠. 근데 애들이 먼저 다가와서 ‘언니들을 보며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솔직히 경기를 누가 뛰고 못 뛰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든 혼자서 한 시즌 내내 버틸 순 없으니까 옆에서 함께 뛰어줘야죠. 주위에서 여러 이야기가 들렸어요. 하지만 내부에서는 다들 서로 도와주려는 분위기예요. 선수들이 착해서 잘 따라올 것 같아요.”
김해란 OST. PART 2
JYJ ‘Only One’
네 곁엔 내가 있으니 나와 함께 가
누구보다도 넌 강해 믿고 있어 난
너를 다 보여봐 더 힘껏 날아봐
단 하나뿐인 빛나는 너의 모습이 난 좋아
#비결은_고지식함 #대표팀_대화는_필수 #그랑프리_파이널까지
지난 6월 7일, 홍성진 감독을 필두로 2017 월드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대표팀이 소집됐다. 14명 선수 중 맏언니는 당연히 김해란 몫이었다. 그는 2016 리우올림픽이 본인에게 마지막 대표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에서 선수 생활을 3년 더 연장하며 다시금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금까지 불러주신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자부심도 느끼죠. 하지만 잘하는 후배들도 많은데 제가 앞길을 막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만큼 열심히 하려고요.”
오랫동안 꾸준히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 궁금했다. “성격이 워낙 고지식해요(웃음). 남편도 축구선수 출신에 코치를 하고 있어서 똑같아요. 저는 밤에 놀지를 못 해요. 외출이나 외박을 받아도 무조건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해요. 원래 군것질을 즐기는데 남편이 프로선수니까 자제 좀 하라고 해서 참고 있어요. 대신 밥을 잘 챙겨 먹으려고 하죠.”
이번 대표팀에는 김연경 김희진 양효진 박정아 등 기존 주축 멤버들이 대거 포함됐다. 여기에 리베로 김연견, 세터 이소라, 미들블로커 한수지, 아포짓 스파이커 김미연 등이 합류했다. 본래 강소휘도 이름을 올렸으나 위벽 종양 수술로 인해 황민경이 그를 대신했다. 주전 세터였던 이효희가 자리를 비워 세터 염혜선 역할이 커졌다. 2020 도쿄올림픽을 겨냥한 홍성진 감독표 세대교체였다. 그렇다면 김해란도 도쿄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은 예전에 언니들이 했던 것보다는 실력이 조금 부족해요. 멀리 내다보고 이제부터라도 경험을 쌓고 실력을 끌어올려야 해요. 가능성은 충분하니 차근차근 좋아질 거라 믿어요. 저도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또 설 수 있다면 좋겠죠. 근데 3년 뒤면 한국 나이로 37세가 돼요. 제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잘 모르겠어요.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김해란은 덤덤한 표정으로 후배들을 걱정했다. 조언 한 마디 한 마디에 따스함이 묻어났다. “부담감을 갖고 하면 본인이 가진 실력이 나올 수 없어요. 저도 할 만큼 한 베테랑이지만 요즘도 가끔 긴장이 되거든요. 그럼 잘하던 것도 안 되더라고요. 연견이는 대표팀이 처음이고, 소라도 오랜만에 들어왔고, 혜선이도 세터로서 어깨가 무거울 거예요. 그런 마음들을 내려놓고 열심히 하면 그만큼 성과가 있을 거라 믿어요. 선수들끼리 선후배를 떠나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해요. 그래야 자신감을 실어줄 수 있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어요. 코칭스태프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보자’라고 한 마디만 던져주셔도 선수들은 거기에 큰 힘을 얻거든요.”
수많은 국제무대를 거쳐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떤 것일까. “2012 런던올림픽이 제일 의미 있죠. 4강에 올랐으니까요. 그때는 선수단 전체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돌아갔어요. 2014 인천아시안게임도 우승을 해서 기억에 남고요. 지난해 리우올림픽은 아쉬움에 자꾸 떠올라요. 마지막 올림픽이라 여기고 임했는데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 해서요.”
여자대표팀은 3년 만에 월드그랑프리에 나가게 됐다. 목표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가 2그룹이죠? 아이고 죄송해요(웃음). 이제 나이가 들어 대표팀에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조금 부족했어요. 저희는 결승 올라가야죠. 파이널까지 가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김해란 OST. PART 3
유해준 ‘나에게 그대만이’
오늘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대 울지 말아요 시간이 지나서
우리 하나되는 그날에 나와 함께할 그대
#포스트_김해란은_누구 #나는_행복합니다 #기록왕_수비왕
여전히 현역 최고라 불리는 김해란. 그녀가 눈여겨보는 리베로 후배, ‘포스트 김해란’은 누구일까? “개인적으로 (나)현정(GS칼텍스)이랑 친해요. 예전부터 현정이가 제일 눈에 띄었어요. 최근에는 실력이 정말 많이 올라왔고요. 이번 대표팀에 현정이가 뽑히지 않은 게 저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해요. (김)연견(현대건설)이는 워낙 발이 빠르고 순발력이 뛰어나서 점점 더 좋은 선수가 될 듯 해요. 흥국생명 리베로들도 잘하고 있어요. 어린 리베로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와서 기뻐요.”
젊은 선수들 성장은 한편으론 김해란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이는 선배로서 책임감이었다. “제가 이 나이에 긴장을(웃음)? 장난이고요. ‘저 친구가 쫓아오니까 나도 더 잘해야지’라는 마음은 없어요. 제 자리는 선배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제 몫을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고요. 실력 있는 후배들을 보면 ‘와 좋아졌네. 앞으로 더 잘하겠다’라며 뿌듯해하는 정도예요.”
배구인생에 굴곡이 잦았으나 그는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았다.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딱 꼽을 순 없어요. 그냥 문득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구선수하길 잘했다고요. 이렇게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고 응원도 받고 든든한 동료들도 얻었으니까요. 선수로 지내다 보면 갑자기 종종 그런 행복이 느껴지곤 해요.”
그 바탕에는 가족들 배려도 있었다. “원래 남편과 35세까지만 현역 생활을 하자고 약속했거든요. 근데 은퇴를 하기에는 너무 아쉬웠어요. 여태껏 후회 없이 했는데 그만 둘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요. 흥국생명에서 기회가 와서 남편도 시부모님도 이해해주셨어요. 이적을 결정하고 나서도 애를 낳아야 하는데 너무 오래하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결혼이나 출산이 늦어지는 추세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는 특히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섭섭했어요. 제가 가끔 힘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내 편을 들어줬으면, 내 처지에서 얘기해줬으면 하고 말한 건데 반대로 따끔하게 조언을 하더라고요. 너무 서운해서 울기도 했어요. 근데 듣다 보니 이 사람이 나를 위해서 쓴소리 하는 거란 걸 알았어요. 소속 팀에서 운동할 때는 선생님들이 저한테 싫은 소리를 잘 안 하시거든요. 자칫 제가 해이해질 수도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잡아준 거죠. 그때부터 이해하게 됐어요. 나중에 남편이 미안하다고, 절 위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하더라고요.”
김해란은 자녀 계획에 관해서도 슬쩍 고민을 털어놓았다. “딸을 너무 갖고 싶어요. 엄마에게는 딸이 필요하다고 느꼈거든요. 제가 저희 어머니께 하는 것도 그렇고요. 남편은 아들을 더 원하는 눈치예요. 첫째로 딸이 태어나면 한 명 더 낳을까 했는데요. 만약 아들을 먼저 낳으면 둘째도 아들일 것 같아요(웃음). 저는 아이들에게도 후배들한테 하는 것처럼 할 것 같아요. 해달라는 거 다 해주지 않고 엄하게 키우려고요. 대신 뒤에서 잘 챙겨주는 엄마가 될 거예요. 막상 내 새끼가 나오면 너무 예뻐서 이것저것 다 해줄 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배웠어요.”
선수 이후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젠간 은퇴를 해야 한다. 머지 않은 일이다. “아쉬움이 제일 크겠죠. 아직은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요. 은퇴 이후는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았어요. 흥국생명 올 때 지도자에 관한 조건을 얘기하고 왔어요. 선수 생활을 마친 팀에서 같이 뛰던 후배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요. 팀에서 그걸 잘 받아들여주셨어요.”
김해란은 의심할 여지 없는 기록의 여왕이다. 숱한 수치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우선 한 경기 최다 디그 1, 2위(각 54, 53개)가 모두 그의 몫이다. 역대 통산 수비(11,467개)와 디그(7,687개) 1위에도 이름을 새겨 넣었다. 리시브에서는 전체 2위(3,780개)에 올랐다. 해당 부문 1위는 남지연(4,197개)이다. 이중 김해란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1만 수비예요. 남녀 통틀어 1위였고, 친정 팀 도로공사와 경기(2015년 11월 29일)에서 달성해서 더욱 뜻 깊어요. 그날 경기 전에 개수가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을 듣고 꼭 하려고 했어요. 사실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도로공사를 정말 이기고 싶었는데 졌어요(세트스코어 2-3). 1만 수비는 달성했지만 경기를 져서 기쁘진 않았어요. 지나고 나니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이란 걸 깨달았죠.”
그 이상으로 정복하고픈 고지도 있을 법 했으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인을 위해 하고 싶은 건 없어요. 제 위치에서는 후배들과 팀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가 중요해요. 나이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하고요. 부상을 달고 있지만 더 아프지 않게 신경 써야 해요. 지금처럼만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테고, 나아가 최종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거예요.”
그가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챔피언뿐이었다. “정규리그 우승은 해봤지만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못 해봤어요. IBK기업은행 (김)사니 언니가 챔프전 우승하고 코트를 떠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언니한테도 진짜 존경스럽다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얘기했거든요. 챔피언에 오른 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길 바라요.”
김해란은 마지막으로 언제나 본인에게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게 큰 힘이 돼요. 앞으로도 좋게 봐주시고, 경기장도 자주 와주세요. 제가 팀을 옮겼으니 흥국생명 김해란도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ehind Story
인터뷰를 위해 오후 훈련 준비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나온 김해란. 기자가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하자 “괜찮아요. 나이 드니까 낮에는 잠도 안 와요. 매일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요. 인터뷰 하면 좋죠”라며 웃었다.
이날 촬영을 의식한 걸까. 김해란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국생명 분홍색 유니폼에 맞춰 입고 나왔다. 분홍색 머리 끈으로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했고, 핫핑크색 배구화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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