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등 리베로가 될테야", 송산고 박경민
- 매거진 / 정고은 / 2017-06-22 12:46:00
동그란 버섯 모양 머리를 한 선수가 쭈뼛쭈뼛 다가와서는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 묻는 말에는 작은 목소리로 겨우 한 두 마디 대답한다. 11년 배구 선수생활을 통틀어 첫 인터뷰란다. 그래 놓곤 훈련이 시작되니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송산고 리베로 박경민, 이 선수 볼수록 매력 있다.
지독한 연습벌레
박경민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형을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관둔 형과 달리 그는 아직도 배구공을 잡고 있다. 물론 큰 위기는 있었다. 송산고 입학 직후였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8년간 쭉 세터만 했어요. 키가 더 클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제 키가 너무 작아 세터를 계속 하기엔 무리가 있더라고요. 결단을 내려야 했어요. 결국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꿨죠. 그러나 많이 후회했어요. 세터를 못 하게 됐으니까요. 그동안 운동해온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세터라는 포지션 특성상 리시브 훈련은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리시브를 하게 된 것이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따라주지 않았고, 주위 시선도 따가웠다. 당시 만 나이 16세였던 박경민이 견뎌내기엔 버겁기만 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진지하게 그만둬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때 강보식 전 감독(현 한양대 코치)께서 ‘너는 할 수 있어’라고 한 마디 해주셨어요. 주위에서도 ‘넌 운동 신경이 좋아서 금방 적응할 거야. 나중에 꼭 성공할거야’라며 격려해줬어요. 정말 그 말만 믿고 열심히 했어요. 제일 도움이 됐던 건 부모님이에요. 아무 말 없이 믿어주셨어요. 그래서 참고 버텨봤어요.”
단기간 내에 실력을 쌓으려 했으나 시간은 속절없이 부족했다. 박경민은 잠을 포기하고 훈련을 택했다. “방학 때는 잠을 거의 안 잤어요. 아침 식사가 7신데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운동했어요. 오전, 오후 훈련을 마치면 야간에 또 나와서 새벽 2시까지 훈련했고요. 노경민 이상우 등 3학년 동기들이 함께 해줬어요.”
한 뼘 더, 국가대표로 성장
박경민은 올해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청소년 대표팀 내 유일한 리베로로 2017 제11회 아시아유스남자선수권대회(3/28~4/5 미얀마)에 출전했다. 한국은 일본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래도 상위 4개 팀에 주어지는 세계유스남자선수권대회(바레인)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 국제대회. 박경민에게는 배움의 장이 됐다. “파워가 센 외국 선수들 공을 받고 왔잖아요. 한국에 돌아오니 예전보다 리시브가 조금 더 쉽다고 느껴졌어요. 기억에 남는 팀은 중국이에요. 키가 워낙 커서 네트 앞에 세 명이 서있으면 서브 넣는 선수가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힘들었어요.”
‘박경민’이라는 이름 뒤에는 수비가 좋다는 평가가 늘 따라다닌다. 그는 겸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리시브는 아직 많이 부족하죠. 몸이 안정감을 익힐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 훈련을 하려고요. 그래도 디그는 고등학생 중에서는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요.” 내친 김에 그에게 스스로 장단점을 골라보라고 했다. “장점은 운동 신경과 스피드가 좋다는 거예요. 단점은 키가 너무 작고 팔이 짧아요. 디그 하나를 하려고 해도 다른 선수들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해요.”
박경민은 라이벌로 같은 학년생 두 명을 골랐다. “송림고 박민제와 속초고 이성호예요. 둘 다 리시브와 디그를 빠짐없이 잘해요. 민제 형에게는 파이팅을 배우고 싶어요. 성호는 리시브 부문에서 1등인 것 같아 닮고 싶어요. 제가 제일 약한 게 파이팅이거든요. 성격이 약간 소심해서요. 그래도 경기 들어가면 공격적으로 바뀌는 듯 해요.”
다른 팀 선수들 중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묻자 얼굴이 환해졌다. “송산고에서 저랑 (오)흥대, 제천산업고 (임)동혁이, 동해광희고 이 준까지 넷이서 아주 친해요. 경기장에서 만나면 기 싸움이 장난 아니죠(웃음). 경기 전에는 서로 이야기를 거의 안 해요. 코트 들어가면 눈도 안 마주치고요. 경기 다 끝나고 나서야 웃으면서 얘기해요. ‘너 왜 내 공 받았냐?’ 이런 식으로요.”
박경민을 포함한 송산고 선수들은 코트 안과 밖에서 모습이 180도 다르다. 운동 시간에는 파이팅을 외치거나 호흡을 맞추는 것에만 집중할 뿐 웃음기가 쏙 빠진 분위기다. 훈련을 마친 뒤 쉬는 시간에는 다시 여지없는 남고생으로 돌아온다. 외출을 받으면 PC방에서 노래방까지 코스가 정해져 있다. 학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 또한 비슷하다. “저 공부 진짜 못해요. 대학 가려면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려고요. 잠 안 자고 공부해볼게요. 평소엔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미있긴 한데요, 저는 혼자 있는 게 좋아요. 혼자 있을 땐 주로 걸 그룹 노래를 들어요. 트와이스 최고!”
최후에 미소 짓는 자
어느덧 고등학교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는 박경민. 대학 진학을 코앞에 뒀다. “인하대 가고 싶어요. 배구를 잘하는 팀이고 운동 분위기도 좋아 보여요. 인하대에 친한 형들이 있거든요. (임)승규 형이랑 (한)국민이 형 등은 송산고 출신이고요.” 물론 동경하는 프로 팀도 있다. “지난 시즌 챔피언 현대캐피탈이요. 경기할 때 웃으면서 즐겁게 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나중에 드래프트 나가면 프로 팀에 뽑힐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그는 리베로 포지션 롤모델도 대학 팀에서 한 명, 프로 팀에서 한 명을 선택했다. “인하대 이상혁 형이요. 그 형도 키가 173cm로 저랑 비슷해요.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대학에서 팀이 1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멋져요.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어요. 아예 모르거든요. 프로에서는 한국전력 오재성 형이요. 이번에 월드리그 대표팀에도 들어갔잖아요. 진짜 잘하는 것 같아요.”
송산고에서 시간이 약 6개월 가량 남았다. 올해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작년에 저희가 처음으로 전국체전에서 우승했어요. 올해도 한 번 더 해서 2연패를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올 시즌이 끝나면 리시브 1위, 디그 1위에 제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70% 정도는 자신 있어요.”
마지막으로 박경민은 용기 내어 당찬 한 마디를 전했다. “열심히 해서 마지막에 웃는 선수가 될게요. 꼭 1등 리베로가 돼서 프로 팀에서 뵙겠습니다.”
감독 Comment : 송산고 정우선 감독
정우선 감독은 지난해 6월 1일 새로 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부임 5개월 만에 전국체전 첫 우승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그는 송산고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탄탄한 기본기를 통해 실속 있는 팀을 만들고자 했다. 최근 몇 년 간 경기 기록지를 일일이 분석했고, 선수들에게 비디오와 함께 보여주며 부족한 점을 짚어줬다. 배구 기술뿐 아니라 생활 면에서도 가르침을 이어갔다. 동료들간 상호존중을 가르치거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했다. 때로는 부모님에게 손 편지를 쓰게 하는 등 바른 인성을 강조했다.
그런 정 감독 눈에 들어온 선수가 있다. 그가 바로 박경민이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경민이는 감각이 정말 뛰어납니다. 약속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마치 약속한 것처럼 플레이를 만드는 센스가 있습니다. 세터 출신이라 기본적으로 공 연결도 좋고요. 리베로가 그런 능력을 겸하고 있다 보니 큰 도움이 됩니다. 리베로라는 포지션에도 완벽히 적응했습니다. 담력이 상당히 좋거든요. 긴장을 즐길 줄 알고 결정적인 순간에 강하죠.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팀 내에서는 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선수입니다. 동기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예의범절을 잘 지키고요. 본인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근성을 갖췄습니다.”
박경민 Profile
포지션: 리베로
신장: 171cm
학년: 3학년
생년월일: 1999-06-05
출신교: 하양초-소사중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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