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배구선수 가족, 그들이 사는 세상

매거진 / 이광준 / 2017-05-22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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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배구선수들 가족을 조명해봤다.
선수의 아내, 남편, 엄마, 아빠이자 자녀인 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 가족, 당신이 최고라고.





든든한 남편, 늘 응원합니다! 한선수 아내 성시현 씨 (32세)




아내의 고충



남편과는 친구 통해서 알게 됐어요. 소개팅은 아니었고요. 2년 넘게 친구로, 묘한(?) 사이로 알고 지냈어요. 그러다 연인으로 발전해 8개월 정도 연애 후 결혼했죠. 남편이 너무 유명하고 인기 많은 선수라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근데 친구일 때부터 봐와서 금방 적응한 것 같아요. 연애할 때 일인데요. 보통 퇴근길에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선수를 기다렸다가 만나고 가잖아요. 근데 전 남편을 한 번도 안 만나고 그냥 갔어요. 남편이 왜 그냥 가냐고 서운해해서 한 번 기다려봤는데요. 멀리서 지켜봤는데 팬이 워낙 많아서 포기했어요.



선수 아내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고충도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운동선수 가족들은 다 그럴 거예요. 딸 효주가 아주 어릴 땐 육아가 힘들었죠. 가끔은 넓은 집에 아이랑 둘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서웠어요. 아무래도 일반 남편들과 달리 선수들은 늘 가족 옆에 있기가 힘들잖아요. 지금은 남편이 출퇴근을 하니까 좀 나아졌죠. 근데 떨어져 있는 게 익숙해지니 출퇴근 하는 게 더 어색해요. 프로선수니까 잘 챙겨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부담스럽기도 해요. 그래도 가족들이 남편을 자랑스러워 할 때 저도 기분 좋아요. 효주가 배구장을 일찌감치 다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 아빠라 그런 건지 모르지만, 아빠를 아주 멋있게 생각하더라고요. 유치원에서도 효주가 하도 자랑하고 다녀서 아빠가 한선수인 걸 다 알아요. 제가 배구선수인 것도 아닌데 뿌듯하더라고요.



선수는 못 말려



저만의 특별한 내조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남편이 예전보다는 집에 자주 오지만 시즌 중에는 경기가 많아서 숙소에서 모든 걸 해결해요. 쉬는 날도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대신 심리적인 부분을 신경 써요. 제 한 마디에 이 사람 기분이 좌지우지 될 수도 있잖아요. 경기에서 지면 괜히 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정작 본인이 마음 졸이면 경기가 잘 안 될 텐데 다행히 이 사람은 멘탈이 아주 건강해요.



남편 성격이 4차원이라는 소문도 많죠? 확실히 남들과 같은 포인트는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특이한 생각을 해요. 일상이 늘 그래서 딱히 기억나는 건 없네요. 인상 깊은 게 너무 많아서요. 무뎌졌나 봐요. 예를 들면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해요. 뜬금 없이, 시도 때도 없이요. 문제는 선물 받는 사람이 뭐가 필요한지, 취향 같은 걸 고려하지 않아요. 이 분은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사요. 배려심이 1도 없어요(웃음). 그래도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 누가 선물해주면 좋은 그런 것들이긴 하죠. 저는 돈 주고 쓰레기를 산다고 놀려요. 얼마 전엔 (곽)승석 씨 아내에게 허스키가 크게 그려진 티를 입으라며 선물을… 사실 그게 애정표현이거든요.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얘 진짜 뭐야?’ 할 거예요. 저희도 집에 쓰레기가 넘쳐난답니다.



가족 다같이 커플 운동화를 맞췄는데요, 제가 예쁜 치마를 입고 나왔는데도 무조건 그 운동화를 신으라고 하고요. 무언의 압박이 있어요. 저도 세뇌 당했는지 이제 남편이 그렇게 안 하면 서운할 정도예요. 효주를 낳을 때도 그랬어요. 시즌 후반기라 경기가 많았을 때거든요. 다행히 하루 쉬는 날 출산했는데 남편이 분만실에 처음 들어와 신기한 게 많았나 봐요. 저 진통하는데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계속 질문을 하는 거예요. 이 정도면 4차원 맞죠? 지금도 왜 인터뷰를 메시지로 하냐며 ‘전화로 해 다 듣게~왜 그래!’라며 훼방을 놓네요(웃음).



효주 친구 선수



팬 분들이 남편뿐만 아니라 효주도 정말 예뻐해 주세요. 진심이 느껴져서 감사해요. 너무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저희는 배구선수도 아닌데 가족이라고 함께 챙겨주셔서 감사하죠. 사진도 많이 찍어주셔서 경기장 갈 때 효주 옷을 예쁘게 입히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도 평소에는 화장 잘 안 하는데 경기 날에는 마스카라까지 꼭 하고 가고요. 집안일은 제가 할 일이라고 정해뒀어요. 잘하진 못 해도 효주 아빠한텐 안 시켜요. 남편에겐 효주랑 놀아주는 등 아빠로서 할 일만 꼭 해달라고 했어요. 본인도 노력하더라고요. 놀아주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진 않지만 효주가 아빠를 좋아하니 그걸로 된 거죠. 또, 효주가 아빠를 친구처럼 여겨요. 눈높이가 딱 맞나 봐요. 휴가 기간에는 일단 직전 시즌의 아쉬움을 털어내는 데 집중했어요. 남편의 인형 뽑기 사랑도 그 중 일부라 생각하고 봐줬어요. 하지만 정말 그만했으면 해요. 돈도 돈인데 집에 50개 넘게 쌓여가는 인형들이 아주 골칫거리예요.



그래도 이 사람 정말 든든한 남편이에요. 효주 친구 같다는 건 가끔이고요.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묵묵하게 변명 없이 자기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에요. 한편으론 안쓰러우면서도 그만큼 든든해요. 제가 너무 남편 흉만 본 거 아닌가요? 조금 미안하네요(웃음). 남편이 군대 다녀오고 나서 ‘이제 선수생활이 오래 남지 않았구나’하고 서로 느꼈어요. 저는 이 사람이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고 하고 싶을 때까지 오래오래 배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해줄 수 있는 건 힘내라는 말뿐인 것 같아 미안하네요. 그래도 여보, 끝까지 힘내주길 바라요. 열심히 응원할게요!





한 코트에서 뛸 날을 기다리며... 여오현 아들 여광우 군 (11세)




아빠 미안, 전 훌륭한 세터가 될래요



평소에 아빠가 배구하는 걸 많이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아빠가 집에서도 풍선 공으로 놀이를 자주 해주거든요. 그래서 저도 작년(4학년 2학기)에 배구를 시작했어요. 원래 공격수로 시작했는데 세터가 하고 싶어서 올해부터 포지션을 바꿨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세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포지션 욕심도 없어요.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리베로는 끌리지 않았어요.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리베로인지는 알고 있어요. 아주 잘하는 선수 맞죠? 멋지고 배구 잘하는 선수요. 평소에 친구들에게 자랑은 안 해요. 아빠 얘기가 별로 안 나와요. 근데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헤어스타일을 아빠처럼 한 건요, 아빠를 따라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머리는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이제 더워져서 머리를 더 잘랐어요. 롤 모델은 (노)재욱이 형이요. 아빠랑 형 중에 누가 더 좋으냐고요? 아…아 그건… 둘 다 좋아요. 제가 재욱이 형을 많이 좋아해요. 예전에 숙소 놀러 갔을 때 만난 적 있어요. 형이 저한테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자상한 아빠, 멋진 코치



아빠랑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게 좋아요. 제주도도 갔고 해외도 가봤어요. 가족들 다같이 다녔어요. 제 동생 광민이가 지금 8살(한국나이)이거든요. 얘도 배구를 할지 모르겠어요. 운동선수는 하고 싶대요. 종목은 아직 못 정한 거 같아요.



아빠가 배구선수여서 좋은 점은 배구 경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또 저도 배구를 하니까 이것 저것 자세히 알려줘요. 기본기에 대해 설명해줬어요. 리시브 같은 걸 할 때 기본 자세를 예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요. 안 좋은 점이나 불편한 점은 잘 모르겠어요.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아빠는 국내에서 리시브를 제일 잘하는 선수예요. 우리 가족에게도 잘해주는 사람이에요. 아빠가 얼마 전에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잖아요. 그 모습을 보니까 즐겁고 기뻤어요. 저는 눈물은 안 났어요.



국가대표를 향해



빨리 커서 아빠랑 한 코트에서 같이 뛰어보고 싶어요. 욕심나요. 같이 뛰면 들뜰 것 같아요. 우리 아빠는 그때까지 선수 할 수 있어요. 몸 관리를 잘하니까요. 만약에 코치나 감독으로 아빠를 만나면 뭔가 긴장될 것 같아요. 엄청 어려울 거예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세터를 할 거예요.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금메달 따서 아빠에게 보여줄래요.




삶이 되어버린 배구,박철우 아내 신혜인 씨 (32세)




착한 남편



남편과는 22살 때 만났어요. 그 당시 같이 운동하는 85년생들 동갑내기끼리 모임이 있었어요. 배구 선수, 농구 선수 할 것 없이 자주 모여서 밥도 먹고 했죠. 남편은 대학을 안 가고 바로 프로로 갔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몰랐어요. 어느 날 배구하는 친구가 모임에 남편을 데리고 나와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5년 정도 사귀다가 결혼하게 됐죠.



아버지(신치용 삼성화재 단장) 반대요? 박철우라는 사람 때문에 반대하신 건 아니었어요. 다만 운동선수라는 직업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죠.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화려할 수는 있지만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에는 좋은 직업은 아니잖아요. 집에 자주 못 오기도 하고. 그런 부분 때문에 걱정을 하셨던 것 같아요. 저보고 결혼까지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거라고 얘기하시기도 했죠.



남편은 일단 성실하고 착해요. 운동선수라는 것을 떠나서 나중에 성실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만나서 오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흘러갔던 것 같아요(웃음).



아빠의 부재, “소율아 미안”



솔직히 말하면 결혼하고 나서 고충을 느낀 건 없어요. 저도 운동을 했기 때문에 숙소 생활을 해야 해서 집에 잘 못 온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 역시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적응이 돼있었죠.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는 고충이 생기더라고요. 아이와 둘이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첫째 아이 때는 태어나서 두 돌 될 때까지 아빠가 거의 집에 못 왔어요. 그 때는 시즌이 끝나면 대표팀에 소집돼서 선수촌에 들어가느라 집에 거의 오지를 못 했어요. 그래서 아기가 아빠의 부재 자체를 느끼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커서는 아빠를 찾더라고요. 공익근무를 할 때 아이가 3살이었는데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놀아줬거든요. 그렇게 아빠랑 친해졌다가 올 시즌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니까 아빠 왜 집에 안 오냐고 묻더라고요.



운동선수 아내로서 힘든 점은 남들 하는 거 못할 때 서운함이 있죠.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라든지 연말, 명절 때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남들 쉴 때 못 쉬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특별한 날 일 때 아이한테 미안하죠. 제가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어요.



잘할 때는 뿌듯, 넘어질 땐 철렁



뿌듯했던 적이요? 잘해서 이겼을 때죠(웃음). 아이가 없었을 때는 경기에서 이겨도 플로어로 내려가서 남편을 따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경기 이겼네, 잘됐다 딱 거기까지였죠.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다르더라고요. 승리하면 경기장에 폭죽이 터지잖아요. 아이가 엄청 좋아해요. 아빠 응원 가자고 하면 “오늘도 폭죽 터졌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해요. 승패에 대한 개념은 크지 않은데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빠가 잘했을 때 플로어에 내려가면 아이가 아빠를 보고 좋아해서 그 모습이 참 뿌듯하더라고요.



경기를 보는 심정은 아마 어떤 선수 가족이라도 다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은데요? 물론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팀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죠. 코트에서 크게 넘어진다거나 어디에 부딪쳐서 쓰러져있으면 가슴이 철렁 철렁해요.



내조는 다른 아내들하고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집에 오면 남편이 편하게 쉬지를 못해요.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시즌 때는 외출이나 외박 나왔을 때 조금이라도 일찍 숙소에 들어가서 쉬다가 운동할 수 있게 해주죠. 남다른 건 없어요. 남편 위하는 마음은 다들 같을 거예요.



육아도 척척, 100점 짜리 남편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남편이 유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어릴 때 만나기도 했고 당시만 하더라도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2~3년차밖에 안됐고 후인정 코치님이 주전으로 경기를 뛰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선수랑 연애한다기보다 운동선수 남자친구를 만난다고만 생각했어요. 확실히 연차가 쌓이니까 지금은 어디를 가면 팬들이 알아보시고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아가요. 그러면 아이가 엄청 신기해해요. “엄마, 저 사람은 왜 아빠랑 사진 찍어?”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저도 예전과 비교했을 때 기분이 다르기는 하죠.



집에 자주 못 오니까 애들하고 더 놀아주려고 하고 애들 씻겨주는 것도 잘해줘요. 그리고 저녁 설거지는 자기가 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러면 친정 부모님이 뭐라고 하세요. 힘들게 운동하고 왔는데 설거지한다고요. 집안일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잘해줘요.



아빠로는 100점, 200점 아빠예요. 저도 운동을 했기 때문에 운동하고 집에 왔을 때 몸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 알거든요. 그런데도 애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거의 다 놀아주는 편이에요. 남편으로서도 육아를 많이 도와주니까 100점짜리 남편입니다(웃음).



늘 응원할게요



아버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배구 가족으로 지내오면서 느낀 건 가족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함께 있는 시간이 참 소중해요.



그리고 가슴 졸이는 시간도 많고요. 경기를 할 때만 부상을 당하는 건 아니잖아요. 훈련하다가도 부상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전화 오는 시간이 아닌 이외 시간에 전화가 오면 일단 가슴이 철렁해요. 배구 가족으로 산다는 건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남편에게 한 마디 한다면 오랜 시간 현역에 있으면서 아픈 데도 많고 정신적으로도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지난 시즌은 성적이 좋지 않아서 고민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부상 관리 잘하고 몸 관리 잘해서 다음시즌에는 좋은 성적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와이프로서 선수생활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내 아내는 국가대표, 김해란 남편 조성원 씨 (33세)



순수했던 첫인상



20대 초반이었어요. 지인 소개로 편한 자리에서 만남을 가졌죠. 그게 인연이 돼서 7년 교제 끝에 결혼에 골인했네요. 처음에는 아내가 강하고 무뚝뚝해 보였거든요. 근데 계속 만나보니 마음도 여리고 순수하더라고요. 때묻지 않은 느낌이 있었어요.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죠. 제가 먼저 구애했어요. 아내가 국가대표 리베로라는 점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경기하면 언론에 아내가 자주 나오잖아요. 잘하는 모습 보면 뿌듯하죠. 처음에는 아내가 대표팀 선수이다 보니 주위에서 저를 얘기할 때도 자연스레 아내 얘기까지 하고 그랬거든요. 이제는 마냥 자랑스러워요. 대신 걱정이 되죠. 혹시 다치거나 아플까 봐요. 배구선수 남편이라고 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차피 다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다들 각자 직업을 갖듯 제 아내도 운동을 해서 주목 받는 위치에 가있는 것뿐이죠.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아요. 다만 아내가 국가대표 선수라서 저까지 언행을 조심하게 되긴 하죠.



리우 올림픽 때 제가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외조를 잘하는 이미지가 됐는데요, 저 그렇지 않아요(웃음). 서로 바쁘니까 시간 나는 사람이 하는 거죠. 또 제가 어질러져 있는 걸 못 보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도와주는 거예요. 저는 축구선수를 은퇴하고 코치(관동대)를 하고 있지만 아내는 현역이잖아요. 선수생활 하는 동안만이라도 제가 더 도와주고 챙겨주려고 하는 거죠. 저도 운동을 해봐서 알잖아요. 훈련 끝나고 집에 오면 지치거든요. 아내가 편히 쉬게끔 해주고 싶었어요.



운동선수 부부로 산다는 것



코치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잔소리도 많이 해요. 아내가 팀에서 제일 선배잖아요. 크게 싫은 소리 해줄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충언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악역을 맡았어요. 원래 아내에게 칭찬을 잘 안 해요. 배구 전문 선수가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은 간섭할 수 없지만 몸이나 멘탈 관리, 인간관계 등에 대해 조언해주려고 해요. 아내가 제일 불만인 게 있었어요. 가끔 저에게 힘들다고 얘기하면 제가 다 받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요.



저는 좀 냉정하게 말해요. 남편이라 아내가 충분히 이해는 돼요. 마음이 아프지만 아내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끔,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게 처음엔 되게 미웠대요. 이제는 본인을 위해 하는 얘기라는 걸 느끼고 진심을 알아줘요.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가정에서나 일에서나 똑 부러지게 잘해요. 현명하고 헌신적이고 배려심도 많아요. 아주 자랑스럽죠. 다른 분들이 봤을 땐 아내가 강해 보일 수도 있는데 속은 굉장히 순수하고 여려요. 대신 승부욕이 강해서 지금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애하는 느낌, 고민은 2세 문제



제가 원하는 선수생활 마지노선은 35살이에요. 저도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쓸쓸할 때가 있거든요. 빈 집에 혼자 들어갈 때 더 그래요. 혼자 밥하고 청소하고. 저도 사람이다 보니 힘들면 기대고 싶고, 아내랑 밥 먹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그러질 못 하잖아요. 물론 떨어져 지내니 장점도 있어요. 아직까지도 연애하는 느낌이에요. 애틋해요. 제가 구속 받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런 부분도 아내가 배려를 많이 해줘서 편해요. 고민되는 건 2세예요.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너무 늦으면 힘들어지잖아요. 제 마음 같아선 운동을 35살까지만 했으면 하는데 아내가 욕심이 있어서요. 주위에서도 아직은 은퇴하기 아깝지 않느냐고 하고요. 연애할 때부터 서로 일하는 걸 존중해주고 있어요. 그때 돼봐야 알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선수생활 마무리하는 그 날까지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절대 다치지도 아프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지금처럼만 하자!




배구는 운명, 이재영-다영 자매 엄마 김경희 씨 (51세)



붙어 다닐 운명, 운동도 운명



재영이와 다영이는 어렸을 때 굉장히 활동적이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유달리 활동량이 많았죠. 보통 남자아이들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재영이와 다영이는 그 이상이었어요(웃음). 그만큼 에너지가 넘쳤어요.



사실 제가 배구를 했기 때문에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자식들한테는 운동을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쌍둥이들은 운동신경이 남달랐어요. 유치원 행사 때만 보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몸놀림이 달랐죠. 그리고 무엇보다 활동량이 넘쳤어요. 공부를 하려면 진득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어요. 학원을 보내도 놀이터로 만들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을 시켜야겠다’라고 마음먹었어요. 그 당시 근영여고 코치를 알고 있어서 운동을 시키게 됐어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한 명은 농구, 한 명은 배구를 시키려고 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농구 인기가 엄청났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니는 절에 스님이 하는 얘기가 둘이 떨어져있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서로가 붙어있어야 같이 잘된대요. 저한테 같이 배구를 시키라고 해서 배구를 시키게 됐어요. 물론 제가 배구를 했기 때문에 다른 종목보다는 제가 아는 쪽으로 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기쁨도 두 배, 속상함도 두 배



쌍둥이들을 키우면서 속상했던 거는 ‘쌍둥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둘이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많았어요. 특히 편도선이 많이 아팠죠. 같이 아프니 더 힘들었고 사춘기 때도 하나가 아닌 둘이 같이 오니까 속상할 때가 있었죠. 그 이후로는 별다른 것은 없었는데 프로에 와서 다영이 때문에 조금 힘들었던 건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둘 다 잘해서 괜찮았는데 다영이가 프로에 와서는 백업으로 밀려있다 보니 힘든 부분이 있나 봐요. 자식이 힘들어하니까 저도 같이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는 다영이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선수예요. 지금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욕심이 많거든요. 언젠가 보여줄 거라고 생각해요. 잘 될 거예요.



아이들이 자랑스러웠을 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죠. 그리고 이번에 재영이가 MVP를 탔잖아요. 대선배들도 많고 자기보다 실력이 좋은 선수들도 많은데 수상하게 돼서 정말 뿌듯했답니다. 키운 보람을 느꼈죠. 팀에 선배들도 있지만 재영이가 팀을 끌고 가는 역할이잖아요. 그러니 안쓰러울 때가 많았어요. 물론 주위에서 도와주는 것도 있고 운도 따른 거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세터 생명이 더 긴 만큼 다영이는 앞으로 받을 기회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짱은 모전여전



저도 배구를 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아요. 각자 감독 코치가 있는데 제가 뭐라고 하면 혼란이 올 수 있거든요. 대신 정신적인 면에 대해서는 일러주죠. 우선 즐기면서 하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운동 당연히 힘들죠. 그런데 힘든 건 똑같잖아요. 결국 정신력 싸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배구가 안 된다고 인상 쓰고 하는 건 팬들한테도 안 좋은 모습인 것 같아요. 웃으면서 하라고 해요. 그 다음으로는 관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편이에요. 보강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고 꼭 하라고요. 관리를 철두철미하게 하라고 얘기해요.



애들이 저를 많이 닮았어요. 저도 운동할 때 배짱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쌍둥이들은 더 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예를 들어 듀스에서 1~2점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즐기더라고요. 보통은 그런 상황이 오면 소심해지고 긴장도 많이 할 텐데 애들은 그 자체를 즐겨요. 짜릿짜릿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담력은 타고 났나 봐요(웃음). 사실 운동선수한테는 이런 부분들이 크거든요. 그런 성격이 발전 할 수 있어요.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으면 본인도 힘들겠지만 실력도 늘지 않아요. 저도 아이들한테 많이 이야기하는 부분이에요.



저도 함께 뜁니다



뒷바라지를 크게 해 준 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제 손을 떠나 있었거든요. 둘이 워낙 운동을 좋아해요. 지금까지 운동하기 싫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오히려 쌍둥이들에게 고맙죠. 애들이 하는 말이 나 운동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냐며 운동이 너무 좋다고 해요. 재영이는 배구랑 결혼했대요(웃음). 아무래도 책임감이 따르니 시즌 동안에는 외출도 잘 안 하더라고요. 이틀 동안 쉬는 날이 주어지면 숙소에서 하루는 잠을 자고 또 하루는 보강운동을 해요. 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러기 힘들거든요. 그 정도로 배구를 좋아해요.



애들 경기는 거의 다 봤어요. 재영이 경기는 30경기 다 갔고 다영이도 두 게임 정도 빼고는 다 갔어요.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면 애들이 긴장하는 만큼 저도 긴장해요. 시즌 끝나고 10일 정도 아팠어요. 몇 개월 간 긴장했던 것이 풀어진 것도 있었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나 봐요. 저도 일이 있어서 당일치기로 다녔거든요. 경기가 늦게 끝나면 새벽에 들어와서 아침에 일하러 나갔죠. 정신적인 피로도도 컸어요 다영이는 주전이 아니라 덜한데 재영이 경기는 체육관만 다녀오면 녹초가 돼요. 제가 경기를 뛴 것 같은 느낌이에요. 팬들도 저한테 어머님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자세도 그대로 경기를 보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만큼 저도 경기에 몰입해서 같이 긴장하고 있다는 거죠. 기도도 많이 해요.



집에서는 어떤 딸이냐고요? 애들하고 생활을 많이 안 해봤는데(웃음). 집에 와도 잠만 자고 핸드폰만 만져요. 저도 제 일이 있어 잘 못 챙겨줘요. 그 부분이 참 마음적으로 좋지 않죠. 그래도 아이들이 저를 많이 생각해요. 잘해요. 효녀예요.



재영이와 다영이한테 제일 해주고 싶은 말은 부상이에요. 운동선수는 부상이 없어야 해요. 본인들이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면 좋겠지만 잘하는 것보다 부상 없이 자기가 원하는 나이까지 안 아프고 운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롱런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상이 없어야죠. 저는 그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최고보다는 부상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너희는 내 자랑이란다, 김수지-재영 자매 아빠 김동열 씨 (58세)



배구가족의 탄생



엄마 아빠가 현장에서 지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수지 재영이 둘 다 자연스럽게 배구를 접하게 됐죠.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수업이나 학원 끝나고 나면 저희들이 근무하는 학교로 왔어요. 거기 숙소에서 지냈던 것이 배구를 하게 된 동기가 됐죠.



사실 재영이는 애초부터 운동을 시켜볼 마음이 있었어요. 몸집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운동을 해보자고 했을 때 재영이는 안 한다고 하는데 약하게 보였던 수지가 순순히 바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재영이는 배구부에 들어오면 체중을 줄여준다고, 체중 빼주는 조건으로 하게 됐어요.



보통 엄마 아빠가 운동을 하면 자식들한테 운동을 안 시킬 수도 있는데 저희는 반대하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누구 강요도 없이 그 동안 봐왔던 것이 배구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같은 학교에서 운동을 해서 좋은 점은 합숙을 하니까 한 울타리 안에서 한 식구가 같이 먹고 자고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죠. 다만 애들한테 미안한 점은 있어요. 누군가를 혼내야 할 때 우리 아이들이 희생양이 됐죠. 만약 다른 애들을 혼내면 학부모들이 왜 자기 자식은 놔두고 다른 애들만 혼내냐고 말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혼날 때 우리 애들을 먼저 혼냈어요. 사실 수지 같은 경우는 혼날 일이 없었죠. 키고 크고 초중고 때부터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 받았던 친구인데 제일 먼저 혼났어요. 부모 처지로서 마음이 아팠죠.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한 번도 서운함을 표하거나 뭐라고 말했던 적은 없어요. 엄마 아빠의 사정을 잘 알아주고 이해해주었어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요.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들을 가르치면 장난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든지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부부가 같이 감독 코치를 하고 있고 애들이 함께 운동을 하니 부모님들이 저희한테 아이들을 믿고 맡기셨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아이들한테 고마운 것은 꾸준히 열심히 해줬다는 것? 학창시절 한 번도 그만둔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커가면서 큰 흔들림 없이 자라줬어요.
둘 모두 프로생활을 했다는 건 자랑스러워요. 여기에 하나 더, 수지는 국가대표도 했잖아요. 엄마 아빠가 못 이뤘던 꿈을 수지가 실현시켜줘서 대리 만족을 했어요.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을 갔다 오면서 경험도 쌓았지만 더 성장했어요. 올 시즌 많이 발전했죠.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하는데 있어 맏언니로서 잘 이끌어준 것 같아요. 팀에 보탬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자랑스러워요.



경기 볼 때마다 긴장, 어쩔 수 없는 부모



지도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애들 경기를 보면 항상 긴장이 돼요. 예를 들어 서브 넣을 때도 미스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긴장 속에 지켜보죠. 작은 실수를 줄였으면 하는 마음이고요.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제가 배구를 전공했다고 하지만 다른 부모와 같은 마음입니다.



배구 얘기는 특별히 하지 않아요. 프로 초창기 때 애들을 태워다 주면서 몇 번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애들은 쉬다 가려고 하는데 차 안에서도 배구 얘기를 한다고, 또 시작이라고 싫어하더라고요. 그 때부터 배구 얘기는 안 해요. 한다고 해도 열심히 하라고만 합니다.



집에서 둘은 어떤 딸이냐고요? 수지는 언니로서 묵직한 게 있어요. 저도 말 수가 많이 없는 편이지만 수지도 집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엄마나 친구하고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저하고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아요. 반면 재영이는 막내 티가 나요. 전화나 문자도 많이 하는 편이죠. 수지는 묵직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애교가 없는 편이라면 재영이는 애교가 있어요.



소통과 단합은 우리 가족이 최고



배구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요? 어렸을 때는 다른 가정보다는 단합이 잘 됐던 것 같아요. 서로 같은 스케줄로 지내왔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때 계획적으로 짤 수 있었죠. 그런데 커가면서는 아이들이 더 바쁘잖아요. 그래서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죠. 그래도 가장 큰 장점은 의사소통이 잘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서로 이해를 잘 해줄 수 있어요.



우선 재영이는 다음 시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직 결정은 안 났지만 다시 본업에 돌아간다고 해도 아쉬움은 없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밀어주고 싶어요. 프로에 큰 미련은 없어요.



수지는 FA잖아요. 올 시즌 생각보다 잘하기도 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선수로서 가치를 평가 받는 자리잖아요. 그리고 수지가 선수생활에 대한 의지가 있는 만큼 앞으로 한 번의 FA는 더 있을 것 같아요. 자기가 계속 하고 싶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둘 모두 크게 속 썩인 적이 없어요. 부모로서 참 고마워요.



글/ 정고은 · 최원영 기자


사진/ 본인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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