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력 있어, 내가 반하겠어' 임 성 진
- 매거진 / 정고은 / 2017-04-24 10:32:00

193cm의 큰 키, 여기에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잘생긴 얼굴까지.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사실 외모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를 설명할 수 있을까? 천진난만한 웃음 뒤로 일찍 철이 든 소년 모습을 하고 있던 이 선수, 바로 임성진이다.
Prologue 강렬했던 첫 인상
아직도 첫 인상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느 대회였다.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하나둘 체육관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중학교 여자 선수들이 쭈뼛쭈뼛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누구라도 왔나?’하는 생각에 유심히 지켜봤다. 그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건 한 고등학교 선수였다. 그랬다. 그가 임성진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임성진을 다시 보게 된 건 한 커피숍. 3월 28일부터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시아유스남자(U19)선수권 대회 출전을 위해 소집된 대표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 중인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다. 그 당시 소녀들 미소가 단박에 이해됐다.
재미로 뛰어든 배구, 인생이 되다
임성진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다니던 학교에는 배구부가 없었지만 어머니와 코치선생님의 친분으로 여름방학 한 달 동안 다른 학교로 가서 배구를 하게 됐다. 원래 활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했던 터라 적성에 잘 맞았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축구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배구는 안 해봤던 거라 새롭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아들이 배구에 흥미를 가지자 부모도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제가 좋아하니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엄마도 잠깐이지만 배구를 하셨던 분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임성진은 잘 다니던 충북 용두초에서 의림초로 전학했다.
재미로 시작하게 된 배구가 점점 미래가 됐다. 사실 몇 년간을 배구만 해왔던 터라 다른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선수생활을 결심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하다 보니 5~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더라고요. 그러니 다른 걸 하기에는 늦은 감도 있었고. 그 때부터 배구를 내가 꼭 해야 하는 숙명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배구로 성공해서 부모님께 보답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 많이 벌어서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다른 것보다 부상은 참기 힘들었다. “중학교 때 무릎이 좋지 않았어요. 고생을 많이 했죠. 그 때 운동하기 싫다고 엄마한테 얘기도 해보고 훈련에 빠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참다 보니 아픈 것도 사라졌단다. 이내 임성진은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운동이라는 게 원래 힘든 거잖아요.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은 하는데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어요. 너무 힘드니까 그 때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 프로선수도 똑같은 말을 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매번 하지만 그 때 잠깐뿐이라고. 다음 날이면 또 훈련에 나간다며 웃었다. 누구에게나 포기할 순간은 찾아온다. 아직까지 임성진은 그 숱한 유혹들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자신감… 늘겠죠?
인터뷰를 하던 중 분위기 전환을 위해 배구선수로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가 처음 꺼내든 말은 키. “일단 키가 크고….”
그 말을 잠시 가로챘다. “프로필 상 193cm라고 하던데, 맞아요?”
그러자 임성진은 “신발 신으면 195cm예요”라고 웃었다. 이어 “전체로 봤을 때 큰 키는 아닐지 몰라도 고등학생으로 봤을 때는 큰 편이예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해서 늦게 시작한 애들보다는 볼을 많이 만졌거든요. 기본기에서 낫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단점도 안 들어볼 수 없었다. “자신감이 많이 없어요. 주위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중요한 순간 생각이 많아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져요.”
사실 자신감이라는 것이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훈련에 집중했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결국 많이 연습해야 돼요. 그래야 경기 때 그런 부분들이 나오는 거잖아요. 훈련할 때 많이 생각하면서 해요.”
제천산업고 김광태 감독도 임성진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는 “감독께서는 실수해도 좋고 못해도 괜찮으니 자신 있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야기해주세요. 감독께서 해주시는 말씀들이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불안할 때 아무래도 심적으로 편해지죠.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제가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학교 이야기로 넘어갔다. 지난해 제천산업고는 아쉬움이 짙었다. 참가했던 대회에서 모두 우승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통령배 때는 경북사대부고에, CBS배는 익산남성고에, 전국체전은 송산고에 각각 무릎을 꿇으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임성진은 생각이 달랐다. “팀에 부상 선수도 많았고 (임)동혁이도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빠졌던 걸 감안하면 잘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대통령배 때는 동혁이가 당일 날 와서 그 때 맞춰보고 바로 경기에 뛰기도 했는걸요.”
다만 전국체전 은메달은 아쉽기만 하다. “체전이 많이 아쉬워요. 큰 대회인 만큼 다들 이기기 위해 열심히 했거든요. 대회 전부터 형들과 그 대회 하나만 보고 훈련을 했는데… 4강까지는 좋았는데 마무리가 너무 아쉬워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면 결과에 인정을 할 거예요. 그런데 그날은 아무 것도 못해보고 졌어요. 해보지도 못하고 져서 그 점이 가장 아쉬워요.”
전국체전 2연패에 도전했던 제천산업고. 결승으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부전승으로 8강에 올랐고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남성고를 3-0으로 물리치며 4강행을 확정했다. 준결승에서도 기세는 이어졌다. 속초고를 3-1로 완파했다.
결승 날. 경기는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송산고에 1세트를 내줬다. 그리고 이어진 세트에서도 그 다음 세트도 주인공은 제천산업고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돌아온 건 0-3 패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3학년이 된 임성진. 책임감도 커졌다. “그전까지는 후배였는데 이제 선배가 됐잖아요. 형으로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겠죠. 저희가 먼저 나서야 동생들도 따라오니까요. 이런 부분들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솔직함 또는 어른스러움
임성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 곁에 있던 임동혁이 풀썩 옆에 앉았다. 워낙 재미없는(?), 다소 일찍 철이 든 답변만 듣고 있던 터라 슬쩍 임성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임동혁 왈. “긴장도 많이 하고 소심한 부분이 있어요(웃음).”
임성진에게도 반격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돌아온 건 “잘해서 말할 게 없어요”라는 답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어느새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 온 이들. 서로가 지겹지 않느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때도 두 선수 대답은 엇갈렸다. “좀?”, “애들하고 가족같이 지내다 보니 지겹지는 않아요.” 누구 대답인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후자가 바로 임성진. 임동혁도 “철이 빨리 들었다”라고 전했다.
그랬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에게 받았던 느낌은 ‘어른스럽다’ 였다. 그러자 임성진은 “운동을 하면 철이 일찍 드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걸요? 장난도 많이 치고 까불 까불거리는 편이에요.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인터뷰라고 해서 다른 건 없어요.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걷는 길은 조금 달랐다. 임동혁은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지만 임성진은 아니었다. 부럽지는 않았을까? “안 부러우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동혁이는 잘하잖아요.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국가대표팀에 들어간 거죠.”
비록 포지션은 다르지만 경쟁자로서 자극제가 되었을 터. 그러자 그는 “경쟁자라고 생각 하지 않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해왔던 친구이기도 하고 지금은 같은 팀이잖아요. 그리고 배구는 팀 운동이에요. 동혁이가 잘하면 저희 팀에 도움이 돼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전했다. 질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생애 첫 국가대표
임성진에게도 기회가 왔다. 꿈나무를 벗어나 처음으로 유스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배구협회에서 보내준 보도자료에도 그는 ‘수비와 리시브가 안정적이고 이동 및 후위공격에 능한 임성진’이라고 당당히 소개됐다.
소감을 물었다. “국내 대회만 하다가 국제 대회에 나가게 되는 거잖아요. 게다가 많은 선수 가운데 대표팀이라는 이름으로 선발돼 나가는 것인만큼 책임감이 있어요. 제 역할을 해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수많은 선수 가운데 능력을 인정받은 몇 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표팀이다. 이 안에서 그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임성진은 소신 있게 자신 생각을 전했다. “여기는 배우러 오는 곳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기보다는 각자 다른 팀에서 온 만큼 호흡을 맞추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훈련도 그런 방향으로 하고 있고요. 기술보다는 서로가 얘기를 많이 나누며 맞춰나가고 있어요.”
박원길 유스대표팀 감독도 가장 강조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원 팀이 되는 것. 단시간 안에 각자 개성들을 한 데 묶어 한 팀이 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전으로 뛰는 만큼 임성진 각오도 남달랐다. “동료들하고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팀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잘 맞춰서 목표인 4위 안에 들어 세계유스대표팀 티켓을 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 역할을 잘해서 팀에 플러스가 됐으면 해요.”
총 14팀이 4조로 나뉘어져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방글라데시, 이란과 함께 B조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유스선수권 티켓을 거머쥐었다.
연관 검색어 : 배구 훈남
임성진과 관련하여 포털사이트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인물 정보에는 그에 관한 어떤 것도 나와 있지 않지만 연관 검색어는 배구 훈남, 배구선수 임성진 사진, 제천산업고 배구, 고교 배구 등 온통 그를 가리키는 말로 가득 차있다.
본인은 모르는 눈치였다. “SNS에 알려지게 되면서 제 얼굴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보이긴 했어요.”
어느 영어권 한류사이트에 소개되었을 만큼 임성진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기자 역시 그 인기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한 때 페이스북에 잘생긴 배구선수라고 임성진 사진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팬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배구선수. 얼굴로만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게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게 싫은 사람은 솔직히 없잖아요. 그런데 관심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커지니 부담스러워요. 또 실력으로 알려진 게 아니니까요. 나중에 어떻게 감당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는데 다들 좋아서 그런 거니까 그 관심조차 즐기라고 하더라고요. 다만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걱정하셨죠. 행여나 운동에 집중하지 못 할까 봐요. 그런데 제가 알아서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운동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시지는 않아요.” 임성진은 솔직하면서도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페이스북 스타로 떠오른 그가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평범한 19살 소년이었다. “운동 외 시간에는 애들하고 PC방에 곧잘 가고는 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거든요. 휴가 받으면 하루 종일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오히려 이제는 게임 하는 시간이 아까워요. 차라리 그 시간에 형들과 놀러 다녀요. 선배들이랑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목표는 뚜렷했다. “올해가 대학교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우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잘해야겠지만 팀이 잘해야 성적도 좋은 거니까 다 함께 대회 때 후회 없이 경기를 했으면 해요.”
Epilogue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
인터뷰를 가게 되면 선수들에게 으레 묻는 질문이 있다. 그리 특별할 것도, 그렇다고 엄청난 대답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어떤 선수를 꿈꾸는지가 듣고 싶었다. 임성진이라고 이 질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답변에 조금은 놀랐다. 아마 그 동안 들었던 숱한 대답 중에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솔직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솔직히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날 닮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19살 소년 입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이유가 있었다.“부모님께서 그 동안 저를 뒷바라지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하루 빨리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또래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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