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고마워요, 감동이었어요' 내 가슴 속 최고 선수는?

매거진 / 정고은 / 2017-04-21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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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안팎 곳곳에서 선수들을 누구보다 가까이 만나봤던 우리. 기자와 아나운서들이 올 시즌 기억에 남은 최고 선수들을 꼽아봤다. 불타는 승부욕, 냉철한 포커페이스. 그 뒤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리/ 더스파이크 편집부 사진/ 더스파이크


스물 넷 그녀의 유쾌한 두 얼굴, 박정아


1993년생 박정아가 어느덧 6시즌째 치르고 있다. 코트 위 박정아 모습은 한 마디로 ‘시크함’ 그 자체. 표정 변화가 없다. 스파이크를 때린 뒤에도, 득점을 내고도 표정이 한결 같다. 뚱한 표정이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접 마주본 박정아는 해맑은 24세 그대로였다. 야식으로 치킨이나 떡볶이 먹는 것을 즐겨 하고, 혼자 크로아티아 여행을 꿈꾸는 대학생 모습이었다. 운동 선수로서 고충도 털어놨다. 시즌 중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장과 숙소만 오간다. 자신의 공간을 “네모 속 네모”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것이다.


이어 “바깥세상 이야기를 듣고 싶다”라며 스포츠가 아닌 그 밖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원했다. 어느 때보다 솔직 담백한 박정아였다. 마지막으로 2017년 붉은 닭의 해를 맞아 ‘꼬끼오’ 외치며 환하게 웃던 박정아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 STN스포츠 이보미 기자


때론 편한 친구처럼, 신영철 감독


여러 선수가 떠올랐다. 하지만 선수보다는 이 감독을 말하고 싶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엄격하다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굉장히 친근한 편이다. 훈련할 때 확실히 하고, 쉴 때는 선수들에게 전혀 간섭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2016~2017시즌 개막 전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때였다. 당시 한국전력 강민웅이 트라이아웃 참가자들을 도와주는 세터로 현장을 찾았다. 이때 신영철 감독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특히 신 감독은 휴식 시간에 강민웅에게 “축구 하게 애들 모아라”라며 미소 지었다.


이에 강민웅은 “아니, 감독님 정말 축구 하실 겁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신 감독은 “그럼 당연하지”라며 받아 쳤다. 선수들과 늘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날 실제로 신 감독이 선수들과 축구를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스포츠동아 강산 기자


우리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박주형


장충체육관에서 우리카드와 현대캐피탈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장인어른이 다섯 살 된 조카를 데리고 배구장을 찾았다. 경기가 끝난 후 어떤 선수가 조카에게 다가와 가족처럼 안아주고 놀아줬다고 한다. 그 선수가 바로 박주형이었다. 얼굴 잘생기고, 키 크고, 배구 잘하고. 거기다 다섯 살 어린이 팬에게도 친절한 박주형 선수. 인성까지 최고면 반칙 아닌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줘 고마웠다.
- KBS N 스포츠 신승준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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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 속 멋짐이란 게 폭발했다!, 김연견


올 시즌 수많은 선수들의 MVP 인터뷰를 봐왔다. 내가 직접 맡은 것도 있었고, 다른 아나운서가 진행한 것도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현대건설 리베로 김연견이다.


올 시즌 현대건설은 KGC인삼공사와 마지막까지 순위 경쟁을 벌인 끝에 아쉽게 4위(14승 16패 승점 41점)에 머무르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김연견은 묵묵히 제 몫 이상을 해줬다. 개인적으로는 해마다 성장하는 선수가 아닌가 싶다.


김연견과 인터뷰를 해보곤 더욱 더 반하는 계기가 됐다. “제가 잘하는 건 아니고요, 에밀리가 진짜 고생 많이 하고 있어요”라며 공을 돌리더라. 물론 에밀리가 리시브 점유율을 어느 정도 차지하는 건 맞지만, 본인 인터뷰에서 동료를 치켜세우는 모습이 멋졌다. 젊은 선수임에도 단단함이 느껴졌다.


마지막 질문으로 가족에게 한 마디 전하라고 하자 “엄마, 아빠! 나 인터뷰 했어!”라고 하더라. 늠름하던 그가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온 듯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이제 FA가 됐는데 대박 나길!
- KBS N 스포츠 오효주 아나운서


베테랑의 품격 , 여오현 & 김희진


경기 뒤 수훈선수 인터뷰는 대부분 10분 이내로 짧게 이뤄진다. 선수들은 숙소로 이동해야 하고, 기자들은 마감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의 경쟁. 아무래도 인터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현대캐피탈 여오현과 인터뷰는 ‘베테랑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편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상황에 대해 매우 정확하면서도 냉정하게 분석한다.


그러나 그와 인터뷰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단순히 수려한 말솜씨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빛나는 ‘후배를 향한 배려심’ 덕분이다. 여오현은 현대캐피탈 선수단 맏형이자 플레잉 코치다. 그 때문인지 그는 인터뷰하는 것 자체를 매우 쑥스러워 한다. 여오현은 늘 “후배가 잘한 덕분이다. 나보다 후배 인터뷰가 나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라며 겸손하게 말한다.


플레이오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었다. 2015~2016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잡은 챔피언의 기회. 하지만 여오현은 들뜨지 않았다. 그는 “문성민이 주장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줬다. 우리 선수들이 매 경기 최선을 다한 덕분이다”라며 후배들을 치켜세웠다. 베테랑의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IBK기업은행 주장 김희진과 인터뷰도 인상 깊었다. 김희진은 올 시즌 유독 홍역에 시달렸다. 경기 내용보다 그 외적인 것에 시선이 집중된 상황.


선수 입장에서는 인터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껄끄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김희진은 유쾌했고, 강인했다. 그는 “지난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힘들었는데, 올해는 유독 구설에 오르는 것 같다”라며 “뭔가 기분이 이상하고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많은 분께서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겠다. 경기에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경기력은 물론이고 정신력까지도 ‘에이스’다웠다.
-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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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잘생긴 ‘오빠’, 파다르


올 시즌 V-리그를 찾은 외국인 선수 가운데 최고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크리스티안 파다르(21, 우리카드)다. 배구 경력은 7년 밖에 안 됐지만, 강한 서브와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코트를 휘저었다. 역대 최연소 외국인 선수인 파다르가 에이스로 활약하자 팬들은 ‘잘생기면 오빠’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은 파다르의 성품을 높이 샀다. 김 감독은 “인성이 됐다”라며 시즌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파다르는 자발적으로 짐을 나르는 등 팀 막내들이 하는 일에 빠지지 않았고, 코치진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성격을 말해주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김상우 감독이 지쳐 보이는 파다르에게 훈련을 쉬라고 했다. 그러자 파다르는 한국말로 또박또박 “괜찮습니다. 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파다르가 눈치가 빨라 뉘앙스로 한국말을 알아듣고 대답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팬들을 아끼는 마음도 크다.


파다르는 서포터즈와 함께하는 행사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올 시즌 오빠(?) 부대를 이끈 파다르를 다음 시즌에도 장충에서 볼 수 있을까?
- 스포티비뉴스 김민경 기자


아들 앞에 무장해제 된 카리스마, 윤봉우


2016~2017시즌 정규리그 블로킹 1위에 오른 한국전력 미들블로커 윤봉우(35). 시즌을 앞두고 은퇴와 현역 선수 연장을 두고 마음고생도 했으나 어렵게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보란 듯 기대 이상 활약을 펼쳤다. 한국전력이 3위에 오르기까지는 역할도 컸다. 코트 위에서 카리스마를 뽐내는 윤봉우지만,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순한 양이 됐다.


한국전력은 2016년 12월 27일 홈인 수원에서 팬 사인회를 가졌다. 이날 선수단 가족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둘째 아들을 본 윤봉우는 반갑게 아이를 안고 사인회에 참석했다. 날씨가 추워 콧물을 흘리는 아들을 쓰다듬어주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던 그는 “우리 애들 밥값 벌려면 더 열심히 해야죠”라며 특유의 너스레도 잊지 않았다.


윤봉우는 새 둥지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이대로 끝날 수 없다’라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데뷔 후 첫 블로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에 패해 아쉬운 탈락을 맛봤으나 실망보다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는 “한 시즌 힘들게 뛰어왔는데 현대캐피탈이 너무 잘하더라.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다 잘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너무 고맙다”라고 전했다.
- 뉴스1 이재상 기자


알고 보니 ‘츤데레’, 노재욱


몇 번의 인터뷰 시도 끝에 어렵사리 마주하게 된 노재욱. 사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수훈선수로 만났던 그는 솔직히 인터뷰하기 편한 선수는 아니었다. 짤막짤막한 답변만을 내뱉던 그였다. ‘조금 더 살을 붙여서 이야기해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먼저 진행했다. 대부분 선수들이 어려워하는 시간. 일전에 어떤 선수는 “휴…큰 게 남아있네요”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 앵글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다행히 노재욱은 사진기자 요구에 척척 포즈를 취해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동작을 추가하기도 했다. 비록 잡지에는 실리지 못 했지만 고마웠다. 덕분에 분위기도 한층 훈훈해졌다. 그렇게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시간 제약으로 인터뷰는 다음날 통화로 대체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퉁명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인터뷰라 그런가’라는 생각과 함께 질문과 답변을 이어나갔다. 약 40여분 정도가 지난 후 인터뷰가 끝이 났다. 그 시간 동안 통화를 통해 느낀 건 친절하지 않은 말투가 그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녹음파일로 다시 들어본 노재욱 답변에는 자신 나름대로 최선의 대답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그를 조금은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후일담을 위해 그와 다시 통화를 했던 적이 있다. 이미 구단 프런트를 통해 선수단이 이동 중이라 긴 통화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고 들은 터였다. 그런데 인터뷰 말미 노재욱이 “통화가 너무 짧아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알면 알수록 친절했던 반전남 노재욱이었다.
- 더스파이크 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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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까지 곱다니,문정원-알레나


한국도로공사 문정원과 KGC인삼공사 알레나. 이들 공통점은 무엇일까? 멋진 인성을 지닌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올 1월 문정원을 인터뷰하기 위해 김천에 위치한 도로공사 숙소를 찾은 적이 있다. 사실 문정원과 이렇게 가까이서 대면해보기는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문정원은 죽마고우를 만난 듯 꾸밈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촬영까지 마치고 난 뒤 숙소를 빠져 나왔는데 그에게 메시지 하나가 왔다. “제가 말이 많아서 인터뷰가 길어졌죠? 저녁은 드셨나요? 근처에 맛있는 게 많이 없어서”라는 내용이었다. 이어 맛있는 식당과 본인이 즐겨 찾는 카페를 소개해줬다. 초행길인 내가 헤매지 않도록 친절히 길 안내까지 덧붙여줬다. 그 세심한 배려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여자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역대 포스트시즌 통산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한 알레나. 이날 홀로 55득점(공격 성공률 50.51%)을 터트리며 세트스코어 3-2, 팀 역전승을 이끌었다.


경기 후 <포스트시즌 톡투유> 영상 인터뷰를 위해 알레나를 만났다. 힘들 법도 한데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그리곤 연신 밝은 미소를 선보였다. 곁에 있기만 해도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자 그는 몸 이곳 저곳이 쑤시는 듯 힘겨워했다. 하지만 해맑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전했다. 역시 미스 KGC인삼공사였다.
- 더스파이크 최원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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