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포스트시즌 강심장, 그들이 큰 경기를 대하는 자세

매거진 / 더스파이크 / 2017-03-06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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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가 포스트시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는 올 시즌, 아직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 윤곽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마지막 한 경기까지도 지켜봐야만 알 수 있는 박빙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포스트시즌은 정규리그와는 달리 강인한 정신력과 승부욕이 중요시 된다. 플레이오프가 3전 2선승제, 챔피언결정전이 5전 3선승제로 치러지는 만큼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있다. 하지만 첫 한 두 경기 결과와 그에 따른 분위기는 최종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단판승부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 중요한 경기,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강심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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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려면 점수내야’ 자신감으로 뭉친 공격수들



‘외국인 선수 같았던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 김세진


OK저축은행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세진 감독은 V-리그 출범 원년인 지난 2005시즌 삼성화재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당시 삼성화재는 막바지 7연승을 달리며 현대캐피탈과 18승 2패 동률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세트득실률에서 근소하게 밀린 2위로 정규리그를 마무리했다. 3위 LG화재(현 KB손해보험)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당시 삼성화재에는 김상우 신진식 등 훌륭한 공격수들이 포진해있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든 나이와 그로 인한 경기력 기복이 제한사항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2005시즌 플레이오프는 양팀의 주 공격루트인 LG화재 이경수와 삼성화재 김세진 대결로 압축됐다. 이경수는 정규리그 기준으로 득점 1위(521점)를 달리고 있었던 반면 김세진은 12위(208점)로 대비를 이뤘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며 판세를 뒤집은 것이 김세진이었다. 시즌 통틀어 51.57%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던 김세진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52.94% 성공률로 22점을 쓸어 담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2차전에서는 15점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1차전 기세를 이어간 삼성화재가 무실세트 2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나섰다.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치른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김세진 활약은 결정적이었다. 1차전에서는 무려 30점을 해결해냈는데 공격성공률이 55.32%나 됐다. 그 경기에서 기록한 30득점은 김세진이 해당 시즌 세운 한 경기 최다득점이었다. 그의 집중력이 얼마나 날카롭게 살아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차전 패배와 3차전 승리로 2승1패, 우승을 결정지어야 할 상황에서 맞이한 중요한 4차전에서는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에 매서운 집중력이 보태졌다. 김세진은 포스트시즌 들어 가장 높은 58% 성공률을 기록하며 29점을 해결했다. 오히려 정규시즌보다 포스트시즌에 돌입한 후에 더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하면서 정규시즌 득점 1위 이경수와 공격종합 및 오픈 공격 1위였던 후인정(현대캐피탈)을 압도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긴장하기 보다는 승부욕과 집중력을 발휘해 기대치 이상으로 활약을 선보였다. 그런 활약을 인정받아 프로배구 출범 원년에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선수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한 것은 김세진이 최초였다.



김세진은 지도자로서도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 지난 2014~2015시즌과 2015~2016 시즌 연달아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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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도 정신력도 최강’ 배구여제 김연경


최강 멘탈을 지닌 여자부 선수로는 김연경을 빼놓을 수 없다. 2005~2006시즌 신인선수로 V-리그에 데뷔한 그는 신인상을 비롯해 득점 서브 공격상을 싹쓸이 하면서 정규리그 MVP가 됐다. 당해 시즌을 비롯해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한 2007~2008시즌을 제외하고는 소속팀 흥국생명을 세 차례나 챔피언 자리로 이끌면서 2006~2007시즌과 2008~2009시즌까지 세 차례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 시즌 반짝 활약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V-리그에서 뛰는 동안 꾸준히 상위 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기복 없는 강인함을 엿볼 수 있다.



2005~2006시즌 포스트시즌에서 김연경 역할은 외국인 공격수였다. 포인트를 내야 할 순간 믿고 맡길 수 있는 주요 공격루트였다. 2006~2007시즌에는 외국인 공격수 윌킨스가 있었지만 김연경의 공격점유율이 외국인 선수만큼 높았다. 2007~2008시즌 외국인 선수 마리보다 점유율이나 득점이 높았고, 2008~2009시즌에는 카리나와 공격부담을 나눠가지며 챔피언에 올랐다.



V-리그뿐 아니라 세계무대와 해외클럽에서도 인정받으며 롱런하고 있는 김연경은 ‘자신감’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누가 뭐래도 실력이 좋아야 한다. 실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스스로 실력을 믿고 겁 없이 도전했기 때문에 V-리그를 평정하는 최고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자신감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도, 일본과 터키를 거치며 이어지고 있는 해외 생활에서도 그가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원동력이 됐다.



‘실력을 인정받겠다’ 독기 발휘한 송명근


올 시즌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 해 결장한 경기가 많았다. 하지만 OK저축은행이 지난 시즌까지 2시즌 연달아 챔피언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가 송명근이었다. OK저축은행이 두 시즌 연속 챔피언을 달성하는 과정에 괴물 같은 외국인 선수 로버트 랜디 시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송명근이 측면에서 보조를 맞춰준 덕분도 간과할 수 없다. 송명근이 지난 2014~2015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MVP로 선정된 것도 그의 공로가 인정받은 것을 의미한다. 송명근은 김세진과 최태웅 두 감독에 이어 국내 선수로서는 역대 세 번째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2014~2015시즌 OK저축은행은 한국전력과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두 경기 연달아 풀 세트 접전이 펼쳐졌는데 송명근은 시몬과 더불어 득점을 이끌면서 상대 쥬리치-전광인 쌍포와 대결에서 우위를 점했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푸른 왕조’를 쌓아 올린 삼성화재였다. 이미 7시즌 연속 챔피언에 올랐던 삼성화재를 상대로 OK저축은행은 3연승을 거두고 챔피언 자리를 빼앗았다. 송명근은 챔피언결정전 내내 활약이 좋았는데 특히 3차전이 백미였다. 챔피언을 결정짓는 3차전에서 그는 시몬(21점)과 맞먹는 20점을 기록했다. 공격성공률이 63%에 달했다. 시몬의 득점에 블로킹 5득점이 포함된 점을 고려하면 호쾌한 공격으로 팀 승리를 이끈 것은 송명근이었다. 그는 “같은 포지션인 전광인에 비해 못하다는 평가를 들어 악바리같이 임했다. 내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포스트시즌에 발휘한 승부근성이 챔피언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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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기보다는 안정적이어야, 흔들림 없는 야전사령관




공격수를 춤추게 한 ‘부동심’ 세터 최태웅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현역시절 포스트시즌 경기를 빼먹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경험했다. 프로배구 원년이었던 2005년부터 2009~2010 시즌까지는 삼성화재 주전 세터로 활약했다. 2005년 삼성화재 우승 당시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이 마음껏 춤출 수 있게 했던 것은 최태웅 감독 손끝에서 나온 볼배급이었다. 2005~2006시즌, 2006~2007시즌 연달아 라이벌 현대캐피탈에게 우승을 내주기는 했지만 2007~2008시즌 다시 패권을 되찾아왔다. 2010~2011시즌 현대캐피탈 소속이 된 후로는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시즌이 많았다. 포스트시즌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최태웅 감독이다.



최 감독은 지난 2014~2015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현대캐피탈 시절이었던 2012~2013시즌부터는 권영민에게 선발 세터 자리를 내주고 백업요원으로 활약했다. 그럼에도 그가 코트에 발을 들였던 모든 시즌 세트성공률이 50% 밑으로 떨어진 일은 없었다.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던 2008~2009시즌에는 52.3% 성공률로 세트당 평균 12.701개 볼 연결을 성공시켰다.



최 감독은 “심리적인 준비와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흔히 포스트시즌에 돌입하면 이른바 ‘멘탈’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었다. 최 감독은 “포스트시즌에는 소위 ‘미치는 선수’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평소 훈련을 통해 심리적인 부분을 갖춰 놓는다면 좋은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조언했다. 최 감독이 강조한 심리적인 면은 단순히 ‘꼭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을 앞세우는 것과는 달랐다. 경기를 길게 내다보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진짜 강심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최 감독은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 경기가 단판으로 끝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로 인해 부담이 생기게 되는데,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선수로 경기에 나서던 때는 잘 인지하지 못 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중요한 경기에 나설 때 의외로 내가 덤덤했더라”라는 것이 최 감독 말이었다.



선수시절 수많은 포스트시즌 진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 있는 만큼 감독이 된 이후에도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었다. 최 감독은 사령탑 데뷔 첫 시즌이었던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을 이끌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나섰다. 최 감독은 “지난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이전까지 연승을 달리면서 분위기가 좋았다. 굳이 따로 이야기할만한 것이 없었다”라면서 “성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승을 해야 한다. 이겨야 한다’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삼성화재 명성을 지켜온 우승 세터 유광우


지난 2014~2015시즌 OK저축은행에 왕좌를 내주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 7시즌동안 V-리그는 삼성화재 천하였다. 유광우는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에 내줬던 챔피언타이틀을 되찾은 2007~2008시즌 신인선수로 입단했다. 삼성화재의 7연패 가운데 앞 세 시즌 동안은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 주전 세터를 맡았고 유광우는 백업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0~2011시즌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2010년 말 최태웅이 현대캐피탈로 떠나면서 삼성화재 야전사령관 역할은 유광우에게 주어졌다.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2010~2011시즌은 삼성화재에게는 위기였다. 최하위에서 출발해 간신히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과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러야 했다. LIG손보를 2-1로 물리치고 올라선 플레이오프 상대는 현대캐피탈이었는데 3연승으로 빠르게 돌파해냈다. 7전 4선승제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대한항공을 만나 4연승으로 챔피언을 차지했다. 당시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혔던 가빈이 가공할 위력으로 점수를 쓸어 담은 것이 1차적인 우승 원동력이었지만 유광우의 볼 패스가 가빈의 공격력을 살려낸 것이 숨은 원인이었다. 당시 삼성화재 서브 리셉션 성공률은 7개 구단 가운데 최저였다. 수비도 최하위, 디그는 5위에 그칠 정도로 불안했다. 하지만 유광우는 세트 부문에서 2위에 올라있었다. 성공률이 54.58%였는데 세트 부문 1위였던 한선수(대한항공)가 54% 성공률을 낸 것보다 앞섰다. 수비가 불안정해 좋지 않은 공이 자신에게 오더라도 공격수가 득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공격수의 입맛에 맞게 연결했다는 의미다. 유광우는 당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욕심은 있었지만 긴장감은 없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다가올 포스트 시즌에는 어떤 선수가 배짱 좋은 모습으로 코트를 호령하게 될 지, 배구팬들의 기대가 모아진다.



글/ 이정수 스포츠서울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KOVO 제공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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