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해외 프로배구리그를 찾아서 미국 IVA & 유럽리그

매거진 / 더스파이크 / 2017-02-06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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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종주국은 어디일까. 바로 미국이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중에서 축구를 제외한 야구 농구 배구는 모두 미국에서 처음 탄생하여 시작됐다.(야구의 경우 기원과 관련한 여러가지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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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해당 종목 종주국답게 야구와 농구에서 최상위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메이저리그(MLB)와 미국프로농구(NBA)가 그렇다. 전 세계에서 야구와 농구를 ‘업’으로 삼은 선수들은 ‘꿈의 무대’라고 일컫는 MLB와 NBA를 동경한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야구와 농구 슈퍼스타를 동경하고 응원을 보낸다.



그런데 배구는 위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미국은 현재 자국 리그가 없다. 지역별 아마추어 대회를 포함한 군소 토너먼트 대회가 열릴 뿐이다. 굳이 범위를 비치발리볼로 넓히면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는 투어 대회는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모래사장이 아닌 코트에서 치러지는 ‘6인제 배구’로는 학교체육 하나로 전미대학체육협회(NCAA)가 주관하는 대학배구가 최상위리그다.



배구는 미국과 캐나다를 아우르는 북미지역에서 만큼은 제대로 된 리그가 없다. MLB, NBA 뿐 아니라 NFL(미식축구) NHL(아이스하키) MLS(축구)와 같은 프로리그는 언감생심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배구선수로 돈을 벌고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 취업이 필수다.


선수들은 세계 곳곳 리그로 흩어진다. 하지만 미국에도 엄연히 프로배구가 닻을 올리고 힘차게 항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NBA 전설의 스타도 스파이크를 때렸다


유럽 및 해외배구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월드 오브 발리’에서는 지난해 흥미로운 글을 실었다. ‘월드 오브 발리’는 배구 관련 블로거들이 쓴 글을 종종 소개하곤 하는데 1970년대 미국에서 조직된 프로배구리그에 대한 글이 눈에 띄었다.



1975년 리그가 창설돼 1979년까지 존재했던 IVA(International Volleyball Association)다. IVA에서는 NBA 전설인 윌트 채임벌린을 비롯한 여럿 농구스타가 배구선수로 뛰었다. 채임벌린과 함께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릭 베리도 IVA 선수로 활약했다.



채임벌린이 NBA 선수 은퇴 후 배구선수로 활동했다는 그 무대가 바로 IVA다. 채임벌린은 미국에서 첫 번째 프로배구리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줬다. IVA 사무국 이사회 일원으로 리그 설립에도 관여했고 직접 선수로 코트에 나왔다.



NBA에서 명센터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IVA에서도 미들블로커로 뛰었다. 그는 시애틀 스매셔스 소속으로 뛰었다. 채임벌린은 코트 밖에서도 부지런히 IVA 연착륙을 위해 노력했다. 올스타전, 방송중계권 판매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데 자신의 명성을 활용하기도 했다.



리그 출범 첫 해인 1975년, IVA에는 5개팀이 참가했다. LA스타즈, 샌디에이고 브레이커스, 산타바바라 스파이커스, 서던캘리포니아 뱅거스, 엘파소 후아레스 솔이 원년 참가팀이다. 5개팀이 경쟁을 벌이는 미니리그였지만 구색은 갖췄다. 정규리그를 마친 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러 LA가 샌디에이고를 3승 1패로 물리치고 IVA 첫 우승을 차지했다.



출범 2년째 IVA는 참가 팀이 늘어났다. 서던캘리포니아가 연고지를 턱슨시티로 옮겼고 팀 명칭도 도시명에 맞춰 터르코이스로 바꿨다. 피닉스와 덴버에도 팀이 생겼다. 두 팀은 각각 히트와 코메츠를 명칭으로 사용했다.



7개팀이 두 개 디비전으로 나눠 정규시즌을 치렀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원년 우승을 놓친 샌디에이고가 복수전을 펼쳤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LA를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제치고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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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전성기


NFL MLB NBA NHL 등과 견줄 수 없지만 IVA는 조금씩 성장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대도시를 기반으로 뒀던 LA가 연고지를 옮겼다. 팀 명칭은 그래도 유지했지만 오렌지카운티로 이동했다. 이는 IVA가 주류 프로스포츠 종목과 리그로 성장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한편 턱슨시티는 한 시즌 만에 더 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스카이로 팀 명칭을 바꿨다.



오렌지카운티는 그 해 챔피언결정전에 다시 진출했다. IVA 출범과 함께 강 팀으로 자리잡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엘파소를 맞아 3승 2패로 승리를 거두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원년멤버 엘파소와 함께 피닉스, 덴버가 IVA를 떠났다. 피닉스와 덴버는 한 시즌 만에 팀이 해체됐다. 지역 미디어조차 외면하는 상황을 버틸 수 없었다.



리그 출범 3년 만에 가장 적은 4개팀 체제가 됐다. 위기를 느낀 채임벌린과 IVA 사무국은 시애틀에 새로운 팀을 창단했다. 채임벌린도 사무국을 떠나 배구선수로 코트에 나왔다.



시애틀은 리그 참가 첫 해 우승을 차지했고 최우수선수(MVP)에는 채임벌린이 선정됐다. 턱슨시티는 그 해 팀 명칭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IVA의 마지막이 된 1979년. 리그는 출범 후 가장 많은 8개팀이 참가했다. 앨버키키 레이저스, 솔트레이크시티 스팅어스, 새너제이 디아블로스가 신생 팀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IVA는 그 해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디어의 무관심도 문제였지만 리그 운영에 필요한 스폰서를 찾지 못한 것이 리그 전체 해체로 이어졌다. IVA는 남자부와 함께 여자부 리그도 운영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금전적인 문제를 넘지 못 했다. 1979시즌은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등 포스트시즌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문제는 역시 돈


미국배구협회는 지난 2013년 미국프로배구리그 창설을 위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미국 배구계에서도 해외리그에서 뛰는 우수한 자국 출신 선수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관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



리그 설립을 위한 로드 맵을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해까지 협회 차원에서 리그 출범과 관련한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IVA 상황과 같다. 변한 것은 없다. 든든한 스폰서 확보, TV 방송중계권, 광고 등 자금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다른 프로종목과 견줘 자본 및 규모가 비교될 수 없다. 첫 발을 떼기도 전에 리그 출범에 필요한 기본적인 발판마저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빌 게이츠와 같은 슈퍼리치가 배구리그를 만들기 위해 거금을 쾌척 하더라도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내에서도 배구 꿈나무로 꼽히던 선수들이 배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선택한다. 당연한 일이다. 연봉 규모부터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NBA에서 19시즌째 현역 선수로 뛰고 있는 빈스 카터다. 그는 마인필드 고교시절 농구뿐 아니라 배구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NBA는 마이클 조던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가 코트를 누볐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기. 카터는 고민 없이 배구 대신 농구를 선택했다. 카터처럼 NBA에는 배구에서도 기대주로 꼽혔던 선수가 지금도 꽤 된다.



직업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미국에서만큼은 배구는 농구와 비교해 절대 약세가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은 국제 배구계에서 무시 당하지 않는다. 종주국이라는 지위 때문만은 아니다. 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 톱클래스급으로 평가받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남녀대표팀 세계랭킹도 높은 편이고 각종 국제대회 성적도 좋다.



선수 공급 풀이 풍부한데다 협회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그 이유로 꼽힌다. 협회는 각국리그 일정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오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급 대표팀을 구성한다. 합동 훈련을 매년 실시한다. 상비군 제도가 잘 갖춰진 부분도 미국 배구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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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리그도 부익부 빈익빈


자금 문제는 미국 배구계에만 적용되는 사례는 아니다. 국제 배구계에서 빅 리그로 꼽히고 있는 유럽도 비슷한 사정이다. 유럽배구리그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리그가 오랜 기간 맏형 역할을 했다. 남자부와 여자부 모두 뛰어난 선수들이 활약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어 이런 지형도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석유와 가스개발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유럽리그와 팀들은 영향을 받았다. 배구 강국 러시아가 유럽리그에서 최상위 리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반면 국내 경제가 상대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이탈리아리그는 명성과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과 김호철 전 현대캐피탈 감독은 “이탈리아리그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됐다”라고 입을 모았다. V-리그와 달리 이탈리아리그는 배구단이 모기업으로부터 직접 팀 운영비를 지원받는 곳이 거의 없다. 김 감독은 “이탈리아리그 팀들 대부분이 메인 스폰서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라고 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리그 팀들은 유니폼에 광고가 많이 붙어있다. 김 감독은 “광고 숫자가 많을 수록 팀 재정상태가 탄탄하다”라며 “스폰서는 매 시즌마다 바뀔 수 있다. 돈을 더 많이 내는 곳이 메인 스폰서 역할을 맡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 하는 경우에는 팀 성적과 관계 없이 하위리그 강등도 감수해야 한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리그에서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운영비 등에서 압박을 받다 보니 선수단 임금이 밀리는 일도 발생한다. 좋은 시절을 짧게 누린 리그도 있다. 아제르바이잔리그가 그렇다. IBK기업은행 세터 김사니가 지난 2013~2014시즌 선수 생활을 했던 아제르바이잔리그는 석유와 가스 자본을 앞세워 한때 유명선수 영입전을 펼쳤다. 아제르바이잔리그 팀들이 이적 시장에서 큰 손 노릇을 했다. 유럽에서 상위리그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평가 받았지만 최근에는 옛일이 돼버렸다. 자국 석유와 가스 사업이 호황기에서 벗어나면서 배구단과 리그도 함께 타격을 받았다. 메인 스폰서를 맡았던 회사가 발을 빼자 지갑이 얇아진 구단들은 우수 선수를 다른 리그로 내보냈다. 자연스럽게 톱클래스 선수들도 아제르바이잔리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보다 안정적이고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리그와 팀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V-리그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경우가 해당된다.



김 감독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도 유럽리그에서 빅 클럽으로 꼽히는 팀은 여전히 건재하다”라며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그런 팀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진다는 의미다. 이런 일은 이탈리아리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거의 모든 유럽리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V-리그는 아직까지는 유럽리그와 같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줄줄이 해체 수순을 밟았던 실업팀, 재정 문제로 한국배구연맹(KOVO)으로부터 관리를 받았던 우리캐피탈(드림식스) 사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김연경(페네르바체)이 뛰고 있는 터키리그는 유럽 최상위리그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터키리그는 지난 1983년 시작됐는데 출범 초기부터 현재와 같은 리그 시스템을 구성했다. 터키리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알아보기로 한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CEV(유럽배구연맹) 홈페이지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2월호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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