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플레이오프로 가는 길 ‘봄 배구’ 꿈꾸는 팀의 마지막 한 수
- 매거진 / 더스파이크 / 2017-02-06 16:47:00
대표적 겨울 스포츠로 뿌리를 내린 V-리그. 하지만 정작 챔피언이 결정되는 시기는 겨울이 아닌 봄이다. 선택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인 포스트 시즌을 두고 흔히 ‘봄 배구’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유례없는 전력 평준화가 이뤄진 2016~2017시즌에는 봄 배구를 향한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쯤 되면 안정권에 든 팀이 나올 법도 한데 이번 시즌에는 감감무소식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윤곽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가 내린 평가다. 그렇다면 진짜 살얼음판 승부를 앞두고 각 팀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꺼낼 수 있는 최후의 한 수를 짚어보자.
김정환과 이강원, 구세주 될까?
남자부에서는 최대 4개팀이 포스트시즌에 나설 수 있다. 정규리그 1~3위팀과 함께 4위팀도 3위팀과 승점 차를 3점 이내로 좁힐 경우 축제 참가가 가능하다. 현재 3강에서 사실상 멀어진 팀은 OK저축은행이 유일하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처럼 기적적인 연승 가도를 구가할 경우 뒤집기가 가능하겠지만 지금 전력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나머지 6개팀들은 매 경기 결승전과 다름없는 혈투를 벌인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우리카드는 창단 후 처음으로 봄 배구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잘 뽑은 외국인 선수 크리스티안 파다르(헝가리)가 아포짓 스파이커 포지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최홍석과 박상하가 버티고 있는 자리도 다른 팀 못지않게 안정적이다.
고공비행 중인 우리카드가 믿는 구석은 또 있다. 바로 김정환이 돌아온다. 2014~2015시즌 종료 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김정환은 1월26일 팀에 합류했다. 김정환은 한때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검증된 공격수다. 외국인 선수들 유입으로 왼손잡이임에도 윙스파이커로 변신을 꾀한 그는 입대 전까지 해당 포지션에서 수준급 선수로 통했다. 2013~2014시즌에는 67.07%라는 높은 시간차 성공률로 이 부문 4위에 올랐고, 2012~2013시즌에는 문성민(현대캐피탈), 박철우(삼성화재) 등 쟁쟁한 공격수들을 뒤로 두고 퀵오픈 3위에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리시브 능력까지 갖춘 김정환이 가세하면 신으뜸, 최홍석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날개공격수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포스트시즌을 갈망하는 것은 KB손해보험도 만만치 않다. KB손해보험은 4위팀 플레이오프행이 유일하게 보장됐던 2010~2011시즌 막차로 봄 배구를 경험한 것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구경꾼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올해 역시 초반 난조로 쉽지 않은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이지만 이강원이 있기에 그나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12~2013시즌 V-리그에 뛰어든 이후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하던 이강원은 올 시즌 제대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가 가진 다재다능함은 이미 여러 경기를 통해 증명됐다. 외국인 선수 아르투르 우드리스(벨라루스)가 주춤할 때는 대신 공격을 책임지고, 주포 김요한이 삐걱거리면 윙스파이커로 이동해 빈자리를 메운다. 문용관 감독 시절에는 미들블로커로 전업까지 꾀했던 터라 블로킹 또한 수준급이다. 1월 14일 KB손해보험이 한국전력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이강원 공이 컸다. 이강원은 이 경기에서 19점, 공격성공률 60%를 기록했다.
한국전력-현대캐피탈, 세터에 달린 운명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은 나란히 ‘코트 위의 마에스트로’라는 세터 포지션에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한국전력 주전 세터는 강민웅이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수련 선수로 삼성화재에 입단한 강민웅은 유광우에게 밀려 후보 신세를 면치 못했다. 2014년 대한항공으로 이적한 뒤에는 한선수 그늘에 가려졌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신영철 감독이다. 강민웅은 선수 시절 컴퓨터 세터로 불렸던 신 감독 지도 아래 빠르게 성장했다. 그 동안 단 한 차례도 느껴보지 못했던 주전 세터라는 책임감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국전력이 4라운드를 채 마치기도 전에 지난 시즌 승수인 14승을 넘어선 것에는 강민웅이 펼친 공이 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시즌을 오롯이 보내본 적이 없다는 약점이 드러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승부처만 가면 들쭉날쭉해지는 볼 패스에 순항하던 한국전력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신영철 감독은 “경기는 상대와 하는 것이지만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 세터 역할이다. 상대 블로킹을 읽고 전체를 컨트롤해야 하는데 민웅이는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만년 하위권 이미지가 강했던 한국전력은 바로티와 전광인 서재덕이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 삼각 편대를 보유한 올 시즌에 ‘봄 배구’를 넘어 우승까지 노리고 있다. 세 선수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강민웅 활약이 절실하다.
신 감독은 “우리는 이미 패턴이 다 나와있다. 이를 풀 수 있는 주인공은 바로 세터다. 민웅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패턴을 가져가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2년 연속 정규리그 패권을 노리는 현대캐피탈은 노재욱 허리 상태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권영민과의 트레이드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노재욱이 이처럼 빠르게 팀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이 톤 밴 랜크벨트(캐나다)라는 허약한 외국인 선수를 데리고도 우승 경쟁을 펼치는 이유 역시 노재욱 존재 덕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탈 없어 보이는 노재욱에게는 허리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도 고질적인 허리 협착증이다. 삼성화재 트레이닝센터(STC)와 더불어 국내 구단 최고 수준이라는 의료 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캐피탈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돌보고 있지만, 워낙 일정이 빡빡한 탓인지 쉽게 낫지 않는다. 한창 힘을 내야 하는 시기인 4라운드에서는 결장하는 경기가 늘어나면서 애를 태우고 있다. 노재욱 건강은 현대캐피탈을 넘어 리그 판도를 바꿀 중요한 열쇠다.
선수 개개인이 가장 뛰어난 대한항공은 그 힘을 하나로 묶는 것이 숙제다. 수년째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고도 결과를 내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포지션 별 주전선수들이 즐비해 몇몇 선수가 난조를 보여도 쉽게 연패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팀 컬러가 분명한 삼성화재는 타이스(네덜란드) 공격력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에 명운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삼성화재 특유의 끈끈함이 더해진다면 쉽게 물러날 팀은 아니다. 누구보다 이기는 법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기존 전력 다지기에 나선 여자부
포스트시즌 티켓 3장이 주어지는 여자부 레이스는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 현대건설 KGC인삼공사 4파전으로 압축된 모양새다. 가장 안정적이라는 흥국생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팀 중 한 팀은 봄 배구 초청장을 받지 못한다.
현대건설 변수는 에이스 양효진이다.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불안요소다. 양효진이 국내 최고 중앙공격수라는 점에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다만 건강했을 때 이야기다. 양효진은 오른쪽 어깨 통증을 달고 산다. 블로킹은 큰 문제가 없지만, 속공과 시간차 세기는 예년 같지 않다. 연타에 의존하는 양효진 공격 패턴을 파악한 상대가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시간차 성공률은 전년 대비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양효진은 “언제쯤이면 좋아질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즌 마지막에 리듬이 좋아지길 바라고 있다”라고 했다.
IBK기업은행이 패권을 가져가기 위한 필요조건은 박정아와 김희진 활약이다. IBK기업은행은 두 선수가 함께 제 몫을 해줄 때는 비교적 쉽게 경기를 풀었으나 한 명이라도 막힐 때에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어김없이 고전했다. 결국, 두 선수가 해줘야 한다.
KGC인삼공사는 공수 주축이 확실한 팀이다. ‘복덩이’ 알레나(미국)와 리베로 김해란이 중심을 잡아주면서 기대 이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미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날개공격수들이 분발해야 한다. 장영은과 지민경 김진희 최수빈이 공격과 리시브에서 알레나와 김해란의 부담을 덜어줄 수만 있다면 3강 진입도 충분히 가능하다.
글/ 권혁진 뉴시스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2월호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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