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디그여왕, 왜 ‘김해란’이냐고 묻거든 그저 웃지요

여자프로배구 / 최원영 / 2017-02-01 0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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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파이크=대전/최원영 기자] KGC인삼공사 리베로 김해란에게는 ‘디그여왕’이란 수식어 외에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상대편 코트에 김해란이 서있다고 상상해보자. 득점을 만들어야 하는 공격수들은 생각만으로도 괴로울 것이다. 김해란은 어떤 공격도 쉬이 허락해주지 않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끈질긴 수비에 많은 공격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이를 증명하듯 김해란은 숱한 대표팀 경력을 지녔다. 월드그랑프리,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런던 및 리우올림픽 등 김해란은 대표팀 단골 멤버였다. 베테랑으로 진화하며 선수들 뒤를 든든히 받쳤다.


그런 그가 1월 31일 현대건설 전에서 또 하나의 기록을 작성했다. 남녀부 통틀어 역대 최초로 디그 7,500개를 돌파한 것이다(7,509개). 김해란의 기록 행진 출발점은 2005~2006시즌 도로공사 소속이던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그는 GS칼텍스 리베로 남지연(현 IBK기업은행)에 이어 2호로 디그 성공 500개를 달성했다.


이후 1,000개부터는 김해란이 1호 기록을 모두 보유했다. 그는 매 시즌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볍게 4~5천 개를 돌파했다. 6,500개부터는 홀로 기록을 쌓아 올렸다. 1월 31일 기준 남지연은 6,329개, 임명옥(한국도로공사)은 5,589개 디그를 성공했다. 7,500개라는 탑을 쌓은 김해란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다.


올 시즌 김해란은 세트당 6.12개 디그를 성공했다. 나현정(GS칼텍스), 임명옥에 이어 해당 부문 3위에 자리했다. 특히 4라운드에는 세트당 디그 6.58개로 올 시즌 들어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 33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활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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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흥국생명 러브의 공격을 가장 많이 걷어 올렸다. 디그 24개를 시도해 23개를 성공하며 성공률 95.83%를 자랑했다. 이어 GS칼텍스 알렉사 공격을 80%(20/25) 성공률로 받아냈다. 현대건설 황연주와 에밀리 공격에는 각각 디그 성공률 77.78%(14/18), 73.08%(19/26)를 선보였다.


자연스레 서남원 감독의 신뢰가 깊어졌다. 서 감독은 “늘 잘하는 선수 아닌가. 올 시즌도 어김없이 잘해주고 있다. 해란이에게 수비 라인이나 위치 선정 등을 많이 맡긴다. 예를 들어 상대 라이트 공격에 대해 우리 블로커가 대각 쪽을 막으면 뒤에서 해란이가 직선이나 반 대각 코스를 잡아준다”라며 칭찬했다.


“해란이 같은 선수가 있으니 다른 선수들도 자기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는 듯 하다. 해란이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라고 짚어주더라. 그게 다른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고,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서 감독 말대로 KGC인삼공사 선수들도 “훈련할 때마다 언니가 붙잡고 얘기해준다. 각자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세세하게 조언해줬다. 우리는 그냥 언니가 옆에 서있기만 해도 든든하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작 김해란은 덤덤했다. 우선 디그 기록을 세운 소감을 묻자 “네, 그랬다던데요”라며 무심한 듯 미소 지었다. 그는 “경기 끝나고 알았다. 첫 번째라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기록에 관한 목표를 세운 건 아니다. 내 개인 기록 보다는 팀이 이기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해란만의 노하우도 궁금했다. “배구를 오래 하다 보니 상대 선수의 폼이 보인다. ‘이거다!’ 싶으면 바로 몸을 날리는 것도 있다. 감독님께서 수비에 관해서는 내게 많이 맡겨주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라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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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팀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레프트 장영은과 최수빈이 모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자칫 선수단 전체가 동요할 수 있는 상황. 김해란은 “리그 후반인데 부상자가 나와 분위기가 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라앉을 순 없다. 남아있는 선수들이 잘 메워주면 된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이어 “우선 부상 선수들을 달래줘야 할 것 같다. 다쳤기 때문에 빨리 치료해 복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위로해주려 한다. 다시는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운동할 때 선수들 집중력을 높일 것이다”라고 말을 이었다. 고참으로서 책임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KGC인삼공사(12승 10패 승점 36)는 3위 자리를 차지했다. 2위 IBK기업은행(13승 9패 승점42)과는 승점 6점, 4위 현대건설(12승 10패 승점34)과는 승점 2점 차이다. ‘봄 배구’를 향한 욕심이 피어 오를 법 했다.


김해란은 “감독님과 선수들이 욕심을 버리고 매 경기 즐기면서 하자고 했더니 잘 됐다. ‘더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겠지만 그걸 버리고 한 경기 한 경기 재미있게 하고 싶다”라며 힘줘 말했다.


프로 원년부터 현재까지 한결 같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해란. 코트 안팎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왜 김해란이 ‘디그여왕’이냐”고 묻거든 그저 웃으며 그녀의 경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사진/ 더스파이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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