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판타스틱 듀오

매거진 / 정고은 / 2016-12-31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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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Duo).’ 다르게 말하면 2인조. 한국 배구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아찔한 조합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좌진식­우세진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 그들은 전설이 됐다. 그 뒤를 이어 최고 듀오자리를 노리는 이들은 누가 있을까.



신영석 × 최민호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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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에서 군복무 중이던 신영석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현대캐피탈로 전격 트레이드 됐다는 것. 입대 전 우리카드 소속이었던 신영석은 2015~2016시즌이 한창이던 1월 21일 현대캐피탈에 합류했다. 그렇게 현대캐피탈은 최민호와 함께 국가대표 미들블로커진을 두 명이나 품에 안았다.



이적 후 첫 경기부터 신영석은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냈다. 블로킹 2개 포함 7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와 더불어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홈 팬들도 그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제 내가 현대캐피탈에서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느낌은 배구하면서 처음이다. 연극이라고 하면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만큼 부담감도 있었다. 손에 아시안게임 때도 나지 않던 땀이 났다. 잊을 수 없는 첫 경기로 기억된다.” 신영석의 소감이다.



이후 신영석은 12경기에 나서 87득점(성공률 56.6%)을 기록하며 팀이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단일 시즌 최다인 18연승을 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 현대캐피탈로서는 신영석 가세가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그리고 여기 현대캐피탈 중앙을 든든히 지키는 수문장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최민호. 전통적으로 현대캐피탈은 ‘높이’를 뽐내는 팀이었다. 역대 블로킹 득점 1, 2위에 올라있는 이선규(KB손해보험), 윤봉우(한국전력)부터 최민호까지 높이에 있어서 만큼은 다른 팀을 압도했다.



지난 시즌 최민호는 속공(성공률 65.75%)과 블로킹(세트당 0.646)에서 2위와 3위에 오르며 미들블로커로서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다.


신영석과 최민호가 버티는 중앙은 올해도 성과를 높이고 있다.


이 뿐만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기본옵션이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은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영석과 최민호가 있다. 날개공격수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각각 윙스파이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라는 새 옷을 입었다.



맞춤 정장처럼 몸에 딱 맞는 옷은 아니지만 잘 소화해내고 있는 이들이다. 신영석은 “언제 어떻게 포지션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해온 것이 있는 만큼 다음에는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최민호도 “5~6년 만에 포지션을 옮겨 처음에는 힘들었다. 사이드 포지션이 체력적인 부분에서 소모량이 많다. 영석이 형도 그 부분을 우려했지만 연습을 잘해왔고 결과도 좋게 나왔다. 앞으로 더 노력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 신영석과 최민호.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그들이 보여줄 올 시즌이 궁금할 뿐이다.




파다르 × 최홍석
우리가 만나니 기쁘지 아니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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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 남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현장. 구슬 추첨이 시작됐고 곧이어 대한항공측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어 KB손해보험도 만족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추첨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우리카드쪽 낯빛은 어두워져만 갔다. 간간이 한숨 소리도 들려왔다. 그럴 것이 가장 많은 25%의 확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5순위로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김상우 감독의 선택은 파다르였다. 의외였다. 사전 평가점수 21위에 그쳤던 선수였다. 게다가 지명된 외국인 선수 중 최연소(20세)에 최단신(196.5cm)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순번은 의미가 없었다. 기대 이상, 아니 대박이었다. 파다르는 최홍석과 함께 좌우를 든든히 책임졌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최하위를 전전했던 팀은 어느새 중상위권으로 발돋움했다. 1라운드 MVP는 그의 차지였다.



상승세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부진을 겪기도 했다. 2라운드 들어서자 위력이 반감됐다. 득점과 성공률이 떨어졌다. 김상우 감독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신장도 작고 1라운드를 거치면서 분석이 들어갔을 것이다. 어쨌든 이겨내야 하는 건 본인 몫이다”라고 전했다.



힘이 빠진 외국인 선수. 그렇지만 우리카드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바로 최홍석. 그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삼성화재전 18연패를 끊어냈던 날에도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린 건 최홍석이었다. 여기에 자신의 3호 트리플크라운까지 작성했다.



올 시즌 주장에 새로이 임명된 최홍석. 책임감도 더 커진 모습이다. “우리가 준비했던 걸 믿고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주장이 됐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늘 하던 대로 내가 할 역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책임감이 더 생겼다.” 지난 시즌에 비해 점유율이나 성공률면에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최홍석이다. 최홍석은 파다르에 대해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성실하다. 열심히 하고 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올 시즌 ‘우리카드’라는 한 팀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최홍석도 파다르도 성적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다. “파다르랑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경기적인 부분을 말할 때도 있고 힘들어 보인다거나 몸이 안 좋아 보일 때에는 커피 한 잔 하기도 한다. 통역이 있지 않나(웃음).” 한국말도 자기가 먼저 배우려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한국 생활에 녹아들고 있다는 파다르. 최홍석과 그의 케미도 이상 無다.




전광인 × 서재덕
케미는 우리를 못 따라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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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다수 팬들이 예상했으리라. 이 둘의 이름이 빠지면 섭섭하다. 듀오 이상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이들이다. 성균관대 재학시절부터 지금 한국전력까지, 함께 한 세월이 그들을 말해주고 있다. 케미에서 만큼은 그 어떤 조합이 와도 꿀리지 않는다. 이제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경기력에서도 마찬가지. 공격에 전광인이 있다면 수비에는 서재덕이 있다. 현재(11월 21일 기준) 전광인은 194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부문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이들은 모두 외국인 선수. 즉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인해 슬럼프를 겪었지만 부활에 성공, 완전한 ‘전광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격력만 있는 건 아니다. 디그에서도 강점을 보이고 있다. 세트당 1.786개를 걷어 올리며 이 부문 6위를 차지하고 있다. 4위 곽승석(대한항공)을 제외하고는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리베로라는 점에서 그의 수비력을 엿볼 수 있다.



수비하면 또 서재덕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팀에서 리시브를 도맡아 하고 있다. 점유율 45.3%. 성공률은 59.44%다. 360번의 시도 가운데 228개를 정확하게 받아냈다. 리시브 부문에서 신으뜸(세트당 6.158)에 이어 5.095개를 기록하며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수비 부문 역시 신으뜸, 류윤식에 이어 3위를 차지, 상위권에 올라있다.



사실 서재덕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팀에서는 윙스파이커 역할을 소화하고 있지만 성균관대 시절 아포짓 스파이커로 명성이 자자했다. 바로티와 전광인에 비해 공격에 나설 기회가 적을 뿐 그 또한 매서운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2016 월드리그에서 이를 입증했다. 9경기 동안 총 140득점(공격 121, 블로킹 6, 서브에이스 13)을 올리며 공격을 책임졌다. 팀 내 최다 득점. 그의 활약에 한국은 강등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2그룹 잔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격과 수비,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서재덕과 전광인, 이쯤 되면 완벽한 듀오가 아닐까.



박정아 × 김희진
한 때 라이벌, 최강 우승 주역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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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창단을 알리며 막대구단으로 V­리그에 입성한 IBK기업은행. 팀 역사는 짧았지만 V­리그 역사를 새로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통합우승을 거머쥐더니 이후 정규리그 우승 두 차례, 챔피언 결정전 우승 한 차례를 기록하며 여자부 최강자로 우뚝 섰다. 무려 창단 4년 만에 이룬 성과다.



IBK기업은행 전성시대 주역은 단연 김희진과 박정아다. 신생 구단 우선 지명으로 나란히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받아 든 두 선수. 고등학생 때만 해도 차세대 토종거포로 주목받으며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라이벌이었다. 그랬던 둘이 한 팀이 되어 만났다.



“둘이 한 팀에서 뛰는 것 자체가 반칙 아닌가.” 다른 구단 감독들은 최고 토종 듀오 김희진과 박정아를 보유한 IBK기업은행에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위력은 성적을 통해 증명됐다.



올 시즌에도 김희진­박정아가 버티는 IBK기업은행은 1, 2위를 다투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박정아는 수비부담을 덜면서 자신의 공격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8경기 동안 148점을 올리며 득점 부문 7위를 차지하고 있고 성공률도 40.56%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선수들이 수비에서 부담을 덜어주는 만큼 나는 공격에서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님도 그렇고 (김)사니 언니도 그렇게 말한다. 나 역시도 ‘이 상황에서는 득점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격에 임한다.” 박정아의 말이다.



김희진도 득점 지표에서는 비록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속공, 시간차, 후위, 블로킹 등에서 제 역할을 소화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다만 두 선수의 수비력을 이야기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 리우올림픽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박정아. 올 시즌 리시브 부담이 확 줄었다. 지난 시즌 6.4% 점유율을 차지했던 반면 올 시즌 0.5%로 확 떨어졌다. 김희진도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오가는 포지션상 수비보다는 공격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



두 선수가 보여주는 케미는 코트 안에서 더 빛난다. 지난 시즌 이정철 감독은 김희진과 박정아에게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번갈아 맡겼다. 경기 중에도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적응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두 선수는 서로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며 팀을 정규리그 우승에 올려놨다.
외국인선수와 함께 김희진­박정아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타 팀 모두가 부러워하는 황금조합. 한 때는 중앙여고(김희진)와 남성여고(박정아)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둘이지만 이제는 한 팀이 되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불어넣는 듀오로 거듭났다.





이재영 × 러브
우리가 바로 환상의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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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흥국생명에게 외국인선수란 아픔만 남기고 떠난 존재였다. 드래프트 3순위로 선발한 테일러는 족저근막염으로 시즌 도중 팀과 이별해야 했다. 대체선수로 알렉시스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흥국생명은 5년 만에 나선 봄배구에서 봄 향기를 맡을 새도 없이 짐을 싸야 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9일 여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은 최대어로 지목받았던 러브를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러브는 트라이아웃 기간 내내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캐나다 국가 대표 출신일 뿐만 아니라 폴란드, 아제르바이잔, 독일 등 다수 유럽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다. 196cm의 큰 신장은 감독들이 원하는 해결사 스타일에 딱 맞았다.



박미희 감독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러브를 뽑는 순간, 아포짓 스파이커에 대한 고민이 해결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가 크다. 외국 경험이 있는 것도 좋았다.”



시즌에 들어서자 러브의 존재감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했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스파이크는 상대 코트를 연신 맹폭했다. 현재 8경기를 소화하며 233점을 기록, 득점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공격 종합에서도 41.12%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박미희 감독은 “나쁜 볼을 잘 처리해주고 있다. 침착하게 잘 해주고 있다”라며 “기술적인 것을 떠나서 무슨 얘기를 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쁘다. 자기가 뭔가 안 됐을 때는 이렇게 하면 어떠할까 얘기도 한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러브를 등에 업은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1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미디어데이 당시 박미희 감독은 “지난 시즌은 봄 배구에 대한 열망이 컸는데 올 시즌은 목표가 다르다. 봄 배구가 아닌 우승이 목표”라며 우승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다. 지금으로서는 허황된 꿈만은 아니다. 러브 옆을 지키는 이재영도 든든히 자신의 역할 이상을 소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 3년차를 맞은 그는 공격과 수비에서 한층 더 성숙해진 기량을 뽐내고 있다. 전체 득점 6위(149득점). 국내 선수 가운데서는 1위다. 성공률도 알레나(43.22%), 리쉘(43.11%)에 이어 41.51%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러브가 가세하며 이재영의 파괴력도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지난 시즌은 외로운 에이스로서 팀 공격을 책임져야 했지만 이제는 믿음직한 파트너 러브가 함께 하고 있다. 공격 부담을 나눠가질 수 있게 됐다. 팀 구성상 점유율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28% → 27.2%) 성공률(33.9% → 41.51%)은 더 높아진 이유다. 더 놀라운 건 리시브도 안정적이라는 것. 받고 때리기 모두 가능한 그야말로 만능이다. 리시브 1위는 이재영의 몫이었다. 세트당 3.897개를 받아내고 있다. 수비에서도 팀 동료 한지현(Li)과 함께 나란히 1, 2위에 있다.



일전에 박미희 감독은 “3년 차다 보니 이제 여유가 느껴진다.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다. 본인이 주도하는 플레이가 늘어났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지금도 잘 해주고 있지만 더욱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 감독의 말처럼 이재영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토종선수 가운데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러브­이재영 두 좌우 쌍포가 있어 함박웃음을 짓는 흥국생명이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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