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스타’를 기억하시나요, 심판 송인석

매거진 / 최원영 / 2016-12-27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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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스타’를 기억하는가. 현대캐피탈 윙스파이커로 코트를 누볐던 송인석이 V-리그 심판이 되어 돌아왔다. 11월 14일 월요일, 그의 귀중한 휴식시간을 빼앗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심판 송인석’은 선수 시절 그랬던 것처럼 수줍고 점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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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팀 서울시청 소속이던 송인석(서울시립대)은 2000년 드래프트에서 현대자동차(현 현대캐피탈)에 지명됐다. 이후 그는 2005년 프로배구 출범과 동시에 서서히 입지를 다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신장(196cm)을 이용한 정교한 공격으로 팀을 도왔다. 묵묵히 제 역할을 하던 ‘송스타’ 송인석. 2009~2010시즌이 끝난 뒤 현대캐피탈과 FA 협상이 결렬되며 코트를 떠났다. 허리 수술로 인해 1년간 재활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2년 2월 12일 은퇴식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4년, 송인석은 심판의 길에 발을 들여놨다. 그 해 여름 신경수 김민욱(이하 대한항공) 김은영(KGC인삼공사)과 함께 KOVO 심판아카데미를 수료했다. 송인석은 2014~2015시즌 곧바로 정식 심판이 됐다. 줄곧 선심만 보던 그는 올 시즌 주심으로 데뷔했다. 지난 9월 22일 2016 청주·KOVO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A조 개막전(삼성화재-신협상무)에서 처음으로 주심대에 올라섰다.


허리 수술 후 은퇴를 하게 됐어요. 향후 계획에 대해 미리 생각해둔 게 있었나요?
아뇨. 사실 수술할 때는 다시 경기를 뛰고 싶었어요. 그런데 잘 안 돼서 은퇴 후 실업 팀 화성시청에 갔죠.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요. 열심히 하면 다시 프로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했죠. 하지만 허리가 좋지 않은 데다 나이도 있어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그럼 심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주위에서 권유했다고 들었어요.
KOVO에서 전화가 왔어요. 심판해볼 생각 있냐고 묻더라고요. 처음엔 안 한다고 했어요.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죠. 신경수가 같이 해보자고 해서 우연히 시작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가족들은 어차피 배구계에 있는 거니까 기회 되면 한 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응원해주는 분위기였어요.



심판 3년차예요. 올 시즌부터는 주·부심도 하게 됐어요.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매년 비시즌에 KOVO 심판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아요. 그리곤 프로 팀 연습게임에서 심판을 보며 경험을 쌓아요. 반칙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분하고 시그널을 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해요. 모든 플레이가 순식간에 일어나잖아요. 처음엔 타이밍을 놓치거나, 제대로 된 플레이를 반칙이라고 했던 적도 있어요. 전체 심판이 정확한 기준에 맞춰 최대한 동일하게 판정을 내리려 해요. 매 경기 일관성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런 게 어렵죠. 저는 앞으로 갈 길이 멀어요. 더 많이 배워야 해요.



매 시즌 규칙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잖아요. 꾸준히 공부하는 게 중요하겠어요.
룰 북을 많이 봐요. 그런데 경기 중에는 사전에 규정되지 않은 돌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해요. 그럴 때 잘 대처하려면 경기장에 자꾸 가서 경기를 봐야 해요. 그래야 여러 상황에 대해 숙지할 수 있으니까요. 100번 공부하는 것보다 1번이라도 더 실전에 투입되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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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심판 선배들은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외모를 좀 강하게 만들라고 하시던데요(웃음). 제가 선한 인상이라 너무 유약해 보인다고요. 어느 정도 카리스마가 있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근데 평생 이렇게 살아와서 쉽게 변하지 않네요. 경기 끝나고는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세요. 잘한 점과 잘못된 점을 자세히 짚어주시죠. 심판 위원님들은 시야가 넓고 주관이 확실하세요. 심판은 많이 볼수록 실력이 는다고 해요. 배울 게 많아서 무엇이든 귀담아 듣고 있어요. 특별히 힘든 점은 없어요. 다들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셔서요.



심판 배정은 어떻게 받는 건지 궁금해요.
경기는 이틀 전에 배정해줘요. 예를 들어 제가 수요일에 심판을 봐야 한다면 월요일에 연락을 받는 거죠. 하루 쉬고 준비해서 갈 수 있게요. 주심, 부심, 선심 중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는 경기 당일에 결정돼요. 시즌 때는 쉰다는 생각 없이 쭉 달리자고 각오를 다져요. 비시즌에는 아마추어 전국대회 등에 다녀요. 저는 초보라 계속 트레이닝 해야 해서요. 불러주시면 ‘감사합니다’하고 달려가요. 이번에는 종별선수권대회 등에 다녀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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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출신이라 경기 도중 플레이가 더 잘 보이지는 않나요?
프로선수였다고 해서 다 심판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캐치볼이나 더블 컨택 등에 대한 감은 일반인보다 좋긴 하겠죠. 심판을 계속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겨요. 선수들 행동에서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요. 선심들이 많이 도와주잖아요. 항상 시그널은 신중하게 하는 편이에요.



때때로 선심들 간 의견이 갈릴 때도 있더라고요. 그럴 땐 판정 내리기 더 어려울 듯 한데요.
선심 별로 자기가 맡은 라인이 있어요. 엔드 라인이나 사이드 라인이요. 보는 각도가 다르니 당연히 판정도 엇갈릴 수 있어요. 그럴 땐 선심들을 살짝 불러서 확실하냐고 물어봐요. 저도 본 게 있으니 선심들 이야기를 참고해서 결정하죠.



각 팀들이 비디오 판독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오심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왠지 민망할 것 같아요.
저는 진짜 식은땀이 나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심판들은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알아요. 한 번 땀이 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던데요(웃음).



선수들이 판정에 대해 항의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럴 땐 옛날 생각도 나곤 하죠?
현역 때는 저도 나름 격하게 항의했던 것 같아요. 그걸 못 보냐고 따지고 그랬는데 주심대에 올라가보니 ‘아…못 볼 수도 있구나…안 보이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저는 선수와 심판을 다 해봤으니 양쪽 처지가 공존하더라고요. 선수들 마음도 이해가 되죠. 한 점 한 점이 소중하니까요.




심판은 밑져야 본전인 직업인 듯 해요.
어쩔 수 없죠. 인-아웃은 라인에 아주 살짝 걸치기만 해도 인이니까 잡아내기 힘들어요. 애로사항이 많죠. 가장 까다로운 건 블로킹 터치 아웃이에요. 자주 발생하기도 하고 손끝에 살짝 스치는 건 진짜 보이지가 않아요. 움직임이 없으니까요. 인터넷에 심판에 대한 쓴소리가 많던데 가끔은 욕설도 있더라고요. 상처 받을 까봐 이제 안 보고 있어요(웃음).



아직 선수로 뛰고 있는 옛 동료들도 꽤 있어요. 그런데 연락할 수 없다면서요.
선수와 심판은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어요. 적정한 거리를 두고 유지해야 해요. 경기 전후에 서로 인사하는 정도예요. 사적으로 연락할 순 없고요. 판정은 항상 냉정하고 공평해야 하잖아요. 사심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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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보면 문득 과거 배구선수였던 송인석이 떠오를 것 같아요. 다시 유니폼을 입고 싶진 않으세요?
아쉽긴 하지만 돌아가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네트가 많이 높더라고요(웃음). ‘나도 저렇게 했나?’ 싶어요. 요즘은 플레이가 점점 빨라지고 전력도 평준화 돼서 선수들이 더 힘들 거예요.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선수들 땀 흘리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최종 목표가 궁금해요. 앞으로 어떤 심판이 되고 싶으세요?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이제 막 출발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큰 꿈은 그리지 않고 있어요. 한 걸음씩 차근차근 가야죠. 매 게임 무사히 마치는 게 목표예요.



송인석 씨가 심판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응원하는 팬들도 많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저는 좋은 팀과 동료들을 만나서 운 좋게 우승도 해보고 이름도 알리게 된 선수예요. 제가 끼도 없고 내성적인데 아직도 저를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니 감사해요. 심판으로서 더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글/ 최원영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KOVO 제공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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